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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법의 화신인 양 우쭐대다 불리해지니 법 무시”

온리하프 2025. 1. 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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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계 원로 이준구 교수

‘윤석열 체포영장 불응’ 비판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은퇴 당시인 2015년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영민 기자

 

 

경제학계 원로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가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불응에 대해 “남들은 다 지키는 법 질서를 헌신짝처럼 여긴다”면서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만행”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지난 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게 나라냐’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지난 4일 윤 대통령이 대통령경호처를 이용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한 것에 대한 비판을 내놨다.

 

이 교수는 윤 대통령을 두고 “마치 법의 화신잉 양 우쭐대던 사람인데 법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것 같으니 이젠 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식으로 무시해버린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체포 영장이 ‘불법’이라는 윤 대통령의 주장도 비판했다. 그는 “법원이 정식으로 발부한 영장인데, 그것이 불법이라며 불복할 이유가 손톱만큼이라도 있느냐”면서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법을 공부했길래 검사 생활을 오래 했다는 사람이 그런 무식한 발언을 감히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이 몇 번씩 부르는데도 불복해 급기야 체포영장이 나오게 한 것부터가 자업자득이고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면서 “남들보다 앞장서서 법질서를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남들은 다 지키는 법 질서를 헌신짝처럼 여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윤 대통령의 체포 불응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국격이 하루아침에 바나나공화국 수준으로 폭락했다”고도 주장했다. 바나나공화국은 1차 산업에 의존하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부패한 국가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 교수는 “대통령이 법 질서를 헌신짝처럼 여기는데 국민이 왜 자진해서 법 질서를 지키려 하겠느냐”면서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한 사람으로 만행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이제 무법천지의 시대로 들어가려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이 교수는 윤 대통령의 빠른 파면이 우리 사회를 위한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는 한시라도 빨리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려 그를 영원히 추방시키는 일뿐”이라면서 “대통령 한 사람을 잘못 뽑은 대가가 이렇게 혹독할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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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고우 이철우 교수 "윤석열, 극우 수괴 될 줄 몰랐다"

 

페이스북에 글 올려 극우세력의 위험성 제기..."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2021년 6월 9일 오후 열린 서울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 참석한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철우 연세대 교수와 대화하고 있는 모습.

 
윤석열과 어릴 적부터 친했던 이철우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문재인 정부 시절 윤석열의 "사냥개 노릇"을 언급하며 "윤석열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극우 세력의 수괴가 될 것임은 생각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7일 밤과 8일 새벽 사이 페이스북에 극우 세력에 대한 통사적·과학적 연구를 통해 이들로 인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 교수는 일본제국주의에서 시작된 한국 극우 세력이 해방 뒤에는 제1공화국의 군인과 경찰의 중심을 이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 반공을 내세웠다는 점을 짚었다. 반대로 항일 민족주의의 동력은 4.19 혁명과 1987년 민주화로 이어진 역사를 언급했다.

 

이 교수는 "40년에 걸친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통해 가지게 된 믿음에 취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극우 세력이 재편성되고 있음을 우리는 간과한 것 같다"며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일본제국주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수정주의 역사 논객들이 등장하자 그들과 싸우는 담론 전선에 참여했지만 그들의 역사해석이 정치적 극우의 권력화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 교수는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과잉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재인 정부의 과잉 민족주의에 대한 나의 비판적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거대 자본을 상대로 한 수사를 위해 진보 이념을 차용했고, 국정농단 수사를 맡아 문재인의 사냥개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문재인 정부가 조성한 반일정서에 발맞춰 강제징용 판결을 옹호하면서, 조심스러워 하는 나에게 눈을 부라렸던 윤석열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극우세력의 수괴가 될 것임은 생각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어 "2021년 그의 언동에서 진영적 사고와 갈라치기, 그리고 폭력적 기운을 느꼈지만 그의 졸개들이 추진한 홍범도 흉상 제거, 2023년 8.15 경축사를 통해 반대 세력을 공산전체주의로 몰아세우는 담론 전략을 보기 전에는 그가 정신적으로 화융할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닫지 못했다"며 "홍범도 흉상 철거 계획을 꾸짖는 광복회장을 겁박하기 위한 시위대가 우리 집 앞에 와서 연일 고성을 지르는 것을 보면서, 백범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궤변이 정권의 비호를 받는 것을 보면서, 일본제국주의의 주구들을 섬기는 자들, 식민지 노예근성을 노멀로 여기는 자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썼다.

 

이 교수는 "과거의 군중이 물리적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익숙함에 의해 동원되었다면, 현재의 극우 정치는 초보적 논리와 팩트를 부정하도록 군중을 세뇌하고 선동하는 것을 통해 전개된다"며 "그것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무속의 노예가 된 한 개인의 심성과 행태로 문제를 환원하지 않는 것은 물론 극우세력의 역사적 기원 및 통시적 변천과 발전을 되돌아보고, 그들의 행동의 단순한 도구나 매개물이 아닌, 그들의 주체성과 행위를 구성하고 규정하는 물질의 작용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글을 맺었다.

 

이 교수는 윤석열과 어릴 적부터 친했고, 초등학교·대학교 동기 동창이다. 이 교수의 부친인 이종찬 광복회장과 지난 2023년 별세한 윤석열의 부친 윤기중 교수가 친분이 깊어 두 집안이 50년 이상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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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 각오하고 나선 길…굽히지 않겠다, 윤석열 탄핵은 당위니까”

 

12·3 비상계엄 이후 당의 온갖 회유와 압박에도 ‘대통령 탄핵’을 외쳐온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12·3 내란을 일으킨 사람이 대통령이고, 국민의힘은 여당으로서 원죄가 있는데, 갈 길 먼 당의 모습에 많이 답답하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지난 2일 김 의원이 지역구인 울산 남구의 한 거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비상계엄 선포 순간 전두환 떠올라
윤 대통령 스타일상 막지 못하면
국민들이 피를 흘릴 거란 생각뿐

 

얌전히 있으라는 선배에게 말했죠
박수 치는 사람들 속에만 갇히면
그건 성이 아니라 감옥이라고

 

국민의힘은 12·3 내란에 ‘원죄’
행동으로 사과 없이 ‘윤석열 비호’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에 참담

 

건강한 보수는 공정·자율·개방성
사리사욕이나 당리당략보다
가치 지향하는 정치가 되길 희망

 

12·3 비상계엄 이후 그는 ‘투사’가 되었다. 마이크가 주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민주주의 파괴자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국민의힘 초선 김상욱 의원(45·울산 남구갑) 얘기다.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 대통령의 탄핵을 지연 또는 저지하려는 당 지도부 입장에선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회유와 압박이 통하지 않으니 당연히 왕따 신세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세력으로부터 “배신자” “반역자”라며 욕설 항의 전화를 받는 일도 일상이 됐다. 사무실에 칼이 든 소포가 날아들기도 했다. 불상사에 대비해 옷 안에 방검복을 껴입고 다닌 지 오래다.

 

그는 “계엄 이후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고 말했다. 눕기만 하면 악몽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독재국가가 되는 꿈, 탄핵에 실패하는 꿈이라 했다. 내란 세력을 옹호하는 국민의힘의 각성을 요구하는 그의 강단 있는 목소리에선 그만큼 절박감이 묻어났다. 그는 자신의 정치생명이 끊어질 걸 각오하고 이 길에 나섰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울산에서 김 의원을 만난 데 이어 7일 추가로 전화통화를 했다. 주중에는 서울, 주말에는 지역구에 머무르는 그는 한 달 새 체중이 5㎏이나 빠졌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2일 지역구인 울산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저까지 침묵하면 보수 궤멸 위기감

 

- 연일 윤 대통령 탄핵과 당 지도부 비판, 그리고 보수의 재건을 얘기하더군요.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예요. 또 저까지 침묵하면 보수가 극우인 게 당연한 것이 되고, 그러면 국민들의 실망이 너무 커 보수가 완전히 궤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에요. 보수의 궤멸은 대한민국 정치권력구조를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 수밖에 없어요. 가정입니다만, 민주당이 향후 거대 집권여당이 돼 입법·행정·사법까지 장악하는데 견제할 보수 정당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민의가 왜곡될 뿐 아니라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할 가능성이 커요.”

 

- 당내 공격이 심하다죠.

 

“당 지도부나 중진들은 저를 더 이상 포섭 대상으로 보지 않아요. 그래서 저를 철저히 고립시키려 하죠. 제가 탈당하기를 원할 거예요. 홍준표 대구시장의 목소리는 혼자만의 것이 아닌 TK 의원 전체의 목소리예요. 가깝게 지내던 의원들도 저와 거리를 두려는 게 느껴지죠. 그래도 각오한 일인 만큼 제 생각을 굽힐 생각은 전혀 없어요. 윤 대통령 탄핵은 마땅히 해야 할, 당위(當爲)라고 생각하니까요.”(홍준표 대구시장은 당론을 어기는 조경태·김상욱·김예지 의원을 조속히 징계하라며 “종양은 살이 되지 않는다”고 지난달 29일 주장했다.)

 

- 이곳 울산 분위기는 어떤가요.

 

“일반 시민은 격려해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지역구인 울산 남구갑은 울산에서도 가장 강성 보수 지역이에요. 그러다보니 과거 제가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지역의 유지들이나 언론은 이제 저를 적대적으로 대하세요. 아쉽고 서운하죠.”

비상계엄이 선포된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30분으로 시계를 돌렸다. 그는 당시 서울 서초동에서 법대 동기들과 저녁모임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속보로 뜬 계엄 선포를 접하자마자 곧바로 국회로 달려갔다.

 

- 계엄 선포 소식에 맨 처음 든 생각은 뭐였습니까.

 

“5·18항쟁으로 이어진 전두환의 비상계엄 확대 조치가 먼저 떠올랐어요. 막아야 한다, 윤 대통령 스타일상 막지 못하면 국민들이 피를 흘린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어쩌면 다신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생각해 차 안에서 아끼는 이들에게 전화했어요. ‘만에 하나 죽더라도 국회에 가야 한다, 미안하다’고 말했어요.”

 

김상욱 의원이 지난해 12월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 참여한 뒤 울먹이며 소신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국회가 봉쇄되기 전 본회의장에 도착했다. 여당 의원 중 첫 번째였다. 하지만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에 필요한 의결정족수 150명이 아직 채워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김용태·김재섭 등 동료 의원들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계엄을 풀어야 하니 서둘러 국회로 오라’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보이자 “나라를 구해달라”고 손을 부여잡고 외쳤다.

 

- 12월7일 1차 탄핵 표결 후 기자들 앞에서 울먹이며 소신을 밝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1차 땐 반대, 12월14일 2차 땐 찬성표를 던졌는데, 표결을 앞두고 당내 압박이 꽤 심했겠어요.

 

“당 중진들이 겁주고 달래면서 당론에 따르라고 설득했어요. 성일종 의원님은 눈물로 호소하셨습니다. 대들다가 결국 저도 같이 울었죠. 마침 그날 오전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대통령 담화가 있었으니, 즉시 하야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일단은 당론에 따르기로 했어요. 그런데 그날 오후 의원총회 중에, 성 의원이 따뜻한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저를 따로 불렀어요. 그 자리에 인요한 의원도 있었는데, 인 의원이 (찬성표를 던질) 김예지 의원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자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김예지 의원은 양심이 있는 것이고, 당신은 양심이 없는 것’이라고 소리쳤죠. 탄핵 반대만 외치는 의총에도 못 가겠고 국회에 남아있는 것도 부끄러워 울산에 가려고 서울역으로 향했어요. 그런데 그 시간이 제가 태어나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어요.”

 

- 어째서요.

 

“양심에 반해 움직인다는 것 때문에. 기차에 오르기 직전, 이거 타면 평생 후회하겠다 싶어 국회로 되돌아왔어요. 여의도에 들어서자 탄핵안 가결을 요구하는 인파로 인해 차량 진입이 불가능했어요. 국회 1~2㎞ 앞에서 내려 뛰었죠. ‘국회의원입니다’란 한마디에 시민들이 길을 열어주셨어요. 참 울컥했고 감사했습니다.”

 

- 본인이 철저한 보수주의자임을 강조하더군요.

 

“진영 정치 타파를 이야기하고 싶어서예요. 진영 정치 탓에 이 사달(계엄)이 났으니까요. 22대 국회는 여야 국회의원들 간 대화가 없어요. 국민의힘이나, 입법 독주를 하는 민주당이나 똑같아요. 윤 대통령이 저런 극단적 계엄을 한 것도 결국 민주당은 적이고 나라를 망친다, 우리만 나라를 구한다는 혼자만의 진영 논리에 빠져 있어서예요. 진영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정치인들을 다 죽인다는 점이에요.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줄서기 잘하는 행동대장들, 기회주의자들만 살아남아 3선, 4선 하며 중진이라고 앉아있는 겁니다.”

 

쇄신 싫어하는 사람들 똘똘 뭉쳐

 

- 김 의원은 탄핵 이전에도 당론과 다른 행보를 보이곤 했는데, 진작부터 반골이었나봐요.

 

“추경호 원내대표가 저를 몇번 불러 이야기했어요. ‘너는 지역구가 좋으니 선배들 따라 얌전히만 있으면 4선, 5선도 한다’고. 그때마다 저는 말씀드렸어요. ‘우리가 우리한테 박수쳐주는 사람들만 모아서 그 성벽에 갇혀버리면 그건 성이 아니라 감옥’이라고. ‘우리의 가치를 세우고 그 가치의 길을 내서 나가야 한다’고, ‘그게 건강한 정당의 모습’이라고.”

 

대통령 탄핵안 2차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달 13일 국회 본청 앞에서 동료 의원들에게 탄핵에 찬성해줄 것을 호소하는 김상욱 의원. 연합뉴스

 

- 결국 국민의힘은 ‘도로 친윤(친윤석열)당’이 됐어요. 여당은 계엄을 야당 탓으로 돌리며 윤 대통령을 감싸고, 심지어 탄핵이 안 되도록 하려는 것으로 보여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이라고 생각해요. 추정입니다만, 윤 대통령과 어떤 이해관계가 얽혀 있거나 정치적 명운을 같이하는 분들도 있고, 권력지향적·기회주의적 성향을 가진 분들이 현재의 권력인 친윤에 붙는 것이기도 해요. TK 의원들의 문제도 있어요. 이분들에게 중요한 건 대선도, 정권도 아니고 오로지 공천이에요.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쇄신을 싫어하죠. 쇄신파가 들어오면 자기가 쇄신 대상이 되니까요. 그런 사람들이 지금 똘똘 뭉친 겁니다.”

 

- 조기 대선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당선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분위기도 당내에 팽배해 보이더군요.

 

“이재명은 잔인하다, 똑똑하다, 인성에 문제 있다, 이런 생각이 강하게 박혀 있다 보니, 그가 정권 잡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 최상목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두 명을 임명하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민주당 탄핵 협박에 굴복했다”며 최 권한대행을 비판한 것은 어떻게 보나요.

 

“윤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되거나 헌재가 마비돼 탄핵절차가 이뤄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인데 정말 위험해요.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파괴한 중대범죄자인 대통령을 탄핵하지 못한다면 다음에 대통령 되는 사람은 마음에 안 들면 비상계엄을 해도 된다는 전례가 됩니다. 또 사회갈등이 더 첨예해지고 경제도 완전히 망가지죠. 그래서 저는 최 권한대행의 용기와 결단을 높이 삽니다. 지금 대통령 권한대행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대통령 탄핵절차가 안전하고 원만하게 진행되도록 관리하는 것이라 생각하니까요.”

 

- 6일 친윤을 중심으로 국민의힘 의원 44명이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막겠다며 대통령 관저 앞에 집결했어요.

 

“12·3 내란을 일으킨 사람은 대통령이고, 국민의힘은 여당으로서 원죄가 있어요. 그러니 국민들께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해요. 또 두 번 다시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죠. 하지만 6일 보여준 모습은 정반대였어요. 우리 당이 아직 시작조차 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당의 미래를 새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제 입장에선 많이 답답하고 참담하고 갈 길이 멀구나 하고 느꼈어요.”

 

-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 1일 지지자들에게 편지를 쓴 데 이어 3일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했는데,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공개된 편지 내용을 보며 비겁하다, 겁이 많다, 끝까지 사회갈등을 야기하고 그 뒤에 숨으려고 한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안위에 도움이 된다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분으로 보여 더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한 것은 평생 법으로 먹고살아온 분이 법치주의를 무시한 거라 생각합니다.”

 

도서관에 살다시피하며 역사 공부

 

김상욱 의원은 1980년 1월1일 경북 의성의 가난한 농가에서 출생했다. 1남1녀 중 장남이다. 초등학교 때 대구로 이사한 후 아버지는 염색공장에 다녔다. 대구초, 대구북중, 영진고를 졸업한 후 1998년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해 제주경찰청에서 의무경찰로 전환복무했다. 대학 4학년 때인 2006년 현대해상화재에 취직했고 이듬해 우리은행으로 전직했다. 2009년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1기생으로 입학했다. 2012년 제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12년간 울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2024년 4월 제22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2일 지역구인 울산시의 한 거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 어려서 어떤 아이였습니까.

 

“조용했어요. 자존심은 강한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도 못 다니다보니 좀 주눅 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대신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했어요. 역사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시사 프로그램도 열심히 봤습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초등학생 때 보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어요.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세게 보이려고 주먹 쓰고 담배도 피우는 불량학생이었어요. 2학년에 올라가면서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지켜냈죠. 그리고 졸업할 때쯤 되니까 목표가 생겼어요.”

 

- 뭐였나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 군인이 되고 싶었어요. 명예에 살고 죽는 모습이 좋아 보였거든요. 학비 걱정을 안 해도 되고 생활비도 지급된다니까 경제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요. 그래서 고등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첫 시험에서 전교 2등을 했어요.”

 

- 그런데 왜 육사에 안 갔습니까.

 

“담임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학교는 서울대에 몇명 진학하는지가 중요했으니까요. 반발심에 서울대와 같은 ‘나’군에 있던 고려대에 원서를 냈어요. 그러면 서울대에는 원서를 못 내니까요.”

 

- 자취를 했을 텐데, 대학 생활은 어땠나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외에 법대 풍물패에서 활동했어요. 종교에도 관심이 많아 거의 모든 종교를 들락날락했습니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했어요. 제주도에서 의무경찰로 복무하며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아요. 그 시기에 매일 일기를 썼어요. 제대 후 원불교를 믿게 됐고, 제 인생의 스승님이신 어느 교무님으로부터 ‘법해(法海)’라는 법명도 받았어요.”

 

사회에 선한 영향력 주고 싶어

 

- 금융회사에 취직해 다니다 로스쿨에 입학한 이유는 뭔가요.

 

“대학 시절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한계를 느껴 포기했었어요.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려면 한 달에 100만원 정도가 필요한데 엄두가 안 났거든요. 동생도 대학에 들어가는 상황이라, 졸업도 하기 전에 취직했어요. 하지만 자율성 없는 조직생활이 잘 맞지 않았어요. 돈도 좀 모아뒀으니 변호사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막연하지만 사회봉사나 사회운동을 통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었거든요.”

 

- 변호사 시험 합격 후 왜 연고가 없는 울산을 택했습니까.

“당시만 해도 로스쿨 출신은 변호사로 인정해주지 않을 때여서 오라는 데가 있으면 가릴 처지가 아니었어요.”

 

그는 법무법인 정우의 송철호 변호사 사무실을 거쳐 울산지역 최대 전관 로펌인 법무법인 우덕에서 일했다. 2014년 법률사무소 정성, 2017년 법무법인 더정성을 창립했다. 밤낮없이 일한 덕에 변호사 10명을 둘 만큼 울산에서도 손꼽히는 법무법인으로 성장했다. 각종 자문위 활동은 물론 무료 변론도 많이 했다. 울산 동구 판자촌인 새납마을 철거사건이 특히 유명하다. 지주 측을 대리해 철거를 완료시키는 게 그의 임무였다. 그는 승소를 완벽하게 세팅한 후 수억원의 성공보수 전액을 포기하고 이를 수단으로 지주를 설득했다. 마을 주민이 지주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양자가 합법적 임대차 계약을 맺게 했다. 덕분에 수백명의 주민이 거리에 나앉지 않게 됐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2일 지역구인 울산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 의원 배지를 단 지 8개월이 조금 넘었는데, 원래 정치에 뜻이 있었나요.

 

“아닙니다. 지역 여론과 언론에서 띄운 거였어요. 굳이 왜?라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결국 나서게 됐고, 예비후보였다가 갑자기 저희 지역을 당이 국민추천제로 뽑겠다고 하면서 공천을 받았어요.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를 절대 안 하고 정책선거만 하겠다고 약속했고, 지켰습니다(득표율 53.86%).”

 

- 꿈꾸는 정치가 있습니까.

 

“사리사욕이나 당리당략이 먼저인 정치는 사라져야 합니다. 또 지금과 같은 진영 정치가 아니라 가치지향의 정치가 필요해요. 정권 획득을 못하더라도 녹색당, 노동당이 필요하고, 시대 변화에 따라 또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정당도 나올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 단계에서 제가 지향하는 가치는 건강한 보수입니다.”

 

- 건강한 보수란 게 어떤 걸까요.

 

“안정적 성장을 위한 공정성, 합리성, 자율성, 개방성을 기본으로 하는 정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죠. 하지만 지금의 국민의힘은 그런 모습이 아니라 화가 나는 것이고, 바꾸고 싶은 거예요.”

어느새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오후 9시, 김 의원의 배웅을 받으며 울산역에 들어섰을 때 그를 알아본 일부 시민이 “응원한다”며 반갑게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하고 답례를 하는 김 의원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