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530일, 이광철의 기록③] 권력기관 개혁, 국정원 IO와 대공수사권 폐지

온리하프 2025. 6. 2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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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부의 숙명과 국정원 개혁...

12.3 내란 때 빛난 성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모습

 

 

문재인 정부 권력기관 개혁 작업은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 국내 정보의 전격적인 폐지로부터 그 서막을 열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6월 1일 신임 서훈 원장의 취임 첫 지시를 통해 국내 정보 담당관 제도(이른바 IO : Intelligence Officer)를 전격적으로 폐지했다. 그 해 8월 23일에는 국내 정보 수집·분석 부서를 해편했다.

국정원 IO들의 전횡과 횡포, 정치 개입의 폐해는 극심했다. 이들은 안보를 핑계로 부처의 장·차관실까지 무시로 드나들었고, '장·차관 세평' 수집이라는 핑계로 각 부처 고위공무원 인사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국정원이 중앙부처를 사실상 장악했다. 이 뿐만 아니었다. 여야 정치권과 언론, 기업, 대학, 노조까지 국정원의 손길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국정원의 전방위적인 정보수집활동은 집권세력에게 행정부 공직자는 물론이고 국회와 언론, 민간의 기업까지 모두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는, 그래서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관철된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국정원의 전횡은 사소하게 취급된다. 그래서 당시 국정원 국내 정보를 없애는데 보이지 않은 반대의견이 꽤 있었다.

 

대통령의 약속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

 

유우성 남매 간첩 조작 사건에서 보듯 대공수사권도 국정원 권한 오남용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으로 전락해 있었다. 그러나, 대공수사권 폐지는 국내 정보 폐지문제보다 저항이 거셌다. 야당의 입장에서 공포스러운 국정원 국내 정보가 폐지된다니 환영의 기류가 다분했지만, 대공수사권 폐지 문제는 안보 프레임에 더하여 경찰수사불신 프레임으로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까지 얹어 문재인 정부를 공격할 수 있는 호재였다. 국정원 내부 또한 국내 정보와 달리 반발의 기운이 높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 국내 정보 및 대공수사권 폐지의 입장을 확고히 유지하였다. 앞서 본대로 국정원의 국내 정보업무를 단칼에 폐지하는 한편, 대공수사권의 경우도 국정원법의 대공수사권이 유지되는 한에 있어서는 북한과 연계된 사안만 수사하도록 하여 대공수사권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조치하였다.

제도 개혁 외에도 2012년 대선시 국정원 댓글 사건 등 22개 사건을 정하여 국정원 적폐청산작업을 진행했다. 개혁에 대한 국정원 내외부의 반발도 잘 다독이고, 설득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일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원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7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업무보고에서 국정원 간부진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틈나는 대로 국정원에 정치적 중립성을 주문했다. 대통령의 각별한 의지가 잘 드러난 것이 2018년 7월 20일 국정원 방문시 행한 연설이다.

대통령은 "결코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 정권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공개적인 연설 뿐만이 아니었다. 국정원 개혁 관련 대면보고를 드릴 때마다 대통령은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환기하고 민정수석실이 늘 주의를 기울여 살필 것을 당부했다.

서훈 원장의 리더십 아래 신현수 기조실장 등 지휘부가 안정적으로 국정원을 운영하면서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뒷받침했다. 그러면서도 국정원은 2017년의 험악한 남북관계를 2018년 평화의 남북관계로 바꾸어내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을 포함한 권력기관 개혁 조치가 정권교체 상황에서도 다시 후퇴하지 않도록 하는 불가역성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개혁 조치의 완결은 국회 입법이라고 보았다. 마침내 2020년 12월 13일 국정원의 국내보안정보 직무를 삭제하고, 대공수사권을 3년 뒤에 폐지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국정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21년 1월 1일, 개정 국정원법 시행... 12.3 내란, 국정원 개입 차단

 

나는 청와대에서 일하는 동안 국정원 개혁 업무 전반에 관하여 대통령을 보좌했다. 국정원·여당측 관계자들과 개정 국정원법의 조문 하나하나를 토의하고 다듬었다. 2020년 12월 13일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 국정원법의 시행을 위한 준비 작업을 했다. 마침내 2021년 1월 1일 개정 국정원법이 시행되던 날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개혁의 불가역적 성과는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을 통한 내란망동에 국정원의 개입을 차단하는 제도적 기반이 되었다. 만일 국정원에 국내 정보수집권이 존치되고 있었다면, 국정원은 윤석열 정권 출범 때부터 300명 국회의원 전원과 한동훈 등 주요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감시하고 있었을 것이고, 비상계엄 발동시에는 그 감시를 더욱 더 촘촘히 하였을 것이다. 그랬다면 12.3 비상계엄에 대한 국회 해제 결의는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이 존치되고 있었다면, 국정원은 계엄령 발동 즈음에 야당 국회의원과 시민사회 주요 인사들을 모조리 체포하여 국가보안법 등의 죄목으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을 것이다.

국정원 개혁 관련하여 두 가지만 더 기록해 둔다.

첫째,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개혁에 대하여 부족하다거나 오히려 국정원의 권한을 키워주었다는 평가가 있다. 경청할 만한 비판이다. 하지만, 나는 권력기관 개혁업무를 수행하면서 권력기관이 단지 개혁되기 위하여 설립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사용하여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해야 할 책무를 진다. 국가의 여러 기관들은 바로 그 소임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에 사이버 직무 권한 등을 부여한 것은 그 차원이다. 권력의 오남용은 철저히 경계하되, 적법한 절차에 따라 그 필요한 범위 내에서 국민을 위하여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시민사회의 감시와 비판은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그 비판들이 있었기에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의 권한오남용을 주의하고 유념했다.

둘째, 인혁당 사건 관련 국가배상금 이자 환수 문제다. 나는 이 문제의 실무자로서 어떻게든 방안을 마련해보려고 동분서주했다. 조국 수석과 백원우 비서관도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국회 입법이나 결의를 추진하기도 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022년 6월 20일 오후 정부과천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일거에 이자 환수 면제 결정을 하였을 때, 특히 진보계열 식자층에서 문재인 정부보다 윤석열 정부가 훨씬 낫다면서 조롱의 말들을 쏟아 냈다. 막스 베버가 갈파한 책임윤리의 차원에서 착잡하고 한편으로는 환멸스러웠다.

문제해결의 가장 큰 난관은 문제의 채권이 사법부 판결을 통해 확정되었다는 점이다. 권력분립체계가 엄정한 헌법 질서 하에서 대법원이 확정한 채권을 행정부가 면제한다는 것은 법원의 판결을 무용하게 만든다는 문제가 있었다. 배임죄 형사처벌 가능성은 부차적이지만 현실적인 문제였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법무부나 국정원 공무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국가 명의로 보유한 채권은 권력자 개인의 것이 아니다. 나는 한동훈이 배임죄로 결코 소추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충만하여 나랏돈을 가지고 한판 멋진 쇼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때 한동훈은 국회에 입법안을 제안하고 정부·여당을 설득했어야 했다. 그것이 국무위원으로서 국민과 헌법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였다. 그러나 여론은 이런 것을 전혀 고려해 주지 않았다.

만일 문재인 정부 누군가가 한동훈과 같은 '결단'을 했다면, 나는 그가 윤석열 검찰 정권 체제에서 구속기소되었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조선일보는 "좌파 끼리끼리 채무 탕감, 위선의 끝판왕 문재인 정권"이라는 헤드라인을 뽑고도 남았을 것이다.

만일 이러한 수사 상황이 있었다면 한동훈을 찬양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조롱했던 사람들은 검찰수사에 맞섰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김학의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소임이라고 나에게 메일을 보내고 단체 성명을 발표했던 이들은 막상 김학의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될 때 침묵했다. 재심 전문인 어떤 변호사는 나를 음험한 배후 기획자로 매도했다.

 

한동훈의 이자 면제와 이에 대한 개혁 진영의 반응들은 나로 하여금 한국 사회의 개혁은 누가,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하는가, 절차와 법적 제약을 감수해가면서 개혁을 추진해 가야 하는 민주당 정부의 숙명 같은 것들을 깊이 반추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