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관은 안 늘었는데…
쏟아지는 사건에 경찰 베테랑도 떠난다
[검찰 개혁, 관건은 설계다]
<3> 역할 커진 경찰도 비상
인력·예산 지원 없이 수사권 조정부터
"현장 갈 시간도 없어" 경찰들 하소연
"검찰 수사관들 검찰에 남아" 불만도
"인력 배분과 전문가 양성 신경 써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정다빈 기자
"이제 수사 베테랑을 찾기 힘듭니다."
경기도 일선 경찰서장
경기도 소재 경찰서의 A서장은 최근 한국일보에 현장 수사 상황을 설명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전세사기와 보이스피싱 등 경제범죄는 진화하고 사이버범죄는 교묘해지고 있는데, 10년 이상 수사 경험이 되는 경찰관들은 크게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베테랑이 없다 보니 2, 3년 차 수사관이 사이버수사팀과 경제팀, 지능팀을 합친 통합수사팀의 최고참이 되기도 했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밀려드는 고소·고발로 경찰 업무가 폭증하고 복잡한 경제 사건까지 맡게 되면서 수사부서 기피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수사 성패를 좌우하는 '현장 증거' 확보조차 벅찰 지경이라는 일선 경찰의 토로는 열악해진 수사 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호남권 일선 경찰서의 B여성청소년과 팀장은 "수사관 1인당 기본적으로 30건씩, 많게는 60건씩 사건을 잡고 있다"며 "현장에 갈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책상머리 수사'만 한다는 자조가 심심찮게 들린다"고 전했다.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사건 관계인에게 직접 수집해오라고 주문하는 건 더 이상 낯선 광경이 아니다. 병상에 누운 피해자를 찾아가기도 곤란해 "퇴원하면 출석하라"고 할 때도 있다. B 팀장은 "사건 폭증으로 수사관들의 업무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며 "수사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서민이나 취약 계층 권리 구제에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려했다.
인력 설계 고민 부족했던 개혁
경찰이 수사에 허덕이는 현실을 두고 일선 경찰관 대다수는 2021년 경찰에 1차 수사 종결권을 부여하고 검찰 수사 범위를 축소한 수사권 조정 때 인력과 예산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이라고 지적한다. 수사 경찰들이 "확대됐다는 권한은 체감되지 않고, 업무만 눈덩이처럼 불었다"고 푸념하는 이유다. 수도권의 경찰 고위 간부는 "검찰이 다루던 사건 다수가 경찰로 왔는데 검찰 수사관은 검찰에 그대로 남지 않았느냐"며 "검찰의 수사지휘권 폐지 등 형사사법 체계의 변화로 까다로운 법률적 쟁점도 직접 고민하게 돼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게 됐다"고 말했다.
경찰 일각에선 수사권 조정 이후 늘어날 업무량 산정 등 준비가 미흡해 증원을 강하게 요구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아쉬움도 내비친다. 당시 수사권 조정 논의에 참여한 경찰 간부는 "정부에서 경찰에 권한을 더 주는데 검찰 수사관까지 당장 넘겨줘야하느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떠올렸다.
2022년 7월 개정 군사법원법 시행으로 군인 3대 범죄 (성범죄, 사망 사건, 입대 전 범죄) 수사를 경찰이 맡게 된 뒤에도 상응하는 인력 증원은 없었다. 당시 행정안전부 주관 회의에서 국방부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 때도 인력은 안 넘기지 않았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력 뒷받침 없는 조정의 후과

지원이 따라주지 않은 수사권 조정의 후과는 일선 경찰의 수사 지연과 수사 품질 저하로 나타나고 있다. 경찰 내 상·하급 기관 간 수사 쏠림 현상 등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수도권 경찰청 소속 총경 C씨는 "국민들도 이제 지역 경찰서에서 수사하면 늘어지고 꼼꼼하게 짚어주지 못할 거 같으니, 시도 경찰청에 직접 고소장을 내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철빈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은 "피해자들도 일선 경찰서에 수사 인력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광역수사단이나 경찰청에 서류를 내곤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경찰 수사 인력은 3만4,491명으로 3년 전인 2021년(3만2,642명)보다는 소폭 늘었지만, 폭증하는 사건 수를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2023년 11월 법무부 수사준칙 개정도 경찰에게 짐이 됐다. 검경이 형사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반려하는 제도가 폐지되고 고소·고발을 전건 접수하게 되면서 일선 경찰의 수사 부담은 더욱 커졌다. 경찰관들의 수사 실력이 균질하지 않은 것도 업무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앞으로 수사 더 늘어날 텐데...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검토하는 검찰 개혁 안대로 검찰의 수사 기능이 떨어져 나가면 경찰의 수사 총량은 더욱 늘어날 걸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신설되면 그 기능에 따라 경찰의 수사 증가 폭이 달라지겠지만 인력 증원과 전문성 제고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수사 기피 현상은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교수는 "사건 수요에 맞는 인력 배치는 필수"라며 "단기적으로는 검찰 수사관들을 어떻게 재배치할지 고민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중수청이든 경찰이든 전문 수사인력 양성 방안에 대한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검찰 수사 인력의 전직 방안을 구체화하고 첨단 범죄에 기민하게 대응할 역량을 갖춘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들을 특채로 채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찰 내부에선 수사 역량 강화를 위해 금융 범죄와 불공정거래 행위 범죄에 대한 법률 개정도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도 낸다. 검찰에 고발하는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과 검찰에 우선 알려주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이상거래심리 분석 정보가 경찰에 함께 제공돼야 수사력 향상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국가수사본부가 중요 수사 전담해야…
중수청 신설보다 효율적"
[검찰 개혁, 관건은 설계다]
<3> 역할 커진 경찰도 비상
인터뷰③ 양홍석 변호사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품질 많이 떨어져
검경 통합 실무교육으로 노하우 공유 필요
경찰 비대화 막으려면 국수본 독립시켜야
"1차 수사기관 통제 기능은 반드시 둬야"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가 13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동균 인턴기자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기보다는 국가수사본부가 수사를 전담하고 검찰이 통제하는 게 맞습니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참여연대에서 공익법센터장을 지내고 문재인 정부 당시 경찰개혁위원회와 검찰 개혁 방안 논의 기구인 대검 검찰미래위원회에서 활동했다. 2021년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 당시에도 정부여당과 이견을 보였던 그는 2022년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을 비판하며 참여연대를 탈퇴했다.
그는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 중인 검찰 개혁 방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양 변호사는 최근 자신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취지에 대해선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1차 수사기관에 대한 통제는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가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 보완수사를 못하게 한다면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검찰 개혁 법안들을 보면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권은 물론이고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도 없애자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 당시에도 양 변호사는 검찰의 수사지휘권 폐지로 경찰 수사에 대한 통제가 약화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수사 자율성을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책임을 지울 장치가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수사권 조정 후 4년 넘게 흘렀는데 수사 품질이 많이 떨어졌다"면서 "두 기관의 수사 역량을 100% 활용하지 못하게 만든 시스템이 문제였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수사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사법기관 같은 역할까지 하게 됐고 검찰은 경찰 수사를 보완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양 변호사는 "형사사법시스템은 간단해야 하고 복잡하게 설계할 필요가 없다"면서 중수청과 기소청을 신설하는 것보다는 검찰과 경찰의 기능을 잘 분리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경찰 수사가 적법한지 통제하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데 집중하면 된다는 것이다.
양 변호사는 수사 공백을 줄이려면 검찰의 특수수사 역량을 소진시키지 않고 국수본으로 이전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양 변호사는 "검찰과 경찰이 각각 수사연수원과 법무연수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통합한 실무형 교육훈련 기관이 필요하다"면서 "경찰이 특수수사 역량을 키우고 수사 노하우를 전수하려면 검찰과 대립하기보다는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양 변호사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수사위원회(국수위)를 설치하려는 구상에 대해선 "민주주의 국가라면 만들 수 없는 전례 없는 기관"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사법 체계의 기본 원리는 견제와 균형이고 법무부 장관이나 경찰청장도 구체적 사건을 지휘할 수 없는데 국수위는 수사 관여는 물론이고 감찰 기능과 정책 기능까지 갖고 있다"며 "정치권력이 국수위를 통해 얼마든지 수사기관을 주무를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양 변호사는 수사 기소 분리에 따른 경찰권 비대화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국수본을 경찰청에서 독립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 변호사는 "행정경찰과 수사경찰을 분리해야 경찰 수뇌부의 논리가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국수본을 경찰청에서 독립시키고 시도 경찰청이나 일선 경찰서의 수사 경찰들도 경찰청 소속으로 두지 말고 수사 기능을 담당하는 별도 관서를 만들어 국수본 밑에 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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