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530일, 이광철의 기록⑤] 문재인 정부 '검찰과거사' 정리_두 번째 이야기

온리하프 2025. 6. 2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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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이 된 검찰과거사,

용두사미가 된 사건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지난 기사에서 언급한 대로 대검에 설치된 검찰과거사위원회(검찰과거사) 진상조사단은 체계의 결여, 형사사건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들의 부재, 변호사·교수 단원 미(未)상근 등이 어우러져 결과적으로 검사 단원들이 진상조사 활동을 주도하게 되었다. 이규원 검사 정도를 제외하면 검사 단원들은 검찰과거사를 뭉개는 방향으로 조사 활동을 전개했다. 여기에 재심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A의 이중적이고 분별없는 처신은 진상조사단과 나아가 검찰과거사 전체를 휘청거리게 했다.

A는 재심 사건으로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진상조사단에 합류했다. 그런데 진상조사 대상 사건 가운데 당시 그가 진행 중이던 재심 사건이 포함되어 있었다. 삼례나라슈퍼 사건과 낙동강변살인 사건이 그것이다. 그는 재심 추진 사건들을 소재로 스토리펀딩(삼례사건 : 2016년 8월~11월, 낙동강 사건: 2017년 8월~11월)을 진행했다. 위 두 건은 진상조사단 5팀에 배당되어 있었다.

 

A는 5팀의 조사에 도움을 주겠다면서 조사의 내용과 방향에 개입하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5팀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사건을 부실하게 조사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5팀은 반발했다. 조사 대상 사건의 이해관계자인 그가 진상조사단원의 지위를 이용해 조사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이유였다. A의 스토리펀딩은 5팀의 경계심을 강화시켰다.

 

불신과 반목을 촉발시킨 언론 보도

 

나는 청와대 근무 이전부터 A와 친분이 있었다. 그는 메일을 보내고 내가 살던 동네에까지 찾아와 '검찰과거사를 검사들에게 맡겨 두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그의 지적은 진상조사단의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고, 형사변론의 경험이 없는 변호사들이 진상조사단에 참여함으로써 발생하는 필연적 문제를 확인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앞선 기사에서 언급한 바 있던 총괄팀 구성을 조국 민정수석에게 보고했고, 총괄팀 구성이 관철됐다.

그런데 A는 이 문제를 언론으로까지 가져갔다. KBS가 2018년 8월 29일 보도한 <[단독/앵커&리포트] 억울한 옥살이 5년, 진범 알고도 '쉬쉬'…"검사 책임 없다">에 진상조사단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이 방송보도는 타당한 지적이었다. 그렇지만, 이 보도는 결과적으로 검찰과거사 작업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외적으로 검찰과거사를 정치적 논란의 한가운데로 빠뜨렸고, 내적으로 진상조사단 내부의 불신과 반목을 촉발시켰다. A가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안을 마치 내부고발자인 것처럼 언론을 이용한 것에 대해 5팀은 격하게 반발했다.

언론을 통한 내부 단원의 진상조사단 공격은 공적 조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까지 발칵 뒤집혔지만 어떤 사후조치도 없이 유야무야되었다. 모두 진상조사단에 아무 체계가 없어서 발생한 문제들이었다. 진상조사단에 단장 등 지휘체계가 있었더라면, 5팀의 부실한 조사는 지휘 감독을 통해 시정될 수 있었다.

 

그 이후 진상조사단 내부는 그야말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5팀이 맡고 있던 3건은 모두 용두사미가 되었다. A가 직격한 삼례나라슈퍼 사건은 끝이 흐지부지되어버렸고, 낙동강변 살인 사건은 재배당되었다. 김학의 사건의 경우 5팀이 여성단체가 제출한 자료의 편철을 누락하여 피해자 및 여성단체의 불신을 받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결국 김학의 사건도 재배당되었다.

 

'삼례 나라슈퍼 3인조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했다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3명과 유족 등이 검찰과거사위원회의 진상조사 결과와 당시 사건을 맡았던 최성우 전 검사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항의하며 2018년 12월 21일 오전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상조사단에 시비를 건 검사들

 

김학의 사건이 재배당되자 김학의 사건 진상조사단이 다시 구성되었다. 이규원 검사가 김학의 사건 진상조사단에 합류한 것이 이 때다. A도 김학의 사건 진상조사단에 합류했다. 그러다가 그는 2019년 초 진상조사단을 떠났다. 이후 김학의 사건 조사는 급물살을 탔다. 윤중천은 김학의에게 수천만원을 주었다고 진술했다. 윤석열이 원주 별장에 다녀간 것도 같다는 윤중천의 진술도 이 때 나왔다(이는 2019년 10월 11일자 <한겨레> 오보의 시발점이었다).

김학의 사건은 장자연 사건, 버닝썬 사건과 함께 국민적 관심사로 급부상했다. 김학의는 금요일 심야 해외 도피(2019년 3월 22일 밤 10시)를 시도하다 차규근 당시 법무부 출입국본부장의 알람 설정 덕분에 발각이 되었다. 여론은 분노했고, 결국 김학의는 구속되었다.

김학의의 구속은 가뜩이나 검찰과거사 정리작업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검찰 내부를 더욱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나 김근태 고문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같이 당시 수사에 참여한 검사들이 검찰조직에 남아 있지 않은 사건들은 누구도 진상조사에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러나 남산 3억원 사건(이원석 검사, 신한금융이 MB에게 당선 축하금으로 3억원을 건넨 사건 )이나 용산 참사 사건(조은석 검사) 등과 같이 당시 수사에 참여한 검사들이 조직에 남아 있는 사건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들 검사들은 공공연히 진상조사단에 대하여 시비했다. 검찰과거사 작업의 법적 근거 문제, 외부단원의 기록 열람 문제가 주된 시비 대상이었다. 심지어 용산 참사 사건의 수사검사들은 진상조사단 조사 행위의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해 진상조사단이 조사활동을 중단하겠다고 했고, 이원석 검사의 경우 남산 3억 원 사건 조사를 담당하는 후배 검사단원에게 압박성 전화를 걸어 언론에 이 사실이 보도되는 일도 있었다.

이뿐 아니라 김학의에 대한 출국금지가 위법이라는 취지의 지적이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심지어 <한겨레>을 통해서도 제기됐다. 여기에 A가 가세하고 나섰다. 그 대표적인 기사가 그의 페이스북 글을 기사화한 2019년 5월 19일자 제하의 <조선일보> 보도다. 그가 페북을 통해 검찰과거사를 비난하면 보수언론이 이를 기사화하는 패턴이 계속 반복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까지 찾아와 검찰과거사를 검사에게 맡겨서는 안된다고 했던 이가 나중에 김학의 사건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검찰과거사가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다면서 나를 그 배후의 음험한 기획자로 몰아가는 모습을 목도하자니 목불인견이 따로 없었다.

 

한편, 검찰과거사 사건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데 나와 이규원 검사의 관계가 빌미가 된 측면이 크다. 2017년 가을께 이규원 검사가 내게 검찰과거사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을 때 나는 만류했다. 나중에 법무부로부터 받은 검찰과거사 진상조사단 명단에 이 검사가 들어 있길래 경위를 물어봤다. 당시 근무하던 서울서부지검 검사장이 문무일 총장에게 이야기해 그 덕분에 검찰과거사 진상조사단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했다.

수사절차 과정에서 문무일 총장은 이를 부인했다. 이 뿐만 아니었다. 법정에 나와 검찰총장 재임 중 이뤄진 김학의 출국금지가 위법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서 김학의 긴급출국금지보다 더한 노건평 긴급출국금지를 결재했었다. 일국의 검찰총장을 지낸 분의 행태가 환멸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