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 길

"DMZ 평화의 길" 트레킹 열네번째(2024.09.08)

온리하프 2024. 9. 1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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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평화의 길 --

09월 08일(일)

 

◁인제군 북면/원통리~진부리▷

 

원통터미널뒤주차장  → 원통교 → 어두원교 → 한계2교 → 고원통교

→ 백담여행 → 설악생수 → 쌍다리쉼터 → 정자문교차로

→ 만해교 → 내가평교 → 예당막국수 → 설악훼미리하우스

→ 매바위인공폭포 → 용대1~2교 → 군계교 → 진부령정상

 

 

04:50    퇴계사거리 자택 출발

05:06    맥도날 춘천퇴계DT점(4,600원) 출발

06:27    원통터미널뒤주차장에서 트레킹 시작

06:41    원통교

07:53    한계2교

08:53    설악생수

09:25    정자문교차로

10:31    여초서예관

11:12~12:01    예당막국수(9,000원) 점심 식사

12:41    백공미술관

13:03    매바위 인공폭포

14:03    군계교

15:02    진부령 정상에서 트레킹 종료

15:02~15:40    진부령 정상 

15:40~16:13    진부령 정상에서 원통터미널뒤주차장 이동

16:13~17:32    원통터미널뒤주차장에서 춘천 퇴계사거리 자택 도착

 

 

트랭글

 

 

 

①트랭글 고도 그래프

 

 

 

②트래킹 출발점

 

 

 

③트래킹 도착점

 

 

 

④트랭글 상세 기록

 

 

 

1.77km/26m 이동 후에 트랭글을 가동시켜 거리/시간을 추가해야 한다.

 

 

 

 

DMZ 평화누리길 북면길은 미시령으로 연결되고~

평화의 길은 진부령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룩스 맵스 gpx 트랙

DMZ평화의길 14 열네번째__20240908_0655.gpx
0.51MB

 

 

 

 

 

 

 

05:06   맥도날 춘천퇴계DT점.

 

혹시 모를 비상용 간단 식품과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서 원통으로 출발한다. 

 

원통이나 진부령에서 숙식이 원만하지 않고

춘천에서 원통까지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이고

대중교통은 너무 늦은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기에

오늘은 자가용을 이용하기로 했다.

 

 

 

 

06:27   사전에 파악해 놓은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트래킹을 한다.

 

 

 

 

원통버스터미널 바로 뒤에 무료 공영주차장이 있어 편리했다.

 

 

 

 

바로 앞에 원통전통시장도 있고~~

 

 

 

 

원통오거리 회전 교차로에서 속초*인제 방향으로~~

 

 

 

 

직진해서 원통교를 건넌다.

 

 

 

 

06:41   원통교에서 바라본 진부령 방향은 안개가 자욱하다.

 

 

 

 

가을 색이 아름답다.

 

 

 

 

이곳 북천 여러 수중보 중에 어로를 잘 만들어 놓은 곳이다.

저래야 고기들이 상류로 올라가기 수월하다.

 

 

 

 

07:24   어두원교를 건너 우측으로~~

 

 

 

 

청정골산채전문식당(033-461-0333)에서 민박을 겸하니~

트래커들이 편하게 쉴 수 있을 곳으로 보여진다.

 

 

 

 

멀게 느껴져도 사실 거리가 얼마되지 않는다.

 

진부령 거쳐 고성이 46km,

한계령 넘어 양양이 45km,

미시령 넘어 속초가 38km이니~

걸어서 1박2일이면 세 곳 다 갈 수 있는 거리다.

 

 

 

 

한계령 방향도 아직 운무가 가시질 않아 조망이 없다.

 

이쯤에서 안산과 가리산 조망이 아주 멋진데, 아쉽다.

 

 

 

 

와라바라산악회 전)회장 찬여울님 자택~~

어제 전화를 걸어 이곳저곳 평화의 길을 묻기도 했다.

 

 

 

 

설악휴게소에 편의점, 화장실, 한식뷔페가 있다.

 

길이 넓어지면 여러 모로 좋아질 것 같지만~

막상 길이 개통되면 공동화 현상이 일어 난다.

 

좁디 좁은 길을 몇 시간 이동하다보면 배도 고프고,

정원을 꽉 채운 차안에서 장시간 운전은 지루함을 불러오고,

제일 급한 것은 화장실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길게 줄이 늘어 서서 힘주고 참았던 기억들이 남아 있다.

 

그 옛날 화려했던 부귀영화는 길이 좋아지면서 이렇게 변해 버린다.

미시령, 진부령, 한계령 주변 상권이 다 초라하게 변해 버렸다.

 

 

 

 

그나마 추색 만큼은 아직도 고운 때깔을 구대로 유지하고 있다.

 

 

 

 

07:53   한계2교를 건너 한계교 하부를 통과한다.

 

 

 

 

산에 있는 자연상태의 마가목 열매는 빨간빛을 띄우는데~

들에서 자란 것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온도차 때문일까?

마가목 열매가 노란색이다.

 

 

 

 

고원통교를 지나니 60~70년대 거리 분위기가 느껴지고~~

 

 

 

 

구)46번 국도를 따른다.

인천에서 고성까지 대한민국의 횡축을 관통하는 국도 중 하나이다.

 

 

 

 

안산 능선 줄기에는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 오르고, 길은 한적하기만 하다.

주말을 속초, 고성에서 보내고 귀향하는 차들이 이곳까지 가득했는 데...

 

 

 

 

북천이 아직도 깨끗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소시 때 이곳을 여러번 지나며 저 강변 소나무 숲에서

텐트치고 피서하는 이들을 많이 부러워하기도 했다.

 

 

 

 

상황버섯을 당겨 찍었는데 선명치 않다.

가까이면 채취했겠는데...

 

 

 

 

08:53   한 때 유명했던 설악청정산수는 폐업한 것으로 보여지고~~

 

 

 

 

쌍다리쉼터.

 

아~~~

이제는 이런 문화도 사라질 때가 되었는데...

 

환경 오염이 문제다.

 

 

 

 

진부령 17km.

 

 

 

 

북천이 넓게 펼쳐지고~~

 

 

 

 

09:25   정자문 교차로.

 

우측 화살표 방향으로 빠지고~~

 

 

 

 

DMZ평화의 길, 아미평화순례길, 인제천리길...

 

 

 

 

09:40   장수정을 통과하고~~

 

 

 

 

사과가 아주 탐스럽게 잘 열여 있다.

 

나무 하나에 보통 60~80개는 달린 것으로 보인다.

과수원 터도 넓고...

 

그런데 왜 사과 값은 비싼 걸까?

 

 

 

 

한계교차로에서 용대삼거리까지 마가목이 가로수로 열매가 풍년이다.

 

 

 

 

10:31   만해마을청소년수련원과 여초서예관을 지나고~~

 

여초 김응현(1927,1,22~2007,2,1) 선생은 2006년 광화문 현판 교체론이 대두될 당시

현역 서예가 중 1순위에 오를 정도로  명실상부 근현대 한국서단의 최고 대가였다.

 

‘추사 이후 여초’라는 말도 있고...

형 일중 김충현 선생과 함께 근현대 서예사의 4대가 정도로 본다.

 

 

 

 

11:01   내가평교를 건너고~~

 

 

 

 

백담마을에 들어서서 외가평교를 건너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11:13   예당 막국수

 

이렇게 더운 날에는 막국수가 최고다.

물막국수 곱배기를 시켜 깨끗이 비웠다.

춘천 청송막국수 보다 맛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손님이 식당 가득하니, 맛나게 먹어 주어야 했다.

 

춘천이 고향인 친구 세명이 식사하러 막국수집으로 향했다.

한 명은 맛있게 잘 먹고, 둘은 그럭저럭...

다음에 다른 막국수 집으로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한 명은 아주 맛나게 잘 먹는데, 둘은 괜찮다는 시늉만...

또 얼마있다 셋은 또 다른 막국수 집으로 갔는데

여기서도 한 명은 신이나게 먹고, 둘은 영혼없는 반응이다.

 

그렇다~~

막국수는 호불호가 심하다.

본인의 단골집에서만 맛이 있었을 뿐이다.

자기 입맛에 맞는 집만 가기 때문에 다른 집은 맛이 없다.

아니, 맛이 없는게 아니고 그집 입맛에 길들여 있기 때문이다.

 

식당마다 양념과 메밀 함량이 조금씩 다르다.

막국수 재료가 뻔한데 맛있어야 얼마나 맛있겠는가?

 

하지만, 그 단순함을 춘천 제일의 대표 음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자랑이다.

1년 중 밥 빼고 제일 많이 접하는 음식이 막구수다.

 

 

 

 

12:01   어쨋거나 시원한 곳에서 차거운 막국수 곱빼기를 먹고 나오니

배도 부르고 더위도 가신 느낌이다.

 

 

 

 

저주파 소음이 심할텐데...

 

그나마 돌아가는게 한, 두개 뿐이라 다행스럽다.

 

 

 

 

12:41   백공미술관.

 

 2011년에 개관하였으며, 한국 근대 회화의 대표적인 작가들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또, 매년 기획전시를 통해 현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백공미술관은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예술체험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설악훼밀리하우스(033-462-2949)

 

 

 

 

북천교 아래를 지난다.

 

 

 

 

평화라는 단어를 의미하면~

미시령보다는 진부령을 넘는 게 더 가치 있어 보인다.

 

 

 

 

13:03   매바위 인공폭포

 

 

 

 

용대삼거리 부근의 모든 식당 음식이 황태와 관련되어 있다.

이름도 여러 개다. 명태, 동태, 황태, 생태...

 

아~~

요즘 생맥주 안주로 인기있는 먹태도 있다.

 

이제는 러시아 수입산이 대부분이다.

 

 

 

 

생태탕하면 춘천동부시장이 생각난다.

 

 

지하로 들어가면 우측 첫 식당이다.

 

 

생태와 생태애 그리고 두부가 듬뿍 들어 간다.

 

 

이집은 이 강된장 또한 사랑받는 메뉴로 일명 "마약 뽀글장"이다.

생태찌개 주문하면 따라 나온다.

 

찌개가 끓여 나오기 전에~

삶은 양배추나 호박잎에 쌈 싸 먹으면 입맛을 돋구워 좋고
후식으로 제공되는 누룽지에 곁들여 먹으도 아주 구수했다.

 

 

생태찌개가 보글보글 끓으면 취향대로 고추가루를 넣고,
그냥 뽀얀 지리로 먹어도 아주 시원하다.

 

 

점심시간에 직장 동료와 간혹 식사하러 왔던 곳이고~

술 한 잔 생각나는 저녁이면 어쩌다 들리곤 했다.

 

 

바다 수온이 올라 생태를 구할 수 없고,

또 구한다 해도 값이 비싸 밥상에 올리기에는 가성비가 맞지 않고~

어쩔수 없이 동태를 사다 끓여주니 손님들 입맛에 거슬린다.

 

2015년 퇴직 전까지는 영업을 했는 데~

그 부근 어디로 식당을 옮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동동주 한 잔 마시며 개똥철학에 빠졌던 현대식당이 그립다.

 

 

《최근 자료》

조만간에 찾아봐야지~~

10년 전 그 맛이 살아 있을지 모르겠다.

월-금(11:20 - 21:00), 토(11:20 - 14:00), 일요일 휴무.

 

 

 

 

좌측 구) 도로를 따르고~~

 

 

 

 

벌통의 일벌들은 뭔가 열심히 일을 한다.

 

 

 

 

연화동 안보 전시관과 국립 용대 자연휴양림.

 

잠수함은 1996.9.14 오전 5시 함경남도 락원군에서 출발했다.

휴전선 경계 5마일 정도까지는 별 문제 없었고

이 지점부터 수중 공기관과 잠망경을 내린채 해저 60~70m 깊이로 침투했다.

 

또 강릉에서 5마일 정도 떨어진 거리에선 잠수함을 부상시켜

잠망경으로 위치를 확인하며 접근했다.

 

15일엔 해안 3~400m 거리에서 잠수함을 바닥에 가라앉혀

정찰조를 상륙시켰고 이후 물속에서 대기하다

17일 정찰조를 태우기 위해 들어가던 중 그만 좌초했다.

 

1996년 9월 18일 새벽, 강릉시 강동면 동해고속도로 상에서

택시기사의 신고로 무장공비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돌입하였다.

 

북한의 지령에 따라 잠수함 좌초 책임을 물어 사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승조원 11명의 시체를 발견했으며, 도주한 잔당 13명을 교전 끝에 소탕하였다.

 

이광수 1명이 생포되었고

1명의 행방은 존재 자체도 불확실하지만 일단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아군 피해는 전사 11명(장교2/부사관2/병7),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전사 1명(68사단 홍동진 대위),

민간인 4명, 경찰 1명, 예비군 1명 사망.

부상 27명.

 

이런 막대한 손실을 갖어 왔다.

언제까지 이럴 건가?

정전협정을 맺던지, 통일이 되던지, 각기 다른 나라로 인정하던지...

 

 

 

 

14:03   군 경계지점인 군계교를 건너고~~

 

 

 

 

행정구역 상 도로 좌측은 인제이고 우측은 고성이다.

 

 

 

 

진부령 장상의 진부령 미술관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진부령 민박(010-5090-3557).

 

주변에 식당도 있어 이곳에서 쉬면 적당하겠다.

 

 

 

 

알프스 스키장이 폐장된지가 언제인데...

 

겨울 내내 눈이 많이 내려 자연설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했던 곳~

설립자의 아들, 딸이 스키선수로 유명했던 김나미, 김명종이다.

 

흘리 마산봉 기슭의 스키장은 우리나라 스키의 발상지로 70~80년대 동계스포츠 메카였다. 

 

1990년대까지는 잘 나갔으나~

2005~2006년에는 시즌 유사 이래 가장 눈이 내리지 않아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수도권 인근에 스키장이 많이 생겨 굳이 이 먼 곳까지 스키를 타러 오지 않았고,

부실 운영을 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결국 폐장되었다.

 

 

 

 

장수식당(010-9949-8635)에서 아침식사가 가능하고~~

 

 

 

 

15:02   진부령 정상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진부령 정상 버스 시간표

 

 

 

 

향로봉지구 전투전적비

 

「맹호 수도사단 용사들은 단기 4284년 5월7일~6월 9일까지 양양과 간성을 탈환하고 계속하여 설악산으로 진격하였으나, 패주하던 적은 중동부 요충지인  인제를 방비하기 위하여 설악산과 향로봉 일대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괴뢰 제 5군단 예하 제 11, 12, 13사단을 증원하여, 우리 수도사단 및 제 11사단에 89회라는 회유의 반격을 기하여 왔었으나, 도처에서 연전연승을 자랑하는 용사들은, 그 반격을 격퇴 분쇄하고 설악산 및 향로봉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오늘의 광범위한 중동부 일대를 수복하는데 혁혁한 공훈이 되었으며 전 장병들의 영웅적인 전투는 높이 찬양되였다. 이 지구에서 장렬하게 호국의 신으로 산화한 전물장병의 명복을 빌며 자손 만대에 길이 그 위훈을 전하고자 여기에 전적비를 세우고 이를 기념한다」

 

단기 4290년 7월 15일.          제 3군단 세움.

 

 

 

향로봉(1,296m)은 1년 중 20여 일을 빼고 거의 안개가 끼어 있다.

봉우리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향을 피우는 것과 같다하여 붙힌 이름이다.

 

「동부전선의 전략적 요충지로 향로봉전투는 1951년 8월 14일부터 미 10군단과 국군 1군단이 함께 해안분지(펀치볼) 동쪽 1031고지, 924고지, 884고지로 이어지는 ‘낚시바늘 능선’(J Ridge)을 탈취하여 펀치볼 공격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포복작전’의 일환으로 전개된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북한군은 큰 타격을 입고 남강 북쪽으로 후퇴하게 되었고, 국군은 향로봉 일대의 주요 고지를 모두 확보하였다.
 
이곳에서는 1951년 4월부터 1953년 7월 정전협정일까지 2년 3개월 동안 고지전이 벌어졌다. 한국군 5사단, 8사단, 9사단, 미군 10군단과 북한군 5개 사단이 대치하며 16차례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미 7함대가 거진 앞바다에서 함포 공격을 하고 나중에는 군함에 탑재된 항공기까지 폭격에 가세하여 거진지구 일대를 장악하였다. 
 
향로봉 전투와 건봉산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중동부 전선은 지금의 휴전선과 같은 철원~김화~화천 산양리~양구 펀치볼~인제 서화리~고성 거진리 선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설화희생충혼순국비.

 

한 겨울에는 영하 30도까지 곤두박질치며 폭설이 내린다.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6개월 동안 눈이 내리는데 많을 때는 3미터까지 쌓인다고~

 

강원도 영동지방에는 ‘양간지풍 통고지설’(襄杆之風 通高之雪)이라는 말이 전해온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오는 말로~

양양과 간성에는 바람이 많고 통천과 고성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이다.

 
남쪽보다 겨울이 두 달 먼저 찾아오고 두 달 늦게 물러가는

최북단 군사요충지를 지키는 육군 12사단 병사들은 겨울철 한파, 폭설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

 

1954년 내린 폭설로 군 막사가 무너져 59명의 군인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순직한 장병들을 기리는 비석이다.

 

 

 

 

진부령 유별시(陳富嶺留別詩)

 

​西行正値北風時(서행정치북풍시) 한양으로 승차되어 가는 길 북풍이 불고

​雪嶺參天鳥道危(설령참천조도위) 눈 덮이어 음산한 영마루 새도 넘기 험한 길

​自是人情傷惜別(자시인정상석별) 이제 인정에 마음 아픈 이별을 하네.

​君來饑我我留詩(군래기아아유시) 그대들 배 주리며 따라왔는데 나는 이별시를 남기네

택당 이식(澤堂李植 1584~1647년)이 선정을 베풀며 간성 현감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마중나온 고을민들에게 남긴 시라고 한다.

 

 

 

 

진부령(529m)은 추가령(북한), 대관령과 함께 강원 영동과 영서를 잇는 3대 고갯길이다.

 

보부상이 넘던 오솔길을 1631년 간성현감 이식이

우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넓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30년에는 차량이 넘을 수 있는 비포장 도로로 보수했고,

1987년 왕복 2차선 도로로 확장 포장됐다.

 

평창에 진부면이 있어 헷갈리기 쉬운데 이곳이 왜 ‘진부’인지는 불분명하다.

(평창 진부면에서 강릉 주문진을 잇는 고갯마루는 진고개다.) 

 

이식은 ‘진부령유별시’에서

‘하늘에 높이 솟은 영마루, 새도 넘기 힘든 길’이라 적었지만~

동서를 잇는 다른 고갯길에 비하면 진부령은 순한 편이다.

 

 

 

 

6.25  전쟁 때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1951년 5월 16일, 중국군 3개 사단이 인제지역을 공격해왔다.당시 중동부 전선은 인제를 중심으로 왼쪽은 미국 10군단, 오른쪽은 국군 3군단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약 30만 명의 중국군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미 10군단 예하 국군 5, 7사단과 국군 3군단 산하 3, 9사단을 집중공격했다. 17일 새벽 3군단의 주요 보급로이자 퇴로인 상남면 오마치 고개가 중국군 1개 대대에 점령당했다. 퇴로가 차단당했다고 판단한 3, 9사단은 공황상태가 되었다. 포위당할까 두려운 3군단 예하 사단장을 비롯해 지휘관들은 도망가기 급급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3군단 병력은 17일 오후 기린면 현리에 집결했지만 사단장과 지휘관들은 전투 의지를 상실한 상태였다. 혼란을 수습해야 할 3군단장 유재흥은 작전회의에 참석한다며 전선을 떠나 정찰기를 타고 군단 사령부가 있는 평창 하진부리로 가버렸다.

 

지휘관을 잃은 3군단 병사들은 지리멸렬 상태로 사흘간 중국군을 피해 방태산, 계방산 등 험준한 산악지대를 통과해 하진부리까지 70킬로미터를 퇴각했다. 식량도 없이 흩어진 병사들은 중장비와 중화기를 버렸고 장교들은 포로로 잡힐까 두려워 스스로 계급장을 떼어버렸다.

수많은 병사들이 중국군에게 포로가 되거나 사살되었다. 5월 20일 천신만고 끝에 하진부리에 모인 병력은 3사단 34%, 9사단 40%에 불과했다. 전사자와 실종자, 포로가 된 병사의 숫자가 1만 9,000여 명으로 추정됐다. 대포 등 전투 장비의 70%가 사라졌다.
 
한국전쟁 최악의 흑역사가 된 ‘현리전투’는 병자호란 쌍령전투, 임진왜란 칠천량해전과 함께 역사상 3대 패전으로 꼽힌다. 현리전투 대패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패장 유재흥은 그해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당시 3군단장 유재흥(1921~2011)은 서른 살로 일본 육사 출신이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군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한국말이 서툴러 통역을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개전 이후 연전연패를 당한 무능한 지휘관이었지만 승진을 거듭하며 중용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양주와 의정부 지역을 방어하던 7사단장 유재흥은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을 상대로 병력을 쪼개어 투입하는 실책을 범해 참패를 당했지만 2군단장으로 승진했다. 2군단장 유재흥은 1950년 11월 덕천전투에서 중국군이 공세로 나선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포위 공격을 당해 부대 대오조차 유지하지 못한 상태로 괴멸해 2군단이 해체되었는데도 다시 신임되어 3군단장을 맡고 있었다. 
 
일본 육사 55기를 나온 유재흥은 일본군 보병 대위 시절 이광수, 최남선 등과 함께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조선인 학병 지원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그의 부친 유승렬은 일본 육사 26기를 졸업한 뒤 태평양전쟁에 참전해 일제 패망 당시 일본육군 대좌(대령)였다. 유 씨 부자는 ‘2대 친일 군인’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유재흥은 1960년 군복을 벗은 뒤 10여 년간 외국 대사를 지냈으며 1971년 박정희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격노한 미 8군 사령관 밴 플리트는 현리전투 참패의 책임을 물어 유재흥을 보직 해임하고 한국군 3군단을 해체했다. 급기야는 한국군의 지휘권을 완전히 박탈해 유엔군에게 넘겨버렸다. 이전까지는 이승만 대통령이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에게 군 지휘권을 이양하고 형식적으로나마 한국군 지휘부를 통해 명령을 하달하는 방식을 취했었다.
 

국군 통수권자인 이승만은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안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한강 다리를 끊고 도주하였고, 16일 뒤인 7월 14일 맥아더에게 ‘대신 군을 지휘해 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한국군은 귀하의 휘하에서 복무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할 것이며, 한국 국민과 정부도 귀하의 전체적 지휘를 받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굴욕적인 내용이 담겼다. 이때 유엔군에 이양된 작전지휘권(operational commands)은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되면서 작전통제권(operational control)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승만의 작전권 이양을 두고 전 주한미군 사령관(1973~1976) 리처드 스틸월은 “지구상에서 가장 놀라운 형태로 주권을 양보한 사례”라고 했다. 한국군이 작전통제권을 박탈당한 데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평시 작전통제권은 1994년 한국군에 반환되었지만 전시 작전통제권은 지금도 미군이 쥐고 있다. 이는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군의 모든 부대가 한미연합사령관인 미군의 작전통제권 안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전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려 하자, 유재흥은 전직 국방장관들과 함께 환수반대 1천만 서명운동을 벌이면서 극렬 반대했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는 무기 연기하기로 결론이 났다. 

현리전투는 한국전쟁의 전황이 38선 주변에서 교착 상태에 머물게 된 분기점이 되었다. 현리전투 이후 양쪽은 지루한 정전회담과 처절한 고지 쟁탈전이 반복되었다. 오미재 정상에는 “이 전투의 패배를 교훈으로 삼고 당시 이름 없이 몸 바친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빈다”는 내용의 현리지구 전적비가 덩그러니 서 있다. 오미재 고개 아래 상남면 하남리 언덕에는 현리전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우리는 고통과 시련의 역사가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하여 숨기려 하기보다는 이를 와신상담의 계기로 삼아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어떤 적의 도발도 반드시 격퇴할 수 있는 군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합니다.” 돌에 새긴 패배의 교훈은 ‘적군 섬멸’을 결의하는 군의 복수와 다짐뿐이고, 전쟁에 대한 성찰이나 이름 없이 산화된 젊은 영령에 대한 깊은 애도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진부령 정상에서 평화의 길은 칠절봉과 향로봉으로 향한다.

 

금강산과 설악산 사이의 향로봉은 남한에서 오를 수 있는 백두대간의 최북단이다.

산림보호구역이자 군사시설지역으로 일반인의 입산이 불가능한데~

어쩌자고 평화의 길을 그리로 내놓았는지...

 

9월 말 경에 DMZ 평화의 길이 완전 개통된다니~

철원(이길검문소↔도창검문소), 철원(국립복주산휴양림)~화천(실내고개),

화천(화묵령~평화의 댐), 고성(진부령~향로봉) 등...

구간도 개통되길 바란다.

 

 

 

 

진부령미술관과 진부령 정상.

 

 

 

 

원통에서 출발한 5번 마을버스가 15:40에 진부령에서 출발한다.

 

 

 

 

16:13   진부령에서 마을버스로 원통버스터미널까지 35분 정도~

공영주차장에 도착하여 춘천으로 출발한다.

 

이곳에서 춘천 퇴계사거리까지 승용차로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DMZ 평화의 길 트레킹도 이제 3~4 코스 정도 남았다.

시작할 때는 완주 시점이 언제 쯤 될까? 했다.

 

강화도와 강화해협을 사이에 둔 대명항포구에서

트레킹을 시작할 때는 기쁨과 꿈이었는 데,

마지막이 서서히 다가오니 아쉬움과 미련이 교차한다.

 

완주가 끝나면 또 어디를 걸어야 할까...

 

외씨버선길을 마주 끝내야할지도 모르겠다.

 

 

 

DMZ 평화의 길 종주

회차/코스 날짜 거리/시간 누적
(1)
대명항 대명포구-후평리 "들길따라" 카페
2023년
6/24~25
33.14km
/13h14m
33.14km
/13h14m
(2)
후평리 "들길따라"-일산호수공원
7/15~16 40.9km
/13h13m
73.23km
/26h27m
(3)
일산호수공원-문산역
8/12~13 45.30km
/15h32m
118.53km
/41h59m
(4)
문산역-반구정-율곡습지공원-장남교-사미천교
9/9~10 47.9km
/15h49m
166.43km
/57h48m
(5)
사미천교-숭의전-군남홍수조절지-신망리역
9/23~24 47.8km
/14h20m
214.23km
/72.08m
(6)
신망리 제일교회-역고드름-백마고지역
-DMZ두루미평화타운
-칠만암-고석정-문혜교차로-지경리
10/7~9 61.8km
/19h37m
276.03km
/91h45m
(7)
지경리-김화-자등리-신술재
-하오재-박달재-하실내 버스 정류장
2024년
4/27~28
44.6km
/13h05m
320.63km
/104h50m
(8)
하실내 버스 정류장-명월2리노인정-만산령
-풍차펜션-신대사거리-화천공영버스터미널
5/25 26.5km
/08H53m
347.13km
/113h43m
(9)
강변 주차장-살랑교-꺼먹다리
-딴산-풍산교 삼거리
6/1 17.1km
/05h07m
364.23km
/118h50m
(10)
풍산교 삼거리-해산터널-평화의 댐-오천터널
-양구백자박물관-송현리 백석산 아파트 정류장
6/14~15 46.7km
/16h36m
410.93km
/135h26m
(11)
백석산아파트 정류장-고방산-백호터널-도사삼거리
-
월운저수지-팔랑2리 농어촌버스 종점(=춘천상회)
7/13 16.5km
/5h23m
427.43km
/140h49m
(12)
팔랑2리 농어촌버스 종점(=춘천상회)
-돌산령-도솔산지구전투위령비-대암샘터
-국립DMZ자생식물원 삼거리. 피의능선 전투전적비.
7/14 15.6km
/5h21m
443.03km
/145h70m
(13-1)
국립 DMZ 자생식물원 삼거리-해안면사무소
-물골교-백두대간트레일 평화염원길
-후평교-심적교-천도아파트-궁전모텔
8/10 22.6km
/6h53m
465.63km
/153h03m
(13-2)
궁전모텔-서흥1리마을회관-사천교-풍전교-구미교
-
12사단 을지신병교육대-대터교 -도리촌교-소재교
-
월학1리 마을회관 -원통체육관-원통버스터미널
8/11 20.1km
/6h27m
485.73km
/159h30m
(14)
원통버스터미널-설악휴계소
-백담마을-용대삼거리-진부령
9/8 28.87km
/8h33m
514.60km
/168h03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