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요즘 어른의 관계 맺기

온리하프 2024. 10. 1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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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험담이 간계에 미치는 영향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은 대인관계가 좋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자신의 수준이나 역량을 낮게 보기 때문에 겸손하다. 보잘것없는 자신을 보여주기 싫어 스스로를 낮추니 저절로 상대를 높이게 되고, 이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특히 나는 김우중 회장,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등 범접하기 어려운 분들을 모시면서 본시 낮았던 자존감이 더 낮아졌고, 겸손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자존감 낮은 사람의 대인관계

둘째, 자신의 가치를 낮게 보는 사람은 부족한 부분을 남에게 들키지 않을까 늘 불안한 상태에 있어 그 모자란 부분을 남의 인정으로 채우려 한다. 약물 중독자가 갈수록 더 독한 약물을 필요로 하듯, 인정중독에 빠지면 더 강한 칭찬과 인정을 갈구한다. 인정받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금단 현상 때문에 더욱 남의 인정에 목매게 된다. 생각해보라. 인정을 베푸는 사람 입장에서 자기 눈에 들기 위해 애면글면하고,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사람을 미워할 턱이 있겠는가. 자존감 낮은 본인은 또 어떤가. 자신의 본모습을 들키지 않았으니 다행이고, 자기 수준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니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고맙지 않겠는가.

셋째,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아효능감도 낮아 매사에 자신이 없다. 자신이 없으므로 기회가 와도 사양하고 양보한다. 그 기회를 잡았다가 자신의 본색이 드러나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양보한 기회는 남에게 돌아가고, 그 기회를 얻은 사람과의 관계가 돈독해진다. 단지 자신이 없었을 뿐인데, 욕심이 없고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등극한다. 몇 해 전 모 방송국에서 저녁 퇴근길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제안받았다. 실전 테스트까지 받고 합격했지만, 하루 이틀 고민하다 고사했다. 그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고, 시간이 흐른 뒤 또 다른 방송국에서 제안이 왔다. 제안을 고사했다는 사실이 방송가에 풍문처럼 나돌아 새로운 제안을 해준 방송국에도 알려졌고, 그로 인해 나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낮은 자존감이 낳은 사양이 새로운 관계를 불러온 셈이다.

나처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겸손하고, 인정받으려 하고, 양보하는 특징 외에 또 하나의 대인관계 장점이 있다. 바로 험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불편한 관계에 있으면 그 상황을 견디기 힘들다. 나는 그런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는 험담을 할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험담을 해서 위험을 자초하지 않는다.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아내가 내게 하는 거의 유일한 칭찬도 ‘당신은 정말 뒷담화를 안 하는 사람이야’다.

험담은 왜 하는가. 심심풀이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혹은 제3자에 대한 정보 교환 용도로, 또는 공동의 적을 만들어 우리는 같은 편이란 걸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당사자에게 직접 하기 어려운 말이 우회해서 전해지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험담은 반드시 그 대상자의 귀에 들어가게 돼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험담을 들은 사람도 험담한 사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험담 대상자에게 그 얘기를 하고 싶다. 험담한 사람이란 방패막이가 생겼으므로 자기 얘기가 아닌 것처럼 말할 수 있다. ‘내가 얘기했다고는 하지 말아줘. 사실 이 얘기를 해줘야 하나 고민했는데, 너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하면서 말한다. 상대가 자신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면서 그 사람에 대한 지배 감정을 만끽한다. 남의 칼을 빌려 차도살인(借刀殺人)하는 것이다. 당연히 험담한 사람과 험담 대상자는 불구대천지원수가 된다.

험담한 사람과 험담을 전한 사람과의 관계 역시 망가진다. 험담한 사람은 그걸 듣는 사람이 자기편이라 생각해서, 비밀을 지켜줄 것이라 믿고 말했을 것이다. “맞아, 맞아” 하며 들을 때는 언제고, 쪼르르 달려가 일러바쳐? 그렇게 양다리 걸치는 기회주의자는 용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험담을 들은 사람은 험담을 전한 사람을 어떻게 볼까. 입이 싸고 못 믿을 사람, 언제든 나에 대해서도 험담할 사람으로 본다. 결코 좋은 감정을 갖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가서 참모들에게 했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바이든”이라 했든 “날리면”이라고 했든 험담을 했다는 것까지 부인하긴 어렵다. 그 발언이 미국이나 우리 국민에게 윤 대통령에 대한 좋은 인상을 줬을 리 만무하다.

중국 송나라 유학자인 주자가 그랬다지 않나. 험담을 하는 사람은 경망하고, 맞장구치는 사람은 비겁하며, 험담을 전하는 사람은 비열한 사람이라고. 험담은 이렇게 여러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고 관계를 망친다.

험담도 사실이라면 문제가 아니지만

험담도 해악의 정도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유명하거나 인기 있는 사람에 관해 얘기하는 경우다. 어디서 들은 얘기를 악의 없이 전하는 유형이다. 사실이라면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왜곡, 과장하면 악담이 되고 문제가 된다. 비방할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사안이 심각하면 법적인 문제로까지 비화할 수 있다.

다음으로, 직장에서 주로 이뤄지는 상사 뒷담화다. 윗사람에게 대놓고 할 수 없는 말을 동료들끼리 주고받으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하소연 품앗이라고나 할까. 며느리끼리 모여 시어머니 흉을 보고, 부인들이 모여 남편 성토대회를 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험담은 큰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도리어 험담하는 사람들끼리 우의(?)를 돈독히 하는 효과가 있다.

문제는 헐뜯기다. 누군가를 흠집 내기 위해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손가락질하는 경우다. 비판, 비난, 비방은 달리 봐야 한다. 사실과 근거를 가지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비판은 비록 등 뒤에서 하는 경우라도 권장해야 한다. 비판은 그 대상의 발전을 위해 행한다는 선의를 내포하고 있어서다.

비난은 다르다. 비판이 사실에 바탕하는 데 반해 비난은 비난하는 사람의 판단에 근거한다. 비판은 객관적이지만 비난은 주관적이다. 비판에는 칭찬도 포함될 수 있지만, 비난에는 상대를 깎아내릴 악의만 있을 뿐이다.

비방은 더 심각하다. 비난이 판단에 근거한다면 비방은 마음에서 비롯한다. 증오와 분노의 감정 말이다. 비방은 없는 얘기까지 지어내는 가장 불순한 험담이다. 비방은 숨어서 하지도 않는다. 내놓고 한다. 비방하는 대상이 그걸 듣고 괴로워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방은 그 대상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힌다. 칼에 베인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낫지만, 말로 에인 상흔은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다. 관계 역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만약 험담의 대상이 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나를 돌아본다. 내가 왜 입방아에 올랐는지 따져본다. 험담한 사람을 공격하는 것으로 입을 막아봤자 소용없다. 또 다른 입을 통해 구설은 계속될 뿐이다. 그 원인을 제공한 나를 바꿔야 한다. 아니면 험담한 사람을 내 편으로 통 크게 끌어안아야 한다. 그럴 때만이 나에 대한 험담은 꼬리를 감춘다.

 

 

(2)경쟁과 협력관계

 

 

 

 

우리 모두는 연결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그것이 처한 현실이고 관계의 본질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연결되는 방식은 두 종류인데, 경쟁관계와 협력관계가 그것이다. 나는 경쟁을 잘했다. 남보다 앞서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경쟁을 했다. 위만 보고 살았다. 윗사람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했고, 윗사람과 관계가 좋았다. 관계가 좋으니 소개도 받고 발탁도 됐다.

나뿐 아니라 우리 세대는 경쟁하며 성장했다. 우리 국민은 경쟁을 잘한다. 경쟁심도 강하다. 어떻게 전쟁의 폐허 위에서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가능했겠는가. 가진 것이라고는 사람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바로 경쟁을 잘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모시고 해외 순방 갔을 때도 실감했다. 우리 교민은 세계 어디서나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잘산다. 그만큼 경쟁을 잘한다.

나는 경쟁을 잘해 마침내 대통령 비서관이 됐다. 그때 처음으로 경쟁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쟁만 잘해서는 다른 비서관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고, 나와 함께 일하는 행정관들이 협력해줘야 비로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협력을 이끌어내야 했다. 정보, 일, 시간 이 세 가지를 공유하자고 제안했다. 우선 아는 것의 공유다. 공직이건, 기업이건 조직은 아는 것으로 일한다. 아는 만큼 일을 잘할 수 있다. 정보가 실력이고 권력이다. 이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대통령이 비서관을 찾으면 행정관들과 함께 가서 들었다. 부득불 혼자 듣는 경우는 낱낱이 공유했다. 수평적으로도 정보가 흐르도록 했다. 그래서 행정관들 사이의 정보격차도 해소했다. 많이 아는 사람의 지식이나 경험, 노하우가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흘러가도록 수시로 모였다. 아는 수준의 비대칭 현상에서 벗어나 상향평준화를 이루는 단계로 나아갔다.

다음으로, 일의 공유다. 행정관 4명이 하던 연설문 작업에 비서관인 나도 포함시켜 5명이 했다. 대신 비서관이 하던 연설문 고치는 일도 5명이 함께했다. 감독이 따로 있지 않았다. 모두가 선수로 참여했다. 연설문 고치는 일을 함께하니, 자신이 맡은 분야 이외의 글도 잘 알게 됐고, 한 사람에게 일이 몰릴 때는 다른 사람이 일손을 덜어줄 수 있었다. 또 도와준 사람이 바쁘면 이를 되갚는 식으로 일을 공유했다.

끝으로, 직장인에게 가장 소중한 자원인 시간도 공유했다. 방법은 함께하는 자리를 자주 갖는 것이다. 연설문 초안이 나올 때마다 쓴 사람이 한 단락씩 읽으면 나머지 4명이 고쳐줬다. 혼자 쓰는 시간은 최소화하고 함께 모여 고치는 시간을 늘려나갔다. 고치는 시간은 학습의 시간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실력이 엇비슷해졌고, 결과물의 품질도 좋아졌다. 함께 모이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자율적으로 썼다. 할 일이 없으면 일찍 퇴근하고, 회의가 없는 날은 사무실에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됐다.

일의 최종 결과로 주어지는 인센티브 배분도 고민했다. 한명에게 몰아주는 무한경쟁 방식, 성과에 따라 분배하는 차등경쟁 방식, 공동기금으로 쓰거나 똑같이 나눠 갖는 비경쟁 방식 등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n분의 1로 나눠 가졌다. 경쟁보다 협력의 길을 선택했다.

지금은 협력을 잘해야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시대다. 서로 다른 게 섞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됐다. 다른 게 섞이기 위해서는 협력해야 한다. 협력에는 차이가 중요하다. 서로 다르고 차이가 있어야 시너지 효과를 낸다. 차이를 긍정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개방하고 공유할 때 상생과 공존의 협력관계가 빛을 발한다.

경쟁의 순기능도 없진 않다. 승부욕에 불을 붙여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인다.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하다. 경쟁관계는 그러나 필연적으로 갈등이 따른다. 우열과 서열을 만들고 대립과 반목, 질시를 낳는다. 내부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팀워크를 해쳐 성과를 떨어뜨리고, 품질 향상에도 장애가 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경쟁을 부추겨 일의 강도를 높이고, 품질을 향상시키는 방식은 이제 시효를 다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다. 욕망에 비해 자원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협력의 목표도 경쟁에서 승리하는 일이다. 협력을 통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문제는 이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죄수의 딜레마’가 이를 잘 보여준다. 협력적인 선택이 모두에게 이익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한 선택을 함으로써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이론이다.

결국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추구해야 한다. 맹목적인 경쟁과 무조건적인 협력은 모두 무모하다.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이 결합한 코피티션(Coopetition), 즉 경쟁적 협력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일상적으로는 경쟁하되 사안별로 협력하거나, 협력과 경쟁 분야를 나눠 관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생산과 마케팅 분야는 경쟁하지만, 연구개발 부문은 협력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제는 경쟁자와도 협력한다. 협력 잘하기 경쟁을 하는 시대가 왔다.

이상적인 협력은 상호보완관계로 나아가는 일이다. 아내와 나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보완관계다. 나는 소극적·부정적·비관적인 데 반해, 아내는 적극적·긍정적·낙관적이다. 나는 모든 일을 대할 때 안 좋은 결과를 예상한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아예 하지 않거나, 미리 준비하고 연습한 후 착수한다. 아내는 전혀 다르다. 좋은 쪽으로 결과를 예상하고, 일단 시작한다. 아내는 가속장치, 나는 제동장치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어느 중간 지점에서 타협하고 절충하게 된다.

보완관계가 성립하는 조건은 다양하다. 첫째, 서로 가진 장점으로 다른 쪽의 단점을 메워주는 경우. 둘째, 한쪽은 남아돌고 다른 쪽은 모자라는 경우. 셋째, 너트와 볼트처럼 서로 맞물려야 제 기능을 발휘하거나, 커피와 설탕처럼 한쪽과 다른 쪽이 합해졌을 때 부가가치가 더 큰 경우. 넷째, 서로 다른 게 섞여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경우 등이다.

나는 연설비서관 시절 이러한 상호보완의 효능을 체험했다. 이전까지 경제 분야 연설문만 썼던 내 글에 정무·외교·문화 분야를 담당하는 행정관들이 각기 다른 시각에서 내용을 가미해주니 글의 완성도가 올라갔다. 일이 몰린 사람은 바빠서 짜증 나고, 한가한 사람은 일이 없어 눈치를 보는 일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대통령에게 혼이 나건, 칭찬을 받건 희로애락을 함께하게 됐다. 정보와 일과 시간의 공유를 통해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 관계를 만든 셈이다.

 

 

(3)싫은 사람과 더불어 살기

 

나는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한 사람이라도 나를 싫어하면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어느 집단에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 나는 나와 원만한 관계에 있는 아흔아홉 명은 젖혀두고 나를 싫어하는 한 사람에 매달렸다. 어떻게든 그 한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만들 방도를 찾았다. 찾은 방법은 그때그때 상대에 따라 달랐다.

 

 

 

 

첫째, 한배 타기다. 증권회사에 다닐 적에 불편한 동료가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데, 입사는 1년 이른, 애매한 선배였다. 말을 트고 편하게 지내면 좋으련만 그가 원치 않았다. 서너 살도 아닌 한 살 터울이어서 더 어정쩡했고, 사사건건 신경전을 벌였다. 그러다 우연히 그와 내가 같은 주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후 관계가 돌변했다. 주식 가격이 등락할 때마다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하는 사이가 됐다. 그때 깨달았다. 불편한 관계일수록 이해득실을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후 그는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로 이사까지 오게 됐고, 아파트 가격의 오르내림에 따라 기쁨과 슬픔도 같이하는, 그야말로 고락을 함께하는 동지가 됐다.

한배를 타는 가장 흔한 방법은 같이 일해 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알고 보면 나쁘지 않다. 그 사람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평소의 그에 관한 선입견이나 소문, 평판 등으로 인해 왠지 싫었던 사람도, 같이 일해 보면 좋은 사람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특히 힘든 일을 함께 해내거나 위기 극복의 경험을 공유하면 죽마고우 부럽지 않은 관계가 될 수 있다. 그러니 함께 일해 보기 전까지는 사람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두는 게 맞을 듯싶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쓸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공동의 적을 만드는 것이다. 회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다른 부서로 가게 됐다. 그런데 그 부서에 오래 근무한 만년 대리가 있었다. 직급은 내가 높았지만, 일솜씨는 그가 한 수 위였다. 기 싸움이 시작됐다. 그는 직원들을 부추겨 은근히 나를 따돌렸다. 보고는 면피하는 수준에서 건듯건듯하기 일쑤였고, ‘일은 과장인 네가 알아서 배우라’는 식으로 업무 파악에도 비협조적이었다. 밥도 사고, 술도 마셔봤지만 나를 대하는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옆 부서 과장과 시비가 붙었다. 처음에는 조용히 옥신각신하더니 점차 언성이 높아지고 주먹다짐까지 오가는 싸움으로 번졌다. 나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의 편을 들었다. 급기야 옆 부서 과장과 내가 싸우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날 이후 그와 나는 함께 전쟁을 치른 전우가 됐다. 주변에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함께 미워할 대상을 찾아보라. 그 대상을 물고 뜯고 씹으면서 둘은 어느덧 서로에게 겨누던 총구를 돌려 합동작전을 펼치는 끈끈한 결사체가 돼 있을 것이다.

셋째, 냉전 상태 유지하기다. 싸움이 일어날 소지를 차단하면서 냉랭한 가운데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싸우지도 않지만 굳이 화해무드를 시도하지도 않는다. 군대 한 번 다시 왔다 생각하고 긴장을 유지하면서 그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를 견디는 것이다. 가끔 마주칠 때마다 서먹하고 기분이 싸악 나빠지긴 하지만, 나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관심 끊고 살면 된다. 형식적으로 지킬 건 지켜주되, 만나는 자리를 가급적 피하고, 말도 최소한으로만 섞으면서 말 그대로 데면데면 지내면 된다. 그러다 보면 부딪칠 일도 미워할 일도 없어진다. 데탕트에 대한 기대만 내려놓으면 이 방법도 나쁘지 않다.

넷째, 아슬아슬한 관계가 힘들다면 툭 터놓고 겨루는 것도 방법이다. 고름은 살이 되지 않는다. 곪은 데는 터트려야 한다. 한 번 터트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처는 덧나게 마련이다. 서너 번은 터트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터트린 데에 딱지가 내려앉는다. 미운 정이 들고 굳은살이 박인다. 참기 힘들거든, 속 썩이지 말고 털어놓아 보라. 술이 곁들여지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된다. 왜 진즉 이렇게 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의아해할 수 있다. 다만 선은 지키면서 말해야 한다. 거리낌 없이 털어놓다 보면 아예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다섯째, 관계보다 일을 우선하기다. 직급과 직책에 맞게 상사는 상사답게, 부하는 부하답게 행동하면서 맡은 역할에 충실한다. 관계에 신경 쓰는 조직일수록 일이 많지 않거나 열심히 일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런 조직은 일의 성과나 사람에 대한 판단을 옳고 그름이나 맞고 틀림보다, 좋고 싫음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배부른 감정 놀이에 빠져 있는 셈이다. 진짜 바빠 봐라. 그런 감정을 느낄 겨를이 있는지. 관계에서 느끼는 호불호 감정은 어쩌면 한가함의 부산물일지도 모른다.

여섯째, 수그리고 들어가거나 실력으로 제압하기다. 관계는 어차피 기 싸움이고, 선택지는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오메 기죽어’ 하면서 꼬리를 내리거나, ‘그래, 네 똥 굵다’, ‘졌다 졌어’ 하면서 스스로 모자람을 인정하고 ‘나 잡아 잡숴’ 하며 종속을 자처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너는 내 상대가 안 된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대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처음에는 시기하고 질투하다가, 더 나으면 두려움을 느끼고, 그보다 더 낫다고 판단하면 우러르게 된다. 종속과 지배 둘 가운데 어느 쪽이건 상하와 우열이 분명해지고 위계가 형성되면 관계는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런 질서 안에서 갈등을 덜 느끼며 살 수 있다.

일곱째, 자기만의 피난처 갖기다. 안 맞는 사람과의 만남을 일종의 재난이라고 생각하고, 취미를 갖거나 동호회 모임에 나가는 방식으로, 마음을 다른 데로 돌려보라. 스페인어로 안식처를 ‘케렌시아’라고 하는데,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소가 잠시 쉬는 곳을 뜻한다. 어디 소만 케렌시아가 필요하겠는가. 우리에게도 안식처가 필요하다. 관계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 관계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자기만의 케렌시아를 찾아보자.

끝으로, 이도 저도 아니라면 ‘언제나 끝은 있다’고 생각하자. 잠깐의 인연일 뿐 이 또한 지나간다. 모든 관계에는 종착점이 있다. 직장의 경우 인사발령이나 퇴직 등으로 언젠가는 헤어진다. 둘 중 하나가 먼저 죽을 수도 있다. 그렇게 미운 사람도 헤어지고 나면 궁금하고,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군대에서 엄청 못살게 굴던 고참병을 전역 후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이제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도 되니 기쁘고, 괴롭히던 사람이 외려 당황해하며 수세에 몰리는 관계 역전이 짜릿했다. 관계가 힘든가. 힘들면 시간을 견뎌내자.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건 진리다.

 

 

(4)지나온 다리를 불사르지 말라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같이 만나고, 다시 안 볼 것처럼 헤어진다. 틀렸다. 금세 헤어질 것처럼 만나고, 영원할 것같이 헤어지는 게 맞다. 거자필반이라 했다. 만났던 사람은 다시 만난다. 헤어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25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그사이 아홉 번 직장을 그만뒀다. 그때마다 사람들과 헤어졌다. 모든 만남은 헤어짐을 낳는다. 내 기억 속 헤어짐은 어머니와의 이별에서 시작됐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내가 열한 살 때였는데, 지금껏 그 이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남은 짧았고 헤어짐은 길었다. 학창시절과 직장생활 동안 만났던 무수한 사람과도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을 모실 때는 그 시간이 힘들어 임기 끝나는 날만을 고대했다. 마침내 그날이 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영영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길면서 짧았던 그와의 5년은 나에겐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됐다.

잘 헤어져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헤어지기 달포 전, 봉하마을을 찾았다. 대통령께서 만난 후 처음으로 “원국씨”라고 부르셨다. 그 전엔 ‘연설비서관’, ‘강 비서관’, ‘강원국씨’가 고작이었다. 그분에게 “원국씨”는 다정함의 표현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분의 사람이 됐다.

많은 사람이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같이 만나고, 다시 안 볼 것처럼 헤어진다. 틀렸다. 금세 헤어질 것처럼 만나고, 영원할 것같이 헤어지는 게 맞다. 모든 만남에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 다른 직장으로 옮겨야 했을 때, 평소 관계가 좋지 않던 후배 직원이 선물을 내밀었다. 그 친구에게 나는 잔소리만 하던 꼰대 같은 존재였으니,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후련해할 법도 하건만, 그는 작은 선물로 아쉬움을 표했다. 이젠 내게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아니 보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됐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을 텐데, 선물을 전하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동안 서먹했던 마음의 앙금이 눈 녹듯 사라졌고, 이를 계기로 두고두고 연락하는 사이가 됐다. 헤어지는 순간이야말로 작은 행동, 말 한마디로 관계를 호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일찍이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그러지 않았는가. “끝이 좋아야 다 좋다.”

헤어짐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헤어지는 게 맞다. 더 나빠지기 전에, 미련 두지 말고 떠나야 한다. 직장에서 사사건건 부딪치는 상사를 만났다. 처음에는 고진감래란 말을 믿고 버텨봤다. 그런데 지나가는 터널이 아니었다. 갈수록 깊이 빠지는 수렁이었다. 도무지 참고 견뎌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직장을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당시 나는 한겨울 바닷가를 서성이는 사람이었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몸을 던져 그의 품에 안기지도, 그렇다고 그 해변을 떠나지도 못하는 신세였다. 떠나기로 결심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었다. 때로는 인내가 미덕은 아니다. 우유부단함일 뿐이다. 헤어질 용기가 필요하다.

“슬퍼하지 말아요. 다 끝난 거 알아요. 그러나 인생은 흘러가고 이 오래된 세상도 계속 돌아가고 있어요. 그냥 기뻐하기로 해요.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있으니. 불타는 다리를 바라볼 필요는 없어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인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부른 ‘포 더 굿 타임’의 가사인데, 헤어지는 연인이 나누는 대화다. ‘불타는 다리’는 깨진 관계나 지난 추억을 말하는 듯하다.

살아오면서 지키려는 원칙 가운데 하나가 ‘건너온 다리는 불사르지 말자’는 것이다.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고 했다. 만났던 사람은 다시 만난다. 헤어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악연일수록 질기게 돌아온다. 세상사가 그렇다. 오죽하면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겠는가. 어떤 이유로 헤어졌건 헤어지고 나서 욕하면 안 된다. 상대방의 잘못으로 헤어졌을수록 더욱 그렇다. 회사나 공직에서 새로운 상사가 왔을 때, 전임 상사를 깎아내리며 지금의 상사를 치켜세우기도 하고, 과거 잘못을 전 상사 탓으로 돌리며 헐뜯기도 한다. 그런 직원을 새로 부임한 상사는 어떻게 볼까. ‘내가 나가고 나면 내게도 저런 소리를 하겠구나. 믿을 수 없는 사람이군.’ 십중팔구 이렇게 생각한다. 이는 직장을 옮겼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전 직장을 깎아내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누워서 침 뱉기다. 마치 새로운 애인을 만나면서 이전에 만났던 연인을 욕하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을 보면 정나미 떨어지지 않던가.

‘건넌 다리는 불사르지 않는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게 ‘꺼진 불도 다시 보자’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회생하고 부활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정권이 바뀌면서, 혹은 새로운 사람이 기관장이나 최고경영자로 오면서 운이 다한 줄 알았던 사람이 화려하게 부활하거나, 인생 전반전에는 맥을 못 추다가 후반전이나 연장전 들어 승승장구하는 사람을 봤다. 참으로 인생은 알 수 없다. 누구나 인생에 불씨 하나씩은 갖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다 타버려 재가 된 것 같지만 어떤 계기에 불씨가 되살아 활활 타오를지 모른다.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사람 가운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래서 홀대하고 있는가. 자나 깨나 불조심해야 한다. 어느 불씨에 불이 붙을지 모른다. 나아가 주변을 살펴야 한다. 한직에 밀려나 있는 사람이나 찬밥 대우받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여줘라. 전화 한 통화, 문자 메시지 한 줄 같은 작은 관심 표명이 나중에 어떤 기회를 가져다줄지 모른다.

인간관계는 물처럼 흘려보내지 말고 저장해야 한다. 돈을 저축하듯, 돈보다 더 귀한 사람과의 관계를 축적해야 한다. 관계는 세 종류다. 가족이나 직장동료와 같이 매일 만나는 관계, 누군가에게 소개받거나 모임에 나가서 새롭게 만나는 관계, 그리고 간혹 연락해서 밥 먹고 커피 마시는 관계가 있다. 모든 관계가 다 소중하지만, 이 세 번째 관계가 특히 중요하다. 일 때문에 만나기도,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 만나기도 하는 이 관계에 헤어진 사람도 포함해서 관리해야 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은 잠시 헤어진 사람이다. 가끔은 휴대전화 속 연락처를 들여다보고, 그런 사람을 떠올려 약속을 잡아 보자. 만남이 다소 부담스럽다면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전화나 문자로 잊지 않고 있음을 알려만 줘도 괜찮다. 겪어본 사람은 안다. 아무런 용건 없이, 그저 생각나서 연락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그와 소원했던 관계가 전화 한 통화로 시공을 뛰어넘어 다시 회복되는 그 기분 좋은 경험 말이다.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잘 만나는 것만큼 잘 헤어져야 한다. 현재 같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만큼, 헤어진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나와 헤어진 사람의 말 한마디에 내 이미지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험난한 인생길에 동무가 되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한다. 모든 인연을 자신의 성장 동력으로 삼아보자. 서로가 서로에게 머물고 연결하는 정거장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풍요롭고 행복하겠는가.

 

 

(5)“이 외로움을 어찌할까”

 

 

 

초등학생 때 전학을 두 번이나 갔다. 친구를 사귈 만하면 학교를 옮겼다. 2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는 방과 후 집에 오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동네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도 해 질 녘이면 ‘밥 먹으라’는 엄마들의 부름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놀이터엔 덩그러니 나 혼자 남았다. 내 외로움은 그렇게 시작됐다.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늘고 있다. 1인 가구도 늘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만 외로운 게 아니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나이 든 사람만 외로운 게 아니다. 요즘 청년들은 더 외로워한다. 우리나라 20대 10명 중 6명이 외로움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빽빽하게 연결된 네트워크 과잉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사람들에게 외로움이라니.

외로움은 인간의 숙명이다. 어머니 자궁 안에서 완전한 충만감을 느끼던 태아는 탯줄이 끊어지며 그 완벽한 세상과 결별한다. 어머니로부터 분리되고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가 갖는 서러움. 살면서 문득 느끼는 외로움은 그곳을 그리워하고, 그곳으로 회귀하려는 원초적 욕구 같은 것 아닐까.

우리는 여러 경우에 외로움을 느낀다. 누구도 내 마음을 몰라 줄 때,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 느끼는 소외감도 외로움이다. 나를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아니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으면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걸 보면 그렇다.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고립감도 외로움을 불러온다. 인간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한 존재로 진화해 왔다. 주변 사람에게 배제되고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으면 위태로움을 느낀다. 모두가 나를 외면하고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 외로워한다.

외로움은 무언가 비어 있는 허전한 느낌이기도 하다. 결핍이 있거나, 자신이 기대하는 삶의 조건과 실제 생활과의 괴리가 있을 때 우리는 외롭다. 외로움은 타인과의 비교에서도 온다. 다른 사람에 비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무엇을 빼앗긴 듯한 박탈감이 몰려올 때 우리는 쓸쓸하다.

외로움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외로움이 깊어지면 불안과 무기력에 빠지고 부정적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더 우울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는 급기야 우울증을 불러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을 높인다. 신체적으로도 면역력 저하와 함께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올라간다. 외로움을 심하게 느끼면 담배 15개비를 피는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기억력과 인지 기능 저하로 창의력, 의사결정 능력을 떨어트리고 치매 발병 위험을 키운다.

이처럼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외로움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외로운 이유와 원인이 다양한 만큼 외로움을 떨치는 방법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첫째, 외로움을 누구나 겪어야 하는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끝까지 함께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견딘다. 나는 방송하러 라디오 부스에 들어갈 때마다 혼자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절대 고독의 순간. 나는 그때마다 내가 독립적이어서 외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며 버틴다.

둘째, 관계를 확충한다. 우리 뇌에는 배고픈 상태에서 음식을 봤을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 있다. 그런데 이 부위는 외로움을 느낄 때 사람들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똑같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허기와 외로움, 식욕과 관계 욕구가 같은 맥락에 있는 셈이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듯 외로우면 관계를 맺어야 한다.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사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때 주의할 것은 관계에 과도한 기대를 걸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남의 눈에 들기 위해 안간힘 쓰지 않고, 남의 눈 밖에 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때 외롭지 않을 수 있다. 관계에 전적으로 의지해서도 안 된다. 혼자 서는 게 먼저고, 관계는 다음이다. 혼자 있을 수 있어야 함께할 수 있고, 외롭지 않다.

셋째, 심취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다. 나의 몰입 대상은 글쓰기다. 글 쓰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일이다. 오직 나의 집중력과 상상력만으로 써야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글을 쓸 때 나는 외롭지 않다. 대통령 연설비서관 시절 원고 마감 하루 전날, 저녁을 먹고 들어오면 청와대 본관 2층에는 오로지 나 혼자였다. 천장은 왜 그리 높고 방은 얼마나 휑한지. 외로움이 두려움으로 몰려왔다. 무엇보다 다음 날 아침까지 원고를 쓸 수 있을지 불안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YTN 방송을 묵음으로 켜두고 글을 썼다. 글 쓰는 외로움으로 외로움을 물리쳤다.

독서 또한 개인적 고립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책의 저자, 등장인물과 만나고, 그들의 생각에 맞닿으며 삶과 마주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그림 그리기, 사진 찍기, 등산, 낚시, 악기 다루기 등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이렇게 혼자 취미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그런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넷째,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킨다. 독일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이런 말을 했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을 의미하지만,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뜻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고독은 홀로 있어도 편한 상태이고, 외로움은 홀로 있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다.

우리는 때때로 고독해야 한다. 사람 사이에서 시달릴 때, 주위 사람들에게 지칠 때 고독은 안식처가 된다. 고독한 시간에 우리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돌아본다. 자신과 대화하고 스스로에게 다정해진다. 뿐만 아니라 고독 없이 정신적 성장은 있을 수 없다. 경쟁심과 시기심, 우월감과 열등감에 파묻혀 사는 일상은 외롭지 않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하다. 고독할 때 영혼이 깃든다.

다섯째, 사회적으로 해결한다. 영국에는 외로움 담당 장관이 있다. 외로움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전염병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1등이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혼자 사는 가구가 둘 이상 사는 가구보다 많아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우리나라도 국가적 차원의 대처가 필요하다.

초등시절 느꼈던 외로움이 지금도 스산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억울하지 않다. 인간은 너나없이 외롭다.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도 외롭고, 곁에 있어도 보고 싶은 것처럼 사랑할수록 더 외롭다. 외로움은 모두의 숙명이다. 자신을 한 뼘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활용해 보자.

 

 

(6)강자와 약자의 권력관계

 

직장갑질의 한 피해자가 ‘한국 사회에 던지고 싶은 말’을 팻말에 써 들고 있다.

 

 

“직원 바꿔”, “제가 직원인데요”, “직원 바꾸라니까”, “직원이니까 말씀하세요. 그런데 왜 반말하시는 거죠? 제가 여자라서 그런가요? 아니면 전화 거신 분이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요? 그것도 아니면 상급기관이라고 그런 겁니까?”

‘직원 아닌 직원’은 아내다. 아내는 1980년대 후반 금융기관에서 일했다. 당시 ‘하늘 같은’ 감독기관에서 전화를 받았고, 다짜고짜 반말하는 이유를 묻자 상대는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부서장 호출이 있었고 불호령이 떨어졌다. 나이가, 남성이란 사실이 권력이던 적이 있었다. 어린 여성이 바른 소리를 하면 ‘여자 주제에 건방지다’는 소릴 들어야 했다.

세상의 모든 관계는 강자와 약자의 권력관계다. 상사와 부하, 부자와 빈자, 중앙부처와 산하기관, 사용자와 노동자, 구매자와 판매자, 심지어 선생님과 학생, 부모와 자식도 그렇다. 권력관계에서는 명령하는 사람과 복종하는 사람, 지배하는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 가해자와 피해자, 서열과 위계가 만들어진다. 힘이나 돈, 영향력에 의해 수직관계, 상하관계, 주종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대부분 강자는 약자 여럿을 거느린다. 강자 하나에 약자는 다수다. 강자는 약자들을 평가하고, 그중에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에 반해 약자는 강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한다. 강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도태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산다. 강자가 약자의 목줄을 쥐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약자의 비애고, 누구나 강자가 되려고 하는 이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강자는 힘이 커질수록 강자로서의 지위를 잃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회사 조직에서 부서장일 때보다는 임원일 때, 임원일 때보다는 사장일 때 잘릴 확률이 높다. 힘을 가질수록 더 많은 역할을 요구받고, 그럴수록 역할을 달성하기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위로 올라갈수록 힘센 사람의 눈에 띄게 돼 작은 잘못도 숨길 수 없게 된다. 힘이 강해질수록 더 위험해지고 그 지위를 누릴 시간은 얼마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강자는 늘 강자가 아니다. 약자도 마찬가지다. 강자가 약자가 되고 약자도 강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역전과 패자부활이 가능한 것이 민주주의다. 강자는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기에 겸손하고, 반대로 약자는 강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분발할 수 있다. 강자는 또한 누군가에게는 약자이고, 약자 역시 누군가에게는 강자일 수 있다. 따라서 세상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업신여길 수 있는 대상도 없다. 강자와 약자가 사슬처럼 엮여 있을 뿐이다.

강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아량이 아닐까 싶다. 강자는 베풀어야 한다. 모든 관계에서는 거래가 일어난다. 거래품목은 돈이나 현물같이 눈에 보이는 것이거나, 사랑과 존경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거래 방식은 다섯 가지다.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느냐, 먼저 받고 나중에 주느냐, 동시에 주고받느냐,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느냐, 받기만 하느냐이다.

이 가운데 강자는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 방식을 택하는 게 맞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거래도 좋지만, 여간해선 오래 가기 어렵다. 아무리 호인이라 해도 베풀기만 하는 건 한계가 있기에 그렇다.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다는 의미는 다양하다. 약자에게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강자가 먼저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약자들이 싫어하는 일을 솔선수범해 보이는 것, 일이 잘못됐을 때 남 탓하지 않고 자신부터 돌아보는 것, 자기 말을 따라줄 것을 기대하기 전에 자신부터 몸을 낮추고 경청하는 것 등이다.

그 방식이 어떻든 남에게 베푸는 일은 결국 자신에게 베푸는 일이다. 성경에도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고 하지 않았나. 혹여 심은 대로 거두지 못하더라도 그런 정도의 위험부담은 감수할 용의를 가져야 하는 게 강자의 자리다.

그런데 통상 강자는 먼저 받고 나중에 주거나,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기껏해야 상호주의를 내세우며 주고받기를 동시에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베풂과는 거리가 멀다. 강자는 주는 대로 받는다는 진리를 믿어야 한다. 내가 베풀면 상대도 베풀 것이라는, 사람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

그렇다면 약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나는 문제의식과 저항정신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깨어 있어야 한다. 강자는 발언권과 영향력이란 무기를 갖고 있다. 발언권이 세기에 몇몇 강자의 말은 여론이 되고 모든 사람의 말로 둔갑한다. 강자는 조직이라는 방패도 갖고 있다. 소아(小我)를 버리고 조직을 위해 희생하라고 한다. 강자의 이익에 불과한 일도 모두의 번영을 위해 그래야 한다고 윽박지르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이기주의자라고 매도한다.

강자는 또한 지금까지 그래왔다며 전통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래야 하는 게 우리의 문화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그들이 강자가 될 수 있었던 환경을 유지하고 더 강고하게 다지고 싶은 것이다. 이에 응하는 게 구성원의 마땅한 도리라고 말한다. 따르지 않으면 “너는 태도가 글러먹었다”며 약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정당화한다.

약자는 이런 강자의 논리에 휘둘려선 안 된다. 아무리 강자의 요구라 하더라도 모든 걸 들어줄 순 없다. 또 강자의 말이 모두 옳은 것도 아니다. 들어줄 수 없는 것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들어줘선 안 된다.

약자는 또한 누군가에게 입은 피해를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하거나 대물림하는 방식으로 가해자 대열에 끼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손해와 불이익이 따르더라도 나부터 부당한 먹이사슬의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아내가 은행 지점에서 일할 때다. 공과금 내는 마감 날, 영업시간이 지났는데도 객장 안은 사람으로 붐볐다. 시간 안에 시재(입출금)를 맞춰야 하는 창구 여직원들은 발을 구르며 수납 업무를 했고, 일부 남직원과 상사들은 뒤쪽에서 팔짱 끼고 구경만 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시간 안에 업무를 처리할 수 없다고 판단한 순간, 아내는 “나 못 해”라는 단말마와 함께 돈통을 객장 안에 던져버렸다. 동전이 사방으로 튀었고, 객장은 일순 조용해졌다.

마감시간이 있음에도 으레 받아주리라 믿고 뒷문을 통해 들어오는 고객과 바쁜 텔러 직원들을 뒤로 한 채 한가하게 노는 남직원들에 대한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숙직실로 들어갔던 아내가 30여 분쯤 지나 나와 보니 뒤에서 노닥거리던 직원 모두가 달려들어 업무를 거의 다 처리해놓고 있었다. 이후 아내는 인사 때마다 승진자 명단에서 제외되곤 했지만, 지금도 그날의 돈통 투척 사건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다닌다.

 

 

(7)삶의 지경을 지키는 거절

 

 

 

외할머니 손에서 컸다. 외할머니와 헤어지는 꿈을 꾸면서 자랐다. 특히 전쟁이 나서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꿈을 자주 꿨다.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던 듯싶다. 자라서도 두 마디 말을 하지 않고 살았다. ‘하기 싫어요’와 ‘할 수 없어요’다. 관계가 틀어지거나 나에 대한 평판이 나빠질까 봐서다.

나 같은 사람은 두 가지 성향을 띤다고 한다. 하나는 거부 민감성이고, 다른 하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다. 둘 다 맥락은 같다. 다른 사람에게 거부당할까 봐 불안해하고, 거부당하지 않기 위해 거절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늘 거부당하는 상황을 걱정하고, 거부당했을 때 낙담하고 우울해한다. 심하면 화를 내거나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거절하지 못했을 때도 자책하거나, 부탁한 사람을 원망하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다. 불편한 상황에서도 억지로 화를 참고 싫은 내색을 하지 못한다. 명령과 지시에 순종하고, 약속과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내키지 않는 양보와 사과를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는 남이 바라는 대로 처신한다. 좋지 않은 평판에 과민하게 반응하고, 이를 위해 손해를 감수한다. 하지만 이 모두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한 몸부림으로, 버림받지 않기 위한 안간힘으로 한다. 한마디로 피곤한 인생이다.

쉰 살을 넘으며 거절하며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거부할 권리가 있다. 거절하지 않는다고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거절한다고 평판이 나빠지는 것도 아니다. 때론 거절이 승낙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백 배 낫다고 되뇌었다.

돌아보면 세상은 나를 수없이 거부했다.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졌고, 대학도 재수했다. 회사에 들어갈 때도 단박에 붙은 적이 없다. 지금 진행하는 KBS 라디오도 교통방송에서 씁쓸하게 물러난 뒤 한참 지나 주어진 기회다.

거절하며 살아야 한다. 거절은 내 삶의 지경을 지키고, 주체적인 결정권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거절해야 할까.

첫 번째 거절의 대상은 일이다. 강의하고 글 쓰는 일을 시작하면서 강의 요청이 들어온다. 처음에는 강의 대상이나 거리, 강사료 불문하고 순서대로 받았다. 아내는 좀 가려서 받으라고 성화였다. 받아놓은 일자에 더 좋은 조건의 강의가 들어오기도 하고, 들어오는 대로 받자니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젠 거절할 것은 거절한다.

조직 생활하는 사람은 일을 거절하기 쉽지 않다. 엄연히 업무분장이 돼 있는데도 일이 선을 넘어 자신에게 흘러들어온다. 이런 일을 잘 받아주면 호인이란 소리는 들을망정 일 잘한다는 말은 듣기 어렵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후 나는 이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요청받은 그 일은 어렵지만 도와줄 다른 일은 없느냐고 물었다. 혹은 요청한 걸 다 들어줄 순 없지만, 여기까지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을 거절하는 것은 그 내용과 난이도에 따라 거절하거나 수용하기가 쉽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과 그렇지 못한 일의 경계가 비교적 분명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사나 금전적인 부탁이다. 이런 유(類)의 청탁은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두 번째 거절의 대상이다. 인사나 금전적인 부탁은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눈다. 들어줄 수 없다고 판단하면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때 대안이 있으면 제시한다. 나는 들어주지 못하지만 누구를 만나보라거나, 이런 방법도 있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들어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총량 관리를 한다. 총량 관리는 대우에서 광고 업무를 하면서 배웠다. 기업 광고 담당자는 신문, 잡지 등 각종 매체의 광고 제안을 거절하는 일이 업무의 절반이다. 해당 매체가 힘이 있기에 감정 상하지 않게 거절해야 한다. 한 매체의 부탁을 들어주면 다른 매체가 벌떼처럼 달려든다. 그래서 이렇게 했다. 새해가 되면 모든 매체를 불러놓고 1년 광고예산을 공개한 후 매체별로 쓸 수 있는 금액을 배정하고, 연중 필요한 때 쓰라고 언명한다. 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유효하다.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총량을 정해 놓고 사람과 사안에 따라 안배한다. 안배 기준은 부탁을 들어줌으로써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부담과 얻을 수 있는 이익 사이의 무게다. 물론 부탁한 사람과의 친소 정도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셋째, 지나친 간섭에 ‘No’라고 말하고, 다른 의견에도 ‘아니오’라고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의 맥락 속에서 산다. 다른 사람의 간섭과 의견에 순응하기만 하면 내 생각이 설 자리는 없다. 생각의 조류에 휩쓸려 조난자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넷째, 소박한 삶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도 거절은 필요하다. 세상은 내게 요구하는 것이 많다. 경제적 윤택과 사회적 출세, 인기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조른다. 이에 불응하면 인생이 망가질 것처럼 겁도 준다. 이런 요구에 휩쓸리거나 타협하지 않고 내게 필요한 수준까지만 하겠다고 다짐하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거절하는 입장에만 놓이진 않는다. 부탁해야 할 일도 많다. 이때 거절당하는 걸 겁내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고향 후배 중 영업에 발군인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영업에 뛰어든 그는 파는 것마다 대박 행진을 이어왔다. <거절을 거절하라>란 책의 저자로 근자에는 의사를 상대로 영업하고 있는데 역시 최고의 실적을 기록 중이다. 그에게 비결을 물었다.

“처음에는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입니다. 저도 처음 6개월은 1200곳을 방문해서 2건을 성사시켰을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그마저도 1건은 하루 만에 취소됐고요. 하지만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우선 아는 사람을 찾아가지 않으니 거절당해도 상처받을 일이 없지요. 무엇보다 나는 상품을 팔러 간 게 아니라 좋은 정보를 주러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입하지 않으면 그들만 손해라고요. 그만큼 파는 상품에 자신을 가졌습니다. 그게 없으면 팔지 말아야지요.”

후배처럼 거절을 수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내게 거절할 권리가 있는 만큼 남의 거절도 인정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거절당하는 자신도, 거절하는 상대도 마음이 편하다. 무엇보다 부탁할 때는 거절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거절당하더라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결과를 모두 내 탓으로 돌리고,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거절당하는 게 더 이상 두렵지 않고, 거절이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8)대화가 필요해

 

나이 먹어가며 실감한다.

가까운 곳에 언제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늘 다정한 관계가 아니어도 말이다.

 

 

몇 해 전 아내가 퇴직했다. 종일 껌딱지처럼 붙어살다 보니 관계가 늘 살갑기 어렵다. 대화다운 대화는 하루 한 번 이뤄진다. 아침 산책길에서다. 나는 이 시간이 좋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보듬게 된다. 아내를 향한 마음도 너그러워진다. 서로를 환대하는 안온한 시간이다.

관계를 맺는 대표적인 방식이 대화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바란다. 그것이 부모와 자녀든, 상사와 부하든, 부부간이든 마찬가지다. 어울려 살기 위해 우리는 상대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며, 내게 어떤 기대와 요구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게 대화다.

대화가 부족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한둘이 아니다. 상대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 배려해놓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짜증을 낸다. 자신은 속내를 털어놓지 않으면서 상대는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이따금 대화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칭찬과 감사보다는 지적과 탓을 하기 일쑤고,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많이 말하게 된다. 감정을 말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말하고, 친근하기보다는 권위적으로 말한다. 대화 주제도 가볍고 긍정적인 얘기가 아니라 심각하고 부정적인 내용이 많다. 이런 대화는 십중팔구 싸움으로 번진다. 차라리 말을 말아야지 하면서 대화한 걸 후회하고, 대화를 더 멀리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가장 큰 문제는 어쩌다 한번 대화하면 마땅히 얘기할 거리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우리가 대화할 때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시작하는 말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 어렵다. 라디오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매번 느끼는 게 첫마디의 어려움이다. 좋은 첫마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음 말을 이끌어내 대화 자리를 풍성하게 한다. 전체 대화의 기본 방향을 결정하기도 한다. 첫마디에서 대화의 성패가 판가름 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문장이 글의 기조를 좌우하듯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상대방의 근황을 소재로 하면 좋다. 인터넷에서 인물 검색을 하거나 상대방의 관계망 서비스에 들어가 축하하거나 위로할 거리를 찾는다. 상대가 책을 썼다면 목차 정도는 읽어보고 만나야 한다. 필요하면 상대측과 가까운 사람에게 전화해 근황을 묻는 성의도 보여야 한다. 상대의 개인적인 일일수록,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일수록 더 큰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다.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할 수도 있다. 누구나 정보 욕구가 있다. 정보를 주는 사람이 환영받는다. 흔히 말은 즉흥적인 것이니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이야말로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헤어지고 나서 ‘아, 이 얘기는 했어야 하는데…’ 하며 후회하거나, ‘괜히 만났어. 시간만 뺏겼네’라는 상대의 불만을 살 수 있다.

대화 자리에는 한두 가지 얘깃거리를 만들어가자. 나를 만나면 뭔가 얻는 게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야 한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주요 뉴스나 어떤 이슈가 있는지 휴대전화로 검색해본다.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책의 목차를 보기도 하고, 칼럼이나 블로그 글을 읽으며 이야깃거리를 찾기도 한다.

감정도 좋은 대화 소재다. 서로가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그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대화가 필요하다. 감정 대화는 상대에게만 하지 않는다. 크게 여섯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나에게, 내가 너에게, 네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내가 그에게, 네가 그에게. 어떤 경우든 공감하면서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상대와의 감정 대화는 오해와 쌓인 감정을 푸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잘 듣는 것으로 대신한다. 경청이야말로 최고의 대화 기술이다. 경청하기 위해서는 말해야 한다는 부담감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아는 내용, 말하고 싶은 주제가 나올수록 한 호흡 늦추고 대화의 흐름을 지켜보다가 끼어든다. 내 말은 부족하다 싶을 만큼만 하고, 상대 말에 내 말을 보태거나, 상대 말을 ‘이런 뜻이죠?’ 하며 수용하고, 질문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중심에 놓고 대화한다. 반박하더라도 먼저 동의해준 다음에 한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으로 대화하자. ‘그러나’, ‘하지만’보다는 ‘그리고’, ‘아울러’라는 말로 내 생각을 보태고, ‘그건 아니야.’ 나 ‘이래서 안 돼’와 같이 남의 말을 깎아내리는 뺄셈 대화보다는 그 말을 보완하고 보충해주는 덧셈 대화를 하자. 편을 가르고 나누는 나눗셈 대화가 아니라 연결하고 결합하고 융합하는 곱셈 대화를 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많이 말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주도권을 쥐려고 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말을 많이 한다고 설득되지 않는다. 내가 주도권을 잡고 말하면 상대는 반감만 쌓일 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주어야 한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도 먼저 져줘야 한다. 때로는 알면서도 속아줘야 한다. 대신 진지한 자세로 상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욕구와 요구를 파악하며 듣는다. 그것이 진정한 주도권을 쥐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길이다.

여럿이 대화하는 자리에서는 소외되는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이 사람 저 사람 이름도 자주 불러주고 한 사람 한 사람 신경 쓰면서 고루 말할 수 있게 하자. 또 누군가 말했는데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아 민망한 상황이 되지 않도록 즉시 호응해주자. 그러면 그 사람은 두고두고 고맙게 기억할 것이다.

대화에는 역할에 따라 다섯 부류의 사람이 있다. 주도자, 협력자, 대항자, 방관자, 희생자다. 당신은 대화 자리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대화를 이끄는가, 장단을 맞춰주는가. 아니면 저항하거나 방관하는가. 모두 의미 있는 역할이다. 나는 협력자 역할에 주력하는 편이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도자는 아내다. 나는 감히 대항할 엄두를 안 낸다. 그렇다고 방관자나 희생자가 되긴 싫다. 남은 역할은 협력자뿐이다.

나는 가정의 평화를 원한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격적인 태도를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다섯 가지를 지킨다. 첫째, 아내가 싫어하는 예민한 주제는 꺼내지 않는다. 둘째, 아내의 말에 대해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는다. 셋째, 내 말에 대해서는 그것이 맞는지 스스로 의심해본다. 넷째, 말다툼이 벌어졌을 때는 문제가 확대되는 걸 방지하고 잘게 나눠 하나씩 접근한다. 이때 한 번에 30초 이상 말하지 않는다. 다섯째, 아내의 말을 비판하긴 해도 아내를 공격하거나 비난하진 않는다.

 

 

(9)타인이 ‘지옥’ 되지 않으려면

 

 

 

가까이 붙어 앉은 게 화근이었다. 고등학교 다닐 적 사귀던 여학생이 있었다. 늦은 저녁 그 친구가 찾아왔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가족들과 로스구이를 먹었다는 그의 입에서 진한 파 냄새가 났다. 그날 이후 우린 멀어졌다.

너무 가까운 거리는 위험하다. 인간(人間)은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으로 이뤄져 있다. ‘사람 사이’란 뜻이다. 사이가 좋아야 관계가 좋다. 사이가 좋다는 건 적당히 거리를 뒀다는 의미다. 극장 맨 앞줄에 앉으면 영화를 관람하기 어렵다. 너무 먼 뒷자리도 그렇다. 스크린과 적당한 거리를 둬야 온전히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사람 관계도 매한가지다. 사이에 어울리는 거리를 둬야 온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사이가 멀어도 안 되지만, 너무 밀착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가깝지 않은 관계에서는 거리 두기가 저절로 이뤄진다. 상대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서로를 배려하면서 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가까운 관계다. 연인이나 부부, 부모와 자녀 사이같이 가까운 관계에서는 선을 넘기 일쑤다. 아니 격의 없이 마음 편하게 대하는 것을 정상으로 여긴다. 그러다 보니 경계가 무너지고 선을 넘게 된다. 그 결과로 상처를 주게 된다. 마음의 상처는 대부분 이렇게 가까운 사람에게서 입게 마련이다.

가깝다고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할 때 세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는 몇 사람 걸러 아는 사이다. 이런 관계에서는 그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에 평판이 그의 인상을 좌우하게 된다. 두 번째는 그 사람을 잘 알게 되는 단계에서는 나쁜 사람이 거의 없다.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번째 단계로 나아가 더 깊이 알게 되면 그다지 좋은 사람이 별로 없다. 관계가 밀접해지면 상대에 기대하는 수준도 높아져 그걸 충족하기 어렵고 사소한 일에도 서운하고 실망할 수 있다. 너무 가까운 거리가 관계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가까워지기 위해 안달이다. 회사에서 임원이 되면 사장 주재 회의에 들어간다. 사장과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그때부턴 안전하지 않다. 창업한 회장이 경영하는 회사에서는 사장이 ‘파리 목숨’이다. 회장이 그의 이름을 아는 순간부터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 돌입한다. 그런데도 불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처럼 회장에게 자기 이름을 알리려고 몸부림친다. 가까이 갈수록 영영 멀어질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거리 두기가 필요한 이유

거리 두기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름은 낯섦을 유발하고, 낯섦은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각자는 낯선 이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얻기 위해 거리 두기를 원한다. 또 다른 이유는 누구나 자신을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관계 동심원을 가지고 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용인하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 안으로 허락하지 않은 사람이 침범해오면 불쾌하다.

그렇다면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둬야 할까.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인간관계의 거리를 네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밀접한 거리’다. 45㎝ 이내의 반 팔 정도 거리로, 연인이나 가족과 같이 높은 수준의 친밀도를 보이는 대상과의 거리를 뜻한다. 이 거리 안에 직장 동료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들어오면 거부감을 나타낸다. 둘째, 45㎝~1.2m 사이의 ‘개인적 거리’다. 보통 일반 사람들이 팔을 뻗었을 때 닿을 수 있는 길이에 해당한다. 친구나 지인과 대화를 하고 접촉하는 거리다. 셋째, 1.2~3.6m 사이의 ‘사회적 거리’로, 직장 동료와 같이 사회적 관계로 연결된 사람과의 거리다. 이 거리에서는 주로 사무적인 일을 처리한다. 넷째, 3.6~9m 사이의 ‘공적인 거리’로 타인으로부터 위협받을 경우 피할 수 있는 거리에 해당한다. 연극 무대에서 배우와 관객의 거리나 연설가와 청중 사이의 거리라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거리 두기의 기준이 있다. 나는 빈도와 농도를 기준으로 네 가지 유형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첫 번째, 빈도는 잦지만 농도는 옅은 관계다. 직장생활을 할 때 일로 만난 관계다. 두 번째, 빈도는 높지 않지만 농도가 짙은 관계다. 학교와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그렇다. 세 번째, 빈도도 낮고 농도도 옅은 관계는 거래로 만난 사람들이다. 끝으로, 빈도도 잦으면서 농도까지 진한 관계는 역시 가족이다. 여기서 농도가 거리에 해당한다. 농도가 진하면 거리가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빈도까지 높은 관계에서는 거리를 밀착하지 않는 게 좋다. 애착이 집착으로 변질할 위험이 있다.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방법은 세 가지다. 우선, 나만의 경계선을 가져야 한다. 나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 과도한 참견과 간섭, 지나친 요구 등 나의 독립을 위협하는 어떠한 시도도 단호히 거부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남이 그어 놓은 경계선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남을 억압하지 않기 위해 어디가 상대의 경계선인지 파악하려고 힘쓴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나 자신과의 거리도 두려고 노력한다. 나의 경계가 소중하듯, 타인의 경계 역시 존중받아야 마땅하고, 타인의 경계를 지켜줄 때 나의 경계 또한 지켜진다고 믿는다.

다음으로, 적정한 거리 두기다. 무엇보다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직장동료로서 선을 넘지 않는 일이다. ‘우리끼리 왜 그래?’ ‘부모가 그런 말도 못 해?’ 이런 말을 삼가는 것이다.

거리에 따라 과도한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 가족관계에서나 가능한 일을 친구 관계에서 기대한다면 남는 건 상처뿐이다. 서로가 생각하는 거리감에 차이가 없는 것도 중요하다. 한쪽에서는 둘도 없는 친구로 생각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그저 지인 정도로 생각하거나, 한쪽에서는 연인 관계로 생각하는데 다른 쪽에선 친구 정도로 여기고 있다면 관계의 종말은 불 보듯 뻔하다. 나아가 관계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아무리 가까이하고 싶어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된다. 반대로 인연이 있으면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가까워진다.

시간이 흐르면 변해가는 거리

거리 두기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도 바뀌어야 한다. 연애할 때의 끈끈한 거리를 결혼해서도 기대하는 건 무모하다. 자녀가 성인이 돼서도 어릴 적 가졌던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면 곤란하다. 또 거리는 상황에 따라서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대학 시절 친동생처럼 아끼던 후배가 있었다. 홍보실에서 그를 출입기자로 만났을 때는 거리 조정을 해야 했다. 거리 두기에 실패하면 장 폴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에 나오는 말처럼 ‘타인은 지옥’이 될 수 있다.

끝으로, 선 긋기다. 거리 조정을 해봐도 개선이 어려운 관계는 단호하게 선을 긋고 끊어내야 한다. 예를 들면 강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한 사람은 잡아먹으려고 하는 사람, 자기가 기분 좋으면 한없이 좋다가 기분이 나빠지면 언제 그랬냐 싶게 돌변하는 사람, 늘 불평불만이고 부정적인 말만 입에 달고 사는 사람, 남 탓하고 핑계 대는 사람, 쉬지 않고 남의 험담하는 사람, 자기보다 잘난 사람 있다 싶으면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는 화낼 필요도 공들일 필요도 없다. 분명히 선을 긋고 멀리하는 게 상책이다.

자율주행 기능이 있는 자동차가 늘고 있다. 앞뒤는 물론 옆 차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경고음을 울리면서 접촉사고 위험을 스스로 예방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이런 자율주행 장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0)피해야 할 사람들

 

 

 

기업에 강의하러 가게 됐다. 그 기업 회장이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았는지, 회장비서실장이 내게 연락을 해왔다. 만나 얘기를 나눠보니 ‘머리가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잠깐 만났지만, 나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을 눈치챈 듯했다. 내가 회장과 친한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과 대충 대해도 회장에게 그 사실을 얘기할 깜냥이 안 된다는 사실. 그러니까 자신의 이해에 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존재라는 낌새를 간파해낸 것이다. 깔아뭉개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예의를 갖춘 것도 아닌 무례와 무시 사이에서 나를 대했다. 교활하게 똑똑했다. 자기가 모시는 회장에게는 쓸개까지도 내놓는 시늉을 할 것이다.

관계는 말로 이루어진다. 또한 말이 곧 그 사람이다. 그러므로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과는 멀리하라, 그 첫 번째 경우가 바로 이 비서실장 같은 사람이다. 힘센 사람에게는 머리를 조아리고, 약자 앞에서는 거들먹거리는 사람. 이런 사람은 내 아내 같은 사람을 만나야 정신 차린다. 그런 꼴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아내 같은 임자를 못 만난 것이다. 아내는 강한 것은 누르고 약한 건 키워주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사람이다. 아내와 연애를 4년 가까이 했지만, 아내가 처음부터 내게 호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젠가 식당에서 실수한 종업원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서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멀리해야 할 또 한 사람은 늘 남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사람이다. 마치 자신이 무슨 심판관이라도 된 양 만나면 노상 남을 평가한다. 그것도 추켜세우는 말이 아니라 깎아내리는 말을 한다. 이런 단점이 있고 저런 허물이 있다고 폭로하고 다닌다. 시기와 질투가 말에 배어 있다. 그런 사람에게 한 말은 비밀도 지켜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유명한 누구를 알고 있다.’, ‘내가 누구와 친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자기 말은 하지 않고 ‘누구’ 말만 하는 사람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누가 이렇게 말하더라.’, ‘누가 어떻게 됐다.’, ‘누구는 어떤 사람이다.’ 등. 남 얘기를 안 할 순 없지만, 남 얘기만 하는 건 문제다. 그리고 그런 말만 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순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경우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갈라치기에 능한 사람도 피해야 할 대상이다. 늘 내 편 네 편 편을 가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피아를 구분한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동지이고, 눈앞에 없는 사람은 적이 된다. 또한 이 사람에게 가서는 저 사람 욕을 하고, 저 사람에게는 이 사람 욕을 해서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

“내가 너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누가 너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던대?”, “네가 속상할까 봐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고민 고민하다 얘기하는 거야.”

이렇게 이간질하는 사람은 절대 가까이해선 안 된다. 부처님도 입으로 짓는 업(業)에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가운데 양설이 바로 이간질하는 말이다. 양쪽에 다니면서 상대방에게 서로 다른 두 가지 말로 싸움을 붙이는 양설을 조심하라고 했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말만 입에 달고 사는 사람도 멀리하는 게 좋다. 만나면 늘 징징대고 투덜대는 사람, 자기는 운이 없고, 되는 일도 없고, 나만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사람, 모든 게 못마땅하고 일이 끝나면 꼭 뒷말하는 사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그게 안 될 줄 알았다.’, ‘이건 누구 탓이다.’ 말이 온통 후회와 남 탓뿐이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기가 빨리고 급격히 우울해진다.

말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어제 한 말 다르고 오늘 한 말 다르고, 이 사람에게 한 말 다르고 저 사람에게 한 말 다르다. 생각과 말과 행동도 다르다. 물론 생각과 말은 바뀔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 바뀌었다고 말하면 된다. 그렇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말을 바꾸고, 자신에게 불리하면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언제 그랬느냐고 따지고 달려든다. 그런 사람은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종잡을 수가 없고 예측이 안 된다. 한마디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렇게 진정성이 없는 사람도 피해야 할 대상이다.

다음은 염치없는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지만, 사람이기에 자신의 이기적 속성을 감추려고 한다. 그래서 있는 것이 체면이다. 사람은 체면을 차리려고 한다. 그런데 체면이 깎이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제멋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 그야말로 뻔뻔한 사람이 있다. 항상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이런 사람 입에서는 사과나 양보라는 게 나오지 않는다. 반성도 없다. 잘못하고도 잘했다고 우긴다. 아니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어르신이 서 계시면 아예 모른 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리를 양보하진 않더라도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도 있고, 양보하지 않는 걸 나무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내가 지켜본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런 사람이었다. 임기 초반 한 비서관의 뇌물 수수 사건이 터졌을 때도, 농민 시위에서 두 분 농민이 돌아가셨을 때도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했다. 나는 이것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양심이고 도덕성이지 않나 싶다.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사람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아무에게나 반말하는, 오만하고 불손한 사람이 있다. 자신에 대한 대접이 소홀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 늘 남을 가르치려 들고, 자기 말만 옳다고 주장한다. 상대를 존중하거나 배려하는 건 언감생심이고, 자신의 감정조차 절제하지 못한다. 자주 부아가 치밀고 폭언과 욕설을 남발한다. 감정의 기복이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주위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굳이 이런 사람과 가깝게 지낼 이유가 없다.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도 멀리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나눠가져야 한다. 그런데 그 기회를 독점하려고 하거나, 자기 말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알아, 알아!” 하면서 남의 말을 끊거나, “너는 왜 그런 말을 해!” 하면서 입을 막는다. “아, 그 말 하니까 생각나는데” 하며 수시로 끼어든다. 모임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놓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말을 시키지 않으면 토라진다. 정작 자기가 말은 가장 많이 하면서 남에게 ‘말이 많다’고 타박한다. 가급적 이런 사람도 안 만나는 게 좋다. 나는 세 가지를 통해 직장생활을 잘할 수 있었다. 남의 말을 잘 듣고, 남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고, 이도저도 아니라면 침묵하는 것이다. 말하기를 좋아하셨던 고 김대중 대통령도 손목시계와 집 안의 벽에 ‘침묵’, ‘경청’이란 문구를 붙여놓고 수시로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끝으로,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말을 자기 마음대로 편집한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실을 과장·축소·왜곡하는 건 다반사이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사실과 자기 의견을 섞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귓속말을 자주 하고 밀실에서 끼리끼리 모여 말하는 걸 즐긴다. 말이 공개적이고 투명하지 않다.

지금까지 말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그 자의 문제를 지적하고 맞서 싸우기. 둘째, 만나긴 하지만 무시하기. 셋째, 만나지 않기. 나는 세 번째를 권한다. 피할 것인가, 타도할 것인가, 함께할 것인가.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

 

 

 

(11)여유가 만드는 인간의 품격

 

 

 

나이 예순을 넘으니 되고 싶은 게 생겼다. 학창 시절 ‘장래 희망’란에 써넣은 게 있었지만, 그건 그저 전시(展示)용 꿈이었을 뿐. 이제 비로소 현재 희망이 생겼다. 그건 바로 품격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어감에서 느끼는 품위와 품격은 다르다. 품위는 교양 수준이나 문화적 발전단계와 관련이 있고, 품격은 그야말로 한 사람의 인품을 가리키는 것 아닐까. 품위의 위(位) 자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일정한 기준에 의해 매겨진 등급이나 등수를 의미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내게 품위는 오르지 못할 나무와 같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일 수도 있고. 하지만 품격의 격(格)은 다르다.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레 어울리는 분수를 뜻한다. 한마디로 격은 옳고 그름도, 높고 낮음도 아니다. 자기에게 맞으면 된다.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품격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KBS라디오 <강원국의 지금 이 사람>에서 만난 시니어모델 윤영주씨다. 그에게선 부드러우면서도 당당한 기품이 느껴졌다. 칠순을 훌쩍 넘어 머리는 백발이나, 온화한 미소와 고고한 자태가 우아함 그 자체였다. 어찌해야 이처럼 품격이 느껴질까. 품격은 여유가 아닐까? 경제적·정신적·시간적 여유에서 나오는 게 품격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여유 있는 삶의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 겸손이다. 스스로를 낮춰야 여유가 생긴다. 원래의 나는 80인데, 남들에게 60으로 보이면 20만큼 여유가 생긴다. 80인 내가 60인 것처럼 보이는 게 겸손이다. 모든 문제는 60인 사람이 80으로 보이려 하는 데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그가 60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두 사람에게 한두 번 80으로 보일 순 있으나 일상적으로는 불가능하다.

60인 사람이 80으로 보이려 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60밖에 안 된다는 걸 들킬까봐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모든 사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신에 대한 평가에 예민하다. 무엇보다 80으로 보이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현재의 자신을 긍정하지 않으므로 남과의 경쟁에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 여유가 있을 수가 없다.

겸손한 사람은 무던하고 덤덤하다. 80인 사람이 60만큼만 보여주려고 하면 20을 비우고 내려놓은 것이다. 60에 자족하고 감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은 60만 보여주는 데서 절제의 희열을 맛본다. ‘너희들, 내가 60으로 보이지? 실은 80이야.’ 가슴에 품은 20만큼 뿌듯하고 당당하다. 어지간한 실패에 기죽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남의 평가에 위축되거나 흔들리지도 않는다. 늘 의연하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편안하다.

뿐만 아니라 겸손한 사람은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한다. 누구를 만나건 그 사람에게서 배울 점을 찾는다. 또한 스스로를 모자란 사람이라 여기기에 매사에 심사숙고한다. 사려 깊고 진중하게 처신하니 깊은 매력이 우러난다.

둘째, 경청이다. 여유 있는 사람은 말이 급하거나 빠르지 않다. 자분자분 말한다. 말을 해야 한다고 조바심내지도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나를 알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대화하다가 자기가 아는 게 나오면 어떻게든 아는 체하려 하거나,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려고 안간힘 쓰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대신 잘 듣는다. 잘 듣는다는 의미는 귀가 열려 있다는 뜻이다. 잘 듣는 사람은 열린 사고를 한다. 생각이 유연하고 개방적이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과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존중한다. 또한 잘 듣는 사람은 상대 입장을 배려하고 세상 사람과 협력하고자 한다. 특히 약자를 배려한다. 센 사람 앞에서 쫄지 않고 약자 앞에서 폼 잡지 않는다. 주변 사람 모두를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하며, 그들과 더불어 공존의 길과 상생의 방법을 찾는다. 잘 듣는 사람은 또한 자신의 모자란 부분에 대한 지적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잘못을 변명하거나 약점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셋째, 친절이다. 강자의 불손은 오만이다. 약자의 공손도 비굴일 수 있다. 여유에서 비롯된 친절이야말로 강자가 지녀야 할 태도다.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그들이 쓴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네안데르탈인보다 신체적·지적 능력이 열등한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종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친화력에 있다”고 말한다. 여유 있는 사람은 다정하다. 또 다정하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 친절은 여유에서 나온다. 친절한 사람은 공손하고 예의 바르다.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고 가려서 한다. 상대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친절한 사람은 감정이 죽 끓지도 않는다. 감정의 기복은 누구나 겪지만, 여유 있는 사람은 감정이 끓어오르는 임계점이 높아 대체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한다. 속으론 요동칠지언정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에도 서서히 반응한다. 관대하고 느긋하다. 그렇다고 자기다움을 포기하진 않는다. 분명한 소신이 있고, 무례와 몰상식에는 단호하게 대처한다. 공사를 구분하는 분별력도 있어 남에겐 관대하고 자신에겐 엄격하다.

끝으로, 성장이다. 결핍과 지체 상태에서는 여유를 갖기 어렵다. 여유롭기 위해서는 가진 게 많아야 한다. 그래야 가진 것 중에 일부만 보여주는 겸손을 부릴 수 있다. 남을 받아들이는 경청도 자신의 그릇이 커야 가능하다. 친절 역시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에너지와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겸손은커녕 자신을 포장하기에 급급해 가식을 일삼으며, 경청은 고사하고 방어와 공격, 지배와 복종이란 분란 속에 산다. 당연히 친절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겉과 속의 차이가 없고, 혼자 있을 때와 함께 있을 때가 다르지 않으려면,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남에게 베풀면서 살려면 멈춰 있어선 안 된다. 하루하루 새로워지고 나다워져야 한다.

자기 성장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일상을 단순화하고 본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인간관계도 자신과 결이 맞는 사람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시간적 여유를 갖고 휴식 시간을 확보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쯤 되니 이번 생애에 온전한 품격을 갖추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면 어떤가, 예순 넘어 되고 싶은 꿈이 생겼고, 그걸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삶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12)인맥 관리 ‘노하우’ 5가지 오해

 

 

 

“인사나 이권을 청탁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걸 보여주겠다.” 제17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노무현 당선자의 일성이다. 나는 이 말을 인수위원회 파견 근무할 때 직접 들었다. 당선자는 “여러분이 로비를 받으면 정면으로 그 사람에게 경고하고, 그 정보를 하나하나 제게 보내 달라”고 주문했다. 그에게 인사 청탁이 왜 이리도 중요한 문제였을까.

부패 문제 권위자인 미국의 마이클 존스턴 교수는 <부패의 신드롬>이란 책에서 국가의 부패 유형을 ‘독재형’, ‘족벌형’, ‘엘리트 카르텔형’, ‘시장 로비형’으로 나눴다. 한국은 ‘엘리트 카르텔형’ 국가로 분류하고 정치인과 고위관료, 대기업 임원과 언론인 등이 학연·지연으로 뭉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형태라고 정의했다. 수긍이 가는 진단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법특혜, 부정부패, 뇌물공여 뒤에는 반드시 연줄이란 인맥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맥’은 주로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그럼에도 인맥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대사회는 노하우가 아닌 누구를 아느냐, 즉 노 후(Know Who)의 시대라고 한다. 한 발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고, 인적 네트워크가 핵심 자산이 되는 시대인 건 틀림없다. 날로 비중이 커지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적 관계망을 통한 가상의 관계를 감안해볼 때 더욱 그렇다.

나처럼 직장을 나온 사람에겐 인적 자산이 더욱 절실하다. 나를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팔려면 사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책을 살 때, 내용보다는 책을 쓴 사람을 보고 구매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강연도 비슷하다. 내용을 들으러 오기보다는 강연자를 만나기 위해 온다. 내가 무엇을 아느냐보다 누가 나를 얼마나 아느냐가 중요해졌다. 아니, 아는 사람 수도 중요하지 않다. 절대적으로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하다. 양보다 질이다. 인맥은 숫자가 아니다. ‘팬덤’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다.

인맥 관리에 열심인데, 실속은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먼저, 명함 관리에 정성을 다한다. 나는 이런 분에게 묻고 싶다. 책상 정리 잘하고 필기 열심히 한다고 시험 잘 칠 수 있는지. 진짜 인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명함은 갖고 있지 않는 법이다.

만나면 ‘출신’부터 묻는 사람도 있다. 어느 지역 출신이고,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심지어 본(本)이 어디냐고까지 묻는다. 어떻게든 지연·학연·혈연으로 엮어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영업하는 사람을 생각해보라. 학연·지연·혈연부터 찾는 사람치고, 실적이 좋은 경우가 있는가.

송년이나 신년, 명절에 단체문자 마구 보내는 분들이 있다. 이런 의례적 인사치레는 인맥 관리에 도움이 안 된다.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그렇지 않다. 안 하는 게 낫다. 또 이런 사람일수록 사귐에 내실을 기하지 않고, 한 사람이라도 더 알려고 애를 쓴다. 그러니 폭탄 문자를 보내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이런 분에게 외부 인맥보다는 내부 인맥을 공고히 하는 데 더 노력을 기울이라고 말하고 싶다.

행사마다 쫓아다니고, 각종 모임에 얼굴 내미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게 사람 속성이다. 마당발이란 소리를 들으며 고루 넓게 사귀기보다는, 좁고 깊게 사귀는 게 맞다. 내가 누구를 아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나를 아느냐가 중요하다.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내가 인마 느그 서장이랑 마! 어저께도 어? 같이 밥 묵고 어? 사우나도 같이 가고 어? 다 했어 인마.”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유명한 대사다. ‘내가 누구를 알고, 누구와 같이 밥도 먹었고’ 하는 사람일수록, 상대방은 그를 모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고, 이 사람 저 사람 눈도장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괜한 일이다. 지속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에너지만 낭비하는 꼴이다. 땅만 넓히면 뭐하나. 넓혀진 땅 위에 뭔가를 심고 가꿔야 열매를 거둘 수 있다. 만난 사람의 수가 아니라 만남의 빈도가 중요하다. 열 사람을 한 번씩 만나는 것보다는 한 사람을 열 번 만나는 게 더 실익이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맥 관리의 첫째 조건은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다. 시간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은 어떻게든 지키려고 해야 한다.

둘째, 인사를 잘하는 것이다. 평소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 묵례로라도 인사를 잘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주기적으로 안부 인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 관심을 보여줘야 한다. 예를 들어 회의할 때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 사람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관심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뜬금없이 연락해보는 것도 좋다.

약속을 잘 지키고, 인사를 잘하고 관심을 보여주는 것은 인맥의 씨를 뿌리는 일이다. 인맥 관리는 장사가 아니라 농사다. 주고받는 거래로 접근하면 실패한다. 먼저 씨를 뿌리고 나중에 거둬야 한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확신을 갖고 열심히 씨를 뿌리면 반드시 싹이 트고 열매를 맺는다. 그에 반해 활용하려고 모은 인맥은 정작 써야 할 때 쓰지 못한다. 언젠가 써먹어야지 하는 생각 없이 모아둔 인맥이 결국 요긴하게 쓰인다.

넷째, 사람을 장점 중심으로 봐야 한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이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장점이 없는 사람도 없다. 칭찬하고 평가해주면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다섯째,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어느 한 사람은 그 사람만이 아니다.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사람 모두다. 그 사람과 관계가 틀어지면 그 사람 뒤에 있는 사람과도 관계가 어긋날 수 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은 소중하다.

끝으로, 누군가에게 줄 게 있어야 한다. 타고난 친화력만으로 인맥 관리가 되는 건 아니다. 인적 네트워크는 상호 이익을 전제로 한다. 왜 상대가 나와 가깝게 지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식이든 정보든, 재미든 위로든, 깨달음이든 웃음이든. 주는 게 있는 사람에게 모이게 돼 있다.

흔히 성공한 이유를 물어보면 “제가 인복이 많아서”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다. 도와준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인복(人福)’은 거저 들어오지 않는다. 인복은 자신이 불러들인 복이다. 사람들은 인복이 있는 사람에게 붙을 만해서 붙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맥 관리는 나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맥은 없었지만 인복이 있던 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봉화산 같은 존재다. 봉화산은 산맥에 속해 있지 않다. 벌판에 불쑥 솟아 있다.” 그는 외로웠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판사가 됐을 때, 정치하는 내내 늘 아웃사이더였다. 인맥의 최대 피해자였다. 하지만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그를 사람들은 가만 놔두지 않았다. ‘노사모’라는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그를 지지하고 응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대통령이 됐다. 결국 인적 네트워크의 최대 수혜자가 된 것이다.

인맥이 없다고? 인복이 있는 사람이 되자.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자.

 

 

 

(13)인생 후반전을 잘 살려면

 

 

 

 

한 방송국 특집 기획으로 국어 과목 수능시험을 치르게 됐다. 학력고사를 본 지 40년이 넘어 치른 시험이었다. 무척 어려웠다. 이래 봬도 학력고사 국어는 만점을 받았는데, 이번 시험에서는 절반 약간 넘는 점수를 받았다. 한 번만의 경험으로 속단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수능 국어시험의 문제점은 평가 대상이 치우쳐 있다는 것이었다. 말하기, 쓰기 능력은 제쳐두고 읽기 능력만 평가하고 있고, 읽기도 속독 능력만 시험하는 듯했다. 속독보다는 정독을 해야 글을 읽으면서 자기 생각과 감정을 길어 올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나에게 인생은 세 시기로 나뉜다. 태어나서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가 첫 번째이고, 직장생활이 두 번째, 직장생활 이후 지금까지가 세 번째 시기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학교와 직장이라는 무대만 다를 뿐, 그 시기를 잘 지내는 데 필요한 역량은 다를 바 없었다. 이 시기는 이해력, 요약력, 유추력, 분석력, 기억력, 적용력이란 여섯 가지 힘을 요구한다. 이 여섯 가지 능력을 갖추면 남의 말과 글을 잘 알아먹고, 핵심을 추려내고, 배경과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분석하고 기억해뒀다가 시험을 치거나 일할 때 활용한다. 한마디로 잘 읽고 잘 들으면 된다. 말하고 쓰는 능력이 아니라 읽고 듣는 역량만 갖추면 학교생활, 직장생활 모두 잘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역량은 어느 정도 갖췄다. 어릴 적부터 남의 눈치를 심하게 봤고, 어떻게든 남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사람은 남의 말과 글을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유심히 듣고 읽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비교해 더 큰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런 기질을 가진 사람은 앞서 말한 여섯 가지 역량을 키우게 되고, 이렇게 갖춰진 역량으로 학교와 직장생활을 잘하게 된다.

하지만 세 번째 시기는 다르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남의 것을 잘 받아들이고 남이 시키는 일을 요령껏 잘하는 과정이었다면, 세 번째 시기는 스스로 뭔가를 해야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기에는 남의 제품을 만들어줬다면, 세 번째는 내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남에 의해 내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내 가치를 입증해 보여야 한다. 누군가가 빛을 비춰줘야 모습을 드러내는 반사체가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발광체로 살아가려면 말하고 써야 한다. 말하고 쓰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과 의견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 번째 시기에는 앞서 말한 여섯 가지에 덧붙여 세 가지 역량이 더 필요하다. 그것은 질문력, 비판력, 공감력이다. 내 생각과 의견을 만드는 첫 출발점은 질문이다. 남의 말에 대해 의문을 갖고 반문해야 한다. 그런 바탕 위에서 남의 생각과 의견을 평가하고 그것에 자기의 생각을 덧대거나, 그것과 자기 생각을 연결하고 결합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 비판력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사람들의 처지와 심정, 입장을 헤아려 그들을 도우려는 공감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아픈 데를 치유해줄 수 있고, 그것으로 먹고살 수 있다. 쉰한 살부터 세 번째 시기를 살고 있는 요즈음, 나는 질문과 비판, 공감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 실감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기를 추동하는 힘이 승부욕과 인정욕구라면, 세 번째 시기는 성취욕과 생존욕구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인정과 칭찬보다는 스스로 자기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하고 있는 일에서 충만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갖추고 이를 나누며 살아야 한다. 그것은 콘텐츠, 스토리, 캐릭터다.

가장 필요한 것이 자기만의 콘텐츠다. 그 사람 하면 떠오르는, 그 사람만의 테마나 주제 같은 것이다. 나는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잘하는가. 이때 무엇에 해당하는 게 그 사람의 콘텐츠다. 나의 콘텐츠는 글쓰기와 말하기다. 글쓰기와 말하기에 관해 사람들에게 말하고 글을 쓰는 게 쉰한 살 이후의 나이고 나의 삶이다.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한다. 학창 시절과 직장생활 때와는 전혀 다른, 홀로서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본시 공부하는 목적은 살아남기 위해서다. 생존확률을 높이는 게 공부하는 이유다. 학창 시절에는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더 나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했다. 직장에서도 자리를 보전하고 높이 올라가기 위해 공부했다. 이 모두가 생존확률을 높이는 공부다. 세 번째 시기에 공부의 중요성은 한층 커진다. 공부를 통해 나만의 콘텐츠를 확보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요구되는 건 스토리다. 콘텐츠는 그 자체만으로는 팔리지 않는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양질의 무료 콘텐츠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자기 스토리를 입혀야만 자신만의 콘텐츠가 되고, 그런 콘텐츠라야 재미가 있고 진정성이 느껴져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 수 있다. 자기 스토리는 두 방향에서 찾고 모아가야 한다. 우선 살아온 과거의 기억 속에서 스토리를 발굴하고,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아울러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일에 도전함으로써 새로운 일화, 에피소드 등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끝으로, 캐릭터다. 이제 사람들은 이미지를 산다. 누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야 하고, 그 이미지가 호감 가고 매력적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요즘 어떤 기준으로 카페를 찾는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커피 맛과 가격, 위치 등 카페의 콘텐츠를 보는가? 어느 유명 커피전문점처럼 스토리에 끌리는가. 그런 점도 감안하겠지만 느낌이 좋아서, 분위기가 편해서 카페를 찾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감성’을 좇는 것이다.

100세 시대다. 세 번째 시기가 인생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기에는 늘 만나는 가족, 직장 동료와 함께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면, 세 번째 시기는 대상을 확장해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만들어가야 한다.

다행히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 온라인 가상공간이 활짝 열려 있다. 이를 통해 얼마든지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나는 직장을 그만둔 후 지난 10년 동안 네이버 블로그,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티스토리, 카카오톡채널, 스레드, 개인 누리집 등에 2만 개 가까운 글을 쓰며 사람들과 소통해왔다. 앞으로 워드프레스, 링크드인 등에도 도전해볼 요량이다.

수능 국어시험 결과가 좋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나는 그런 경험으로부터 도망가지 않았다. 그 결과 나름의 교훈도 얻었고, 새로운 이야기와 콘텐츠도 생겼다. 글쓰기와 말하기 관련 콘텐츠도 독서와 공부를 통해 꾸준히 보완해 나갈 예정이다. 문제는 캐릭터인데, 앞으로 나는 귀여움으로 승부하려고 한다. 완벽하고 출중한 사람에게서는 귀여움을 찾기 어렵다. 나같이 부족하고 모자라고 손길이 많이 가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귀여움을 느낀다. 수능 국어 문제를 절반밖에 못 맞추고도 당당한 내 모습이 어찌 귀엽지 않을 수 있겠는가.

 

 

 

(14)관계의 낙원을 만드는 법

 

 

 

 

소통과 관계는 동전의 양면이다. 좋은 관계는 적절한 소통을 통해 만들어지고, 관계가 좋으면 소통이 원활해진다. 그런 점에서 소통은 관계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이기도 하다. 직장생활에서 관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가족 간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다면 소통에 문제는 없는지 짚어봐야 한다.

신입사원 시절, 관계 맺기가 힘들었다. 상사와의 관계는 물론, 동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윗사람 앞에 가면 쭈뼛쭈뼛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아니 상사와 말을 섞을 기회조차 별로 없었다. 그렇게 데면데면 소통하니 친해질 리 만무했고, 그럴수록 더 소통이 어려워지고 관계는 소원해졌다. 관계와 소통의 악순환이었다.

동료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원만한 듯 보였으나, 겉모습만 그럴 뿐 왠지 불편한 관계였다. 나는 입사가 또래에 비해 2년 늦었고, 우리 부서엔 나와 동갑이지만 2년 먼저 들어온 ‘어색한 선배’ 1명, 나보다 한 살 적지만 1년 먼저 입사한 ‘애매한 선배’ 1명, 여상을 졸업하고 나보다 6개월 먼저 들어왔지만 나이는 예닐곱 살 적은 후배인 듯 선배 같은 동료. 이렇게 사원급이 나를 포함해 4명 있었다.

우선 호칭부터 애매했다. 먼저 들어온 이 세 사람에게 누구 씨라고 부르기도, 누구 선배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호칭을 부를 수 없으니 대화는 최대한 절제됐다. 뿐만 아니라 또래 세 사람은 모두 같은 대학 출신이었고, 상사들에게 늘 비교 대상이었으며, 묘한 경쟁 관계에 있었다.

특히 나보다 6개월 먼저 들어온 여직원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다. 당시는 개인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라, 이 직원이 타자기로 타이핑해주지 않으면 상사에게 서면보고를 할 수 없었는데, 내 보고서는 늘 뒷전이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따뜻하게 대해주다가도 둘만 남으면 얼굴색이 변했다. 내가 공부하고 군대에 다녀오느라 늦게 들어온 것은 그에게 의미 없었다. 나를 선임 직원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니, 내 글을 타이핑해줄 이유도 없었다. 당시 신혼이었던 나는 ‘회사생활 못 하겠다’라며 아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 시절 내 눈에 들어온 게 지하 운전기사 대기실 풍경이었다. 1990년 당시 회사는 부서장 전원에게 차와 운전기사를 제공해줬다. 기사분들은 부서장을 출근시키고, 가끔 나오는 업무 배차만 소화하면 됐다. 기사대기실에는 감독하는 사람도, 눈치 보는 사람도 없었다.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잠을 자거나, 책을 읽고 담소를 나누거나, 장기나 바둑을 뒀다. 누가 무엇을 하건 상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호칭이 누구 형이나 아무개로 통일돼 있었고, 서로 존대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불만을 갖거나 서운해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격의 없는 관계였다. 종신 고용이 보장돼 있고 승진할 일도 없으니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이 방 사람들은 모르는 게 없었다. 회사의 모든 정보가 이 방으로 흘러들어왔다. ‘사장님이 어제 누구와 저녁을 먹었다.’, ‘어느 임원은 누구와 친하다.’ 등. 온갖 뉴스가 모이는 첩보의 저수지, 정보의 허브였다.

나는 소통의 유토피아가 있다면 바로 이 기사대기실 같은 모습이겠구나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조직 책임자가 되면 이런 관계의 낙원을 만들어봐야겠다고 꿈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직장생활 내내 내가 경험한 조직 소통은 기사대기실 풍경과는 정반대였다.

소통이 잘 된다는 건 무엇일까. 말과 글이 흐른다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그리고 옆으로 잘 흐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조직은 이 세 흐름 모두 동맥경화를 겪고 있다. 말과 글이 원활하게 통하지 않음으로써 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니 조직은 효율이 떨어지고 개인은 행복하기 어렵다.

대체 어떤 문제가 있길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가. 첫째, 위에서 아래로 잘 알려주지 않는다. 둘째, 아래에서 위로 말하지 않는다. 셋째, 경쟁 관계에 있는 옆 사람과 공유하지 않는다. 불통의 원인은 이처럼 단순하다.

그렇다면 해법 또한 간단명료할 수밖에 없다.

첫째, 위에서 아래로 잘 알려주면 된다. 그런데 왜 잘 알려주지 않을까. 알려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그럴 수 있다. 자신은 누가 알려줘서 거기까지 올라간 게 아니니까. 아니면 알려줘야 할 자신부터 아는 게 없어서 못 알려줄 수 있다. 알려줄 내용도 있고 알려줄 필요도 느끼지만, 방법이 서툴러서 잘 알려주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밖에 바빠서 안 알려줄 수도 있고, 아는 것으로 상사 노릇을 하거나 자신과 친한 사람에게만 알려줌으로써 자기 밑에 줄을 세우기 위해 그럴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위에서 잘 알려줘야 한다. 알려주면 일을 잘할 뿐 아니라 위아래 관계도 좋아진다.

둘째, 아래에서 위로 말하면 된다. 말하게 만들려면 위에서 잘 들어줘야 한다. 말해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손해를 봐선 안 된다. 아래 직원의 말을 자꾸 평가하려 해서도 안 된다. 말하면 무조건 이익이다, 어떤 말이건 대접받는다는 인식이 조직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위에서 잘 들어주는 게 필요조건이라면, 충분조건은 아래 직원이 말하는 것이다. 아래 직원 스스로 할 말이 있어야 하고, 말하고 싶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게 가능할까. 공부하면 된다. 공부하면 할 말이 생기고, 말로써 존재감을 드러내고, 소통의 장에 참여하고 싶어진다.

셋째, 옆으로는 경쟁에서 협력 쪽으로 물꼬를 틀어야 한다. 말로 이기려 들거나 편 가르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다른 생각과 입장과 감정을 존중하고 공감하고 공유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간, 부서와 부서 간 장벽을 허물고 말과 글이 자유롭게 넘나들게 해야 한다.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됐을 때 비로소 소통의 유토피아를 시험할 기회가 왔다. 나는 대통령께서 알려주는 내용을 혼자 듣지 않았다. 행정관들과 함께 가서 들었다. 혼자 들은 경우엔 듣지 못한 사람에게 시키지 않고 내가 했다. 그러다 보니 나와 행정관들의 아는 수준과 알고 있는 양이 다르지 않았다. 행정관은 언제든 기탄없이 얘기했다. 연설비서관실이 잘 될 수 있도록 의견을 말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대통령께서 나를 찾으면 행정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내용을 알려주기 바빴다. 행정관들도 서로 경쟁하지 않았다. 초안이 하나 나오면 모여 앉아 동료의 글을 열과 성을 다해 고쳐줬다. 이를 통해 서로 돕고 서로에게 배웠다. 인사고과도 비서관인 내가 하지 않았다. 모여서 토론했다. 우리는 휴일에도 배우자를 피해 사무실에 모였다. 사무실이 우리의 피난처이자 안식처였고, 관계의 낙원이었다.

 

 

 

(15)‘편한’ 사람이 아닌 ‘편안한’ 사람

 

 

 

친구는 많은데 진정한 친구가 없는 사람이 있고, 친구가 아예 없는 사람이 있다. 친구 자체가 없는 사람도 두 갈래다. 자신이 원해서 친구가 없는 사람과 친구는 만들고 싶은데 없는 사람. 그리고 친구가 많진 않은데 진짜 친구가 있는 사람. 이 네 부류를 가르는 요인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편안함’이라고 생각한다. 밥 사주고 부탁도 잘 들어주는데 주변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이가 있는가 하면, 별로 해주는 것도 없는데 사람이 꼬이는 이가 있다. 또 보면 볼수록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한 번 보면 다시는 만나기 싫은 사람이 있다. 그 차이는 뭘까.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바로 편안함이다. 편안해서 자주 만나고 싶은 것이다.

‘편안한’ 사람과 ‘편한’ 사람은 다르다. 아내는 결코 편한 상대는 아니다. 만만치 않다. 하지만 편안한 상대다. 나도 누군가에게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라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면 좋겠다. 그러나 편한 사람이 되는 건 사양한다. 언제라도 만날 수 있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쉬운 사람이 되긴 싫다.

아내가 편안한 이유는 뭘까. 꾸미지 않아도 돼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줘도 되기 때문이다. 연애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무엇을 하든 잘 보이고 싶어서 어떻게든 나를 꾸미고 약점은 감추려 했다. 지금은 감출 필요도, 감출 수도 없다. 이제 아내는 나에 대해 모든 걸 안다. 그래서 편안하다.

아내가 편안한 이유가 또 있다. 아내와 나는 서로 거절하는 것에 익숙하다. 마음껏 거절하는 관계다. 나는 원하는 게 있으면 눈치 보지 않고 마구 던져본다. 오늘 점심에는 뭐 먹고 싶다고, 내일은 어디 가자고. 내 원고 좀 봐달라고…. 아내는 그 요구가 맘에 들지 않거나 하기 싫으면 단칼에 거절한다. 그런 아내의 의도를 알고 있는 나는 의기소침하지 않는다.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나 역시 아내 부탁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당당하게 거부하고 뿌리친다. 그래도 미안하지 않다. 그러니 뭐든 말해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요구하는 건 말하는 사람의 자유이고, 들어주고 말고는 듣는 사람의 선택이다. 우리는 이를 존중한다. 들어줄 수 있는 것만 들어줘도 되는 관계는 편안하다.

끝으로, 아내와의 관계가 편안한 이유는 일방적이지 않아서다. 한쪽에서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는 관계는 불편하다. 그런 관계는 한쪽을 숭고하게 만들거나 다른 쪽을 비참하게 만든다. 숭고함과 비참함 모두, 오래 가지 못한다. 숭고와 비참까진 아니더라도 일방적인 관계는 필연적으로 힘의 불균형 상태를 만든다. 한쪽의 영향력과 발언권이 다른 쪽의 그것을 압도하게 된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경기를 지속하기 어렵다. 두세 번 주면 한 번은 돌려받는 관계가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은 나 혼자 돈을 벌고 있지만, 아내는 한때 자신이 직장을 다닌 덕분에 내가 자주 일을 그만둘 수 있었다는 사실을 수시로 상기시킨다. 이뿐 아니다. 아내가 장시간 집을 비우면 나는 불편하다. 그 불편함만큼 아내가 평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돕거나, 희생하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다. 그런 균형이 우리 관계를 편안하게 한다.

내 곁에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없는 게 나은 사람이 있다. 바로 불편한 사람이다. 내가 불편을 느끼는 사람은 첫째, 날카롭고 까칠한 사람이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그렇듯, 부드럽고 무던한 사람이 편안하다. 따뜻하고 겸손한 사람을 만났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 날카롭고 까칠한 사람, 똑똑하고 잘난 사람은 왠지 나를 평가하고 판단할 것 같아 불안하다. 마치 면접관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치 않다. 편안함은 상대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 달려 있다.

둘째,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도 불편하다.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은 나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서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하다. 하지만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매사에 긍정적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한다. 그런 사람은 자기만 알지 않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안다. 그래서 편안하다.

셋째, 말을 가려서 해야 하고, 상대 반응에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은 편하지 않다. 무슨 얘기든 다 해도 될 것 같은, 고민을 털어놓고 싶은, 저절로 솔직해지게 만드는 사람이 편안하다. 나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몇 시간이건 함께 있어도 괜찮은 상대가 편안한 사람이다.

넷째, 수준이 너무 높은 사람도 불편하다. 나와 어느 정도 격이 맞아야 편안하다. 빈틈이 없고 완벽한 사람을 만나면 나는 긴장한다. 나도 모르게 잘 보이려고 신경을 쓰고, 겨루려고 해서 피곤하다. 그 위세에 주눅 들기도 한다. 그런 사람보다는 나같이 빈틈이 많고 헐렁해서 만나면 자신감을 얻고 용기가 생기는 사람이 좋다.

누구나 편안한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먼저 편안한 사람이 돼야 하고, 내가 편안한 사람이 되려면 내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스스로와 불화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만큼인데 저만큼 되고 싶거나, 몸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저기에 가 있으면 불편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이런 편안함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자라거나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인정하고 포용한다. 나는 이렇다, 내가 이렇고, 이게 난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살아간다. 그런 사람은 자기를 비하하거나 우쭐해 하지 않는다. 마음이 요동치지 않는다. 잔잔한 수면과 같이 편안하다.

남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도 스스로 편안한 사람의 특징이다. 바라는 게 별로 없으니 실망할 일도 없다. 해주면 감사하고 해주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다. 다른 사람에 관심은 갖되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지 않는다. 그저 감탄하고 칭찬할 따름이다. 그런 사람은 물과 같아서 남을 물들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물처럼 투명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상대에 맞춰 자기 모양을 바꿀 줄 아는 유연함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편안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그런 사람은 그저 ‘편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직장 다닐 적에는 모든 사람에게 편안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불편한 관계를 견디지 못해 안절부절못했다. 편안함의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다. 사람에 따라 상대적이다. 어떤 사람에게 불편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불편한 사람이란 법은 없다. 궁합이 안 맞을 뿐이다. 편안한 사람과의 관계를 늘리고 불편한 사람과는 접촉을 줄여야 한다. 가능하면 ‘손절’하는 것도 방법이다. 불편한 관계를 붙들고 이를 바꿔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건 무모할 뿐 아니라 백해무익하다. 그러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쉰 살까지 관계를 늘려왔다. 그 덕분에 잘 살았다. 예순을 넘긴 지금은 관계를 늘리려고 연연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를 줄여가고 있다. 젊었을 때는 잘나가는 사람과 가깝게 지내고 싶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런 사람은 부담스럽다. 이제는 편안한 사람하고만 만나고 싶다. 선택은 내가 한다. 그래도 될 나이다.

 

 

 

(16)그 한 사람이 있는가?

 

 

 

사람들은 누구나 내게 행운과 불운을 함께 선사했다. 행운만을 안겨준 사람도, 불운만 겪게 한 사람도 없다. 늘 행운과 불운, 두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났다.

17년간의 회사생활 가운데 나의 가장 찬란했던 시기를 꼽으라면 김우중 회장을 모시던 기간이다. 선망해왔던 분을 가까이서 모시고 배울 기회라니. 그것도 과장 초임 시절 젊디젊은 나이에 말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때 나는 그분의 연설을 쓸 만큼 충분히 준비돼 있지 않았다. 한마디로 실력이 부족했다. 그 부족분을 메워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나의 부서장이었다.

위기서 건져주고 인생 지도 바꾼 부서장

그는 나보다 고작 두 살 위였지만, 실력은 천 길 차이였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은 그 앞에서 쓰레기였다. 나에게 이것 추가하고 저것 고치라며 지시하고 주문하다가 성에 차지 않았는지 결국은 자기가 쓰는 게 다반사였다. 그가 쓴 글을 보면 언제나 맞았고, 완벽했다. 나는 하루하루 자신감을 잃어갔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불안했고, 그것을 잘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급기야 우울증 뒤로 숨어들어, 회사에 사표를 냈다.

아내에게 저간의 사정을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사업을 하겠다고 둘러댔다. 그렇게 회사 일도 감당하지 못해 도망 나온 처지에 사업이라니. 걸음마도 못 하는 아이가 뛰어가겠다는 격이었다. 몇 달 고민했지만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았고, 서른 중반에 삶이 통째로 거꾸러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회사 안이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더니 정말 그랬다. 그렇게 초조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나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그 부서장은 다시 돌아오라고 제안했고, 나는 못 이기는 척 회사에 복귀했다. 하지만 복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장 비서실이 문을 닫았다.

다시 위기의 시간이 왔고, 거기서 나를 건져준 사람도 바로 그 부서장이다. 자기에게 들어온 청와대에서 근무할 기회를 나에게 넘겨준 것이다. 그는 청와대에 들어와 김대중 대통령 경제 부문 연설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고, 자기는 힘들지만 쓸 만한 사람이 있다며 나를 추천했다. 당시 그는 회사가 문을 닫자, 독립해서 출판사를 차린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나를 수렁에서 두 번이나 건져줬을 뿐 아니라 내 인생 지도를 바꿔놓았다.

지난해 말까지 KBS1 라디오 <강원국의 지금 이 사람>을 진행했다. 그때 만난 사람들 곁에는 늘 자신의 운명을 바꾼 한 사람이 있었다. 최재천 선생은 서울의대를 두 번이나 떨어지고 낙담하고 있을 때 서울대에서 동물학과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가 빈칸으로 놔뒀던 2지망 란에 고3 담임 선생님이 ‘동물학과’를 써넣은 것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학과에 들어가자 공부는 늘 뒷전이었다. 그렇게 대학 시절 3년을 허송세월하다 졸업반을 맞은 최 선생은 이때 그를 찾아온 한 사람을 만났다. 한국의 하루살이를 채집하러 온 미국인 교수 조지 에드먼즈다.

최 선생은 에드먼즈 교수의 조수로 일하며 일주일 동안 전국의 개울물을 뒤지고 다녔고, 그와의 인연을 계기로 유학길에 오르며 오늘날의 세계적인 통섭학자 ‘최재천’이 탄생했다. 한 미국인 교수가 그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에드먼즈 교수는 어떻게 최재천 선생을 찾게 됐는가. 최 선생이 대학 3년 동안 공부와 담쌓고 살면서도 딱 한 과목 열심히 들은 강의가 있었는데, 그 강의를 했던 교수님이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서 한국에 연구하러 가는 미국인 교수에게 ‘최재천 학생’을 추천한 것이다.

세계적인 교육 공학자인 미국 스탠퍼드대 부학장 폴 김 교수도 한 사람을 만나 인생이 바뀐 사례다. 그는 인천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하위 1%를 벗어나지 못했다. 반원 60명 가운데 그는 늘 58등을 도맡았다. 59등, 60등 하는 친구들은 운동선수였으니, 그는 꼴찌나 다름없었다. 우리나라에선 더 이상 희망이 없었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을 졸라 미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미국에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지만, 서툰 영어 탓에 유학 생활도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첫 학기 첫 수강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며 그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에 관한 에세이를 써오라는 과제를 제대로 제출하지 못한 폴 김에게 담당 교수는 “이 수업은 너의 영어 실력이 아닌 감수성을 평가하는 과목”이라며 한글로 감상문을 써올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폴 김이 써온 한글 에세이를 놓고, 한영사전과 씨름하며 그 내용을 파악한 그 담당 교수는 ‘곡 분석력이 뛰어나다’며 그에게 최고점을 줬고, 폴 김은 말할 수 없는 희열을 경험한다. 이는 폴 김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이런 성취감은 그가 교육에서 일방적인 티칭(가르침)이 아닌 코칭(조언이나 지도)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

나태주 선생도 실연당한 순간 시인 돼

‘풀꽃 시인’ 나태주 선생도 예외가 아니다. 그의 나이 스물네 살,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그는 같은 학교 동료 선생님을 짝사랑한다. 사랑하는 감정이 마구 부풀어 올라 심장이 터질 것 같아 구애를 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한다. 실연의 상처가 너무 깊었다. 상심의 나날을 보내며 그 마음을 시로 옮겼다. 그렇게 쓴 시가 1971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대숲 아래서’다.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라는 내용이다. 이후 그는 한 여자로부터 버림받는 순간 시인이 됐다고 술회한다.

43년 3개월간 초등학교 선생님을 할 때도 그랬다. 교단에 서야 하는데, 말을 듣지 않는 어린 제자들이 미워서 어떻게든 예쁘게 보려고 쓴 시가 그 유명한 ‘풀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3’도 마찬가지다. 선생께서는 일찍이 며느리를 잃었는데, 엄마 없이 살아갈 손주들이 가여워서 쓴 시가 바로 이 시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시인은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시를 썼다고 하지만, 시를 쓰게 하고, 그를 시인으로 만든 건 결국 사람이었다.

앞서 부서장 추천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8년을 지내고 나와 나는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와 한솥밥을 먹다 헤어진 지 2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분은 그새 열정적으로 출판 일을 해왔고 일가를 이루었다. 그리고 최근 나는 그의 출판사에서 <강원국의 인생 공부>란 책을 냈다. 이제는 출판사 대표와 저자라는 관계로 다시 만난 것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난다. 오늘 만나는 그 사람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당신에겐 그 한 사람이 있는가. 그건 누구인가.

 

 

(17) 좋은 관계를 만드는 마법, 경청

 

 

 

“어떻게 청와대에 가서 일하게 됐어요? 특별한 재능이 있으신가, 그 비결이 궁금해요.” 강의에 가서, 혹은 방송 인터뷰를 하면 자주 듣는 질문이다. 내 대답은 한결같다. ‘관계가 좋아서요’다. 생각해 보면 모든 건 관계였다. 1982년 이른 봄, 이불 보따리 하나 둘러메고 상경할 때 서울 천지에 내가 아는 사람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남산 1호 터널을 통과하면서 마음이 알싸했다. 그것은 부푼 기대가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권부에 당당히 입성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은 누군가가 나를 소개하고 추천한 덕분이다.

그들은 왜 나를 천거했을까. 사람을 소개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자칫하면 욕먹을 수 있다. 그런 위험 부담을 안고 누군가를 추천하려면 적어도 자신이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런 확신은 어디서 오는가. 자기가 경험해본 데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 사람들은 나를 경험하면서 도대체 어떤 역량을 확인한 것인가. 아마도 경청하는 태도가 아니었을까. 자기들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하는 나의 자세를 인정해준 것이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법이니까.

인정받고, 배우겠다는 의지를 담은 경청

‘말을 잘 듣는다’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상대 비위를 잘 맞춘다는 의미다.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싫은 걸 잘 참고 아니꼽고 치사한 꼴을 잘 견뎌낸다는 뜻이다. 싫은 내색을 보이거나 불끈불끈하지 않고 고분고분 시키는 일을 잘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잘했어’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직장 다닐 적엔 물론 지금도 ‘싫어요’는 내게 금기어에 가깝다. 직장 다닐 적 싫은 걸 싫다고 하지 못한 버릇이 여전히 남아 있어, 아내에게 그 어떤 반항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기 싫은 강의도, 쓰기 싫은 추천사 제안도 좀체 거절하지 못한다.

‘말을 잘 듣는다’라는 건 어떻게든 인정을 받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상대 말을 잘 들어야 그가 내게 무엇을 원하고 기대하는지 알 수 있고, 그걸 알아야 기대에 부응할 수 있으며, 요구나 기대 따위를 좇아서 응하면 인정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 사람의 필요가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해야 그 사람 마음에 들 수 있는지 알아내 그걸 실행한다. 알아내기 위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을 유추해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잘 듣지 않고 그걸 알아낼 방법은 없다.

나는 직장 상사가 바뀌거나 내가 자리를 옮겨 새로운 상사를 만났을 때 최대한 빨리 상사의 취향이나 성향을 파악해 맞추려 노력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나같이 적극적으로 상사를 파악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상사가 알려주면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는 방식을 취했다. 그때그때 꾸중을 들으면서 조금씩 알아갔다. 문제는 이제 좀 알 만하면 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했으면 그다음 상사는 조기에 성향을 파악하려 해야 할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대부분 전철을 밟는다.

나아가 ‘말을 잘 듣는다’라는 뜻은 말하는 사람을 본받고 싶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나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 그 사람에게서 내가 배울 만한 장점을 찾는다.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중에 배울 게 없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사람에게 배우기 위해 나름의 원칙을 지킨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에게 뭐라도 한 가지는 배우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게 첫 번째 원칙이다.

잘 듣는 사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두 번째, 그러기 위해 나는 사람을 만나기 전,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 애쓴다. 대신 처음 만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을 공부한다. 내가 직접 만나지 않고 들은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이나 인상은 막상 만나고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선입견을 갖고 닫힌 마음으로 만나면 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마음을 활짝 열고 만나야 한다.

그 연장선에서 세 번째 원칙은 차등을 두지 않는 것이다. 사람을 차별 대우하면 진짜 배워야 할 것을 놓칠 확률이 높다. 내 경험에서 보면 대접받고 사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배울 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마지막 원칙은 만난 사람을 험담하지 않는 것이다. 굳이 흠을 말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그걸 말하지 않았다고 정직하지 못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무조건 칭찬만 한다. 들은 얘기도 그에게 보탬이 되지 않는 얘기는 옮기지 않는다. 그게 나를 만나준 사람에 대한 의리요, 최소한의 예의다.

나만 남의 말을 잘 들어준 건 아니다. 내 말을 잘 들어준 사람도 많았다. 그런 사람 덕분에 잘 살아올 수 있었다. 그중 가장 고마운 사람이 아내다. 아내는 늘 내게 말할 기회를 준다. 그래서 나는 마음껏 말할 수 있다. 아내는 또한 듣고 칭찬해준다. 내 말에 자신감이 붙는다. 아내는 또한 묻는다. 답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아내에게 말하면서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생각도 정리된다. 그렇게 정리된 생각을 글로 쓴다. 아내는 내가 방송에 나가 한 말에 피드백도 해주고 조언도 한다. 나는 아내의 말은 그 누구 말보다 귀담아듣는다. 가끔은 송곳같이 내 폐부를 찌르기도 하지만, 그 말에 아파하지 않는다. 그게 진심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잘 듣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향배를 바꾼 한마디가 있다. 재심 전문 변호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에게도 그 한마디가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한 “공부 열심히 하고 말 잘 들으면 도와주는 사람이 있을 거다”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군에 가서 배 병장이란 사람을 만났는데,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입대한 그 사람의 도움으로 수렁에 빠져 있던 자기 인생을 건져 올릴 수 있었다.

통섭학자 최재천 선생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 다닐 때 고마운 미국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해보기 전까진 알 수 없어(You never know until you try)”라고 말해줬고, 이 말에 용기를 얻은 최 선생은 하버드대학교 윌슨 교수에게 편지를 써서 하버드에 공부하러 가게 됐다. 그 친구가 “어떻게 감히 세계적인 석학에게 편지 쓸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고, 최 선생은 “네가 그러라고 하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최 선생은 그저 흘려들을 수 있었던 그 한마디에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유시민 작가도 마찬가지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한마디 “그냥 바보는 괜찮다. 그런데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안다고 믿고 있는 거만한 바보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말에 충격받고 나이 쉰 살에 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18) 나는 2인자로 살기로 했다

 

 

 

 

나는 날 때부터 2인자였다. 위로 형이 있고, 동생이 둘 있는 집안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차남의 특징이 있다. 형보다 잘하기 위해 형을 흉내 내고 형에게 배운다. 나도 그러면서 자랐다. 결혼해서도 나는 2인자였다. 40년 가까이 아내가 모든 결정권을 쥐고 1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직장생활 역시 대부분을 1인자를 모시는 비서실에서 했다.

2인자는 1등이 아닌 2등이다. 2등이란 자리는 늘 안타깝다. 동메달을 딴 사람보다 은메달 딴 사람의 마음고생이 크다고 하지 않던가. 정상 코앞에서 좌절하는 게 2등의 자리다. 2등은 또한 1등의 견제 대상이 되기도 한다. 눈치가 빨라야 버틸 수 있는 자리다. 1인자 비위도 맞춰줘야 하고, 아랫사람의 눈치도 봐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다 잘해야 2인자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2인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실력으로 2인자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이 있고, 1인자와의 관계로 자리를 꿰찬 사람도 있다. 또 1인자를 만든 2인자도 있다. 1인자와 동지 같은 관계도 있고, 1인자를 하늘같이 떠받드는 2인자도 있다. 내가 세 분의 회장을 모시면서 지켜본 2인자의 유형은 네 가지다. 그 하나는 1인자에 빌붙어 입속의 혀처럼 사는 사람. 1인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안하무인이다. 이런 유형은 오래 가지 못한다고들 하지만, 실제는 이런 사람이 오래 버틴다.

두 번째는 아랫사람의 인기를 갈구하며 그것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 아랫사람과 윗사람 사이를 줄타기하며 사는 사람은 금세 정체가 탄로 나 단명할 것 같지만, 이 또한 그렇지 않다. 아랫사람과 힘을 합쳐 좋은 실적을 내며 비교적 장수한다. 1인자가 이 모든 정황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이익에 반하지 않아 눈감아주기 때문이다.

이 밖에 1인자와 구성원 모두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사람과 1인자와 구성원보다는 자신의 기준과 원칙을 우선해 사는 유형이 있지만, 두 유형 모두 오래 가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2인자는 1인자를 만들어주는 사람

2인자에게는 주어진 역할이 있다. 무엇보다, 1인자를 돋보이게 한다. 2인자가 없으면 1인자도 없다. 진정한 2인자는 1인자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만이 ‘2인자’란 본연의 의미로 불리게 된다.

1인자의 의중을 파악해 아래에 전파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1인자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아니 내고 싶지 않은 말을 아래에 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1인자 대신 총대를 메야 한다. 피는 자기 손에 묻히고, 1인자는 칭송을 들으며 우아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게 2인자의 역할이다.

1인자에게도 고충과 애로가 많다. 1인자는 늘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불안하다. 아랫사람들에 대한 불만도 크다. 무엇보다 외롭다. 누군가는 이런 1인자의 심기를 관리해줘야 한다. 불평을 들어주고, 고충에 공감해주고, 같이 아랫사람들 욕도 하면서 입에 발린 말로 1인자의 사기를 북돋워 줘야 한다. 이 모든 걸 수행하고 잘하는 사람이 실질적인 2인자다.

2인자는 1인자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시키는 일만 할 때 2인자는 이런 일을 하자고, 이런 일은 해선 안 된다고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 직언은 자기 자리가 굳건할 때 가능하다. 입바른 소리를 할 수 있을 만큼, 윗사람 신임을 얻고 있어야 한다.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1인자에게 아이디어를 주고 의견을 내는 참모 역할을 다해야 한다. 2인자는 1인자보다 부담을 덜 느끼기에 장기 둘 때 훈수 두는 사람처럼 수가 잘 보인다. 그런 안목으로 1인자를 보좌해야 한다.

아랫사람들의 생각과 민원을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랫사람에게도 인정받는 2인자가 될 수 있다. 2인자는 모두를 따뜻하게 감싸 안고 아우르는 역할을 해야 한다. 1인자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는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역할이 2인자의 몫이다.

1인자의 방패 역할도 한다. 2인자가 무서워 감히 1인자를 넘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1인자의 경쟁자로서 메기 역할도 해야 한다. 정어리가 가득 담긴 수조에 메기를 넣으면 생존을 위해 힘껏 헤엄치듯이, 메기처럼 1인자를 자극해 안주하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도 해야 한다.

 

 

 

역심 품지 말고 귀는 있되 입은 없어야

이런 역할을 다하기 위해 2인자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역심을 품어선 안 된다. 1인자 자리를 넘보지 않아야 한다. 1인자와 2인자는 1등과 2등의 관계가 아니다. 2인자가 1인자에 비해 열등하거나 모자란 것도 아니다. 다른 역할을 부여받고 있을 뿐이다. 2인자는 자신을 2인자로 인식해야 한다.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절제해야 한다. 2인자를 1인자가 되기 위해 거쳐 가는 자리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2인자 자리에 정착해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귀는 있되 입은 없어야 한다. 2인자는 1인자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지 자기가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모든 빛은 1인자에게만 집중돼야 한다. 자신이 한 일도 자기가 했다고 하면 안 된다. 자신이 1인자를 빛내주는 2인자인지, 흠집을 내는 2인자인지를 생각하며, 모든 공은 1인자에게 돌리고 과는 자신이 떠안는다는 생각으로 살면 반드시 성공한다.

2인자는 1인자보다 더 잘 알아야 한다. 1인자가 물으면 답해야 한다. 따라서 공부해야 한다. 실력이 있되 1인자보다 더 있는 것처럼 보여서도 안 된다. 그 이상의 실력이 있더라도 1인자나 다른 사람이 그 실력을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1인자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는 순간, 2인자 생명은 끝이 난다.

당연한 얘기지만 특권을 요구하거나 기대해선 안 된다. 아울러 1인자의 이름을 빌려 허세를 부리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해서도 안 된다. 1인자도 그런 2인자의 전횡을 감싸고 묵인해선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그런 2인자를 ‘복심’, ‘가신’, ‘측근’이라 칭하며 경계하고 경멸한다. 2인자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없게 된다.

2인자도 1인자를 잘 만나야 한다. 2인자를 키우는 1인자는 포용력과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품이 넓어야 한다. 쓴소리도 들을 줄 알고 자신과 다른 생각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자잘한 일까지 챙기는 1인자 아래서는 2인자가 움직일 공간이 없다. 2인자가 자신을 대신해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권위도 세워줘야 한다.

나는 2인자가 좋다. 2인자는 책임에서 자유롭다. 1인자라는 보호막이 있어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다. 자리를 탐내지 않고, 1인자에게 밉보이지만 않으면 위태롭지 않다. 그 뒤에 숨어 있으면 된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은 정서적으로 2인자 쪽에 가까워, 2인자에게 응원을 보낸다. 2인자는 많은 사람을 아군으로 두고 사는 셈이다. 2인자를 자임하고, 2인자로서 누리는 혜택을 만끽해온 대표적 인물이 개그맨 박명수씨다. 자신을 1.5인자, ‘쩜5’라고 하면서 말이다.

2인자에게는 희망도 있다. 언젠가 올 수도 있는 1인자의 가능성을 품고 산다. 그날을 기다리는 설렘이 있다. 누구나 1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2인자 자리를 거쳐야 한다. 2인자 과정 없이 된 1인자는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다. 모든 1인자는 탄탄한 2인자 수업을 거친 사람이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1인자와 2인자가 있게 마련이다. 보스에게만 2인자가 필요한 게 아니다. 누구에게나 2인자가 절실하다. 또한 훌륭한 1인자 뒤에는 반드시 탁월한 2인자가 있다. 그만큼 2인자 역할은 소중하다. 나는 오늘도 그런 2인자를 꿈꾼다.

 

 

(19)우리는 언제 행복한가?

 

 

 

유시민 작가가 오래전에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걸 먹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껴요.” 사람 만나 얘기 나누는 걸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그로선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고 했다. 그리고 행복은 탁월함(Arete)을 추구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말한다. 탁월함에는 지적 탁월함(Theoria)과 성격적 탁월함(Praxis)이 있는데 지적 탁월함, 즉 지혜·통찰 같은 것은 배움에서 생기고, 성격적 탁월함, 즉 관용·절제 같은 덕성은 습관에서 얻어진다고 했다.

탁월함을 향해 나아갈 때 행복하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왜 인간은 탁월함을 좇으려고 할까. 답을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의 책 <행복의 기원>에서 찾았다. 사람은 언제 행복한가. 생존에 유리한 환경에서, 또는 생존확률을 높이는 일을 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일 잘하고 관계 좋을수록 생존확률 높아져

인간은 유전자의 조합이고, 유전자가 가진 단 하나의 사명은 생존이다.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하고, 번식을 통해 자기 유전자를 재생산함으로써 생존을 이어가고자 한다. 따라서 생존확률을 높이는 일을 할 때 행복하다. 생존확률을 높이는 일에서 행복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런 일을 기피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살아남을 확률이 떨어지게 될 것이기에 그렇다. 그러니까 생존확률을 높이는 일을 할 때 그 보상으로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행복이 생존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쓰이는 것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도 살아남기 위해서다.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못하는 사람보다 생존확률이 높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알아야 하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말을 배우고 걸음마를 배우고, 밥 먹는 법, 옷 입는 법을 익혔다. 학교에 가서 지식과 기술을 익히고, 직장에 들어가서 상사를 본받아 따르면서 배운다. 또한 스스로 경험하면서 알고 깨우친다.

 

 

 

 

 

공부는 기억을 쌓고 확장하는 일이다. 기억에는 의미 기억, 일화 기억, 절차 기억이 있다. 개념이나 공식같이 학교에서 배우는 거의 모든 게 의미 기억이다. 일화 기억은 각자의 경험에서 깨닫고 알게 된 기억들이다. 의미 기억을 많이 갖고 있으면 학교 다닐 적에 공부 잘한다는 소릴 듣는다. 의미 기억은 많지만 일화 기억이 부족하면 ‘일머리가 없다’, ‘책상물림’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학교와 직장에서 살아남는 데 가장 필요한 게 이런 기억이다. 의미 기억이 지식이라면 일화 기억은 지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절차 기억은 더 범위가 넓다. 계단을 오르고, 자전거를 타고, 수영을 하고, 음식을 만들고, 악기를 다루는 일 모두 절차 기억이 있기에 가능하다. 남들이 갖고 있지 못한 절차 기억을 많이 가지면 생존확률이 높아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탁월함을 말한 것도 이런 기억의 축적과 확장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일과 관계 속에서 산다. 일을 잘하고 관계가 좋으면 좋을수록 생존확률이 높아진다. 기억으로 쌓은 ‘지적 탁월함’으로 일을 잘하고 관용, 절제와 같은 ‘성격적 탁월함’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면 생존확률이 높아진다. 이렇게 생존확률을 높이는 일에서 우리는 행복감을 느낀다.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여기까지 말하면 똑똑한 친구는 이렇게 질문한다. 인간은 생존확률을 높이는 일을 할 때 행복하고, 공부는 생존확률을 높이는 일이라고 했는데, 왜 우리는 공부할 때 행복하지 않나요? 그에 대한 답을 나는 쉰 살 넘어 공부하면서 알았다. 학창 시절 공부는 어찌 보면 관계를 해치는 공부다. 친구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친구를 이겨야 할 대상으로 두고 경쟁하는 공부를 해서 그렇다. 인간은 무언가를 알고 익혔을 때와 남과의 관계가 좋을 때 행복하다. 그런데 알고 익히는 공부가 관계를 해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므로 행복감을 느끼기 어렵다. 서로 돕고 서로에게 배우면서 함께 알아가는 과정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각자 읽고 들은 후 자기만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읽고 들은 걸 친구에게 말하고 글로 써서 알려줌으로써 함께 시험을 잘 보는 쪽으로 방식을 바꾸면 응당 공부에서 희열에 가까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두 가지 경우에 내가 위험해진다고 생각했다. 그 하나는 실력이 없을 때다. 실력이 부족하면 낙오하거나 내 역할이 축소된다. 내 존재 의미를 잃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말을 삼갔다. 말을 통해 내 실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결국 실력이란 것도 남의 평가와 남과의 비교에서 그 수준이 정해진다. 남들이 내 실력이 얼마인지 알지 못하면 나의 실력 없음은 내 생존확률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나는 말하는 대신 남의 말을 잘 들었고, 내 부족한 실력을 시간으로 메워서 남들이 기대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려고 애썼다. 그렇게 버티고 이겨냈다.

내가 위험해지는 또 하나의 경우는 관계가 나빠졌을 때다. 윗사람의 미움을 받거나 주변에 적이 많아지면 위험해진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게끔 노력했다. 남의 험담을 삼가고, 되도록 거절하지 않았다. 남들이 내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걸 어떻게든 들어주려고 했다. 이렇게 남들의 비위를 맞춰주면 관계로 인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좋은 사람과 맛있는 것 먹을 때 행복감

요즘도 나는 여전히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때 기분이 좋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이제는 스스로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려고 힘쓴다. 남의 평가에 기대 남의 인정을 구하며 살기에는 나이도 많고, 쉰 살 넘어서부터는 그런 인정을 구걸할 대상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장 다닐 적에 비해 행복한 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이런 행복을 맛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첫째, 관심을 갖고 집중하는 게 있어야 한다. 둘째, 그것이 남의 반응을 유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 그 반응을 확인하고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반응이나 자신의 평가를 향상시키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 향상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섯째, 나의 성장이 남에게도 도움이 되고 유익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빠져 있을 때 ‘덕질’한다고 한다. 이런 ‘덕질’이 밥벌이가 되면 ‘덕업일치’의 삶이 되고, 또 이런 삶이 남들에게도 유용하면 그야말로 행복한 삶이 된다.

원시시대에 사람이 생존을 위협받는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먹을 게 없을 때와 혼자일 때였을 것이다. 먹을 게 없으면 굶어 죽고, 무리에서 내쳐져 혼자 있으면 맹수의 밥이 됐으니까. 혼자서는 사냥하기도 어려웠다. 번식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외로움을 느낀다. 가끔은 혼자 있는 게 무섭기도 하다.

2012년 제이슨 미첼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와 다이애나 타미르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가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통해 실험 참가자 195명의 뇌를 관찰했다. 그랬더니 자기 이야기를 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음식을 먹거나 돈이 생겼을 때 활성화되는 영역과 일치했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와 같은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니 유시민 작가가 좋은 사람과 만나 맛있는 걸 먹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 건 당연한 결과다. 그가 식사를 하며 나눈 대화 또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부였으리라.

 

 

(20)온라인에서 관계의 지경을 넓히다

 

 

 

2001년 여름, 고도원 당시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내게 물었다.

“책에서 읽은 글귀에 내 생각과 느낌을 붙여 사람들에게 e메일을 보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e메일 받는 사람은 돈을 얼마나 내야 하죠?”

“돈은 받지 않을 생각입니다.”

나는 그런 일을 왜 하려고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즈음 영상 메시지를 촬영하는 자리에서 고 비서관이 김대중 대통령께 e메일 보내는 일을 하려 한다고 보고하자, 대통령은 ‘잘해보라’며 따뜻하게 격려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그로부터 23년이 흐른 지금 아침편지 독자는 400만명을 넘어섰다. 돈은 받지 않았지만, 400만명과의 관계가 만들어졌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는 ‘노사모’로 대표되는 네티즌의 역할이 컸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돼서도 인터넷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걸 즐겼다. 취임 후 가장 먼저 회견한 언론도 인터넷 매체였고, ‘국민께 드리는 글’을 직접 써서 수시로 인터넷에 올렸을 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국민과 대화했다. 청와대에도 ‘이지원’이란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해 공직자들과 직접 소통했다. 오프라인에서는 불가능하던 많은 관계와 만남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졌다.

2013년 초, 나도 페이스북을 시작하며 온라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나이 쉰 살에 출판사 사원으로 들어갔을 당시, 회사 대표가 ‘편집자 생활하려면 페이스북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처음에는 ‘지하철 단상’이란 제목으로 출퇴근길에 겪은 일화와 상념을 올렸지만,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 아내에게 구박받는 얘기로 테마를 바꿨다. 술로 인사불성이 된 다음 날 아침, 아내 호통을 피해 급하게 집을 나섰다가 짝짝이 신발을 신고 출근한 사건 등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반응이 뜨거웠다. 금세 친구 5000명이 훌쩍 넘었다.

2014년 첫 책 <대통령의 글쓰기>를 냈을 때, 페이스북 친구들의 성원이 결정적으로 도움이 됐다. 책을 사줬을 뿐 아니라 페북을 통해 열렬히 홍보해줬다. 페이스북이 시들해질 무렵 나는 다시 블로그에 뛰어들었다. 블로그 이웃 역시 나의 든든한 응원군이 돼주었다.

온라인 관계의 가능성 일찍 보고 배워

직장을 그만두면서 오프라인 관계는 더 이상 확장이 어려웠다. 하지만 더 살아가야 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관계가 필요했다. 직장에서는 좁고 깊은 관계 위주로 생활하지만, 직장을 나와 여러 활동을 하려니 얇고 넓은 관계가 필요했다. 그 필요한 관계가 온라인에 있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매개로 관계를 형성하고 강화해 나가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내가 발 담그고 있는 SNS는 한 손으로 다 꼽기 어려울 만큼 여럿이다. 나는 온라인에서 나를 알리고, 기고와 강의 요청을 온라인을 통해 받는다. 내 책을 사고 강의를 듣는 대다수는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온라인 관계 덕분에 먹고산다. 나는 이런 가능성을 일찌감치 보고 배웠다. ‘고도원의 아침편지’와 노무현 대통령의 인터넷 정치를 보면서 말이다.

나는 낯을 가린다. 따라서 나를 알아보는 이가 있을까봐 단골집도 따로 만들지 않는다. 어디를 가든 그저 무심한 듯 놔두는 게 좋다. 이런 내게 온라인 공간은 관계하되 관계하지 않는, 편한 관계를 선사한다. 나는 이런 온라인 공간에서 누구의 시선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만끽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과도한 관계 중독 상태에 있었다. 늘 관계에 연연하며 살았다. 이런 관계의 독(毒)을 온라인을 통해 디톡스할 수 있었다. 온라인은 자칫 너무 가까워서 상처받고, 너무 멀어져서 외로운 사람들에게 탈출구 역할을 한다. 온라인 관계는 리셋이 어렵지 않다. 관계가 부담스럽거나 싫으면 언제든 헤어지고 떠날 수 있다. 조용히 친구 관계를 끊거나 단체방을 나가면 되는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온라인 관계는 오프라인에 비해 더 수평적이고 덜 일방적이다. 나이나 직업, 경제적 수준 차이로 인해 차별받는다는 느낌이 오프라인보다 훨씬 덜하다. 시공간적 제약에서도 벗어날 수 있어 보다 폭넓고 새로운 관계 형성이 가능하다. 관계에 목마른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산술적으로는 무한 확장도 가능하다. 비용도 들지 않는다. 감정 소모도 적다. 각종 정보를 무료로, 빠르게 받아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성비 최고다.

그렇다고 나는 온라인 관계 예찬론자는 아니다. 온라인 관계는 드리워진 그늘도 짙다. 무엇보다 ‘일회용 관계’, ‘티슈 인맥’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관계가 깊지 않다. 직접 만나 눈빛과 체온을 나누는 오프라인에 비해 빈도는 높되 강도가 현저히 낮다. 정작 관계를 맺지만 특별한 교류 없이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온라인에서는 마음속 고민까지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 24시간 연결 상태에 있지만 여전히 외롭다. 군중 속의 고독이다. 잠시라도 타인과 연결되지 않으면 도리어 불안감을 느낀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이 더 약해졌다.

생길 수 있는 문제들 하나씩 풀어가야

온라인 관계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영국의 진화심리학자 던바 교수에 따르면 개인이 유의미하게 유지할 수 있는 관계는 150명 안팎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구체적인 교류가 없는 온라인 관계는 무의미할 뿐 아니라 도리어 피로감을 줄 수 있다. 피로감을 주는 대표적 예는 남과의 비교다. 온라인에서의 모습은 실제보다 과장되고 치장된다. 그러므로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퇴고를 거듭한 남의 글과 나의 초고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결과적으로 시기나 열등감을 낳게 된다.

이 밖에도 과도한 온라인 관계로 인해 친밀해야 할 가족관계가 손상되기도 하고, 온라인 플랫폼의 알고리즘으로 인해 비슷한 성향의 사람끼리만 모이는 ‘필터버블 현상’도 야기하고 있다. 디지털 문맹자의 소외와 소통 능력 저하 문제도 있다. 특히 온라인을 통한 만남이 폭력과 범죄로 이어지고, 개인정보 유출, 악성 댓글과 거짓 소문 유포 등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제 온라인 관계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됐다. 갈수록 오프라인 관계는 축소되고, 그 빈자리를 온라인 관계로 채워갈 수밖에 없다. 관계를 맺는 세 가지 방식, 직접 만남과 전화 통화, 메신저나 SNS를 통한 접촉 가운데, 향후 소통방식은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젊은 세대는 회식과 같은 직접 만남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전화 통화에 대한 거부감은 더 크다. ‘콜 포비아(call phobia)’란 용어가 생길 만큼 전화 통화를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남은 건 메신저나 SNS를 통한 온라인 관계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것이다.

2014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그녀(Her)>. 극 중에서 대필 작가인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는 아내와의 관계에 염증을 느껴 결국 이혼하고,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를 영화적 상상력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이런 가상현실이 조만간 현실이 됐을 때 우리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온라인을 넘어 언젠가 가상현실이 가져올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해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일까지 우리의 과제가 됐다.

 

 

(21)나는 괜찮은 어른일까?

 

 

 

공자는 세 가지를 조심하라고 했다. 청년 시기엔 여색을, 중년 시기에는 싸움을, 노년 시절엔 아집을 경계해야 한다며 ‘군자삼계(君子三戒)’를 강조했다. 나이 들수록 판단력이 흐려질 수밖에 없는데,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일이니,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단속해야 한다고 했다.

나도 예순을 넘기며 깨달은 게 있다. 어른의 척도는 나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이를 먹었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나이가 성장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나이는 시간이 지나면 늘게 마련이지만, 성숙함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었어도 어른답지 못하면 어른이 아니다. 어린 사람도 어른답게 의젓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의젓잖은 사람도 있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이 많으면 사회는 미성숙 상태에 머문다.

‘나잇값이 비싼 때’는 지났다

우리 사회는 나이에 민감하다. 차량 접촉사고가 나거나 말다툼이 벌어지면 ‘너, 몇 살이야?’부터 따지고 든다. 논리가 막히거나 상황이 불리해지면 여지없이 나이가 등장한다. 처음 만나는 사이에서도 나이로 서열을 정리한 후 얘기를 시작한다. 참으로 나이를 중시하고 따진다.

나는 사회생활을 남들보다 2년 정도 늦게 시작한 탓에 어느 직장에 가든 동기들보다 형이었고, 내 직속 상급자와 비슷한 연배였다. 어쩔 수 없이 어른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입사 동기들보다 점잖아야 했고, 같은 연배의 상사에게 책잡히지 않기 위해선 어른스러워야 했다.

직장생활에서는 응당 연공서열이 강조됐다. 근속 연수나 나이가 늘어감에 따라 지위가 올라가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다. 능력이나 실적보다는 근무 연수나 나이가 중요했다. 사석에서 한두 살 정도는 말을 놓고 지내기도 했지만, 공적으로는 나이에 엄격했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어린 사람으로서 나이에 걸맞게 말하고 행동하느냐 여부가 그 사람의 태도와 자세를 결정했고, 그런 것이 그 사람의 평판과 사회생활의 성패를 좌우했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오래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대접받던 시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 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환갑을 맞으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장수를 축하할 정도로 평균수명이 60세 언저리를 맴돌았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엔 경험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나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많은 경험을 했고, 지식과 정보가 한정되고 부족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게 경험이었다. 그야말로 나잇값이 비싼 때였다.

하지만 이제 나이 먹은 것이 벼슬인 시대는 지났다. 상대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대하는 자세는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다. 나이를 무기 삼아 사람들 사이에서 군림하려 하면 사회로부터 고립돼 더욱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노인을 젊은이들은 ‘꼰대’라고 부르며 경계한다.

지금은 누구나 오래 산다. 2024년 7월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 내년이면 전체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 노인인 사회가 된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세대의 경험이 이젠 유용하지 않다. 요즘 같이 급변하는 세상에서는 과거 경험이 미래를 점치는 나침반 역할을 하기 어렵다.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은 옛말일 뿐이다.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의무

그에 반해 어른으로 살아가야 할 기간은 길어졌다. 직장을 은퇴해도 수십년을 더 살아야 한다. 어른답게 살 필요성이 더 커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어른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어른다운 삶일까? 나는 어른다움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첫째, 배울 점이 있어야 한다. 어른은 어린 세대의 모범이 돼야 어른이다. 젊은 세대가 노인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노인이 자기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권위를 내세우며 대접받으려고만 해서일 것이다. 어른이 어른으로서 당당하게 대우받기 위해서는 은퇴 후에도 심신을 연마하고 공부해야 한다. 성장과 발달이 학창 시절과 직장생활에 머물러선 안 된다. 학습과 성장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전 생애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인 물이 되어 쉰내 나는 노인네 취급받기에 십상이다.

둘째,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투정 부리거나 투덜대지 않고, 어리광부리며 남에게 기대지 않고 의연하고 의젓하게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어른이다. 국어사전에서 ‘어른’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적혀 있다. 어른이란 자신의 인생에 떳떳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셋째, 말조심해야 한다. 말을 독점하거나 잘난 척하지 말아야 한다. 입을 열기 전에 먼저 귀를 열어야 한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갑 문제라면 오히려 간단하다. 상대가 요구하기 전에 먼저 지갑을 열든가, 이것이 부담스러우면 아예 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말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고정관념이나 한정된 경험의 벽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끝으로, 어른이 되기 위해선 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른은 어른으로서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선조들의 가르침대로 ‘3노’를 삼가야 한다. 노여움, 노파심, 노욕이 그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여겨 섭섭하기 쉽지만, 이를 인정하고 노여운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져 자꾸 간섭하게 되어 잔소리가 늘게 되니 이를 조심해야 하며, 나이 들수록 예의와 염치를 차릴 필요가 없어져 고약한 노인네가 되기 쉬우니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

나이를 먹었는데 나잇값을 못 하는 것이야말로 꼴불견이다. 흔히 ‘나잇값’은 특정 나이에 어울리는 사회적 규범과 기대를 충족하는 것을 뜻한다. 나잇값은 나이만큼 쳐주지 않는다. 누구나 노인이 되지만, 아무나 어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노인은 많지만 어른은 드물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 글을 쓰려고 인터넷 서점에 가서 ‘어른’을 검색해봤다. 일본의 만화가 야마다 레이지의 <어른의 의무>란 책이 뜬다. 그는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의무라고 말한다. 어른이 멋있게 늙어가야 젊은 세대에게도 희망이 있고 본보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불평하지 말고, 잘난 척하지 말며,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라고 당부한다.

예순을 훌쩍 넘은 지금 나는, 그저 나이 든 노인으로 늙어갈 것인가, 진정한 어른이 될 것인가, 분기점에 서 있다. 나이를 먹는 것,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주름살이 느는 건 어찌할 수 없을지라도, 나이 든 꼰대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22)잘 살기 위해 잘 헤어지는, 이별의 기술

 

 

 

헤어짐에 관한 표현이 많다. 잠깐 헤어지는 ‘작별’이 있고, 영원히 헤어지는 ‘고별’이 있다. 작별 인사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지만, 고별인사는 마지막 단 한 번뿐이다. 헤어짐의 강도에 따라서도 담담하게 갈라서는 ‘이별’, 애틋하게 헤어지는 ‘석별’, 단호하게 끊어내는 ‘결별’이 있다.

돌아보면 수없이 헤어졌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헤어졌고, 고등학교 때 만났던 첫사랑 여학생과 헤어졌고, 내가 모셨던 김우중 회장,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과도 헤어졌다. 사람들과 헤어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소중했던 학창 시절, 직장생활과도 헤어졌고, 오래전에 고향과도 헤어졌다. 헤어짐이 이토록 애틋하고 그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내 인생에서 헤어질 것들을 만났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이고 감사한 일이었는가.

잘 헤어져도 절반은 성공한 인생

삶은 헤어짐의 연속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던가. 만나면 결국 헤어지게 돼 있다. 영원한 관계는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이별은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일상 안에 들어 있다. 인간사가 헤어짐의 연속이라면 만나는 모든 것과 잘 헤어지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이별은 그 대상에 따라서도 여러 경우로 나뉜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이나 배우자와의 이혼, 죽음으로 인한 이별 등. 이런 상실은 우리네 삶의 단계에서 시나브로 찾아온다. 이별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해서 분가하고, 유학을 떠나고,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 것 모두 이별이다.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아를 찾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의 이별이다. 따라서 이별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도 대상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우선 사귀던 사람과의 이별을 이야기해 보자. 강렬했던 첫사랑의 감정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것처럼 만나지만, 시간이 흐르면 마음도 변하고 죽고 못 사는 관계도 변한다. 소중한 인연, 소중한 감정도 세월이 흐르면 변하고 퇴색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연인 사이에서는 관계의 유한함을 늘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영원히 살 것처럼이 아닌 내일 헤어질 것같이 그날그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별해야 한다면 좋은 이별을 해야 한다. 특히 ‘안전이별’이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잘 헤어지는 것이 중요해진 요즘, 좋은 이별을 준비하는 일은 건강한 만남을 위해서도 필요해 보인다.

먼저, 헤어지자는 말은 얼굴을 보며 해야 한다. 헤어지는 마당에 잠시라도 다시 보고 싶지 않겠지만, 그럴수록 만나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해야 한다. 내 표정이나 말투, 분위기를 통해 진심을 전할 수 있고,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문자나 e메일, 메신저로 전하게 되면 이별 통보를 받는 처지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많은 경우 글의 행간을 잘못 해석해 억측을 낳기도 하고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이건 도리가 아니다.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없는 것이다. 이별에도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 마지막까지 성의를 다하지 않는, 이런 이별은 좋은 이별이 될 수 없다.

헤어지는 이유도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 에둘러서 표현하면 미련만 남긴다. 상대가 마음을 정리할 시간도 줘야 한다. 상대는 무너진 일상을 회복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겠는가.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자신의 마음이다. 헤어진 후 이별을 후회하거나 이별을 번복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 후 이별을 통보해야 한다. 아울러 그렇게 신중하게 내린 결론이라면 헤어진 후 다시 오는 연락에 대해서도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좋은 이별은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별을 잘해야 새로운 만남에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헤어지고 나서 가끔은 ‘그 사람은 잘 지내고 있을까?’ 생각해볼 여유도 생긴다. 그게 내 인생의 중요한 토막 하나를 허비하지 않는 일이 될 것이며, 내 인생을 지탱해 나갈 추억이 될 테니까 말이다.

 

 

 

 

사별엔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이별을 맞는 때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게 죽음이다. 소설가 김훈 선생은 <연필로 쓰기>(문학동네·2019)에서 “죽음은 경험되지 않고 전수되지 않는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은 죽은 자들의 죽음에 개입할 수 없고, 죽은 자들은 죽지 않은 자들에게 죽음을 설명해 줄 수 없다”라고 했다.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을 알 순 없지만 죽음으로 인한 상실의 고통은 잘 안다. 누구에게나 소중했던 관계를 끝내는 일은 참 힘든 일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두려움과 불안, 외로움을 부른다. 미국 워싱턴 의과대학 토마스 홈스 박사 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배우자의 사망 혹은 이혼, 별거 등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라고 한다.

얼마 전 자살자 가족 모임에서 강의한 적이 있다. 자살자 가족 모임의 유족 대부분은 자신들을 ‘자살생존자’라고 부르며 가족의 죽음을 자책하고 그들을 떠나보내지 못하며 고통 속에서 살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오래도록 남은 자의 마음에 깊은 상실감과 아픔을 준다. 이런 사별은 당사자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발생하며, 살아가며 반드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아픔이다.

피할 수 없다면 견뎌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충분한 애도(哀悼)의 시간이 필요하다. 슬픔을 안으로 삭이지 말고 슬퍼해야 한다. 꾹꾹 눌러 삼킬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애도 기간이 너무 지나쳐도 안 된다. 삶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되는 것은 결코 떠난 사람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옛 어른들의 말처럼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이것이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살아 있는 사람의 도리다. 애도하고, 살아남고, 잘 지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세상을 떠나거나, 병으로 거동이 어렵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얼굴 보기 힘들어진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다.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끝으로, 자신과도 시시때때로 이별해야 한다. 자기의 나쁜 버릇, 잘못된 생각과 결별해야 하고, 때로는 아름답고 평온했던 과거와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또 어떤 경우는 자신이 저질렀던 부끄럽고 죄스러운 일들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자기를 괴롭혔던 사람들과 화해하며 그 모든 걸 떠나보내야 한다. 나아가 내 삶과 영원히 고별하는 순간을 상기하며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따른다. 그 헤어짐은 때로는 느닷없이, 때로는 안개처럼 스멀스멀 다가온다. 헤어짐을 알고 있다면 바로 이 순간의 삶이, 만남이, 인연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 현재 경험하는 세상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알려거든 그들과 당장 헤어지는 걸 상상해보자.

헤어짐은 또 다른 시작이다. 끝이 없다면 새로운 시작도 없다. 헤어져야 할 순간이 오면 그동안 관계했던 것들에 감사하고,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자. 헤어지는 대상의 안녕을 빌어주고 장래를 축복해주자. 그리고 새롭게 출발하자. 잘 헤어져야 잘 살 수 있고, 잘 살기 위해 잘 헤어져야 한다.

 

 

(23)상처 극복하기

 

우리는 관계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직접적인 만남을 넘어 인터넷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관계가 복잡다단해졌다. 관계가 다면화하면서 이로 인한 갈등도 커졌다. 많은 직장인이 직장생활에서 겪는 첫 번째 어려움으로 인간관계를 꼽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인간관계 고민 중 으뜸은 역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일 것이다. 상처받았을 때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문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인정한다

우리 삶은 상처투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내가 받는 상처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다. 억울해하거나 자책할 일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상처는 굳은살이 된다. 부러진 뼈가 더 튼튼해지는 법이다. 상처는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대처한다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 이를 외면하거나 부정하거나 억누르지 않는다. 상처받았다는 걸 인지하고 대응한다. 나의 대처 방식은 감정을 글로 써보는 것이다. 그것이 원망이건 배신감이건 모욕감이건 느낀 그대로 낱낱이 써본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있는데, 청소하는 아저씨가 벌컥 문을 열고 “빨리 나오지 못해!” 하며 소리를 지르셨다. 그때 당한 모욕은 아무리 어린 나이였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중학교 1학년 국어 과목 글쓰기 숙제에 그때 일을 썼고,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내 글을 읽어주셨다. 나는 비로소 그때 그 일에서 느낀 수치와 모멸감에서 벗어났다.

 

 

 

 

내가 받은 상처를 기술하는 방법은 이렇다. 첫째, 상처받은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본다. 둘째, 느낀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서술한다. 셋째,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이유와 원인을 찾아본다. 넷째, 상처를 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다섯째, 객관적인 제3자 관점으로 평가한다. 여섯째, 그보다 더한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본다. 그렇게 쓰고 나면 늘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하곤 한다. 이처럼 머릿속 화를 글로 바꾸면 내 감정이 객관화되고 순화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한쪽에는 지금 나를 괴롭히고 힘든 일, 후회하고 걱정되는 일. 다른 한쪽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기뻐할 일을 적었다. 그렇게 쓰고 나면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감사할 일뿐이었다.

받아친다

상대가 상처를 줄 때 같은 방법으로 갚아 주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닥칠 위험과 고난을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나같이 심약한 사람은 쓰기 어려운 방법이다. 하지만 아내에게 많이 배웠다. 아내는 사람들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정면 승부를 건다. 누가 자신을 건들면 가만 놔두지 않는다. 자신이 먼저 문제를 만들진 않지만, 누군가 도발해오면 반드시 응징한다. 상호주의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그래서인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편이다. 나는 그런 아내가 부럽다. 아니 무섭다.

무시한다

상대가 자극하려 할 때 무반응으로 대응하거나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하면 상대는 내게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미국 영화배우 모건 프리먼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프리먼은 어느 독일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내가 당신에게 ‘검둥이’라고 하면 어떻게 되죠?”라고 묻자 “아무런 일도요. 당신이 나를 그렇게 부른다면 잘못된 단어를 사용한 당신의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니까”라고 답했다. ‘검둥이’라는 말로 자극한 기자에게 어떤 식의 분노도 표출하지 않았고, 상처도 받지 않았다. 그저 막말한 기자만 우스워졌을 뿐.

누군가 내게 상처를 줬을 때 그 상처를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으면 온전히 내 몫으로 남아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상처받지 않는다면, 상대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그건 당신 생각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상처는 고스란히 상대에게 돌아간다. ‘모든 칼은 양날이 있다. 한쪽 칼날로 남을 상하게 하는 자는, 다른 쪽 칼날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도 있잖은가.

용서한다

상대가 아니라 나를 위해 너그럽게 감싸안는다. ‘너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의도하지 않은 실수였을 수도, 내가 너를 오해했을 수도 있을 거야…’. 감정이란 파도는 막을 수 없지만, 어느 파도에 몸을 맡길지는 내가 고르는 것 아니겠는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을 만나 하소연할 수도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의 조언을 받거나, 전문의와 상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상처 준 사람이 이해되거나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도 된다.

상대방과 대화를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서 상처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게 아니라 이미 나는 너를 용서했다는 걸 선언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런 용서는 나를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다.

견뎌낸다

되받아치거나 무시하기도, 용서하기도 어렵다면 그저 견뎌내야 한다. 시간은 상처를 낫게 하는 최고의 처방전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희미해지고 상처는 아문다. 결코 예외가 없다. ‘이 또한 지나가지 않는’ 일은 내게 없었다.

현재에 충실해보자. 미국의 작가 마리안 윌리엄슨은 “과거에 머물러서는 과거에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현재를 충만하게 살아야 비로소 과거를 치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내 영혼이 상처에 잠식당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어떤 일을 하다가 그 일로 인해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잘못됐다고, 하지 말라는 그 사람에게 보란 듯이 그 일에 집중했고,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그러면 됐다.

거리를 두는 것도 견디는 방법이다. 상대가 변화할 가망이 없고 내게 반복적으로 상처를 준다면 그와 감정적인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철저히 무덤덤하게 지내는 것이다. 이마저도 힘들다면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손절’해야 한다. 내게 해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야 할 이유나 의무가 내겐 없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한 상처받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상처가 나를 망치도록 내버려 두진 말자. 상처 주는 사람과 상처 난 마음을 안고 살아가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