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중인 자료

목요 산행/사전예약제로 하루에 두번 일반인들에게 허락되는 철원 DMZ 생태평화공원 용양늪 ,소이산 재송평 안보길 트레킹

온리하프 2018. 6. 2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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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원 DMZ생태평화공원

용양늪,소이산 재송평 트레킹

삼부연폭포,산정호수 둘레길

위치:강원,철원군

2018년 7월 5일 목요일 07시 곰배령 출발

군사보호지역으로 사전예약제로 하루에 두번 개방

25일까지 접수:성명,주민번호,현주소

핸드폰번호 알려주세요. 

*철원 DMZ 평화공원  용양늪-소이산 생태숲길-삼부연목포-산정호수 트레킹 일정*

일자

2018년:7월 5/목

07시 출발

만남의 숲

여행경비

포함사항

40,000원

중식 8,000,차량료25,000

입장료 7,000

농협:백명순 1113-01-126464  

여행 문의

호반산악회 

백명순(총무)

 010-5369-9007

준비물

신분증,간식,식수

 

 *사전예약제로 하루에 두번(오전10시,오후1시) 일반인들에게 개방합니다.

  25일까지 접수바람 성명,주민번호,주소,핸드폰 번호 필히 알려주세요*  

날 짜장 소세 부 일 정

7/4


춘천 


철원









포천

  

 춘천

  

07:00 만남의 숲


09:40-12:00 철원 DMZ평화공원 용양보 생태숲길


12:30-13:00 중식(고석정 한식)


13:00-15:00 소이산 재송평 자연 생태숲길 트레킹


16:00 삼부연 폭포


17:00-18:00 산정호수 둘레길


20:00 춘천 도착 후 해산






용양보

용양보 탐방로 이미지1 용양보 탐방로 이미지2 용양보 탐방로 이미지3


이 일대는 병자호란 때 청해 10만대군에 맞서 용전분투했던 홍명구공과 유림장군의 충절이 깃들어있는 곳으로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예술혼이 살아숨쉬는 곳이기도하다.
일제시대인 1914년 생창리로 개칭되었으며 1953년 수복되면서 철원군 김화읍으로 바뀌었다.
남북체제 경쟁이 한창이던 1970년 재향군인 100세대가 입주 재건촌을 건립해 오늘에 이르고 이제는 남북통일의 물꼬를 트는 통일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고결한 모습의 용양보 습지는 정전 이후 최초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며 지금도 동물들의 발자국만 가끔 눈위에 남아있는 동물들의 안식처이기도  

작지만 큰 명상 소이산,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소이산은 작지만 큰 명산

소이산은 평야에 우뚝솟은 362m의 작은산으로 때묻지 않은 자연과 넓은 평야를 내려다 보는 정상전망은 그 위용을 자랑합니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봉수대오름길

역사의 중심이었던 소이산

고려시대부터 외적의 출연을 알리던 제1로 봉수대가 위치한
공간으로 한국전쟁 이전 화려했던 구 철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 철원역사 의 중심입니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군사통제구역을 벗어나 지뢰밭과민간인 통제구역에 갇혀
수십년간 사람의 발길을 거부해 왔습니다.

육군 제3007부대(6사단)와의 오랜 소이산 개방협의와 적극적인
협조로 민관군이 하나되어 지금의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때묻지 않은 자연속으로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지뢰지대의 안전과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한 휀스설치는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산림과 어우러 지며 때묻지 않은 자연 생태계는
찾는이에게 큰 마음의 안식을 주고 있습니다

소이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철원평야와 북녘땅,민북마을 대마리전망,구상나무 숲길,생태 숲길에 피어난 야생 고사리,지뢰 꽃길 입구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총 구간 : 4.8km 세부길 구성

지뢰꽃길(1.3km)

지뢰안전지대와 GOP를 연상케하는 지뢰꽃길은 분단된 우리의 역사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표현한 곳입니다.

생태숲길(2.7km)

자연그대로의 오솔길을 걸으며 소이산이 간직한 생태환경을 느낄수 있습니다. 생활속 모든 고민을 털어내고 자연과 하나되는 곳입니다.

봉수대 오름길(0.8km)

소이산이 품고있는 넓은 철원·평강고원을 내려다 보는 정상 오름길입니다. 전망 조망을 통해 철원이 간직한 과거와 미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소이산 정상에서 바라보며

철원·평강평야

  • 약 6천만년 전 현무암 화산 분출로 생긴 용암대지로 넓은 평야가 발달해 제주도와 함께 현무암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 한국전쟁시 철원평야 확보를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 정도로 전국 최고의 곡창지대이며, 최고의 미질을 자랑합니다.

화려했던 철원의 옛도시

  • 과거 노동당사와 법원, 경원선과 금강산 기차가 지나고 1930년대 인구 2만명이 거주하던 도시의 중심지 였습니다.
  • 중·고등학교 5개소, 금융기관 4개소, 행정기관 34개소 등이 위치하던 강원도내 춘천, 원주, 강릉과 더불어 대읍부향(大邑富鄕)이었습니다.

구철원읍 조감도. 광복전후로 추정된다.

철원 삼부연폭포

철원 삼부연 폭포(왼쪽). 정상에서 보면 가마솥 같은 못 세 개가 펼쳐진다. 삼부연(三釜淵)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다. 겸재 정선은 300년 전 이곳을 찾아 산수화 ‘삼부연’(오른쪽)을 그렸
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산정호수 사진







 


 

 탐방코스안내도 - 십자탑탐방로(방문자센터-검문소-후방CP-숨속쉼터-십자탑 전망데크-백골OP전망대-고라니쉼터-얼레지쉼터-DMZ쉼터 경유) / 용양보탐방로(방문자센터-충렬사-검문소-암정교쉼터-용양보-관찰데크-두루미쉼터-지뢰밭탐방로 경유) 탐방로 외에도 오성산, 성재산, 계웅산, 남방한계선, 철책선을 표시하고 있는 이미지입니다

 등산코스 : 한화리조트(하동주차장)-소나무길-망무봉 왕복-자연산책로-조각공원-하동주차장 (산행시간 : 2시간30분 / 약 6km)

▲ 산정호수 둘레길 안내도

▲ 망봉산


 

 

 

<출발장소>

만남의 숲 앞

<출발시간>

2018년 7월 5일,

07시

회비:40,000원

차량료 25,000

중식비  8,000

입장료  7,000

     <버스>

  45인승 대형버스

 

 

신청문의:총무 :010 -5369 -9007



























[6월23일] "생태탐방로"와 "땅굴","도라산전망대"까지 트레킹| - 다녀온 산

송림산악회 | 조회 2364 |추천 0 | 2018.04.29. 16:14



산행지 개요

임진강변 생태탐방로는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통일대교, 초평도, 임진나루를 지나 율곡습지공원까지 이어지는 9.1km의 구간으로 약 3시간이 소요되는 코스입니다. 철책이 설치되고, 민간인을 통제하던 순찰로로 활용되었던 곳으로 올해부터는 임진강을 따라 걷는 생태탐방로 구간으로 일반인에게도 허락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시범 개방기간이라 출입절차와 시간 및 인원의 제한 등 절차상의 번거로움이 있지만 외부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라 탐방객들에게는 신선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생태탐방로에서는 재두루미, 독수리, 쇠기러기 등 겨울철새가 월동하는 ‘초평도’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으며 봄에는 유채, 가을에는 코스모스 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는 율곡습지공원과 율곡수목원이 있습니다.

   평화누리 8코스, 주변의 관광자원과 연계하여 임진강변 생태탐방로 방문 계획을 세워보는 건 어떨까요.


철책선 안에서 안내자의 인솔하에 트레킹 하므로 사전에 국방부의 승인을 얻어야

출입이 가능합니다.국방부의 승인을 얻으려면 6월13일까지 신청하신분만 가실수 있으니 참여하실분은 성명,성별,주민번호앞자리,연락처총무님께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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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白頭山, 2,750m)

 

 

한민족과 만주족의 영산(靈山)

 

북한과 중국 국경 사이에 있는 활화산이자 초화산으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해발 2,750m의 산이다. 백두산의 높이는 나오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른데,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네 나라가 해발 고도를 재는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과거 측정의 정확성에 의문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2,744m는 일제강점기 때 측정한 것. 인공위성에서 정확하게 재는 방법이 도입되기 전에는 높이가 알려진 곳에서 삼각 측량을 통해 높이를 쟀기 때문에 현대적 기준으로는 오차가 있다. 백두산 높이 2,750m는 그동안 중국과 북한의 계산이고 2,744m는 한국과 일본의 계산이다.

 

해발 고도와 구분되는 기복량이란 개념이 있다. 기복량이란 어떤 특정범위 내의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의 높이차를 말한다. 범위를 1 km2로 하여 기복량을 측정한 연구에서, 백두산의 기복량은 2,505 m라는 논문이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량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지린성 사이에 있다. 한국 명목상 행정구역상으로는 함경남도 혜산군 보천면과 함경북도 무산군 삼장면에 걸치며, 천지(용왕담) 전역은 혜산군 보천면 관할이다. 중화민국 명목상 행정 구역으로는 안둥성(安東省) 창바이현(長白縣)과 쑹장성(松江省) 안투현(安圖縣)에 걸친다. 천지는 창바이현 관할.

 

한민족과 만주족의 영산이며 한국과 북한의 애국가에도 나온다. 고려시대에 제사를 지냈고 조선시대 사전 중 중사(中社)를 지내는 제사터를 표시하는 지도에도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으며 대한제국 시기에 칭제건원하면서 황제국의 전례에 따라 오악(五岳)을 설정할 때도 북악으로 지정되어 제사를 지내는 영산으로 여겨졌다. 고려시대에 서경에 세운 '팔성당'에도 호국 백두악 태백선인 실덕 문수사리보살(護國白頭嶽太白仙人實德文殊師利菩薩)이라는 신격을 모셨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고, 삼국유사에서도 신라에서 신성시하던 5대 산에 관한 전설을 보면 "이 산은 곧 백두산의 큰 줄기로, 각 대에는 진신이 늘 있는 곳이다" 라고 기록한 부분이 있어 신앙으로도 백두산을 꽤나 중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아래 항목에 나와 있듯 백두산에 대한 신앙이 지금처럼 크게 두드러진 것은 근현대를 거친 이후부터이며, 그 전까지는 백두산이 유별나게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특히 '민족의 영산'과 같은 민족주의 의식의 특성이 붙여진 것은 명백하게 근대 이후의 일이다.

 

현재는 중국이 절반 북한이 절반 이렇게 반으로 나눠서 관리하고 있다.

 

2. 명칭

조선 국경에서 멀지 않은 산림 가운데 태백산, 즉 백두산이 구름 위에 솟아 있습니다. 이 산은 지금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청조(淸朝)의 시조인 한왕(汗王 누르하치)의 탄생지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유명합니다.

그 산 서쪽 비탈에는 그의 옛 집이 보수되어 보존되어 있는데, 중국인들은 그곳을 종교적 예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주 먼 지방에서 경건한 순례자들이 와서는 이마가 땅에 닿도록 조아립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페레올 고요한 주교에게 보낸 편지

 

백두산이라는 말은 고려사성종 10(981)에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난다. 13세기 말 문헌인 삼국유사, 제왕운기에는 '태백산'으로 나온다. 단군신화, 부여, 고구려를 설명하면서 '태백산'을 무대로 언급하고 있다. 혼용되던 이름은 대체로 10세기 후반부터 백두산이라 불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김대건 신부의 편지 사례에서 보듯 19세기 때도 태백산이라는 이름이 쓰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 조선 시대 이전부터 백두산 이외에도 장백산을 혼용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장백산이 심심찮게 나오며, 오히려 백두산보다 훨씬 더 많이 나온다.

 

 

이 부분에 조금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일단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단군신화를 설명할 때는 환웅이 자리잡은 태백산에 '묘향산을 이른다'는 주석을 달았으나, 고구려 건국 신화 부분에서 동부여 왕 금와가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유화를 만난 부분에서는 태백산에 특별한 주석을 달지 않았고, 다만 고구려=졸본부여라 하면서 졸본을 요동 인근으로 비정했는데, 지리적인 상황으로 보아 학계에서는 백두산으로 본다. 반면 이승휴의 <제왕운기>에서는 처음부터 태백산이라고만 적고 별도의 주석을 달지 않았으며, 부여, 옥저, 신라, 고례(高禮), 예맥이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보는 동시에, 이승휴 자신이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 요하 근처의 무덤을 현지인들이 "이 무덤은 부여 부마 대왕의 무덤입니다"라고 증언하는 것과, 요하 인근을 부여의 땅으로 기록하고 부여가 후조선의 후예라고 기록한 가탐의 기록을 실어놓아 요하 일대와 백두산을 부여 영토로 비정하고 있다. 여기서 단군 신화의 태백산을 일연이 묘향산이라고 주석을 단 데에는 백두산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설(서대석 교수의 주장), 묘향산이 불교의 성지라서 그 영향을 받았다는 설, 백두산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면서 백두산 신앙의 요소가 묘향산으로 이동한 것을 반영했다는 설(최남선 주장), 고조선의 수도가 평양으로 이동하면서 평양 지역에 토착화되면서 변했다는 설 등이 있다(단군 문서 참조).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가 자리잡혀가며, 단군이 한국 민족의 상징으로 등장하며 백두산의 위상이 증가했다. 북한 김일성 정권의 (자칭) 백두산 혈통, 단군릉복원 등과 남한 이승만 정권의 단군상 설립, 단기 사용이 한국인의 단군 숭배를 상징한다. 이러한 단군 숭배 사상과 맞물려 한국에서 백두산은 단군 신화의 고향으로써 민족의 영산 취급을 받게 된다.

 

하지만 백두산에 관련된 신화는 한민족 뿐만 아니라 만주족, 특히 청나라에서도 나타난다. 만주족의 기원 신화의 중심지 또한 백두산이며 청나라 시절 백두산은 만주족의 영산으로서 매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중국에서는 산해경의 기록에선 불함산(不咸山)으로,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221589)에는 태백산(太白山), 도태산(徒太山) 등 여러 이명으로 불리웠다. 현대에는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통일되었는데, 이는 만주어로 '긴 흰 산', '큰 흰 산'이라는 뜻의 '골민 샹기얀 알린(Golmin Šanggiyan Alin)'을 의역한 것으로, 역사적으론 요나라, 금나라 시기부터 쓴 이름이다. 이러한 명칭은 9개월 가까이 눈이 쌓여있는 특색 있는 산정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 즉 현대 중국 정부가 쓰고 있는 '장백산'이라는 표현은 유래에서 보듯 한족(漢族)의 용어는 아닌 것. '장백산', '백산'은 우리나라가 백두산을 지칭한 이름 중 하나이기도 하다. 10세기 무렵부터는 중국에서 대부분 장백산, 백산이란 명칭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 시기 고려에서도 장백산이란 명칭으로 많이 불렀고, 조선 시대에도 이어졌다. 지금의 백두산이란 명칭은 조선 말기에서나 빈도가 높아진다.

 

일본 NHK에서 북한 측의 협력을 얻어 백두산 일대의 식생을 50분짜리 자연 다큐멘터리로 담아낸 적이 있는데, 여기서 볼 수 있는 백두산이 그야말로 '희고 긴 산'이다. 한국측 미디어에서 대개 백두산 천지를 그려내는 데 비해 이 다큐는 삼지연 일대의 자연을 담고 있어서 밑에서 올려다보는 백두산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

 

영어권에서는 백두산이란 이름을 중국식으로 읽어서 'Baitou Mountain'이라고 하기도 한다. 한편 환빠들은 '밝달뫼'라는 어처구니없는 명칭을 원래 이름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이른바 순우리말 달의 이름이라고 도는 이름 가운데 10월이 하늘연달(개천절 때문)이라는 주장도 더 석연찮게 하는 구석이다. 일단 공식 표기는 북한의 표기인 Paektu.

 

백두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이름은 병사봉(兵使峰)이다. 북한에서는 장군봉이라고 하는데, 장군봉이라는 작명을 한 사람은 김정일. 19638월 백두산 방문시, 백두산의 최고봉 이름이 병사봉인 걸 알고 "수령님은 백두산이 낳은 장군님이신데 제일 높은 봉우리가 병사봉일 수는 없다. 장군봉으로 고치게"라고 말했단다. 그런데 백두산의 병사봉은 병사(兵士)가 아니라, 지금의 사단장~군단장 급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줄여 말하는 것이다. 북한 학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겠지만 누구 말이라고 토를 달겠는가(...)

 

 

3. 국경선

 

 

6.25 전쟁이 끝난 후 북한과 중국이 맺은 조중변계조약에 따라 현재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은 천지 한가운데를 지난다. 이 국경조약은 북한 방향으로 뻗은 백두산 천지의 54.5%를 북한령으로, 중국 방향으로 뻗은 백두산의 나머지 45.5%를 중국령으로 인정한다. 정확하게는 백두산 봉우리 16개 중 9개가 북한령, 7개가 중국령이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북한이 중국에게 백두산의 절반을 팔아넘겼다는 낭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조중변계조약의 백두산 국경은 오히려 중국측에서 양보해준 것이 맞다. 1712년에 체결된 백두산정계비는 천지 동남쪽 4km에 있었으며 즉, 조선은 백두산 남쪽만 차지하고, 천지는 청나라의 소유임을 양국이 합의했고 이를 백두산정계비의 위치로 확인한다. 실제 천지에 가보면 북한과 중국이 세워놓은 정계비가 상당수 존재한다.

 

다만 한국은 북한이, 대만은 중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조약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영토 분쟁 여지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외교부에서 백두산은 한국령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정부 발행 지도에서도 계속 자국 영토로 표시하여 백두산을 한국령으로 주장한다. 대만 역시 백두산 전체를 자국 영토로 여긴다. 물론 대만이 타이완(타이민) 지구 이외에는 특별히 나서지 않기 때문에 명목상에 불과하다. 과거 정부 발행 연감에서는 이곳이 아예 한반도가 아니라고까지 언급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타이완 지구 이외에는 언급이 없다. 애초에 저런 곳까지 신경 쓸 정도로 상황이 좋지는 않다(...) 마주한 쪽끼리는 어찌어찌 합의를 했는데, 해당 지역에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쪽(대한민국, 대만)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해당 지역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양상.

 

 

4. 자연

높은 위도와 고도로 인해 이 산의 정상부는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이다. 10월부터 5월까지가 겨울이며, 1월 평균기온 -25, 7월 평균기온 7.8로 시베리아와 비슷한 기온 분포를 보이며, 강수량은 1,500mm 정도로 많다. 199712일에는 무려 영하 51도가 기록되기도 했었다. 정상에 한정하면 한반도를 통틀어서 유일하게 한대기후에 속하는 지역이다. (다만 사실 이렇게 고산 지역에서 나타나는 한대기후는 보통 한대기후보다는 고산기후로 분류하는 게 일반적이다.)

 

백두산의 날씨는 눈, 구름, 안개, 폭우, 강풍, 혹한 등이 일반적이며, 연중 변화무쌍해서 쾌청한 날씨를 찾아보기 힘들다. 9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겨울이며, 봄이 되면 곧 여름, 가을로 이어져 버린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기후가 급변하고 구름에다 안개로 가려져 백두산의 전경을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날씨 좋은 타이밍 맞추어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보는 것은 행운이라 여길 정도다.

 

여름에도 갑자기 기온이 낮아져 방풍복을 준비해야 한다. 기온은 연평균 6~ 8, 최고기온 18~ 20도이며, 연중 눈, 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 일, 연중 강풍일수는 270일이다. 겨울 날씨가 1년 중 230일이다. 6월 초까지 눈에 덮여있는 백두산 등정은 한여름 장마철보다 6월 말에서 7월초, 8월 말에서 9월초가 적당한 시기이다.

 

백두산이라는 이름답게 정상 부분에 화산재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용결 응회암층이 있다. 눈이 없어도 어쨌든 백두? 현지 가이드들은 '백 번 올라서 두 번 천지를 보기 어렵다'고 지어졌다는 농담을 한다.

 

칼데라인 천지가 정상에 있으며, 이 천지의 수량은 20억톤이라는 양을 자랑한다. 천지의 수량이 이렇게 많다는 건 문제가 되는 게, 화산이 폭발할 때 주변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 중 하나인 화산재가 많이 발생한다.

 

오늘날 천지는 천여 년 전인 10세기 무렵 폭발로 형성된 것이다. 백두산이 천여 년 전에는 높이 3500m 정도였고 폭발하면서 오늘날 모습이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그 폭발은 천여 년 전이 아닌 훨씬 이전에 일어난 일이고 천여 년 전에는 주로 부석을 분출했다. 백두산에 안 가 본 사람들은 백두산이 후지산처럼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 형태라고 생각하지만, 백두산은 후지산과 달리 개마고원이 있고 주변에 2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막연한 상상과는 상당히 다르다.

 

4.1. 천지 괴수

 

 

천지에는 괴수가 산다는 소문이 있다. 증언에 따르면 네스호의 괴물을 닮았다는 이야기가 많으며, 황소를 닮은 머리를 가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산해경 17권에 백두산에 산다는 괴생물 이야기가 나오기는 한다.

 

 

大荒之中 有山 名曰不咸 有肅愼氏之國有蜚蛭 四翼 有蟲 獸首蛇身名曰琴蟲

대황(大荒) 가운데에 산이 있는데 이름을 불함(不咸)이라 한다. 숙신씨(肅愼氏)의 나라가 있다. 비질(蜚蛭)이 있는데 날개가 넷이다. 짐승 머리에 뱀 몸통을 한 것이 있는데 이름을 금충(琴蟲)이라 한다.

 

위의 그림이 백두산에 산다고 산해경에 나오는 괴수 금충(琴蟲). 하지만 곽박이 산해경에 단 주석에서 금충을 '뱀의 일종'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할 뿐이라, 흔히들 생각하는 '천지에 서식하는 거대생물'과는 거리가 있다. 머리 부분이 특이하게 생긴 뱀이었을 것이다.

 

백두산이 10세기 무렵에 대폭발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에도 분출한 적이 있으므로, 천지에 괴물이 산다는 소문은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는 헛소문에 불과하다. 천지에 정말로 괴물이 살았다 해도 이런 화산 폭발 때문에 이미 옛날에 죽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1960년에 산천어를 천지에 푼 이후 산천어가 번식함을 확인하였다. 천지가 물이 맑고(먹잇감이 없고) 차가워서 산천어를 풀어도 그 안에서 살기 어려우리란 평이 지배적이었으나, 결과를 보면 산천어가 살기 매우 좋은 환경인 듯. 천지에 사는 산천어는 몸집도 다른 곳에 사는 산천어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 심지어 천지에 산다는 괴물에 대한 소문이 이들 대형 산천어 때문일 거라는 주장마저 나올 정도.

 

 

5. 화산

 

 

백두산은 상당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성층 화산이다. 백두산 아래에 넓고 두껍게 퇴적되어 있는 (조면)현무암 성분의 순상 화산체 위에 납작한 원뿔대 모양의 산체가 발달해 있다. 산체 위에는 큰 규모의 칼데라(천지)가 놓여있다. 보통 휴화산이라 알려져 있지만, 아직도 뜨거운 열수 활동이 잘 관찰되고, 이따금 일어나는 화산성 지진, 그리고 1만 년 이내의 활발한 화산 분출 기록에 근거해 활화산으로 볼 수 있다.

 

동 아시아의 대표적인 판내부 화산(intraplate volcano)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산체의 규모, 역사 시대의 폭발 기록, 그리고 지질학적으로 독특한 위치 때문에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지만 중국 내에는 백두산 부석이 유명하다. 북한도 이를 아는지 헐값에 팔아서 중국 내에서 건축자재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화산의 가장 유명한 분출은 서기 94611월 초 있었던 겨울 대분출이다. 동아시아에서 있었던 화산 폭발 중 지난 2천년 간 가장 강력한 이 분출은, 과거 연대 측정 값이 약 1000년 내외로 산출되었기에, 일명 '천년 분화(the Millenium Eruption)'라고 불리게 되었다. 지속적인 고-분해능 동위 원소 측정 및 고생물학자들의 탐사로 그 범위는 점차 좁혀져 현재는 946년경의 분출이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소분화에 대한 기록은 매우 미비하나, 중국측에서는 가장 최근 1903년에도 있었으며 그 사이에도 상당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천년 분출이 알려진 것은 일본에 쌓인 상당한 양의 화산재 덕분이었다. 역산 결과 상당한 규모의 폭발이 있었어야 했다는 추측이 나와 곧 화산학계의 관심을 이끌어냈고,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을 중심으로 해당 분출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어 왔다. 천년 분출 분출물의 상당량이 동해에 퇴적되었고, 다양한 이슈 때문에 정확한 규모 산출에 어려움이 있다. 여러 추정이 있어왔는데, 화산재의 양을 넉넉히 잡은 경우 화산폭발지수 7에 해당한다. 이 규모는 서력 기원 후 기준으로 3개 정도의 화산만이 해당되는 강력한 규모이다. 여러 정황상으로 단번에 모든 분출물을 터뜨린 게 아니라, 1-2년에 걸쳐 수 차례 분화했을 것 같다는 추측도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무척 적은데, 남아있는 기록 중에는 450km나 떨어진 개성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고 하고, 1000km 떨어진 일본에서도 화산재 구름을 목격한 기록이 있다.

 

천년 분출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에는 단순히 큰 규모의 역사 시대 분출이었다는 것 뿐 아니라, 시기가 맞물려 발해 멸망과 관련 있을 거라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일본의 마치다 히로시라는 학자는 940년 경 백두산이 폭발해 발해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는 설을 주장했는데, 요사나 동시대 역사서에 백두산과 관한 언급이 없어 분화와 멸망의 인과 관계는 인정받지 못했다. 또 바람의 방향에 따라 중국 쪽에는 거의 영향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실제로 백두산 주변에서는 전조(前兆)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26월 중국 동북부에서는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했다. 여기에다 2003년에는 균열·붕괴·산사태가 이어졌다. 2004년 계곡 숲에서는 원인 모르게 말라죽은 나무들이 관찰됐다. 지하 틈새를 통해 지표로 방출된 유독가스 탓으로 추정됐다.

 

 

영국과 스위스, 중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미국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이 2017년 백두산 화산 폭발 시기를 정확하게 측정해 발표했다. AD 94610월에서 12월 사이. 연구팀은 백두산 화산 폭발 당시 뜨거운 용암에 뒤덮여 죽은 낙엽송의 화석을 이용해 백두산 화산 폭발 시기를 산출했다. 백두산 천지에서 북서쪽으로 24km 떨어진 중국 지역에서 발견된 이 나무의 화석은 화산 폭발 당시 수령이 264년 된 나무였다. 나무 화석에 남아 있는 나이테와 방사선 탄소 동위 원소 측정을 동원해 분석한 결과다. 특히 백두산 화산 폭발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이 나무 화석에서 발견됐다.

 

낙엽송 화석에서 775년에 만들어진 나이테를 찾아낸 연구팀은 그 나이테를 기준으로 이 나무에 몇 개의 나이테가 추가로 더 만들어졌는지를 산출했다. 결과적으로 775년부터 백두산 화산 폭발로 쇄설물에 덮여 죽게 될 때까지 몇 년을 더 살았는지를 산출한 것이다. 산출 결과 이 낙엽송은 946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죽은 것으로 확인됐다. 946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백두산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94610월에서 12월 사이에 백두산 화산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결론지었다. 화산 폭발 시기를 이번처럼 오차 범위 3개월 이내로 정확하게 추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실제로 백두산 화산 폭발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그린란드의 빙하코어(ice core)에서 화산 분출물인 황이 유난히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당시 강력한 백두산 화산 폭발로 방출된 황이 전 세계로 퍼졌다는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지구 기온 변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던 백두산 대폭발의 흔적을 빙하에서 찾은 것이다.

 

연구팀은 또 우리 역사서인 고려사에서 946년 바로 그 해에 개성 하늘에서 커다란 천둥소리[천고명(天鼓鳴)]가 들렸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연구팀은 이것이 백두산 화산 폭발로 인한 것으로 추정했다. 개성과 백두산은 약 470km 떨어져 있지만 탐보라 화산 폭발 당시 이 거리보다 더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도 화산 구름으로 뒤덮였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백두산 화산 폭발이 충분히 개성까지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연구팀은 일본 나라 지역의 사찰인 고후쿠지(興福寺)의 기록에서도 증거를 찾아냈다. 고후쿠지의 기록에는 946113'하얀 재가 눈처럼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이 바로 백두산의 분화로 화산재가 떨어진 것을 기록한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연구팀이 백두산 화산 폭발을 946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로 추정한 것이 기존의 역사 기록과도 일치한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 백두산이 분출할 경우 일본 나라 현까지 도착하는 데는 16시간이면 충분하므로, 정확한 화산 폭발 시간은 946112일 저녁 무렵일 확률이 높다.

 

94727일에도 일본 교토에 하늘이 요동치는 소리가 울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일본 내의 자연현상인지 백두산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다. 플리니식 분화 소음이 교토에까지 들릴 정도였다면 필시 한반도에서도 들렸을 테지만 교차 기록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일본 내의 다른 현상으로 추정된다. 만에 하나 백두산에서 난 소리라면 앞서 11월 경 시작한 분화가 이때까지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5.2. 오늘날 보이는 활동

 

 

20세기 말엽까지 중국의 무관심과 한국의 정세 등이 맞물려 백두산은 화산이라는 인식조차 희미했다. 사실 천 년 전 분출이 제대로 알려진 게 20세기 후반이다. 바야흐로 사람들이 백두산의 활동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건 2000년대에 이르러 지진계가 하나둘씩 설치되고, 2006년 지진이 극도로 많아진 때 즈음이다.

 

백두산은 여러 지점에서 열수 활동을 보여주고 있고, 언급한 대로 지진 활동도 있어 완전히 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 폭발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2000년대 들어 화산 활동의 세기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지구 물리 측정의 한계와 모니터링 시설이 아직 미비하고 갓 출범한 단계인지라 백두산의 지하 구조에 대한 많은 추측은 말 그대로 추측일 뿐, 제대로 된 것은 많지 않아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아래는 여러 관측 시도 결과들에 대한 내용이다.

 

천지 주변의 열 분포를 보면 지열이 지속 상승하고 있으며, 일본의 위성 관측상으로는 천지 주변 지면이 예전보다 2cm 정도 부푼 상태라고 한다. 지표로 나오는 열수의 성분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관측 결과가 있다. 지진 횟수가 일정하지 않으며, 이따금 지진 발생 밀도가 급증하던 때가 있었다. 2010년에는 뱀떼가 출몰했으나 화산의 징조라기보단 대량 방생으로 인한 출몰이라는 견해가 좀 더 우세했고, 실제로 화산 활동에 대한 징조로 보기는 인과 관계가 매우 부족했다. 또한 대북인권단체는 201012월 김정일이 함경북도 무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2016년에 백두산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으니 백두산 인근 주택들은 철거하고, 철광 생산을 서두르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제대로 된 근거가 없기에 화산이 언제 터질 지 점치는 것은 현재 불가능하다. 일각에서는 급한 주장, 예컨대 100년 뒤라는 주장도 하지만, 역시 제대로 된 근거는 없고 오히려 이슈를 만들거나 혼란을 가중하는 효과밖에 없다. 학술적 접근은 모니터링 시설의 확충과 과거 분출 기록에 대한 명확한 조사, 백두산 형성의 원리와 활동 양상에 대한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재 중국 측에서는 백두산에 대한 연구를 비공개지만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20179, 6차 핵실험의 여파인지 핵실험장 주변의 땅이 요동치고 있다. 예상보다 상당한 규모의 실험이었기에 백두산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5.3. 백두산이 천년 분출 규모에 이르는 폭발을 한다면?

 

 

설사 백두산이 분출을 재개한다 할지라도 그 규모가 어떨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아래 내용은 당연히 명확한 추측은 아니며, 그럴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것이므로, 참고 정도만 하자.

 

화산이 폭발할 경우 경제 기반이 취약한 북한 지역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공산이 큰데, 규모 7 정도의 지진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건물들은 부실공사가 대부분이고 내진설계를 안했기에 다 붕괴될것이다. 부실공사현장두번째 또한 백두산에서 머지 않은 곳에 있는 북한의 핵 시설도 완전히 초토화될 것이기에 여러 모로 총체적 난국이다. 폭발시 엄청난 화산재가 생기고, 20억톤에 달하는 천지의 물 때문에 다량의 화산쇄설류 발생 예측은 거의 확실시된다. 이 때문에 폭발시에는 혜산시, 대홍단군, 회령시 등 백두산 천지 혹은 그 기슭에서 발원하는 압록강, 두만강, 쑹화강 유역이 화쇄류로 쑥대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폭발과 함께 증발된 천지의 담수는 응결하여 다시 비로 내리게 되는데, 예상되는 양이 시간당 800mm라고... 집이 무너질 정도라고 한다. 시간당 200mm여도 엄청난 강우인 것을 고려하면(...)

 

분화로 발생한 화산재는 북한뿐만 아니라 동해를 건너 울릉도, 독도, 일본까지 영향을 주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동아시아의 항공편 상당수가 결항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 동 아시아 항공편 결항으로 인한 예상 피해액이 한국의 경우에만 11조 원이니, 경제 규모가 더 큰 일본은 그 피해가 더 커질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화산재의 진행 방향 정면에 있는 일본의 경우 전자 제품, 반도체 등 정밀한 기술력을 요구하는 일부 공장들도 미세한 화산재 입자의 우려로 가동을 일시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 이 최악의 시나리오는 특히 겨울일 때 발생하는데, 겨울에는 시베리아에서 북서풍과 편서풍이 불어오기 때문에 이 바람을 타고 화산재가 일본으로 날아가서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겨울의 경우 화산쇄설류(라하르)에 천지의 물 뿐만 아니라 백두산과 개마고원에 쌓이는 어마어마한 눈의 양까지 같이 계산해야 한다. 다만 남한 땅에는 앞서 말한 북서풍과 편서풍의 영향으로 독도, 울릉도에는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남한 본토에는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짧은 시기에 기압이 극단적 서고, 동저를 형성하면 화산재가 한국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지만, 길게 보면 편서풍의 영향으로 서쪽 항로는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편서풍의 영향을 많이 받더라도 이 때 또한 입자가 4mm 정도밖에 안 되는 화산재, 그리고 크기가 작은 분자로 이루어진 화산재가 퍼지면서 한국 대기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특히, SO2 등의 유독성 기체는 한국 대기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퍄틀라이외퀴틀 화산 분화와 다른 점은 아이슬란드는 65° 정도의, 백두산은 42° 정도의 위도에 있다는 점이다. 편서풍과 극동풍은 65° 즈음에서 만나기 때문에 이 즈음에 있는 아이슬란드 화산은 현지 기압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이와 달리 편서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백두산은 폭발한다 해도 바람이 동쪽으로 불기 때문에 화산재가 한국이나 중국 쪽으로 가지 않고 태평양 쪽, 즉 일본 쪽으로 갈 것이다. 이때 일본은 아마 아이슬란드 화산보다 천 배는 더 센 폭발의 화산재를 다 뒤집어쓸 것이다.

 

계절에 따라서도 여름에는 동남풍이, 겨울에는 북서풍이 부는 남한은 화산재의 영향을 정통으로 맞지 않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화산재가 북서풍이 부는 겨울에는 일본으로, 남동풍이 부는 여름에는 중국으로날아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우리만 아니면 돼식으로 생각해도 중국과 일본이 이런저런 산업이나 환경에 큰 타격을 받으면 한국 경제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북한도 차츰 이 백두산 화산 폭발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남측과 공동연구를 제의하는 등의 시도를 한 적도 있다. 일본 쪽에도 의견을 구했는데, 인터뷰 상대였던 일본 지질학자는 북한이 상당히 다급하고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을 남겼다. ... 화산이 터지면 그 순간 정권 붕괴는 불 보듯 뻔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북한의 핵 실험으로 마그마 층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졌다는 얘기도 있으며, 핵 실험이 폭발을 유발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 이렇게 되면 북한은 100% 망하고, 환태평양 지진대 끝자락에 있는 한반도 동부에서 화산이 분출하여 연쇄 반응으로 주변 다른 불의 고리 축인 대만과 일본, 사할린 섬, 캄차카 반도, 필리핀, 인도네시아,반대쪽 미 서부와 멕시코 북부에까지 연쇄 작용이 일어난다. 참고로 대만 양명산은 활화산으로, 타이베이 근교에 있는 무서운 화산이다. 여기가 터지면 일본에서 후지산이 터진 것과 동급 효과가 나타난다. 화산재 및 연무는 최소 오키나와와 홍콩, 최대 호주 북부까지 날아갈 것으로 추정한다.

 

게다가 제주도의 한라산과 울릉도 및 독도의 해저 화산, 추가령 구조곡에 속한 휴화산들과 양산단층, 신갈단층 등 단층지대에서도 연쇄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1668년 백두산 분화를 전후해서 한반도에서 큰 지진이 많이 일어났다. 그 중 1643년 울산에서 일어난 지진의 규모는 추정진도 VIII-IX로 추측될 정도로 큰 지진이었다. 1643년 울산 대지진 문서를 참조하자.

 

1000년 전 있었던 백두산 폭발은 일본까지 날아가 화산재를 5cm나 쌓아둔 전례가 있다. 이 것이 얼마나 강한 위력인지 감이 잘 안 온다면, 봄철 황사가 부는 시기를 떠올려 보자. 황사철에는 온 하늘이 뿌옇지만 쌓이는 양은 겨우 0.1mm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화산재를 바다 건너 일본까지 넘어가서 5cm나 쌓았다는 것이니 얼마나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는지 알 수 있다.

 

참고로 1000년 전, 백두산 분화보다 화산 지수가 2단계나 낮은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기록한 에너지 방출량이 350Mt으로 차르 봄바의 7배나 되는데 백두산의 에너지 방출량은 이 수치의 1000배도 가능하단 견해가 나오고 있다.

 

 

왠지 의심스럽게도 중국은 2005년부터 백두산에 관한 관측 자료를 비공개로 돌렸다고 한다.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다면 2010.11.27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분을 참고해 보자.

 

백두산이 폭발한 946년 경 당시 화산 폭발 지수(vei)7 정도로 1816년 탐보라 산의 폭발에 비하면 살짝 약했으나, 그래도 분출물의 양은 100여 세제곱km에 달했고, 이는 20104월 있었던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분출물의 약 1,000배에 달한다.

 

여담으로 백두산 폭발 주장 때문에 1998년에 KBS 일요 스페셜 특집으로 참고 자료를 위해 규슈의 화산 분화 현장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당시 분화로 인해 굴러떨어진 돌이 숲에 있는 도로 한복판에 떨어진 바람에 치우기가 여의치 않아 녹인(...) 일이 나온다. 어쨌거나 이 방송에서 백두산 분화 당시 일본에 쌓였던 화산재도 방송되었다.

 

20113월 북한이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며 백두산 화산 관련 연구를 공동 진행하자고 제의를 했다. 남한은 민간 전문가를 파견하여 회의를 가졌으며, 해당 회의에서 북한은 일본 지진을 언급하며 백두산의 위험을 환기, 연구에 협조를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은 천안함 피격사건부터 연평도 사건까지 쌓인 게 많은 상황이었으므로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고, 북한도 4월부터 현대 아산의 금강산 사업권을 날려 버리며 심술을 부리기 시작해 도루묵이 되었다.

 

2011년 국내에서 백두산 폭발시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예측히고 모의실험한 결과가 공개되었는데, 동북아시아의 항공로가 완전히 마비되어 버린다고 한다.

 

20111124일 북한이 지진 화산 피해 방지 및 구조법을 제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2년의 연구에 따르면 봄, 가을에는 남한에도 화산재가 유입될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휴화산이었는데 지금은 엄연한 활화산이다. 천지 밑에 마그마방이 서너 개 발견됐기 때문이다.

 

20164월 국제 연구진에 의해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 서울 면적의 2배나 되는 마그마가 백두산 아래 5-10km 지점에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 연구는 북한 학자들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서방 학자들과의 공동 연구로 진행되었는데, 상기했다시피 북한이 서방 학자들까지 끌여들이는 것은 백두산에 크든 작든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 여러 화산들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어, 이제는 지진계를 통해 화산 폭발로부터 적게는 몇 달, 많게는 몇 년 전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백두산은 제대로 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불분명한 상태다.

 

201612, 북한과 서방 공동 연구팀의 두 번째 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이 발표가 흠좀무한 것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백두산 폭발은 유사 이래 최대고 1000년 전에 분화로 인한 황의 분출량은 1815년 탐보라 화산 폭발 당시 분출량(28메가톤)보다 훨씬 많은 45메가톤이다.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이라는 것이 된다(...)

 

6. 관광

 

 

한국은 옛날에는 제도부터 국외여행 자체가 어려웠던 시절인 데다, 냉전 체제로 인해 북한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북한과 함께 적국으로 인식하던 중국을 거쳐 백두산에 가는 것도 이상에 가까운 꿈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국외 여행이 자유로이 되고, 19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과 민간 교류를 시작하면서 일부 민간 단체들을 중심으로 제한된 백두산 관광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1990년대 초반 냉전이 완전히 끝나고 한국과 중국이 서로 수교하면서 일반인들도 중국을 통해 백두산 관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 제작된 칠성사이다 CF에서 백두산 비룡 폭포, 천지 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민들이 백두산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며 백두산 관광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백두산 산행 코스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데, 걸어서 올라가는 서파 코스와 자동차를 타고 올라가는 북파 코스로 나눈다. 서파 코스는 대체로 완만하여 지프 차에서 내려 청석봉 아래 37호 경계비가 있는 천지에 40여분이면 오를 수 있으며, 천지에서 청석봉까지 오르는 코스와 북파까지 종주하는 코스가 있다. 북파는 관광 코스로 정상 부근 기상대까지 자동차로 오른 후 5분이면 천문봉에 올라 천지를 내려다보는 관광 코스로서, 비룡 폭포 좌우로 한정된 부분만 오르는 산행 코스다. 관광으로 간다면 북파코스, 산행으로 간다면 서파 코스를 권한다. 서파 코스에는 서파 37호 조중 경계비와 그 주변 경치, 경계선 등 볼거리가 많은데, 특히 조중 경계비 언저리 북한령 100m 이내를 직접 돌아다닐 수 있어서 서파 코스를 통해 등산을 하면 북한 양강도 삼지연 땅을(이북5도에서는 함경남도 혜산군 보천면) 밟을 수 있다! , 한국 국민으로서 위험하지 않고, 합법으로 북한 땅을 밟을 수 있는 방도. 대개 백두산 여행 상품들은 북한 접경 지대 관광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백두산 관광은 북한을 상당히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백두산은 관광 지역이기 이전에 엄연히 중국과 북한의 국경 지대이다. 방문 빈도가 높은 천지 구역은 한국의 명목상 영토에 속하나 북한은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조중 변계 조약으로 천지의 반절은 중국령으로 되어 있다. 그렇기에 갈 수 있다는 역설. 한국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실질적 영토인 '천지 서북부와 그쪽에 붙은 땅'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민이 중국을 통해 관광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국가 보안법에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라고 되어 있지만, 북한 실효지배 지역을 거쳐서 등산을 하더라도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기소한 적은 없다.

 

천지 구역은 북한과 국경으로 정확히 절반으로 갈리기 때문에, 정상 및 천지 부분에서 지정된 경로 및 구역 외에 함부로 이탈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정상 부근에 파견 나간 중국 공안들의 통제도 꽤 심하다. 한국인의 경우 백두산 정상 및 천지에서 태극기를 펼치거나 애국가나 아리랑 등의 민족적 색체가 짙은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으며, 관광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사진 촬영조차도 상당한 통제를 받는데, 중국 당국으로부터 사전에 정식으로 촬영허가를 받은 특수한 경우 말고는 일반적으로 백두산 천지 및 정상의 풍경을 담는 사진 촬영은 인물을 포함하는 기념사진 촬영의 범주에서만 허락되고 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이경규가 간다에서 이경규가 남북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한라산 백록담에 퍼온 물을 백두산 천지에 담기 위해 백두산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아쉽게도 산행 장면은 방송되지 못하고, 천지에 올라가 백록담 물을 천지에 쏟아 부은 장면만 방송되었다. 이후 12일에서 예능 프로그램 최초로 백두산 촬영허가를 따냈는데, 이를 준비하기 위해 6개월 이상을 소비해야 했을 정도다. KBS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뢰성 있는 공영 방송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걸린 거 보면, 중국 당국에서 상당히 까다롭게 심사를 하는 듯하다. 아무래도 중국 입장에서는 국경지대로서 보안상 예민하게 관리해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고, 백두산 영토 문제와 관련하여 발생할 주변국과의 역사인식 충돌 및 마찰 등을 사전에 차단하려고 하는 느낌도 강하다. 하지만 개인 관광객의 경우 중국 북부 현지인과 외관상 별 차이가 없다 보니 그냥 넘어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중국 땅을 거쳐 가는 경우 이런 불편함과 눈칫밥을 감수해야 하다보니, 2000년대 초중반 북한과의 교류량이 많았을 때는 북한을 통해 백두산을 가보자는 목소리들도 많이 나왔다. 실제로도 정부에서 북한과 함께 금강산 관광에 이어서 북한행 항공편을 통한 백두산 관광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실무적인 문제 및 수익성 검토 등으로 인해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인해 금강산 관광조차 안전 보장이 안되어 중단돼버린 현실 때문에, 중국을 거치지 않고 북한을 통한 백두산 관광은 실현 가능성은 커녕 거론 자체가 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중국 정부가 한국인의 백두산 관광 자체를 금지시킬 가능성도 약소하나마 존재한다. 중국이 북한과 맺은 계약을 거론하며 실질적인 지배 세력임을 강조할 가능성이 크기에, 여기에 대한 반론도 준비해야 할 중요성이 커진다. 한국이야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나 국제적으로는 북한 역시 하나의 국가로 간주하므로, 실질적으로 한국이 대응은 거의 없다. 게다가 통일 후에도 중국-러시아 모두 통일의 전제 조건으로 현 북한-중국의 국경선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조건을 내걸 것이므로, 국경의 변동 사항은 거의 없을 듯하다.

 

특히 백두산 서파 코스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통일부의 허락 없이 한국인들이 북한이 실효지배하는 이북 땅을 밟을 수 있게끔 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라고 하는데, 등산객들이 조중경계비인 서파 37호 근방의 몇백 미터 북한 땅을 거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것이 가능한 이유는 조중 국경지대의 특성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의 헌혈 기준에서 북한 지역 중 유일하게 여행시에도 헌혈이 가능한 지역으로 되어있다.

 

언젠가 통일이 되어서 중국 땅이 아닌 한반도 땅을 통해 백두산 천지를 오르는 날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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