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찔찔이에 학교 반도 못 나가는데 늘 1등”…
고향 마을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이재명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 마을에 서 있는 ‘이재명 생가터’ 팻말
“재맹이요? 코찔찔이(코흘리개)에 학교 반도 못 나가는데 희한하게 성적은 좋았니더.”
제21대 대통령선거 투표 날인 3일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에서 만난 류광우씨(64)가 이재명 대통령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같이 회상했다.
이 대통령의 초등학교 2년 선배인 류씨는 “코를 얼마나 흘리고 다니는지 옷 소매가 번들번들했다”며 “집에서 학교까지 넘어야 할 도랑만 20개가 넘는다. 집이 어렵고 워낙 학교가 멀다 보니 1년에 절반은 학교에 못 갔다. 그런데 시험만 쳤다 하면 1등을 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5㎞ 산길을 혼자 걸어 학교에 가야 했다’ ‘학교를 마칠 때까지 나는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손에 쥔 적이 없었다’고 했다.
지통마는 사래실·평지마·새못·텃골·길골 등 자연부락으로 이뤄진 도촌리의 한 마을이다. 이 후보가 태어난 곳으로 안동시와 영양군, 봉화군의 경계에 있는 오지마을이다.
이곳 마을 한가운데는 ‘제20대 대통령 후보 이재명 생가터’라고 적힌 팻말이 서 있다. 지난 대선 이 후보 지지자들이 세운 팻말이다. 대통령 당선으로 이 팻말도 곧 ‘대통령 생가터’로 바뀔 전망이다.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에서 3일 만난 류철우씨(69)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태어난 곳은 15년전 부산에서 귀농한 장계옥씨(73)의 터전이 됐다. 이곳에 땅콩 등을 심던 장씨는 “땅을 살 때는 여기가 이 대통령이 태어난 곳인지 몰랐다”며 “대선에 출마하면서 생가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아무것도 없는 마을이다 보니 오시는 분에게 목이라도 축이시라고 커피를 대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대통령의 부친인 고 이경희씨(1986년 작고) 대한 기억이 더 많았다. 당시 이 대통령이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를 가 소년공 생활을 시작해서다.
마을주민 류철우씨(69)는 “재명이 기억이라고는 아랫도리도 입지 않고 마을을 천방지축 뛰어다닌 모습뿐”이라며 “당시 재명이 아버지에게 공부와 바둑을 배웠다. 시골에서는 똑똑하고 뛰어난 분이었다”고 했다.
이경희씨는 지통마에서 이장을 지냈다고 한다. 류씨는 “고무신 사달라고 하면 사주는 등 온갖 마을 심부름을 다 했는데 불평불만 하나 없었다”며 “달력 뒤에 바둑판을 그리고 검은콩과 흰콩으로 바둑을 가르쳐 주셨다. 그 시절 바둑 둘 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고 추억했다.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에서 3일 만난 장계옥씨(73)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생가터를 가리키고 있다
류씨는 이경희씨와 관련된 소문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를 일으킨건 이경희씨가 아니라 그 친척으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친구 김제학씨(61)는 당시 도서관 반장이었던 자신에게 이 대통령이 건빵 등을 건네며 도서관 책을 모조리 빌려 갔다고 했다.
그는 “도서관에 있는 책이란 책은 재명이가 다 읽었다”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60원을 빌려주곤 잊어버렸는데, 성남으로 이사 간 재명이가 편지에 60원을 넣어 보내줬다. 책임감 있는 친구였다”고 기억했다.
지통마를 비롯한 도촌리 마을 주민 70여명은 이날 오후 8시 도촌리마을회관에 모여 개표 방송을 시청했다.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는 순간 주민 모두 “도촌에서 용이 났다”며 환호했다.
권상걸씨(57)는 “산골짜리 마을 출신이 대통령이 됐으니 온 마을의 경사 아니겠나”며 “이 대통령이 서민들이 잘 먹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https://tv.kakao.com/v/455614087
47년 소년공 절친 "재명이는 역시 다르다는 걸 보여주길"
심정운(62)씨는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의 소년공 시절 죽마고우(竹馬故友)다.
이 당선인 스스로도 심씨를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며 “(어릴 적)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할 때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유일한 대상”(『이재명의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이라고 표현했다. 이 당선인은 같은 책에서 “나에게 정운이는 너무나 절실한 존재였다”라고도 했다. 낮에는 함께 일하고 밤에는 함께 공부하며 대학 진학의 꿈도 같이 이룬 둘도 없는 친구다.
성남시 상대원동의 열악한 환경에서 싹튼 두 사람의 우정은 꾸준히 이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심씨는 1982년 이 당선인과 나란히 중앙대에 입학해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이후 한국전력에 취업했고, 2년 전 정년퇴직해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심씨는 지난달 30일 통화에서 “대통령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후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와 막걸리도 함께 마시고 낚시도 갈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그의 소년공 시절 친구 심정운씨가
1980년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의 한 골목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Q : 소년공 시절 이 당선인은 어떤 소년이었습니까.
A : “78년 봄 성남에 있는 검정고시 학원에서 처음 만난 재명이는 키가 작고 눈이 초롱초롱한, 학원에서 나이가 제일 어린 소년이었어요. 당시에는 말수가 적고 묵묵히 공부만 하던 모습이 기억나요. 30~40명 정도 되는 학원생 중엔 여러 이유로 결석자가 많았는데 재명이는 출석률이 굉장히 높았어요. 암기력과 이해력이 뛰어나 선생님들의 칭찬도 자주 받았고요. 재명이는 학원에 다닌 지 3개월 만에 중졸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어요. 학원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단기 합격자였죠.”
Q : 공장에서는 어땠나요.
A : “저와 재명이는 79년에 ‘오리엔트’라는 시계 제조 회사에 취업했어요.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원에 다니면서 고졸 자격 검정고시를 준비했어요. 재명이는 손재주가 뛰어나 일을 빨리 익혔고, 주변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 어린 나이에도 부서 책임자의 신임을 받았어요. 여러 공정 중에서도 도장(塗裝·도료를 칠하거나 바름)은 폐쇄된 공간이어서 고참들이 선호했는데, 재명이는 고참이 아닌데도 책임자의 신뢰로 그곳에 배치돼 근무했어요. 거기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공부하곤 했죠.”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그의 소년공 시절 친구 심정운씨가 중앙대 재학 중이던
1982년 강원도 도보여행 때 춘천에서 소양강을 따라 양구로 향하는 배 안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 당선인의 일대기를 다룬 책 『인간 이재명』에는 심씨와 잠시 절교했던 사연이 소개돼 있다. 어느 날 심씨의 자취방에 갔더니 함께 자취하던 친구로부터 심씨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뒤였다. 이 당선인은 그 이후로 심씨의 자취방에 가지 않았다. 당시 이 당선인의 일기장에는 “그건 나의 정운이에 대한 멸시, 아니지,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이유가 적혀 있다.
Q : 이후 어떻게 관계를 회복했나요.
A : “그 시절 공장에서 일하던 소년들 사이에서는 술·담배가 흔한 일이었어요. 저 역시 주변 소년공들과 어울리면서 술·담배를 하게 됐고, 학원도 자주 빠지게 됐죠. 이 사실을 안 재명이가 어느 날 집에 찾아와서 ‘그렇게 해서 대학에 어떻게 가려고 하냐’며 화를 내고 그냥 가버리더라고요. 그 이후 한동안은 서먹했지만, 제가 퇴근 후 소년공들과 어울리는 것을 자제하고 학원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사이가 가까워졌어요.”
두 사람은 검정고시뿐 아니라 대입 학력고사 준비도 함께 했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서로 문제를 내거나 교과서의 시(詩)를 외우곤 했고, 자습을 하다 졸릴 때면 화장실에 가서 찬물을 머리에 뒤집어쓰며 졸음을 쫓았다. 그렇게 공부한 끝에 두 사람 모두 꿈에 그리던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전공은 달랐어도 방학 때면 같이 여행을 하면서 청춘을 나눴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그의 소년공 시절 친구 심정운씨가
1982년 강원도 도보여행 중 설악해맞이공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Q : 대학 진학 후 첫 여행은 어땠나요.
A : “1학기가 끝날 무렵 재명이가 도보여행을 제안했어요. 춘천에서 시작해 양구·인제·한계령·양양을 거쳐 태백까지 가는 여정이었어요. 텐트와 취사도구까지 짊어진 채로 길가에서 밥을 해 먹고, 강가에선 낚시를 하면서 다시 걷는 고된 여정이었죠. 물집 잡힌 발을 칼로 터뜨리며 다시 걷기도 했으니까요. 양구에서 인제로 가는 비포장길을 걸어 자정 무렵에 광치고개 정상에 도착했을 때 서로 환호하고 격려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쌓은 체력과 의지가 훗날 어려운 일을 버텨내는 힘이 됐죠.”
Q : 사회에 진출해서도 교류가 이어졌습니까.
A : “만남의 횟수는 적어졌지만, 교류는 있었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게, 제 결혼식 날 재명이가 저희 부부를 공항까지 데려다 줬거든요. 그런데 차 안에서 제 아내에게 ‘정운이는 재미도 없고 그런데, 아무래도 선택을 잘못한 것 같아요. 나중에 이혼할 일이 생기면 변호사비 안 받을 테니 저한테 오세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장난기가 많은 친구였어요. 다행히 아내와는 지금껏 잘 살고 있어요. 재명이가 정치를 시작한 이후에는 워낙 바쁜 일정 속에 살다 보니 특별한 일이 없으면 따로 연락하진 않고 SNS로 응원 메시지나 주변 이야기를 보냅니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의 소년공 시절 친구 심정운씨는 "재명이가 소년공 시절 겪은 여러움을 극복한 경험은
대통령으로서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과 강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Q : 이 당선인이 정치에 입문했을 땐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A : “변호사 활동과 성남시민모임 등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이, 행정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바탕이 되리라 생각했어요.”
Q : 소년공 이재명과 정치인 이재명은 어떻게 다른가요.
A : “소년공 시절에는 자기 자신만 책임지면 됐잖아요. 하지만 정치인은 자신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뒤따른다고 생각해요. 이재명과 같은 리더의 역할이 참 중요하죠.”
Q : 소년공 시절의 경험이 대통령 역할을 수행하는 데 어떤 영향을 줄까요.
A : “소년공 시절 겪은 프레스 기계 사고, 관리자의 횡포를 견뎌낸 경험은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과 정책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그런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 자체도 리더로서 강한 추진력과 결단력을 발휘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겁니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왼쪽)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단식 농성을 벌이던 2023년 9월 4일
그의 소년공 시절 친구인 심정운씨가 농성장을 찾아 이 당선인을 격려하고 있다.
Q : 이 당선인이 5년 뒤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A : “단기적인 성과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인구소멸·기후위기·고령화 등 국가가 직면한 장기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국가 로드맵을 마련해 지속 가능하고 성장 가능한 국가를 만들어주길 바래요. 그래서 국민도 ‘이재명은 역시 다르구먼’이라고 말하는, 그런 대통령이 되길 바랍니다.”
심씨가 이 당선인을 마지막으로 만난 건 2023년 9월 4일, 이 당선인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단식 투쟁에 돌입한 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심씨는 단식농성장에 설치된 민주당 유튜브 채널 카메라를 의식한 듯 어색해하면서도 말없이 친구의 무릎을 툭툭 치며 격려했다. 이번 대선 기간에는 SNS로 ‘체력 끝까지 관리해서 꼭 이기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 당선인의 답은 하트(♡)였다.
"첫눈에 반한 사람, 김혜경"…피아노 유학 대신 이재명과 결혼
"보복 수사의 희생재물…죽고 싶을 만큼 미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부인 김혜경 여사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정순택 서울대교구장과 면담하기 위해 교구청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 여사는 대선 기간 조용한 행보로 이 후보 지원에 나섰다. 이 후보의 변호사 시절 백년가약을 맺은 김 여사는 이후 남편이 정치에 몸담으면서 사선을 넘나드는 역정을 함께했다.
김 여사는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선화예고와 숙명여대 피아노과를 졸업했다. 그가 오스트리아 유학을 준비 중이던 1990년 8월, '소개팅'으로 당시 갓 개업한 변호사였던 이 당선인을 처음 만났고 7개월 뒤인 이듬해 3월 결혼했다.
이 후보는 김 여사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리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다섯 번의 소개팅 중 세 번째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 내가 첫눈에 반한 사람의 이름은 김혜경이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
그러면서 10년간 써온 일기장을 청혼의 증표로 건넸던 일화도 소개했다. 이 후보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아내와 결혼한 것"이라고도 적었다.
김 여사는 남편이 인권변호사에서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민주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 후보에 이르기까지 동반자 역할을 해왔다.
남편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검찰의 표적이 되자 김 여사 역시 수사선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현재도 검찰의 기소에 맞서 법정싸움을 이어 가고 있는 김 여사는 이번 대선에서는 언론 노출을 자제하고 비공개 행보를 해왔다. 전국 사찰을 비롯해 광주 오월어머니집, 목포 세월호 선체, 소록도 등을 조용히 방문하며 ‘숨은 내조’를 이어갔다.
이 후보는 자신 때문에 아내와 자녀가 불필요한 고통을 받아왔다며 김 여사에 대한 미안함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는 지난 2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인터뷰에서도 "저 자신이 (검찰에) 당하는 것은 (정치를 택한) 제 선택이니까 견뎌내는데 죄 없는 자녀들, 특히 아내는 저를 믿고 아무것도 없이 저 때문에 이끌려 왔다"고 했다.
앞서 김 여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1심 선고를 앞두고서는 "대선 패배 후 보복수사로 장기간 먼지털기 끝에 아내가 희생제물이 됐다"며 "미안하다. 죽고 싶을 만큼 미안하다"고 부부간 절절한 정을 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가족 사진
이제 윤석열·김건희 '정조준'...
한국 뒤흔들 역대급 수사 시작?
https://tv.kakao.com/v/455617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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