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530일, 이광철의 기록⑨] 조국사태 첫 번째

온리하프 2025. 6. 2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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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의 시작...

'조국 청문회' 앞두고 30여곳 압수수색 후 벌어진 일

 

2019년 8월 27일 오후 경남 양산시 부산대병원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검찰이 상자를 옮기고 있다.

 

누구나 살면서 잊히지 않는 날이 있을 것이다. 내게는 2019년 8월 27일이 그렇다. 이날 검찰은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의혹 관련하여 서울대 등 3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조국 사태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나는 그때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었다.

8월 9일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되자 마치 여름철 홍수처럼 조국 일가 의혹들이 쏟아졌다. 같은 달 20일에는 조국과 부인 정경심 교수가 '부동산 위장매매 의혹'으로 고발까지 당했다. 같은 달 26일 국회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9월 2~3일 양일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지만, 인사청문회를 앞둔 통과의례로 생각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성실하게 해명하면 여론이 조국 법무부장관을 수긍할 것으로 기대하고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그런데 국회 인사청문회 합의가 있은 그 다음날인 27일 그야말로 날벼락같은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었던 것이다. 이날 이후 나의 청와대 공직 생활은 몸과 마음 모두 너덜너덜한 누더기가 되었다.

도대체 검찰이 왜 그런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조국은 직전 민정수석이었다. 윤석열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시절 '적폐 수사'를 지지, 지원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는 서울중앙지검 4차장실 신설도 그 차원이었다. 민정수석으로서 조국은 직접수사 총량을 줄이고자 애썼다. 조국도 고심해서 이를 받아들여 주었다는 의미다.

또한 윤석열이 검찰총장이 될 때 조국은 대통령을 대신한 면접자였다. 2017년 이후 조국과 윤석열의 관계로 보나, 대통령의 인사권에 검찰이 수사를 통해 도전한 것이 초유의 일이라는 점으로 보나 이 수사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조국 또는 조국 가족이 받고 있는 혐의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기다리지 못하고 강제수사를 해야 할 정도로 위중·급박한 것도 아니었다.

 

모두 허위로 드러난 조국 사모펀드 의혹

 

조국 민정수석(오른쪽 두번째)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오른쪽 세번째)이2019년 5월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나란히 참석하고 있다.

 

 

이날 이후 매일 아침 열리는 민정수석실 비서관 회의는 늘 서늘한 긴장감으로 팽팽했다. 매번 모두의 눈이 박형철을 향했다. 윤석열이 국정원 댓글수사팀장을 할 때 박형철은 부팀장이었다. 윤석열이 박근혜 정권에 찍혀 좌천되었을 때 댓글 수사 및 공소유지를 맡았다. 그 이력으로 문재인 정부 초대 반부패비서관에 임명되었다.

다들 박형철에게 윤석열 총장이 왜 저러는 것이냐고 물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조국 수사 과정에서 문제된 사모펀드의 실질적인 주인이 조국이라고 했다. 조국이 민정수석 지위를 이용하여 이 사모펀드를 키웠다고 했다(시중에는 윤석열 검찰이 이 사모펀드가 조국의 대권프로젝트의 물적토대로 보았다는 말도 돌았다).

내가 박형철에게 말했다. "수사에서 뭐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우리가 지난 2년간 본 조국이 민정수석 지위 이용하여 사적으로 사모펀드를 살찌울 사람은 아니지 않나요?" 박형철은 두고 보라고 했다. 윤석열이 사모펀드 전문가라면서 검찰 수사가 맞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회의 참가자가 말했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도전하는 이 수사의 결정적 이유가 조국이 사모펀드의 주인이라는 것인데, 그 가설이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검찰은 이 수사에 무엇을 걸 것인가? 그 가설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적어도 윤석열은 영화 <타짜>의 대사처럼 손모가지 정도는 내놓는 것이 공평할 것이었다. 그러나 박형철은 자신만만했다. "수석님(조국)을 말려야 한다"고 했다. 법무부장관 후보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국이 상처받을 것이라는 교활한 걱정을 곁들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장면을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이 때의 윤석열과 박형철이 자신만만해 한 사모펀드 가설은 모두 허위로 판명났다. 심지어 그 사모펀드는 부인 정경심의 것도 아님이 밝혀졌다. 사모펀드 가설을 증명하지 못한 윤석열 검찰은 손모가지를 내놓는 대신에 유재수 사건으로 조국을 잡고자 했고, 이도 모자라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으로 문재인 정부 전체를 포획하겠다고 덤볐다. 이 두 사건에서 박형철은 윤석열 검찰에게 피의자 신세로 전락하고 이 두 건으로 기소까지 되었다. "석열이 형이 사모펀드 전문가"라면서 "수석님이 법무부장관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자신만만해 하던 박형철도 윤석열 검찰의 농간이 자신의 목을 겨누게 될 줄을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세상사 참 얄궂다.

 

"그 XX새끼가 일국의 검찰총장을 뭘로 보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2019년 12월 1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당시 조국 수사가 사모펀드 가설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점은 박상기 당시 법무부장관의 언론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박상기 전 장관은 2020년 7월 2일 <뉴스타파>와 한 인터뷰에서 압수수색이 있던 8월 27일 당일에 윤석열을 만났는데, 윤석열이 입시비리 등 다른 혐의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도 하지 않고 사모펀드 얘기만 했다고 했다. 이때 윤석열은 "내가 사모펀드 관련된 수사를 많이 해 봐서 잘 안다", "어떻게 민정수석이 사기꾼들이나 하는 사모펀드에 돈을 댈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국이 법무부장관 후보자 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고 박상기 장관은 증언했다.

검찰의 수사로 청와대는 그야말로 긴박하게 돌아갔다. 수사에 간섭·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한 문재인 정부가 검찰 수사를 못하게 할 수 없었다. 또 검찰 수사를 못하게 할 수단도 없었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기밀을 언론에 유출하는 일은 달랐다. 수사기밀의 유출은 그 자체로 불법이기도 하거니와 유출 내용이 거짓이거나 단편적 사실에 소설같은 추측들을 덕지덕지 붙인 것들이어서 방관할 수 없는 문제였다. 윤석열 검찰에 차분하고 절제된 수사를 주문하는 여론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윤석열 검찰은 마이동풍이었다.

매일매일 기사가 쏟아졌다. 수사담당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내용들인 데다가, 단편적이며 악의적으로 비틀어 쓰여진 것들이었다. 청와대에서 강기정 당시 정무수석이 나섰다. 2019년 8월 30일 강 수석은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수사 과정에서 피의 사실을 흘린 경우 이것은 범죄"라며 "검찰이 흘렸는지, 아니면 취재하는 기자가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기사를 작성했는지는 저희들은 알 바가 없는데 윤석열 총장이라면 이 사실은 반드시 수사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아침 청와대 내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민정수석과 함께 회의장으로 가고 있는데, 박형철 비서관이 다급하게 뛰어 왔다. 방금 전 윤석열과 통화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 윤석열의 목소리를 흉내내다시피 그의 말을 전했다.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한 것은 이 두 마디다.

"그 XX새끼가 일국의 검찰총장을 뭘로 보고 수사를 하라 마라야. X새끼, 죽여버린다."

옆에서 그 성대모사급 전언을 듣고 있자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대통령을 보필하는 정무수석이 수사기밀을 누설하지 말고 적법한 수사를 해야 한다고 한 것이 잘못도 아니거니와 백보를 양보하여 윤석열이 수사개입이라고 느꼈다면, 대검 차장 등 계선을 통하여 청와대에 절제되게 의견을 개진하면 되는 일이다. 쌍욕을 섞어 죽여버린다는 막말을 하면서 이를 민정수석을 통해 청와대에 전파하게 하는 그의 행태를 보면서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윤석열의 이 "죽여버린다"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2020년 10월 8일 '라임 사태'의 전주로 알려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난데없이 법정에서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로비 목적으로 5만 원짜리 현금 다발 5000만 원을 전달했다고 증언한 것이다. 강기정 수석은 강력 부인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8일 후인 10월 16일 김봉현은 변호인을 통해 공개한 입장문에서 "전관 변호사가 '여당 정치인들과 청와대 강기정 수석을 잡아주면 윤석열 보고 후 보석으로 재판을 받게 해주겠다'고 말했다"면서 협조하지 않으면 기소 금액을 키워서 중형을 구형하겠다는 협박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당시 보도를 통해 일련의 일들을 접하면서 나는 정말이지 소름이 돋는 오싹함을 느꼈다. 윤석열이 강기정 수석을 "죽여버리겠다"고 한 말이 이렇게 작동되는 건가 싶었다.

 

결국 파행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2019년 9월 2~3일로 예정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파행되었다. 조국 이슈를 끌고 가기 위한 자유한국당의 정략이었다. 한편 9월 1일 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은 조국 후보자 딸의 생활기록부를 입수하여 분석했다면서 특혜 인턴 활동이 의심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생활기록부는 고도의 개인정보다. 또한 주광덕이 이를 입수한 경위도 불투명했다. 주광덕이 전직 검사출신의 야당 국회의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출처나 입수경로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주광덕은 이 일로 고발되었는데, 검찰은 2021년 10월 20일 불기소처분을 했다. 남의 생활기록부를 입수해서 퍼뜨리는 것을 불기소하면서, 조국 가족과 관련된 표창장은 그리도 집요하게 파헤치는 검찰의 잣대는 자(尺)가 아니라, 엿가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