설국나라 금병산
산을 보면 눈이 제법 많이 쌓였다.
몇 년 전 같으면 설 산 보러 간다고 이리저리 뛰고 난리 났을 텐데~
날씨 쬠 춥다는 핑계로 쇼파+리모컨 신세다.
귀차니즘이 몸을 지배한다.
나이는 속이지 못하나보다.
요즘 들어 부쩍 더 그렇다. 야간근무 때문일까?
잘 수 있는 시간이 4~5 시간 되는데, 길어야 1~2 시간 잘 뿐이다.
전자파, 기계장비 소리, 신선한 공기 부족 그리고 성격 탓도 있을 게고...
당직 후 이틀을 쉬기는 하는 데~
밤에는 자고 낮에는 일해야 되는 기본적 생체 리듬이 깨져버려
쉬는 날 낮에 잠을 못 자니 삐리삐리한 상태가 연이어진다.
그렇다고~
집에서나 친구들이 여기저기 가자고 하면,
그 이유를 핑계 삼아 거부까지 할 정도는 아니다.
단지, 혼자 스스로 계획 세우고 실행하는 잔차타기, 테니스, 등산. 걷기 등...
평소에 꾸준히 해왔던 것들의 횟수가 최근 들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나이? 계절? 일? 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것들의 복합적 영향으로 인한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냥 주저앉아 있기만 하면, 나락으로 떨어져 헤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늘까지만 그렇게 서너 달 게으름 피웠다 생각하고 이제 컨디션을 회복하자.
주섬주섬 배낭을 챙기며 목적지를 그려 본다.
블로그를 뒤적이니 고은리~대룡산을 7년 전에 마지막으로 올랐었다.
자료를 보니 모르막 01:10, 내리막 00:53 걸렸다.
그때는 장거리 산행 전의 몸풀기 코스였는 데~
이젠 그곳 경사가 엄두 나질 안아 회피구역으로 지정된 지 오래였다.
만만한 금병산이나 오르고자~
점심 식사 후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13:33 금병산 들머리
14:02 금병산 산신각
14:47 사거리 갈림길
15:30 금병산 정상
16:56 금병산 날머리
트 랭 글
증 1리 마을회관 앞에서 산행이 시작되고~~
눈 때문인지, 익숙한 풍경이 색다르게 보인다.
마음도 덩달아 순백으로 하얗게 변해버린다.
단 하나의 흰 색감일 뿐인데~
가슴속 번잡한 여러 색깔을 모두 지워버린다.
담겨진게 털어지니, 남겨진 게 없어
몸과 마음이 한층 가벼워 진다.
ㅋ~
우야노??
길 잘못 들어 남의 비닐하우스를 통과하게 되고...
아주 어렸을 적, 어머님이 해주셨던 된장 시래깃국과 무침이 떠올려진다.
벌써???
부지런한 농부의 숨결이 느껴진다.
삼악산과 드름산 그리고 향로산 설경이 마음을 평화롭게 해 준다.
우와~~
이런 멋진 그림까지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 데...
대박이다~!!!
어제 내린 눈이 영하의 날씨 속에 녹지 안고 그대로 있다.
진병산 산신각
마치 방금 전 내렸던 것처럼 나뭇가지에 소복이 쌓여 있다.
시베리아 영구동토를 이곳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
계곡 물소리가 제법이다.
아무리 춥다 해도 계절은 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전한다.
겨울이 가까울수록 파랬던 나뭇잎은 노랗게 물들고 이내 낙엽이 되어 버린다.
사람들은 그 떨어진 낙엽에 인생을 비유하곤 한다.
1년에 한 번뿐인데, 인간 평균 수명은 80년이다.
사계절 변하는 것을 어렸을 적 빼고 250번 이상은 보는 셈인데,
인생을 어찌 그 숱한 현상에 비유할까?
나무에서 씨앗이 떨어져 새싹이 돋고 키가 무럭무럭 자라 나뭇잎이 무성해지면 다시 씨앗을 뿌린다.
그렇게 종족번식을 한다.
그렇게 몇십 년 아니 백 년 이상을 살다가 서서히 나이테가 비어지면서 곧 흙이 된다.
이것이 나무 수명인데, 봄은 생명이요 겨울은 잠듬이라며 1년 생으로 착각한다.
산에 오르면 나무가 사람을 보는 것이지, 사람이 나무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산에 올라 나무 부둥켜안고 하늘을 쳐다본다.
기 좀 내려 주세요!!!
자연은 참으로 위대하다.
아놔~~~
집에 처박혀 있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이런 현상을 보면~
시간 허비하고, 자원 소비해 가면서
기를 쓰고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을 걸을 때는 물론이지만~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금병산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설국나라가 북반구에만 있으리란 법은 없다.
바로 이곳 금병산 싸리골 설경이 설국나라다.
올 겨울은 몹시 춥고, 눈도 많이 내린다.
교통사고와 화재로 많은 재산과 인명 피해가 있지만~
그런 대신에 이런 멋들어진 설경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조금의 위안을 받는다.
이 사거리에서 직진해야 했는 데 좌회전을 해버렸다.
사방이 하야니 자세히 보기 전엔 길 구분이 쉽지 않다.
10여 분 후 등로에 들어서니 녹색의 소나무 지대다.
낙엽송은 낙엽이 되지만, 소나무는 영원히 파랗다.
강한 힘과 인내심이 보인다.
보통사람들에게 그저 흘러가는 순간이지만 누군가에게 중요한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이 바로 오늘 아닐는지...
마음이 평온하니 추위도 모르겠고...
이윽고 정상에 닿는다.
늦은 시간이라 아무도 없다.
남들 내려가는 시간에 올라왔으니...
조용해서 좋긴 하다.
호반의 도시는 고담의 도시가 되어 버렸고~~
바로 옆 대룡산도 히미 하다.
정상 옆의 가녀린 나뭇가지에 눈꽃이 만발하다.
나무 사이로 수와리 소류지가 보이고~~
저곳엔 습기가 더 많아 또 다른 설경을 볼 수 있을까?
저쪽으로 내려가야겠다.
드름산과 향로산(향노산)도 이채롭게 보이고~~
금병산(진병산) 정상은 저렇게 생겼다.
산 높이가 653m이고 들머리가 134m로 해발 500m 차이가 더 나지만~~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이나 눈 풍경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부, 모두, 다 아름다울 뿐이었다.
늘 품에 안고 있는 산인데도 삼악산 세 봉우리(등선봉, 청운봉, 용화봉)가 새롭게 보인다.
드름산과 향로산도 마찬가지고~~
그 멋들어진 풍경을 한눈에 담아 본다.
오늘은 지겹도록 다녔던 곳에서 새로움을 얻어 색다른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산행이었다.
계절마다 새롭게 변한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에 한 없이 감사할 뿐이다.
오늘을 계기로 운동을 계속 이어가야겠다.
잔차는 미끄러워 안되고 테니스, 등산을 꾸준히 해야지...
수와리 소류지를 깜빡해서 아쉽지만~
늘 그런 풍경뿐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금병산 설국나라~
오늘 여행은 올 겨울 최고의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