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정전 70년

온리하프 2023. 7. 27.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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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지는 종전, 가로막힌 평화

입력 : 2023.07.24 15:52 수정 : 2023.07.25 10:24
유새슬 기자
 

24일 경기 파주 임진각 철조망에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들이 적혀 있다. 권도현 기자

 

 

“한반도는 며칠 안에 전쟁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의 지난 22일 발언은 최근 고조되는 한반도 긴장 상황과 동시에 정전체제의 불안전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남북한과 관련국들은 지난 70년 동안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과도기 상태에 머무른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은 여전히 현실적이다.

 

열강 주축, 군사적·임시적인 합의

한국전쟁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 간의 이념 전쟁 성격이 강했다. 한국군 작전지휘권은 유엔군 사령관에 이양됐고 북한군은 소련과 ‘중국인민지원군’의 지원을 받았다. 그 결과 정전에 대한 논의, 정전협정 체결, 정전 체제를 유지·관리하는 것은 모두 남북의 소관 사항을 크게 뛰어넘는 일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공감대로 휴전협상에 물꼬가 트였다. 1951년 정전협상을 위한 1차 본회의가 시작됐지만 군사분계선 설정 문제만 두고 약 4개월, 포로 교환 문제를 두고 수십 번의 회담이 진행되는 등 지지부진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협상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은 1953년 미·소 내부 상황이 바뀌면서다.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같은 해 1월 당선됐고 두 달여 뒤, 포로 교환에 반대해온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서기장이 사망했다. 같은 해 158차 본회의에서 비로소 협상이 타결됐다. 협정문을 만드는 데만 2년이 넘게 걸린, 역사상 가장 긴 정전협상이었다.

어렵게 체결됐지만 정전협정은 개념적으로 임시적이고 군사적인 합의일 뿐이다. 협정문 서문은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 “이 조건과 규정들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며”라고 규정했다. 남은 과제는 남북 간의 전쟁을 정치적으로 매듭짓고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전협정 체결보다 훨씬 길고 복잡한 일이었다.

 

평화체제 시도…주변국의 ‘동상이몽’

“3개월 이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 및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 (정전협정 60항)

남과 북, 미국, 소련, 유엔군 참여국까지 전 세계 총 19개국에서 파견된 대표단은 1954년 스위스 제네바에 모였다. 종전을 공식화하고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에 합의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유엔군과 공산군의 철수 문제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미국과 중·러 모두 한반도를 지렛대 삼아 서로를 견제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4월26일 시작된 제네바 회담은 한반도에 대한 어떤 유의미한 논의도, 결론도 없이 6월15일 종료됐다.

한반도 주변국들이 다시 머리를 맞댄 것은 1997년 남·북·미·중이 참여한 4자회담이었다. 그 사이 소련이 붕괴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의 엄연한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북한은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당사자를 북·미로 한정하려 했다. 정전협정 당사국이 아닌 한국과 마주 앉을 이유가 없다는 논리였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까지 요구하면서 4자회담은 6차례의 회담을 끝으로 종료됐다. 2003년 시작된 6자회담도 북핵·미사일 도발에 4년 만에 중단됐다.

핵을 무기 삼아 체제 보장을 받고 싶은 북한과 핵 위협에 맞서려는 미국, 그리고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과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싶은 중국. 관련국들의 각자 다른 이해는 평화체제에 대한 합의를 어렵게 만들었다. 냉전 시대 수많은 국가가 참전한 한국전쟁의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역사상 가장 긴 정전협상의 산물이었던 정전협정은 역사상 가장 긴 정전체제로 이어졌다.

 

한·미 정권 따라 출렁이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려는 국내 정치적 시도는 더디지만 꾸준히 이어져 왔다. 한 발 힘겹게 내디디면 빠르게 뒤집히는 일이 반복됐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그래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이 계속됐다.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정치적인 해법은 작지 않은 한계를 가진다. 정치 지도자는 국내 여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정권이 바뀌면 대북 정책 노선도 바뀌었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평화체제 논의는 북핵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가 됐다. 한·미 집권 여당이 북핵을 다루는 방식은 각자의 정치적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도구가 됐다. 그 탓에 한국 또는 미국에서 집권당이 바뀔 때마다 한반도도 출렁였다.

 

9년 만에 정권을 교체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넘어가기 위한 중간단계로서 종전선언을 제시했다.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서 남북 정상은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적대행위 중지 등 군축 합의도 포함됐다. 정전체제라는 과도기를 탈피하기 위해 종전선언이라는 또 다른 중간 다리를 놓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보수정권 9년 동안 소원해졌던 남북 간 신뢰를 서둘러 매듭지으려 하면서 부작용이 드러났다. 미국 국내정치라는 변수를 경시했고, 북·미관계가 남북 관계에 주는 영향은 크지만 거꾸로 한국이 북·미를 움직이기는 힘들다는 점을 간과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자 국내에서 북한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론으로 이어졌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은 한반도에는 호전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는 현 정부는 ‘북한 정권 종말’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미국의 전략 핵무기들이 한반도에 전개되는 회수도 늘어났다. 평화로 나아가야 할 정전체제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24일 경기 파주 임진각 철조망에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들이 적혀 있다. 권도현 기자

 

 

힘에 의한 편가르기…정전도 위태로운 한반도

 

윤 정부, 미·일과 군사협력으로 ‘북핵 억제’…북한은 중·러와 밀착 맞불
신냉전 선명해지며 남북 ‘불통’…‘북·중·러 리스크’ 관리가 정세 변수로

 

윤 대통령, 국군 전사자 유해 봉환 행사서 묵념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국군 전사자 유해 봉환 행사에서 고 최임락 일병에게 참전기장을 수여한 뒤 묵념하고 있다. 이날 봉환된 7위의 유해는 한·미 공동감식을 통해 국군 전사자로 확인됐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정은, 전승절 앞두고 ‘참전 열사묘’ 참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승절’ 70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25일 조국 해방전쟁 참전 열사묘를 참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중국인민지원군열사능원도 찾았다. 연합뉴스

 

1953년 7월27일 한국전쟁을 중지하기로 한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그 후 70년이 흘렀지만 한반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남북 대화·협력보다는 긴장과 대결의 시간이 더 길었다. 북한 비핵화와는 멀어지고 되레 군비경쟁이 치열해졌다. 북한은 한·미 동맹 강화에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겠다”고 위협하고, 한·미는 “북한의 핵 사용은 정권 종말을 초래한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군사력을 앞세운 ‘힘에 의한 평화’는 ‘핵 대 핵’ 대치로 치닫고 있다.

 

2023년 남북관계는 한계 없는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 북·미 대화가 단절된 가운데 북한은 “절대 핵 포기 불가”를 선언하고 핵 위협을 노골화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21년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핵탄두 소형화·경량화·전술무기화를 목표로 하는 국방 5개년 계획을 내놓았다. 지난해 9월에는 5가지 핵무기 사용조건을 담은 ‘국가핵무력정책법’을 공개했다. 자의적 해석에 따라 선제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을 위협한 것이다. 지난해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무기 확대까지 공표했다. 김 위원장은 “남조선 괴뢰들은 명백한 적”이라 규정했다.

 

한반도 경색 국면 속에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웠다. 남북정상회담이 한 해 동안 세 차례 열렸던 문재인 정부의 남북 대화 기조를 “가짜 평화”라고 평가 절하했다. 지난해 12월 윤 정부의 첫 국방백서에서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적’으로 규정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는 “북핵 억제를 위한 국제사회 결의가 핵무기 개발 야욕보다 강하다는 걸 보여줄 때”라고 했다. 북한의 도발을 차단하기 위한 대응수단은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와 한·미, 한·미·일 군사 공조 등 강력한 압박책이 주를 이룬다.

전쟁 가능성과 핵 위협이 상존하는 현재 한반도 상황이 한국전쟁 이후 최대 위기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는 미국 전략자산 전개를 포함한 대규모 한·미 군사연습으로 대응한다. 미군의 전략폭격기와 핵추진 항공모함, 전략핵잠수함(SSBN)이 잇따라 한반도에 전개되고 있다. 특히 수중에서 움직이는 잠수함은 은밀성이 핵심이지만 의도적으로 공개 빈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한·미 핵협의그룹(NCG)이 정식 출범했다. 북한은 NCG 출범 전부터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발사(13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 연속 담화(14·17일)로 견제에 나섰다. 미국 오하이오급 SSBN이 18일 부산에 기항하자 북한은 평양 순안~부산 거리인 550㎞에 맞춰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국의 전략자산을 핵으로 언제든 응징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한·미·일 vs 북·중·러…‘핵 대 핵’ 대치에 쓸려가는 평화

 

(2) 위태로운 정전

핵 놓지 못하겠다는 북한과
국방백서에 ‘적’ 규정한 정부
한계 없는 위기 상황 만들어

다음달 한·미·일 ‘3각 공조’
북, 열병식에 중·러 불러 응수
‘신냉전 대결’ 상징 될 수도

 

 

강순남 국방상 명의의 지난 20일 담화에서는 SSBN을 겨냥해 미국이 “40여년 만에 처음 조선반도에 전략핵무기를 전개하는 가장 노골적이고 직접적 핵 위협을 감행”했다며 이는 “핵무력 정책 법령에 밝혀진 핵무기 사용조건에 해당될 수 있다”고 더 노골적 경고를 내놨다.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높아질수록 윤 대통령은 한·미·일 3각 공조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다음달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릴 예정인 한·미·일 정상회담은 3국 초밀착 행보의 정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정상이 다자 국제회의와 무관하게 별도로 모이는 것은 처음이다. 이번 회담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관련 정보 실시간 공유 체계,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방안이 중점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러를 견제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도 맞닿아있어 북·중·러도 새로운 차원의 군사협력 강화로 맞대응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한·미·일 군사협력으로 대응하자, 북한은 중·러와의 밀착 공조로 맞받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7일은 화해와 평화가 아닌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대결 구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날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7일 정전협정 체결일을 맞아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국회부의장 격)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각각 단장으로 하는 중·러 대표단을 초청했다.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외로 나간 적이 없는 쇼이구 장관을 평양으로 파견해 고위급 군사 외교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번 방북을 “러·북 군사적 유대를 강화하고, 양국 협력 발전의 중요한 단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철책선 사이에 두고… 지난 24일 경기 파주시 임진강을 따라 쳐놓은 철책선의 군 초소와 강 건너 북한군 초소가 마주 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정전협정 체결일을 ‘전승절’로 기념하는 북한은 대규모 열병식을 열어 전략무기를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열병식에 중국과 러시아 대표단이 참석한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중·러의 용인과 북·중·러 3각 공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회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중·러 군은 지난 20일 동해(중국 매체는 일본해로 표기)서 ‘북부·연합-2023’ 훈련을 개시했다. 동해에서 중·러 연합훈련은 북한의 묵인이나 협력 없이는 이뤄지기 어렵다. 공고해지는 한·미·일 군사협력에 맞서 북·중·러도 서로를 단단하게 묶고 있는 셈이다.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가 선명해지고 대치 수위가 높아지는 반면 남북 소통 창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1년여간 남북 당국의 대화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북한은 지난 4월 군 통신선을 포함한 남북 직통선을 단절했다. 지난해 광복절 윤 대통령은 ‘담대한 구상’(북한이 실질적 비핵화로 전환하면 경제·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주겠다는 내용)을 발표했지만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나흘 만에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거부했다.

정전협정일을 계기로 이뤄지는 북·중·러 고위급 접촉과 내달 한·미·일 정상회담은 향후 한반도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북·중·러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지가 정전 70년을 맞은 한반도 정세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9·19 군사합의 효력 잃었다지만…

공식 파기 땐 완충지대 사라져 긴장 악화

 

북,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로 영토 침범 등 합의 위반 집중
윤 대통령 “효력 정지 검토” 경고…북측 선제 파기할 수도
합의 깨지면 JSA 재무장화…대북 전단 살포 재개 가능성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북한의 지난해 말 무인기 침범과 관련해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도 9·19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대통령이 직접 효력 정지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북한에 강력한 경고장을 날린 것으로 평가됐다.

정식 명칭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2018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공동선언 부속 합의서다. 남북 정상이 종전선언의 필요성에 공감한 4·27 판문점선언의 이행을 위한 군사적인 차원의 합의였다.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군사연습과 비행을 금지하고 해상완충구역 내 함포·해안포 실사격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를 일부 철수하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드는 데도 합의했다.

그러나 2019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면서 북한이 합의를 위반하는 일이 잦아졌다. 국방부가 펴낸 2022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의 위반 사례는 해안포 포문을 개방하거나 포구 덮개를 하지 않은 다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도 17번에 달했다. 그중 15번이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같은 해 10월부터 약 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대통령실에서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남북 합의 전반에 관한 이행 상황 검토에 착수했고 북한이 이 합의를 사실상 파기한 것과 다름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말 북한의 무인기 사태를 계기로 윤 대통령의 효력 정지 검토 지시가 나온 배경이다. 북한은 올해 들어 아직은 합의에 저촉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 안전보장 등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기간을 정해 남북합의서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다. 9·19 군사합의는 국회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가 없었기 때문에 효력 정지 시에도 국회의 별도 동의가 요구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북한이 합의를 선제적으로 파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최근 한·미 안보 결속을 겨냥해 핵무기 사용 위협을 높이고 있어, 정보당국은 북한이 언제라도 7차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진단하고 있다. 과거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대남 비난 담화에서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여러 번이다.

9·19 군사합의가 사실상 의미를 잃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남이든 북이든 합의의 효력을 공식적으로 정지시키면 파장은 클 것으로 보인다. 남북 완충지대를 해제하는 것이어서 필연적으로 한반도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DMZ 내에서 철수한 GP가 다시 건설되고 공동경비구역(JSA)을 재무장화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아울러 대북 확성기 방송과 대북 전단 살포도 재개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9·19 군사합의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로 남북관계발전법을 만들고 대북 확성기 방송, 시각매개물 게시, 전단 살포 등을 금지했다. 윤 대통령이 같은 법에 따라 합의 효력을 정지시키면 이런 행위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유엔사, ‘정전 유지’ 권한 넘어 남북관계에 번번이 ‘딴죽’

 

유엔사 ‘주권 침해’ 논란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 이병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월북에 대한 취재진 문의가 밀려들자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유엔군사령부(유엔사)는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현재 유엔 사무국과 어떤 연관이나 운영에 대한 연결고리가 없다”고 말했다. 킹 이병의 월북은 대한민국 국방부가 아닌 유엔사 관할 사안이다. 유엔사는 유엔 회원국으로 구성되고 유엔기를 사용하지만 유엔군 사령관 임명과 유엔사 운영은 미국 정부가 지휘한다.

킹 이병을 두고 북한과의 협상에 임하는 것도 유엔사다. 유엔사는 ‘핑크폰’을 통해 북측과 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분홍빛 전화기여서 핑크폰으로 불리는 직통전화로 유엔사와 북한은 매일 오전 업무개시 통화와 오후 마감 통화는 기본이고 특별한 사안이 있으면 비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반면 남북 통신선은 3개월 넘게 끊어진 상태다. 북한은 지난 4월7일부터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을 통한 한국 측 연락에 응하지 않고 있다.

북한 무인기 사태 ‘자위권’ 이견

유엔 회원국으로 구성됐지만
미국이 사령관 임명해 운영

북한 무인기에 맞대응 두고
우리 군 자위권과 충돌 빚어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오른쪽)과 전임 로버트 에이브럼스 사령관(오른쪽에서 두번째)이 2021년 7월2일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이·취임식에서 열병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950년 7월7일 의결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84호와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은 유엔사에 정전 체제를 유지하고 관리할 의무를 부여했다. 한국전쟁에 유엔군을 파견한 데 따른 유엔 차원의 후속 조치 격이다. 비무장지대(DMZ)에서 정전협정에 어긋나는 우발적인 군사 충돌이 일어나면 그 책임은 유엔사에 있다.

정전 체제가 길어지는 사이 남북관계가 온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유엔사 임무 수행이 정부 주권과 부딪치는 듯한 양상이 반복됐다. 남북 간 긴장이 높아질 때는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판단하고, 남북 교류·협력이 한창일 때는 우발적 충돌에 대비해 제동을 걸기도 했다.

지난해 12월26일 북한의 무인기 사태가 대표적이다. 서울·파주 등 수도권 상공에 북한 무인기 여러 대가 침투하자 군은 무인정찰기를 군사분계선(MDL) 너머 북측 영공으로 날려 보냈다. 여기에는 미국 측과의 공감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유엔사는 남북이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발표했다. 폴 러캐머라 유엔군 사령관이 한·미 연합군 사령관과 주한미군 사령관을 모두 겸직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상황은 더욱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같은 사람이 지휘하는 미군과 유엔사가 상반된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당시 “자위권 차원의 조치”라고 맞선 군은 최근 드론작전사령부 출범을 앞두고 대북 ‘10배 응징’ 원칙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에 북한 무인기가 1대 내려오면 평양에는 10대를 올려 보내겠다는 것인데 유엔사와 군 자위권이 맞부딪는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유엔사의 권한을 둘러싼 논란은 남북 경제협력이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진행할 때도 거세게 일었다. 2018년 남북 경의선 철도 연결 사업을 추진하던 남북이 북측 철도에 대한 공동조사를 시행하려고 했지만 유엔사는 제동을 걸었고 같은 해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를 북측에 지원하려던 사업도 무산됐다. 2019년 정부가 독일 정부 대표단을 초청해 강원 고성 DMZ 내 감시초소(GP)에 찾아가는 행사를 기획했지만 이뤄지지 못했고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은 DMZ 내 민간인 거주 지역인 대성동 마을을 방문할 수 없었다.

유엔사가 주권을 침해한다는 비판과 미국이 유엔사를 이용해 남북관계에 부당하게 개입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유엔사 임무를 규정하는 정전협정이 군사적 합의인 만큼 유엔사 업무도 군사적 성질에 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 경제협력이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과 같은 일에 유엔사가 제지하고 나서는 것은 과도하다는 목소리다.

유엔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데 필요한 절차를 요구할 뿐이라고 항변한다. 물자와 사람이 남북을 오가는 과정에서 혹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유엔사가 지는 만큼 일정한 절차와 조치를 한국 정부에 요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유엔사 관계자는 ‘주권 침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난색을 보였다. 유엔사 의무상 한 나라의 주권에 개입할 의지도,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다.

종전선언은 유엔사 해체?

남북 경제협력 등에 제동
주권 침해 비판 쏟아지기도

종전선언 이뤄진다고 해도
유엔사 지위에는 영향 없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종전선언은 곧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 해체’라는 프레임이 굳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문재인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지난 21일 인사청문회에서 “종전선언을 한다면 그런(유엔사 해체와 같은) 주장들이 나올 수 있다”며 “우리 안보에 불리한 명분을 북한에 줘서 안보가 불안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뿐 아니라 유엔사 관계자들도 유엔사 해체와 종전선언은 개념적으로 무관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엔사의 존재 이유와 근거는 안보리 결의와 정전협정이다. 이와 달리 종전선언은 국제법적인 효력이 없는 그야말로 정치적인 선언이어서 유엔사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으로 이어진다면 유엔사 존립에 대한 논의가 다시 진행될 여지가 생긴다. 다만 이 경우에도 평화협정에 유엔사와 관련된 어떤 내용이 담기느냐에 달렸다는 의견과 평화협정만으로는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다는 의견이 나뉜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유엔군 사령관은 2018년 미 상원 청문회에서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해도 두 나라 간 합의이기 때문에 안보리 결의에 따라 (유엔군 사령관이) 서명한 정전협정을 무효화하지 않는다”며 유엔 차원에서 별도 해체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앤드루 해리슨 유엔군 부사령관은 지난 24일 외신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며 “유엔 결의에 의해 부여받은 역할과 임무가 완수됐다고 판단되면 유엔사 임무가 종결될 것”이라면서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다만 “정전 상태가 어떻게 종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저희는 발언권이 없다”면서 “항구적이고 확고한 평화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그에 도달할 때까지 정전협정은 차선책이며 훌륭하게 유지돼온 협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참전 중국군 묘지 참배 “피로 맺은 유대”

 

북·중 ‘친선의 초석’ 강조
“한국전쟁 대승리” 주장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전승절’(한국전쟁 정전협정일) 70주년을 앞두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 묘지를 참배하며 두 나라의 “혈연적 유대”를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전쟁 참전 열사 묘소도 방문해 한국전쟁을 “인류사적인 대승리”라고 주장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26일 “김정은 동지께서 위대한 조국 해방전쟁 승리 70돌에 즈음하여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능원을 찾으시고 열사들에게 숭고한 경의를 표하시였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이 동행했다.

김 위원장은 북·중 연대를 강조했다. 그는 “인민의 성스러운 반제 반미 투쟁을 영웅적인 희생으로 지지 성원하며 전쟁 승리에 중대한 공헌을 한 중국 인민의 아들딸들의 숭고한 넋과 정신은 사회주의 이념과 더불어 영원불멸할 조·중(북·중) 친선의 초석으로, 귀감으로 청사에 역력히 새겨져 있다”고 밝혔다.

 

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강 국방상과 북한군 사령관, 부대장들과 함께 북한군이 안치된 ‘조국 해방전쟁 참전 열사묘’를 찾아 한국전쟁 ‘승리’를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7·27의 기적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특출하고 열렬한 애국 위업의 승리인 동시에 침략의 원흉 미제에게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수치와 패배를 안기고 새로운 세계대전을 막아낸 인류사적인 대승리”라고 했다.

 

 

미 예비역 장성 "한반도에 계속되는 미국의 전쟁 끝내야"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 미국에서 '한반도 평화행동' 다양한 행사

 

 
▲ 미 국회의사당 하우스 트라이앵글 27일 미 연방 하원의원들과 한반도 평화 활동가들이 함께하는 정전 70주년 기자회견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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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현지 시각) 오전 11시 30분, 바버라 리 (Barbara Lee) 하원의원 등이 한반도 평화법안(H.R.1369)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미 국회의사당 하우스 트라이앵글에서 열 예정이다.

브레드 셔먼 의원이 로칸나, 앤디 김 의원 등 20명과 공동 발의한 한반도평화법안은 현재 33명의 의원이 지지하고 있다. 바버라 하원의원의 부친은 한국전쟁 참전용사이며, 의원은 그 영향으로 한반도 평화를 옹호하는 활동에 적극적이다. 과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투표를 하기도 했다. 그녀는 동료인 잰  셔카우스키(Jan Schakowsky) 하원의원, 아시아태평양의원연맹 주디 추(Judy Chu) 하원의원과 함께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할 예정이다.

이 기자회견에는 한인, 이산가족, 미국 참전용사, 미군 유해 송환 가족 협회, 종교단체, 북한을 직접 경험한 인도주의적 활동가 등을 대표하는 광범위한 단체에서 200여 명이 모일 예정이다.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의 급격한 고조와 미 핵 잠수함의 부산과 제주 입항 등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 전국에서 수백 명의 한국 평화 옹호자들과 군사 및 정치 전문가들이 함께 바이든 행정부와 의회에 한반도 정전 협정을 공식적인 평화 협정으로 대체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26일 미주동포전국협회(NAKA)의 서혁교 회장은 "7.27 워싱턴 행동기간의 첫 활동으로 미 의회 로비 회담을 했다. 팬데믹 이후 첫 대면 모임이다. 재미동포는 물론 미국인, 시민단체 활동가, 퇴직 미군 장교들 14명이 한반도 평화 결의안을 상원에서도 제출하도록 촉구했다"고 밝혔다.

27일 미국친우봉사회(AFSC), 연합감리교 세계선교회, 코리아피스나우(Korea Peace Now, KPN), 한미평화기금,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 미주동포전국협회(NAKA), 평화를 위한 재향군인회, 위민크로스DMZ 공동 주관으로 열리는 '정전 협정 70주년 평화 대회'는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오후 1시 30분 참여형 해원(解冤) 의식(Unbind Your Heart: Participatory Grief Transmutation Ceremony),  오후 5시 백악관 라파예트 공원 집회, 오후 6시 링컨 메모리얼 도보 행진, 오후 7시 링컨 메모리얼에서 종교인들이 이끄는 집회로 마무리 된다. 백악관 집회에는 데이비드 김 하원의원 후보, 메디아 벤저민 코드핑크 공동 설립자 등이 함께한다.

28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콘퍼런스가 열린다. '한국전쟁 정전 70주년: 평화 협정의 전망과 도전 콘퍼런스'에는 한국전쟁 기원 연구로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기조연설, 세계적 핵 과학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교수, 3성 장군인 댄 리프  전 인도-태평양 사령관, 박기범 하버드 의대 교수 등이 패널로 참가한다.

댄 리프 장군은 주관 단체 회원들과 한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에서 4년간 복무하며 그중 2년 동안 전투병으로 복무하였고, 전 미 태평양사령부 부사령관 겸 사령관 대행을 한 군인으로서 저는 미 의회가 미국 역사상 가장 길게 끌고 있는 전쟁을 지금 바로 종식하고 핵 재앙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비핵화와 인권 문제를 해결하려면 평화를 통해 조건을 설정해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이자 미 평화재향군인회원인 92세 존 잭 독시씨는 "저는 전쟁에서 돌아와 전쟁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적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았습니다. 이 기념일과 관련하여 저는 모든 당사자들에게 한반도에서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전쟁을 끝내줄 것을 호소합니다. 대한민국(남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 그리고 미국은 '영구적 평화와 우정'을 강력히 바라는 한미 양국 국민의 상호 이익에 부합하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유문성 한미평화기금 대표는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계 미국인들의 단체로서 평화 조약을 요구합니다. 70년의 전쟁은 충분합니다. 우리는 비핵화된 한반도를 원합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반드시 억제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 정부가 군비에 막대한 돈을 쓰는 것을 멈추고 모두를 위한 경제 회복과 다양한 안전망을 위해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할 것을 요구합니다"라고 밝혔다.

제니퍼 디버트 미국친우봉사회 북한 프로그램 책임자는 "끝나지 않은 전쟁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미국의 대북 정책에 깊은 영향을 계속해서 끼치고 있으며, 다양한 차원의 협력과 인적 교류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인적 비용은 가족들이 재결합할 기회를 뺏어가고, 많은 참전군인들은 여전히 실종 상태이며, 지속적인 전쟁 상태로 인해 북한 파트너들과 시민단체들의 교류는 방해받고 있습니다. 미국친우봉사회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갈등에 대한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대화와 사람들 간의 교류가 필요합니다. 전쟁을 끝내는 것은 관계를 다시 생각하고 상호 번영과 인간 안보에 기반을 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휴전에서 평화로

 
▲ 미 의회 로비 회담 한반도 평화행동(Korea Peace Action)이 26일부터 3일간 진행 중이다. 한인, 시민단체 활동가, 퇴직 미군 장교 등 14명이 한반도 평화 결의안을 상원에서도 제출하도록 촉구했다.
ⓒ 서혁교 관련사진보기

 

코리아피스나우가 발간한 "평화로 가는 길: 한반도 전쟁을 끝내는 평화협정" 보고서에 따르면 평화협정과 달리 종전 선언이나 불가침 협정은 전쟁 상태를 종식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평화협정은 최종적이면서 구속력 있게 전시 무력 사용권이 소멸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국교 수립 등 관계 정상화를 통해 당사국들이 평화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한국전쟁을 끝내지 못한 것이 한반도의 불안정한 안보 위기를 부추겨 왔다. 2) 평화협정은 전시 무력사용권이 완전 소멸되었음을 확인하기 때문에 신뢰 구축과 외교적 방법의 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3) 평화협정은 공정하고 항구적이며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에 당사국들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표현 방법이다. 4) 평화협정 체결에 미국, 남한, 북한이 포함되어야 한다. 

평화협정의 가능성과 성공은 현실적인 조건과 다양한 요소에 의존한다. 평화를 위한 노력, 보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를 위한 정치적인 협상과 해법이 필요하다. 

미국은 한반도 내 무력 사용에 연루될 수 있는 국가 중 하나로서 신뢰 구축을 위한 평화협정 체결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미국의 참여는 정치적 의지의 문제다. 유엔 참전국이나 중국의 참여는 필수적이지 않다. 그들 대부분은 이미 전쟁 당사국들과 관계 정상화를 이루어 왔다. 평화협정이 전쟁상태를 종식하는 법적 효력을 갖도록 당사국들의 의지가 필수적이다.

이번 한반도 평화법안에는 미군 철수와 상관없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점진적으로 평화에 다가가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평화가 인류 보편적이 되도록 하기가 쉽지 않다는 예다. 다른 나라 군대의 부당한 주둔과 개입, 안보 우선, 군사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옳은가? 사회적 토론이 필요한 때다.

 

 

"전쟁 무대에서 내려와 평화의 연단에 올라라"

대전단체들, 정전협정 체결 70년 앞두고 '한반도평화대회' 개최

 

  7.27정전협정 체결 70년을 앞두고 7월 22일 대전 으능정이 거리에서 ‘정전70년 대전 한반도평화대회’가 개최됐다.

 

 

7.27정전협정 체결 70년을 앞두고 대결과 적대를 멈추고 평화로 나갈 것을 촉구하는 시민대회가 대전에서 열렸다. '정전70년한반도평화대전행동'과 '평화나비대전행동' 소속 단체들은 22일 오후 4시, 으능정이 거리(중구 은행동)에서 '정전70년 대전 한반도평화대회'를 개최했다. 

 

  7.27정전협정 체결 70년을 앞두고 7월 22일 대전 으능정이 거리에서 ‘정전70년 대전 한반도평화대회’가 개최됐다.

 

 

'전쟁을 끝내고, 평화로'라는 제목을 걸고 진행된 대회는 각계의 발언뿐 아니라 시민참여 부스와 전시물, 노래 공연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아크릴 물감으로 한반도 모양을 그려 만드는 손수건을 만드는 일에 동참했고, 반전평화 100만 서명운동에도 참여했다. 전시물에는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한 최대 민간인 학살사건인 산내 골령골 사건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선전물도 눈에 띄었다.

참가자들은 '전쟁을 끝내고, 이제는 평화로!', '전쟁연습 하지말고, 평화연습 시작하자!', '한미일군사협력 위한 굴욕외교 중단!', '핵폐수 해양투기 육지보관 왜 말 못해?', '힘에 의한 평화는 가짜평화!' 등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대회의 목적을 알렸다.

이날 평화대회에서 시민참여부스와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각계의 발언도 이어졌다. 이영복 6.15대전본부 공동대표는 "한국전쟁이 정전 상태로 70년이 되었다"며, "적대적 대결과 군사적 충돌은 70년간 한반도에 지속적인 전쟁위기를 만들어냈고, 한국 민중은 분단체제에 신음하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부산항에 입항한 미국의 오하이오급 핵전략잠수함을 비롯한 한미연합군사훈련과 이에 대응한 북한의 조치를 언급하며 "한반도에서 핵 기반 군사정책이 격돌하고 핵전쟁 위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깊은 우려를 표했다.

 

  ‘정전70년 대전 한반도평화대회’에서 이영복 6.15대전본부 공동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정전70년 대전 한반도평화대회’에는 다양한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피켓들이 등장했다.

 

 

대전세종충남 종교인평화회의 사무국장 조부활 목사는 "물리적 힘으로, 총과 칼로는, 전쟁으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며, "한반도의 평화는 남북 상호 인정과 대화, 교류와 협력을 강화할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전략자산 전개와 핵전쟁의 위기를 부르는 한미연합전쟁훈련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해 상호 인정과 대화, 교류와 협력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이강진 민주노총대전본부 통일위원장은 "극우 반통일 유튜버를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며, "통일부에 핵전쟁을 운운하고, 독자적인 핵 개발을 이야기하는 자가 장관이 된다면 남과 북은 더 큰 대결과 반목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통일 인사, 극우인사,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인사가 통일부 장관에 임명되는 것은 절대 불가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영민 대전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일상적 전쟁준비, 군비증강으로 인한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예산 감소와 여성의 빈곤화 문제는 분단체제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 뒤, "위계질서와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군사주의에 점령된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 된 지역 중 하나고, 군사대립, 전쟁발발 위험이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인구절벽 시대 출생 장려하면 뭐하나? 평화가 없는 세상에서 아이 낳고 살 수 있겠냐"고 반문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오를 것은 미 핵잠수함이 아니라, 대결과 적대, 전쟁과 폭력의 무대에서 내려와 평화와 자비의 연단에 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전70년 대전 한반도평화대회’에서 각계의 발언이 이어졌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대전세종충남 종교인평화회의 사무국장 조부활 목사, 이강진 민주노총대전본부 통일위원장, 홍경표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역위원장, 최영민 대전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정전70년 대전 한반도평화대회’에서 정당 발언도 진행됐다. 정현우 진보당대전시당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정현우 진보당대전시당 위원장도 발언에 나서 "일방적 일본 편들기, 국민 세금으로 10억 들여 오염수 투기 유튜브 광고를 한 정부는 국민들의 대표가 아니라 오염수 홍보대사일 뿐"이라며, 일본 핵폐수 해양투기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태도를 비난했다.

정현우 위원장은 "오염수 투기라는 생태 범죄를 승인한 윤 대통령이야말로 국민들에 의해 불허될 것"이라며, "국민들의 분노가 윤 대통령을 향하고 있음을 잊지 말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홍경표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역위원장도 "강제동원 굴욕해법 대일 굴종외교 당장 중단하라"며,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노래모임 ‘놀’이 ‘평화만들기’와 ‘통일의 바람아 불어라’를 불렀다.

 

각계의 발언 사이에는 노래모임 '놀'의 노래 공연이 이어졌다. 놀은 '평화만들기'와 '통일의 바람아 불어라'를 불렀다. 4시부터 시작된 평화대회는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한편, 정전협정체결 70년을 맞아 이날 진행된 한반도 평화대회 외에도 다양한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대전세종충남 종교인평화행동은 23일(일) 오후 4시, 원불교대전교당에서 평화기도회를 열고, 27일(목) 저녁 8시에는 대전역 서광장에서 평화문화제도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8월 6일(일) 오후 3시에는 빈들공동체교회에서 평화토론회도 열 계획이다. 정전70년한반도평화대전행동은 정전협정 체결 70년을 맞는 7월 27일 오전 11시에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한반도 전쟁위기 부르는 반북대결정책 철회 등을 요구하는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예정하고 있다.

 

  7.27정전협정 체결 70년을 앞두고 7월 22일 대전 으능정이 거리에서 ‘정전70년 대전 한반도평화대회’가 개최됐다. 대회 마지막에 참가자들이 단체 사진을 촬영했다.

 

 

윤석열 대통령 발언, 정말 위험한 이유는 따로 있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반국가세력이 종전선언 노래"라니... 대한민국에 '위험 신호' 켜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기념행사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해 편향된 관점을 표출했다. 28일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거부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라고 발언했다. 종전선언을 반국가세력과 연결시킨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이 다시 침략해 오면 유엔사와 그 전력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 합창이었으며,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허황된 가짜 평화 주장이었다"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남침을 용이하게 하려고 종전선언을 주장한다는 식의 발언이다.

"종전선언 합창"... 헌법 경시한 윤 대통령의 발언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6월 30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있는 장면. ⓒ 연합뉴스

 

 

종전선언은 불안정한 휴전체제를 해소해 전쟁을 막고 평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한다. 북한군을 초대하는 게 아니라 평화협정을 초대하는 것이 한국에서 말하는 종전선언이다.

2007년 10월 11일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 평화협정으로 바로 들어가기는 좀 빠른 것 같고, 종전선언을 하고 그 다음에 들어가는 게 맞지 않느냐'는 취지로 발언했다. 13일 뒤 백종천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종전선언은 평화협상을 이제 시작하자는 정치적·상징적 선언"이라고 풀이했다.

한국에서는 '종전선언을 먼저 하고 그 뒤에 평화협정을 맺자'는 분위기가 강한 데 비해, 미국에서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패키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은 이탈리아·루마니아·불가리아·헝가리와의 평화협정이 발효된 1947년 9월 16일 이 국가들과의 종전을 선언했다. 또 일본과의 평화협정인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 발효된 1952년 4월 28일 종전을 선언했다.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발효의 시점을 가급적 맞추려고 애썼다.

소련은 종전선언을 평화협정처럼 운용한 사례가 있다. 1956년 10월 19일 조인되고 12월 12일 비준서가 교환된 소·일 공동선언은 평화협정의 요소들을 담았다. 북방 4개 도서의 귀속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평화협정이란 형식을 띨 수 없어 이런 변칙을 사용했다.

이와 달리, 노무현 정부 이래로 한국에서 종전선언을 평화협정 이전 단계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한 데는 한국적인 특수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종전선언이라도 먼저 해둬야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절박감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 공포심을 일으킨 제2차 북·미 핵위기(북핵위기)는 2003년 8월부터 6자회담 국면으로 전환됐다가 2008년 12월 이후로 6자회담이 흐지부지되면서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종전선언 주장은 핵위기로 인한 불안감이 퍼져 있을 때 전쟁을 막자는 취지에서 부각된 것이었다. 종전선언이 북한군의 남침을 부른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은 이런 배경과 동떨어진다.

그처럼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을 반영하는 종전선언 추진 움직임을 윤 대통령은 "종전선언 합창"이란 자극적 표현을 써가며 폄하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의지를 의심케 만드는 발언이다.

평화 헌법으로 불리는 현행 일본 헌법에는 '평화'라는 글자가 5번 나온다. "일본 국민은 항구적 평화를 염원하며"처럼 평화를 언급한 곳이 전문(서문)에 네 군데 있고,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며"라는 구절이 전쟁 금지를 선언한 제9조에 나온다.

평화 헌법이란 수식어가 붙지 않은 우리 헌법에도 '평화'가 9번 나온다. 전문에 4회, 본문에 1회 나오는 일본 헌법과 달리, 우리 헌법에서는 전문에 2회, 본문에 7회 나온다. 우리 헌법의 평화주의가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라고 했고, 본문에서는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제4조),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제5조),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제66조 제3항) 등의 선언을 했다.

특히 북한과 관련해서는 여섯 군데에서 평화를 강조했다. 제4조와 제66조 제3항에 이어 제69조에서는 대통령이 취임선서 때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서약하도록 했다. 제92조에는 "평화통일정책의 수립"과 더불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언급됐다. 

이는 북한과 전쟁하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라는 것이 우리 헌법의 명령임을 보여준다. 이런 헌법적 가치를 경시하고 여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세력이 극우집단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다름 아닌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반대다.

전광훈 발언과 비슷... 윤 대통령의 '위험한' 의중

 

 전광훈 목사가 지난 4월 17일 오전 서울 성북구 장위동 사랑제일교회에서 ‘전국민 국민의힘 당원가입운동’을 벌일 것과 함께 총선 관련 공천권 폐지, 후보 경선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기념행사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태극기 집회 미주 투어'의 일환으로 지난 1월 31일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교회를 방문했다.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이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되던 종전선언과 관련해 "주한미군 철수와 연방제 통일을 하자는 사기극"이라며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제2의 광주사태인 광화문 내전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21년에 자신이 미연방 하원의원인 영김과 협력해 미 의회 내의 한반도평화법안 추진을 저지했다고도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전광훈 목사 못지않은 자극적 표현을 써가며 한반도 평화체제를 폄하했다. '종전선언은 허황된 가짜 평화 주장'이라는 그의 언급은 '종전선언은 사기극'이라는 전광훈의 발언과 맥을 같이한다.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습니다"라는 윤 대통령의 폄하적 발언은 그가 한반도 평화의 가치를 얼마나 낮게 평가하는지를 드러낸다. 나아가 윤 대통령의 생각이 전광훈 목사의 생각과 무엇이 다른지 되묻게 만든다.

이번에 윤 대통령이 축사를 해준 한국자유총연맹은 1954년 6월 15일 이승만 정권이 만든 한국아시아반공연맹에서 출발했다. 이 단체는 박정희 때인 1964년 1월 15일 한국반공연맹으로 개조됐다가 1987년 6월항쟁 뒤인 1989년 4월 1일 한국자유총연맹으로 변신했다. 예전처럼 노골적으로 반공을 표방하기 힘들어진 정세 변동이 단체 명칭의 변화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자유총연맹은 이승만·박정희 시기의 반공정책을 최일선에서 수행했다. 윤 대통령은 이런 단체의 창립 기념식에서 한반도 평화의 가치를 정면으로 깎아내렸다. 전광훈 목사에게나 어울리는 모습이 윤 대통령에게서 자연스레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위험한 징후다. 한국아시아반공연맹과 한국반공연맹을 앞세워 우리 사회를 냉전과 대결로 몰아갔던 이승만·박정희 시절의 기억을 소환케 할 만한 일이다.

또한 28일 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자신이 종전선언을 반대하는 것이 단순히 이념 성향을 드러내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공안정국을 강화하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음을 드러냈다. 그는 종전선언을 추진했던 이들을 '반국가세력'이라고 지칭하며, "자유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고 하거나 자유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세력들이 나라 도처에 조직과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라고 발언했다.

그런 뒤 "이것은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 지키기를 명분으로 통일운동과 노동운동 진영 등에 대한 공안정국을 한층 강화할 가능성을 주목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경제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인해 지금 한국에서 그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사회 분열을 막는 통합의 노력이다. 이를 달성하려면 무엇보다 보편적 가치에 기반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보편성과 동떨어진 편향적 이념을 드러내며 국민들을 이편 저편으로 가르고 있다. 종전선언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를 근거로 국민과 비국민을 가르려는 의중을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이 균형과 중용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대한민국에 위험한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