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쿠데타'의 시작...
민정수석실 공직자의 성찰과 기록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 수여한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17년 5월 22일부터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실 공직자로 일했다(인사검증 절차 진행상 공식적인 발령일은 그해 7. 4.이었다). 1530일이 지난 2021년 7월 30일 퇴직했다.
4년 2개월여의 재직 기간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를 보필하면서 국민과 나라를 위하여 일할 수 있었던 영광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공직 재직 기간은 또한 내게 고통과 회한의 시간으로 남아 있다. 청와대에서 일하기 시작한 그 직후부터 특히 검찰발 음해가 시작되었다.
검찰과 불화
공직에 있는 내내 검찰과 불화했다. 검사들이 나를 "36기 걔"라고 칭한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36기'는 내가 사법연수원 36기이기 때문에 붙여진 것일 테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 지인들에게 "이광철 걔, 진짜 사악한 놈이야, 조심해"라고 했다는 말도 수 차례 전해 들었다. 한 진보 매체의 기자는 내게 "이 비서관을 밖에서 뭐라고 하는지 아나? 문재인 정부의 우병우라고 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 음해가 쌓이고 쌓이더니 결국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 기소로 이어졌다. 공수처로부터 주거지 압수수색을 받았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가 처지는 끔찍한 경험이었다. 청와대 재직 중 검찰과 결탁한 곽상도 발 의혹 제기로 내 이름이 간간히 언론에 나오더니만, 울산 사건이 불거진 2019년 12월 이후 사직한 2021년 7월까지 괴팍한 얼굴 사진과 함께 내 이름이 든 기사와 보도가 계속 이어졌다.
김학의 사건이 한창이던 2021년 2월 어느 날에는 꿈 속에서 멀리 펜과 칼을 든 무리들이 북을 둥둥 울리면서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어 도망치다가 절벽에 다다라 잠을 깬 일도 있었다. 그 시각이 새벽 3시였다.
윤석열 패거리의 정치수사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2021년 10월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은 차라리 사소했다. 2019년 8월부터 시작된 윤석열 패거리들의 검찰발 쿠데타로 조국 일가는 쑥대밭이라는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닐 정도로 멸문의 신세가 되었다.
조국이 사모펀드의 주인이라는 황당무계한 음모론으로 시작된 수사에서 결국 그 음모론의 허구성이 밝혀지자, 윤석열 일당은 유재수 사건 파일을 캐비넷에서 꺼내 조국을 구속하려 들더니만(그 시도 또한 법원의 영장기각으로 파탄되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과 월성원전 사건을 통해 문재인 정부 전체를 포획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덤볐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최근 항소심 법원이 사건 전체에 대하여 무죄판결을 선고했고, 월성원전 사건 역시 재판이 진행중이지만, 일부 산자부 공무원들에 대하여는 무죄판결이 확정되었다. 윤석열 패거리의 기획수사, 정치수사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분노의 마음 한 켠에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혼란과 갈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청와대에 재직하는 내내 그랬고, 퇴직한 이후에도 그랬다. 윤석열 쿠데타가 가능했던 그 시작이 문재인 정부의 윤석열에 대한 임명장 수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그 이후 문재인 정부가 윤석열 사태의 정무적 관리에 실패했다는 사실, 그 실패들이 결국 윤석열이라는 괴물덩어리의 집권으로까지 이어졌다는 등등의 사실들이 나를 괴롭게 했다.
괴물 윤석열의 탄생과 문재인 정부의 책임
▲윤석열 -김건희 부부, 문재인 대통령과 기념촬영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부인 김건희 씨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2년 5월 이후 윤석열과 그 부인 김건희가 벌이는 대통령 놀이를 목도하는 나의 심정은 단순한 짜증 정도가 아니라, 이 사태의 근원적 책임이 나와 내가 몸담았던 정부에 있다는 자책과 회한의 그것이었다. 그 어떤 집권자보다 공화주의의 정신과 마음가짐에 투철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운영한 정부가 최악의 반공화주의적 괴물을 양산해 냈다는 그 역설이 나를 정말이지 미치도록 힘들게 하였다. 윤석열이라는 괴물의 실체를 모르지 않을 친검 언론들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무분별한 적개심으로 윤석열을 추어 올리고 찬양하더니만, 결국에는 대선주자로까지 빌드업시키는 과정은 내게 참담한 환멸과 염증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혹은 그렇다고 하여, 내가 이런 자책과 회한을, 성찰과 반성을, 대외에 함부로 발설할 수 없었다. 윤석열 부부의 대통령 놀이가 진행되는 동안 국민들이 받는 고통에 대하여 나 하나의 반성이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겠나? 문재인 정부의 총체적 책임이 문제되어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으면서도 묵언하는데, 또 그 묵언에는 그럴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인데, 일개 비서관이었던 내가 뭐라고 나서서 반성이니 성찰이니 한단 말인가?
나의 성찰과 반성은, 대표성의 측면에서도, 국민에 대한 도리의 측면에서도 전혀 맞지 않았다. 나 하나의 괴로움을 덜자고 내가 나서서 성찰이니 반성이니 하는 것은 나 개인의 알리바이쌓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이자 국민들로부터 직접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직접 이에 대한 소회를 밝히기 전까지는 나도 묵언하는 것만이 내가 세월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마침내 지난 2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발탁과 그 이후 전개된 일들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국민들께 송구하다는 대통령의 말씀은 또 한 시대의 매듭을 짓는 것이었다. 한편 윤석열은 자기파멸적 비상계엄과 내란사태를 자초하여 자기의 실체를 극적으로 폭로하였다.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말씀과 정치상황의 변화는 나로 하여금 지나간 시절에 대한 기록을 비로소 시작할 수 있게 하였다. 이 글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이 글을 통하여 공직 재직 기간 동안 내가 겪은 경험과 느낀 소회를 쓸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검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개혁의 경과, 2019년 이후 윤석열과 그 무리의 난동 등 일련의 일들, 윤석열 패거리들의 난동을 대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응 과정 등을 돌아보고 기록하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개심으로 그 난동을 부채질하고 윤석열을 정의의 사도로 그려준 언론의 패악질 역시 기록할 것이다. 이 글에 대한 평가는 독자의 몫이다. 그 평가 앞에 겸허해 질 것이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나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가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 진보의 척도를 나는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둔다. 1988년 7월 8일 대정부질문에 나선 당시 노무현 의원이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꼴 좀 안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연설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이 말 또한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구체적인 표현일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권력과 제도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증진에 복무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문재인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그 숙제를 잘 이행했는지 그 공과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평가는 가혹하리만치 냉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 평가는 사실에 기초하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정치적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각색·재단되어서는 안 된다.
비록 보잘 것 없는 경험과 소회의 토로이겠으나,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일한 나의 경험과 소회가 우리 사회의 진전에 모래 한 알만큼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쓸 것이다. 무엇보다 정직한 글쓰기를 할 것을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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