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2월 16일
경북대 고분자공학과 대학생 4명 엄군, 이군, 박군, 김군이
충분한 사전조사 및 준비 없이 설악산 공룡능선에 올랐다가 조난당한 사건.
(중청봉에서 봉정암을 넘다가 1275봉과 나한봉)
(봉정암에서 오세암을 넘다가 용아장성)
(봉정암에서 오세암을 걷다가 울산바위, 운봉산, 동해 바다)
전문 산악인들도 충분한 준비와 각오가 필요한, 사고가 잦은 고난이도 코스.
1993년 12월 겨울
엄군 일행은 원래 오대산을 종주하려고 했는데
하필 당시 오대산은 입산통제 시기여 갑작스럽게 설악산으로 일정을 변경.
이 과정에서 공룡능선이 얼마나 위험한 코스인지
충분한 사전조사가 부족했던 게 사고의 원인이 됨.
공룡능선은 마등령에서 희운각 대피소까지 약 5km 구간을 공룡능선이라고 함.
절벽길 난코스로 지상으로 내려올 수 없어서 부상이라도 당하면 큰일인 구간.
오전 8시~9시에 마등령*수렴동대피소에서 충분히 시간을 갖고 산행해야함.
그런데...
오전 8시
엄군 일행은 17일 오전 8시에 백담 대피소 출발~
오세암을 거쳐 마등령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2시.
지도 처럼 마등령에서 희운각 대피소까지는
날씨가 좋다는 전제 하에 산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져도 최소 5시간은 걸림.
오후 2시
엄군 일행이 서둘러 출발해도 밤 7시는 돼야 희운각에 도착하는 스케쥴이었다.
겨울 치고 기상조건이 크게 나쁘지 않아 엄군 일행은 방심했고,
그대로 공룡능선을 향해 출발함.
오후 4시
1275봉을 통과한 엄군 일행은 초행길에 충분한 경험이 없어서 자꾸 길을 헷갈리게 되고
부지런히 가도 7시에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스케쥴이 점점 지연되기 시작.
오후 5시
결국 희운각 대피소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감도 안 잡히는 상태에서 해가 져버림.
날씨는 어마어마하게 추워지고 오전 8시부터 이어진 산행으로 일행은 체력까지 바닥남.
텐트를 메고 가던 이군 탈진.
오후 7시
먼저 김군이 잠이 온다며 바닥에 자꾸 주저앉기 시작(동사의 전형적인 증상1)
설상가상으로 이군은 다리를 헛디뎌 발목을 삐고 아프다면서
신발을 벗어던지기 시작함(동사의 전형적인 증상2)
박군과 엄군은 자기들도 지쳤지만 살아야 하니까
꾸역꾸역 친구들을 어르고 달래며 어떻게 계속 나아감.
오후 9시
드디어 저만치 앞에 희운각 대피소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함
이들 말로는 착각이 아니라 진짜 손에 잡힐 듯 가까이서
반짝거리고 있었다고 함. (실제로 가까이 있었음.)
너무 가까이 대피소가 보이니까 일행들은 안도했고,
김군과 이군 컨디션이 너무 안 좋으니까 고민을 하다가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됨.
발목을 다친 이군을 비교적 상태가 좋은 박군이 남아서 옆에서 지키고,
춥다고 자꾸 정신을 놓는 김군을 엄군이 가까운 대피소까지
얼른 데리고 가서 눕히고 구조요청을 하는 것.
그래서 이군과 박군은 텐트 플라이를 뒤집어 쓰고 그 자리에 남고
김군과 엄군이 더듬더듬 희운각 대피소를 향해 출발함.
그런데 여기서 상황이 기대와는 달리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됨.
"불빛은 보이는데, 길은 절벽으로 끊어지곤 해서 귀신이 장난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엄군과 김군은 희운각 대피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길이 너무 깎아지른 절벽길이라~
칠흙 같은 어둠 속의 공포,
친구들을 구해야 한다는 다급함,
바닥난 체력 등...
여러 혼란 속에서 길을 또 헤맴.
절벽을 피해 아슬아슬 걸어가던 엄군과 김군은 등산로쪽 발자국들을 보고
그쪽이 희운각 방향인 줄 착각하고
결국 바로 앞에 희운각을 두고 반대쪽 가야동 계곡으로 향함.
(신선대에서 무너미고개로 내려아야 하느데,
희운각으로 가는 능성으로 잘못 들어감)
왜 멀쩡한 등산로를 두고 가야동 계곡쪽으로 내려갔을까.
추측
1.다친 동료를 두고 왔다는 급한 마음에 불빛만 보고 계곡쪽으로 진입 했을 가능성
2. 눈이 쌓여 넓은 길처럼 보이는 가야동 계곡이 더 편해보여 선택했을 가능성
오후 11시
넘어지고 구르며 한참을 나아가도 대피소는 보이지도 않고...
등산로에서라도 희운각쪽으로 방향을 틀었으면 20분이면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했을 건데
결국 엉뚱한 방향(가야동 계곡)으로 이미 바닥난 체력을 이끌고 한참을 더 헤매기 시작함.
아마도 직선거 1.5km 거리의 소청대피소가 가까이 보였을 수도...
얼마나 헤맸을까 원래부터 상태가 안 좋던 김군이 결국 자리에 주저앉고
엄군 혼자라도 얼른 가서 구조를 요청하라는 말에 엄군 혼자 필사적으로 길을 나아감.
나뭇가지를 구하려 걷다가 계곡물에 빠져 버리는 실수도 저지름.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불씨가 꺼지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에
가지고 있던 라면, 쌀 등을 태움.
얼마나 필사적이었으면 허벅지 안쪽 바지가 타는데도 몰랐다고 함.
오전 5시
그렇게 버티다가 드디어 아침이 밝고 대피소로 이동을 시작.
오전 8시
엄군이 걷다걷다 오전 8시경 마침내 대피소를 발견하고 그 앞에서 실신하게 되는데
거기는 희운각 대피소가 아니었음.
어처구니 없게도 거기가 어디였냐 하면...
바로 희운각 대피소에서 5km 가량 떨어진 수렴동 대피소.
길을 잘못 들어서 무려 잘못된 방향으로 5km를 헤매면서 나아감.
위성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등산로를 따라 내려간 것이 아니라 계곡을 따라 내려감.
흔히 일상적으로 하는 말 중에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계곡만 따라 내려가면 마을이있다"
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사례.
실신한 엄군은 안타깝게도 2시간 뒤에야 정신을 차렸고
그제서야 구조대들도 일행이 있었다는 걸 알게됨.
그럼 나머지 친구들은 어떻게 됐느냐...
다리를 다쳐서 박군과 함께 희운각 대피소 근처에 남았던 이군은
결국 자정 무렵 박군의 품에서 동사함.
박군은 사망한 이군을 안고 기다리던 중
이튿날 동틀 무렵 다행히 40대 산악인 2명에게 발견돼 구조됨.
살아남은 박군은 면장갑, 내복상의, 내복하의, 등산화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이군은 군복바지, 전투화, 가죽장갑, 오리털점퍼가 끝.
박군은 방한대책을 갖추고 있어 추위에 버틸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됨.
김군은 실종됐다가 희운각에서 2km 가량 떨어진 가야동 계곡 상류 지점에서 동사한 상태로 발견.
4명의 신체 건강했던 대학생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에 나섰다가
2명이 동사하게 된 안타까운 사고이고,
심지어 목적지를 바로 눈앞에 두고 헤매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안타까움.
산행할 때는 지도와 장비는 물론 충분한 사전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사례임.
(오세암↔탑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