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바다를 이어주는 황홀한 비경을 만나다 ‘전남 여수 금오도 비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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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스투데이]
여수의 섬 아닌 섬 돌산도의 끝자락 즈음에 이르러 신기항을 만난다. 신기항에서 화태도, 대두라도 등 섬들을 헤치고 20분 남짓 가면 금오도에 닿는다. 금오도에는 비렁길로 명명된 아름다운 해안길이 있다. ‘비렁’은 절벽의 순우리말인 ‘벼랑’의 여수 사투리다. 마을을 오가거나 땔감을 줍고 낚시를 하러 다니던 이 옛길에서 금오도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엿볼 수 있다.
비렁길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1코스, 함구미-두포 비렁길은 함구미에서 시작해 두포, 직포에 이르는 약 8.5km의 길로 지난 2010년에 열렸다. 그 중에서도 1코스는 미역널방, 수달피비렁, 신선대 등 비렁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길이다. 소요시간이 3시간 30분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휴식시간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을 적절히 안배해야 한다. 비렁길은 어느 코스든지 오르막길로 시작해 숨이 차오르기 시작할 때쯤이면 완만한 길이 이어지고, 마을이 보이면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험한 산세를 따라가야 하는 산행에 비하면 아주 착한 길이다.
비렁길 1코스는 함구미에서 두포까지 5km 정도 이어진다. 함구미선착장과 이웃한 함구미노인회관을 지나 우측으로 비렁길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1코스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비경은 미역널방이다. 이름 그대로 마을 사람들이 미역을 널어 말리던 곳이다. 채취한 미역을 지게에 지고 이곳을 오르내렸으니 그 수고로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은 미역을 져 나르는 모습은 사라졌지만, 대신 어르신들이 방풍나물을 지고 내려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방풍나물은 금오도의 특산물로 중풍, 산후풍, 당뇨 등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다. 방풍나물의 효능과 가치를 발견한 어떤 사람이 5~6년 전 해변에 자생하는 방풍나물의 씨앗을 가져와 심기 시작했다. 지금은 금오도 대부분 지역에서 수확하며, 농가 수입이 제법 짭짤하단다.
미역널방에서 수달피비렁으로 이어지는 길은 금오도 비렁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특히 미역널방 아래로 90m나 되는 수직 절벽 위에 설치된 데크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이 절로 든다. 수달피비렁을 지나면 섬사람들이 개간한 넓은 밭이 펼쳐진다. 밭 너머로 신선대와 굴등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절벽과 매봉산, 연도의 문필봉이 겹겹이 이어진다.
대부산과 대부산 전망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대부산 삼거리에서 신선대까지는 오붓한 숲길이 이어진다. 커다란 비자나무가 어우러진 숲길도 만나고, 서어나무 군락을 지나기도 한다. 울퉁불퉁 제 마음대로 굽고 휘어진 길들이 정겹기 그지없다. 신선대는 신선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널찍한 암반이다. 바다 건너 외나로도가 길게 이어져 있다. 문득 나로도에서 우주선이 발사된다면 비렁길만큼 좋은 전망 포인트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선대에서 2km 정도만 가면 두포에 닿는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심심할 겨를이 없다. 푸른 바다 빛깔이 안쪽으로 깊이 파고드는 느낌이 들 때쯤 두포로 가는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바다를 따라 마을과 마을을 잇는 2코스, 두포-직포
비렁길 2코스는 두포에서 직포까지 약 3.5km로 1코스보다 짧다. 두포는 금오도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다. 금오도는 조선시대부터 궁궐 건축용 목재나 병선에 사용할 나무를 관리하는 황장봉산으로 지정되었고, 조선 고종 때에는 사슴농장으로 운영되기도 했다. 왕실에서 운영하는 곳이었으니 사람의 출입이나 벌채가 당연히 금지되었다. 1885년 큰 태풍으로 소나무들이 쓰러지자 봉산을 해제해 사람들이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두포에는 지난 1985년에 세운 금오도 개척 100주년 기념비가 서 있다.
두포에서 직포로 이어지는 길에는 굴등전망대와 굴등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두포에서 굴등마을까지 1.7km 구간은 농로이다. 원래는 이 농로 위로 비렁길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 길이 비렁길을 대신하고 있다. 비록 시멘트로 다진 길이지만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굴등마을 사람들이 농한기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나와서 닦아놓은 애환이 깃든 길이다. 남자는 길을 닦고, 여자들은 밥과 새참을 져 날랐다고 한다. 굴등마을은 수량이 풍부한 우물이 있고, 느릅나무와 팽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등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았지만, 지금은 모두 뭍으로 나가서 마을사람들의 별장처럼 이용되고 있다. 이 마을은 영화 <혈의 누>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다.
비렁길의 마지막 5코스, 심포-장지
2012년 3월 함구미-직포를 잇는 비렁길 1, 2코스에 이어 직포-학동, 학동-심포, 심포-장지를 잇는 10km의 비렁길 3개 코스가 새롭게 열렸다. 직포에서 학동까지 3.5km, 학동에서 심포까지 3.2km, 심포에서 장지까지 3.3km로 직포에서 바로 이어진다.
금오도 비렁길의 마지막 5코스는 심포에서 금오도의 끝자락인 장지로 이어진다. 심포-장지 구간은 해발 343m의 망산을 휘감아 도는 둘레길 코스다. 심포는 금오도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포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깊은개’라고 불리다가 한자로 표기하면서 심포로 바뀌었다. 심포에서는 해안을 따라 완만한 농로가 1km 정도 이어진다. 심포의 깊은 포구가 내려다보이고, 길 끄트머리에 이르면 직포와 학동을 이어주는 매봉산과 학동, 심포로 이어지는 해식애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농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장지와 일종고지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일종고지는 목을 길게 뺀 거북이 바다로 나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일종고지를 지나면 유난히 돌담을 많이 만난다. 마치 제주도의 돌담길을 연상시킨다. 10분 남짓 걷다 보면 심포-장지 구간의 대미를 장식하는 너덜지대가 나온다. 다양한 크기의 돌들이 흘러내리며 쌓여 거대한 너덜지대를 이루고 있다. 너덜지대의 허리 부분을 다져 비렁길을 만들었는데, 느껴지는 긴장감이 제법이다. 바다 저편으로 금오도와 안도 사이에 있는 소부도와 대부도, 멀리 연도가 바라다 보인다. 금오도와 안도를 잇는 안도대교가 눈에 들어오면 장지가 지척이다. 해안을 따라 펼쳐진 구불구불 비렁길이 비로소 끝이 난다.
여행정보
* 자가운전 순천완주고속도로 동순천IC → 여수 방면 17번 국도 → 돌산대교 → 17번 국도 돌산로 → 도실삼거리(성두, 군내 방면) → 송시삼거리 돌산로 → 신기항
* 대중교통 서울→여수 센트럴시티터미널(02-6282-0114)에서 매일 26회(05:30~24:00) 운행, 4시간 10분 소요. 용산역에서 여수엑스포역까지 KTX(5회), 새마을호(일 2회) 운행.
할매맛집 : 남면 금오로 / 서대회 / 010-9741-6665
명가모텔 : 남면 우학리 / 061-665-9520 글, 사진 문일식(여행작가) |
[감성여행] 여수 금오도 비렁길
쪽빛 바다 맞닿은 절벽 위 바람길…동백과 대나무숲에서 원시를 본다
자라를 닮은 섬이라 이름 붙인 여수 금오도(金鰲島)는 지금도 원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원래 이곳은 조선시대 궁궐에 쓰인 소나무인 황장목을 재배하던 곳이었는데 고종이 이 섬을 명성황후가 거처하던 명례궁에 하사한 후 이곳에 사슴목장이 만들어져 사람의 출입이 금지됐고, 외지인들에게 다시 문을 연 지 이제 1백20여 년 됐다고 한다. 지금 금오도는 섬의 해안 절벽길을 따라 걷는 도보여행자들에 의해 그 아름다운 속살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소박하고 착한 섬사람들의 인심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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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비렁길. 아찔한 절벽에 서면 푸른 바다가 발 아래 있다. |
“그 바다 참 너르다.”
금오도 함구미 선착장에서 시작되는 좁은 오솔길을 따라 30여분 걸었을까. 순간 넝쿨 숲이 사라지고 바다를 향해 시야가 툭 트인 언덕이 나타났고 그곳에 서 허리에 손을 짚은 한 여행객이 말했다. 훅, 하고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훑고 지난다.
섬 전체에 가득 피어난 찔레꽃 향이 묻어 있는 달콤한 바람이다. 그의 시선을 좇아 바다로 고개를 돌리니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그의 말은 참말이었다. 도무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쪽빛의 크고 너른 바다는 보는 이의 가슴마저도 파랗게 물들이는 것 같았다.
“요 앞에 보이는 것이 ‘개도’라는 섬이고 그 옆으로 차례로 월호도, 대두라도야. 그 옆 쪼그만 섬이 소횡간도지. 맞다, 저기 왼쪽으로 멀리 보이는 섬이 고흥반도 외나로도야. 우주선 발사 때 여기서도 훤히 보였지.”
선착장 담쟁이길은 영화 <인어공주>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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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렁은 ‘벼랑’을 뜻하는 사투리다. 금오도 비렁길은 섬의 외곽 절벽을 따라 낸 길을 따라 걷는다. |
여수 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한 화신해운 소속의 배가 1시간30분을 달려 도착한 함구미선착장이 비렁길의 시작이다. 이 섬에서 가장 큰 선착장이라고는 하나 손바닥만한 대합실 하나 공중화장실 하나가 전부다. 머리 흰 노부부의 살림집이 연결된, 컵라면과 과자 따위를 파는 조그만 가겟집이 하나 대합실 맞은편에 있긴 하다. 양갱 하나, 초콜릿 두어 개와 생수 한 병을 사 들고는 비렁길을 걷기 시작했다. 반듯하게 쌓아 올린 이 마을 돌담길이 눈에 익다 싶었더니 전도연이 나온 영화 <인어공주>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고 한다. 긴 담을 따라 뻗어 나간 담쟁이덩굴이 참으로 어여쁘다. 돌담이 끝나면 비탈길은 온통 초록이다.
이 섬에 지천으로 자란다는 방풍나물 밭에서는 장에 내다팔 나물을 캐는 촌부의 손길이 분주하다. 실제로는 방풍을 처음 보는지라 허리를 굽혀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밭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다가와 맛이나 보라며 방금 뜯은 나물을 건넨다. 그가 입에 넣어 준 방풍잎은 쌉싸래하면서도 독특한 향이 났다.
“슬쩍 데쳐서 초고추장 찍어 먹어도 좋고 된장, 마늘, 참기름 넣고 무쳐 먹어도 좋지라. 울 동네선 된장국도 끓여 먹고 말려서도 먹응게. 아, 이것마냥 좋은 게 또 있습디까.”
그는 “4, 5월 방풍이 제일 맛나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중풍을 예방해 준다고 알려져 있어 이름도 ‘방풍’ 이라 붙인 방풍나물은 여러 가지로 몸에 이롭다고도 한다.
비렁길은 바람과 햇살과 바다와 동무하며 걷는 길이다. 금오도 주민들이 다니던 길을 넓혀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 동백나무 숲이 펼쳐지고 그 다음엔 대나무 숲이 나타나더니 또 바다가 툭 튀어나온다. 바다 위에는 고래를 닮은 크고 작은 섬들이 동실동실 떠 있다. 지루할 틈 없이 걷는 맛이 쏠쏠하다.
게다가 쉴 새 없이 지져대는 새들의 노래도 유쾌하기 짝이 없다. 어떤 녀석은 ‘도도도도 삐꼭’ 하며 울고 다른 놈은 ‘삐쪽 삐쪽’ 울고 또 ‘휘, 휘’ 하며 긴 휘파람 소리를 내며 저마다 재잘재잘댄다. 저 할 이야기만 늘어놓는 듯싶어 우습기도 하다.
다섯 개 코스 중 백미는 함구미~두포 1코스
울어대는 것은 새들뿐만이 아니다. 바람에 서걱대는 대숲의 소리는 먼바다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만큼이나 여행자의 마음에 긴 파장을 남긴다. 불어오는 바람과 따뜻한 볕과 청결한 흙냄새, 나무냄새, 바다냄새가 함께하는 길 위에서 발걸음은 더없이 가볍다.
함구미 선착장에서 시작해 남쪽 해안을 따라 금오도의 가장 끝마을인 장지까지 이어지는 18.5킬로미터의 비렁길은 모두 다섯 개코스로 구성돼 있다. 하이라이트는 함구미에서 두포에 이르는 5킬로미터 구간의 1코스. 원시의 풍경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용두바위 부근과 ‘미역널방’의 경치는 금오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마을 주민들이 바다에서 채취한 미역을 지게에 지고 와 이곳에 늘어놓고 말렸다고 해 미역널방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절벽은 표고가 90미터나 되는 아찔한 높이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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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절정. 연둣빛 물 오른 숲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바다가 펼쳐진다(왼쪽 사진). 비렁길 4코스의 마지막 부분인 심포가는 길. |
바다를 향해 수직으로 뻗어 내려간 날카로운 절벽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참으로 시원해 쾌감마저 전해 준다. 미역널방 부근으로 작은 공원을 만들어 놓아 쉬어갈 수 있게 했는데 절벽 끝에 설치해 놓은 망원경을 통해 까마득한 아래쪽을 살펴보니 갯바위에 우뚝 서 대물을 노리는 강태공의 모습도 보인다. 두포(초포)에서 시작되는 2코스(3.5킬로미터)의 하이라이트 구간인 굴등 전망대에서 촛대바위를 거쳐 직포에 도착한 뒤 잠시의 휴식 후 다시 학동까지의 3코스(3.5킬로미터)를 걷는다.
3코스는 매봉산 전망대로 이어지는 붉은 동백나무 터널과 구불구불 벼랑길을 에둘러 가는 나무 데크길이 정겹게 느껴진다. 사다리통 전망대와 온금동, 심포항에 이르는 4코스(3.2킬로미터)의 포인트는 돌길 옆으로 늘어선 부처손의 이국적인 풍경이다.
“홍시처럼 붉다”는 노을 보려면 1박 해야
4코스의 종착점인 심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30분. 오전 8시부터 시작된 비렁길 종주코스 중 4개의 코스를 마쳤다. 심포에서 막개를 지나 장지까지의 마지막 3.3킬로미터를 앞두고는 숭어떼 참방참방 튀어 오르는 포구 앞에 앉아 다시 숨을 고른다.
이 봄이 가기 전 금오도를 다시 한 번 찾게 된다면 다음번엔 이섬의 동쪽 해안을 따라 연륙교를 지나 또 다른 섬 안도까지 이어지는 길로 자전거 하이킹에 도전해 봐야겠다. 25.7킬로미터, 세 시간이면 족하단다. 안도는 2009년 금오도와 다리가 놓인 후 형제가 된 작은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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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렁길 주변에서는 남해 바람을 맞고 자란 방풍나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4백8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이 섬은 모양이 기러기처럼 생겼다고 해 기러기 ‘안(雁)’ 자를 썼는데 1910년 안도(安島)로 개칭했다고 한다. 안도의 동쪽방향 해변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 나오는 안도해변은 금빛 모래와 손톱만한 조가비들로 뒤덮인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 안도해변 근처에서 상산(해발 2백7미터)의 동남쪽 둘레길을 따라 조성돼 있는 상산트레킹 코스도 멋지다고 소문났다.
그리고 그때 다시 이 섬에 오게 되면 하룻밤을 보내며 꼭, 끝내주게 멋지다는 일몰도 봐야겠다. “여수가 품은 섬과 그 바다 위로 내려앉는 홍시처럼 붉은 노을 때문에 이 섬에 들어앉게 됐다”는 한 주민의 말이 진짜인지 확인도 해야 하니 말이다.
글·고선영 (여행작가) / 사진·김형호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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