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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건한 ‘아메리칸 드림’ 물밑선 ‘중국 러브콜’···

갈림길 선 인재들 [마가와 굴기 넘어②]

 

신년기획: 마가와 굴기 넘어②

미·중 패권 경쟁, 2030 이공계에 묻다

 

지키려는 미국이냐, 추격하는 중국이냐. 이공계 인재들은 ‘판이 바뀌는’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들의 선택은 곧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와도 직결된 문제다.

 

중국의 기술굴기를 논할 때 이공계 인재 양성이 빠질 수 없다. 중국은 내부에서 인재를 기르는 동시에, 미국 등지에서 기술을 익힌 자국 과학기술 인재를 불러들이는 걸 넘어 해외 인력을 적극 끌어안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카이스트(KAIST)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초 카이스트 교수 149명이 중국으로부터 포섭 e메일을 받았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중국의 이 같은 ‘일해보자’는 제안은 대학원생들에게도 향했다.

 

그러나 중국행은 여전히 쉽지 않은 선택지다. 배신자로 낙인찍히거나 기술 유출 의심을 받기도 해서다. 역사적 맥락도 있다. 한국은 서방국가의 과학기술 패러다임을 충실히 따르며 성장해왔다. 국내 대학 교수진은 미국 및 유럽 출신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정년퇴직 후 중국으로 건너가 연구하는 교수가 많다’는 사실은 요즘 이공계에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포항공대(포스텍) 박사후연구원 A씨(29)는 “중국이 한 분야를 따라잡기 시작하면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할 정도”라고 했다.

 

기술 경쟁과 국제질서 변화는 멀리 있지 않다. 카이스트 자연과학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인 마준석씨(29)는 “반도체·인공지능(AI)·통신 인프라와 같은 전략산업은 국가 간 규제와 제재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커리어 선택 자체가 지정학적 리스크에 연동된다”고 말했다. 포항공대에서 반도체 소재를 연구 중인 권민구씨(27)도 “대학원 졸업 후 진로를 결정할 때 미·중 경쟁의 영향이 클 것 같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11~12월 이공계 학부생과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 현직자 등 총 16명과 대면·전화·서면 인터뷰를 해 미·중 기술패권 경쟁 속 한국 이공계의 목소리를 들었다. 대면 및 전화 인터뷰는 각각 약 1시간씩 소요됐다. 인터뷰는 수도권을 비롯해 대전 카이스트와 경북 포항공대에서도 진행했다.

 

이들은 미국이나 중국으로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선 인재에 대한 낮은 처우 개선은 물론, 국내로 유턴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도 한국만의 틈새기술 확보가 중요하다고 했다. 또 미·중 이외 국가들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운신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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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환경, 성장 가능성…압도적 1위는 미국

 

인터뷰 참여자의 62.5%(16명 중 10명)는 학업이나 취업을 위해 해외로 나갈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 중 학창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1명을 제외하곤 모두 미국을 ‘가장 가고 싶은 국가’로 꼽았다. 독일·영국·호주·싱가포르·일본 등이 차순위로 꼽혔다. “바로 대답할 수 있는 건 미국 딱 하나” “의문의 여지가 없이 당연히 미국” 등 미국이 유일한 ‘꿈의 국가’인 사례도 있었다.

 

미국과 중국으로 선택지를 좁히면 미국 선호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다. ‘미국, 중국 기업이나 대학 등에서 동시에 영입 제안이 온다면 어디로 갈 것이냐’는 질문에, “아직 모르겠다”고 답한 1명을 제외한 15명 모두가 미국행을 택했다. 단, “학교라면 미국을 가겠지만 기업이라면 중국을 가겠다”며 학업과 취업을 분리해 답변한 경우도 있었다.

 

우수한 연구환경과 높은 성장 가능성, 굴지의 테크 기업 등 미국행을 고려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포항공대 AI대학원 박사과정생인 신경수씨(37)는 “학·석사 때 미국에 다녀왔는데 실력 있는 연구직 종사자가 많아 연구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었다”며 “대부분의 행정 처리가 투명하게 이뤄지고 연구 외의 잡무가 적었다”고 했다.

 

전문직을 그만두고 AI 박사과정 중인 B씨(36)는 “전 세계 뛰어난 사람들이 다 미국에 모이지 않느냐”며 “그래서 한번 구경하고 싶다.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일하면 어떨까’ 생각이 든다”고 했다.

 

국내 대기업에서 메모리반도체를 연구하는 C씨(33)는 “엔비디아·AMD 등 반도체 기업뿐만 아니라 구글·아마존웹서비스(AWS)·메타 등 플랫폼 기업들도 데이터센터를 위한 시스템온칩(SoC)을 자사가 설계하고 있다”며 “미국에서 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할 수 있는 기회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문직 비자 신청 수수료를 대폭 올리는 등 이민자 홀대 정책을 펴면서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 취업을 희망하지만 “트럼프 정부일 때는 미국에 가고 싶지 않다”는 답변이 나왔다. 미국 비자가 나오지 않아 취업을 포기하고 국내 대기업으로 향한 사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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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행’ 망설여도 “화웨이서 불러주면 감사”

 

미·중 패권 경쟁은 중국행을 망설이는 이유로 작용했다. 중국에서 경력을 쌓는다는 것은 향후 미국이나 기타 자유주의 진영 국가에서 일하지 못할 위험 부담을 떠안는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포항공대 화학공학 전공 석박사 통합과정생인 조성재씨(26)는 “당장 크게 와닿진 않지만,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 진로 범위에 제약이 생길 것”이라며 “어느 한쪽을 선택해버린 순간 다른 한쪽에 대한 길은 완전히 차단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이중용도(dual-use) 기술 연구·개발(R&D) 참여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카이스트 AI 전공 박사후연구원인 D씨(30)는 최근 중국 기업으로부터 ‘같이 연구하자’는 취지의 e메일 2개를 받았다. 그는 “중국 회사에는 웬만하면 답장을 안 한다”며 “겉으로 봤을 때만 IT(정보기술) 회사고, 군사 쪽으로 (기술이) 쓰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화웨이와 인텔리퓨전에서 대학원생들에게 홍보성 e메일을 많이 보낸다고 말했다.

 

일부는 중국 빅테크 기업 앞에서 ‘X’가 ‘O’로 바뀌었다. 스타트업에서 AI 개발자로 일하는 E씨(29)는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도 “알리바바 정도의 회사에서 저를 쓰겠다 하면 당연히 가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구글을 ‘꿈의 기업’으로 꼽은 서버 개발자 F씨(28)는 화웨이에서 입사 제안이 온다면 어떨지 묻자 “좋을 거 같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를 고려하면 ‘△’가 되기도 했다. F씨는 “해외 경험을 쌓더라도 결국 내가 살고 싶은 나라는 한국”이라며 “중국에서 일하고 왔다고 하면 평판이 좀 안 좋을 수도 있을 거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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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게 아니라 떠밀린 것”

 

미·중이 전 세계 인재를 앞다퉈 흡수하는 가운데 한국은 인재 유출 방지라는 과제에 직면했다. A씨는 “제 주변엔 그렇게 막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떠밀린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해외에 박사후연구원을 나갔다가 한국에는 일자리가 없어 그냥 해외에 정착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AI 등 수요가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이공계의 해외 이직은 이미 활발하다. 한국은행 보고서 ‘BOK 이슈노트 2025-36’(박근용 외)에 따르면 링크드인 기반 조사 결과, 2024년 기준 한국 AI 인력의 약 16%가 해외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타 업종 근로자에 비해 약 6%포인트 높은 수치다.

 

낮은 처우는 한국 잔류 의지를 꺾었다. 해외 취업을 고려 중인 한 박사과정생은 “한국에선 만족스러운 연봉을 받지 못한다”며 “그 돈을 받고 다닐 거면 (애초에) 유학을 안 가도 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의대 쏠림 현상과도 연결된다. 고급 인재들이 기대소득이 높은 의대로 향하기 때문이다. 한 응답자는 “의대하면 확실히 ‘돈을 잘 번다’는 인식도 있다”며 “공대도 전반적으로 대우를 향상시켜주면 좋을 거 같다”고 했다. “의대라든지 다른 좋은 데를 갈 실력으로 이공계 대학원에 온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보장을 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해외 연구 경력이 한국에서 연봉을 높이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한 서구권 국가에서 한국 기업의 채용설명회를 다녀왔다는 응답자는 “같은 박사인데도 한국에서 뽑히면 1억원, 현지에서 데려가는 조건이면 3억원을 받더라”고 전했다.

 

부족한 연구비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포항공대 화학공학과에서 연구 중인 G씨(25)는 “연구를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하면 ‘이걸 그만해야 되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톱티어 대학 이외의 대학들에 경제적 지원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씨는 “연구를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결국 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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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출 아닌 순환으로…유턴 유도해야

 

인재 이탈을 원천봉쇄하는 건 비현실적일뿐더러 다양한 연구 경험을 중시하는 이공계 문화와도 맞지 않다. 특히 국내 교수 임용을 꿈꾸는 이공계 학도에게 해외 유수의 과학자들과 연구 성과를 내고 인맥을 쌓는 것은 ‘필수 코스’로 꼽힌다.

 

한 응답자는 “부동산이랑 똑같다. 서울에 살고 싶어 하듯 더 좋은 일자리에 가고 싶은 것”이라며 “어차피 나갈 사람은 나가는데, 부동산 규제하듯 조이면 한국에 더 돌아오기 싫을 것”이라고 했다.

 

중요한 건 출국을 막는 게 아니라 성공적인 유턴 사례 축적이란 게 다수 연구자들의 생각이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롤모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 유학이나 취업을 고려하는 이들 대부분은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고 싶다”고 답했다. ‘가족이 한국에 있어서’ ‘언어와 문화가 다른 국가에서 평생을 사는 건 쉽지 않아서’ 등 이유는 다양했다. A씨는 “해외 기업에 가면 ‘잠시 찍고 오는’ 느낌”이라며 “창업을 하지 않는 이상 국내 대기업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꿈도 있었다. 미국에 박사후연구원으로 가고 싶다는 D씨는 “처음엔 한국 연구자가 미국이라는 메이저 게임판에서 살아남아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다”며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미국에서 쌓은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 뭔가 잘 꾸려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잔류를 택한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생인 김진유씨(35)는 진행 중인 연구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며 해외로 나가는 것을 고려해본 적 없다고 했다.

 

김씨는 “현재 상당한 규모의 국가 R&D 예산이 특정 부처나 기관에서 기획된 과제를 중심으로 소모되고 있으나, 실제 연구를 수행하는 대학원생과 연구원에게 체감되는 지원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직접적 지원이 강화돼야 우수 인재가 연구 현장에 머무를 수 있으며, 이는 결국 국가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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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기회’ 주는 기술강국으로

 

미·중 패권 경쟁을 위기로만 볼 게 아니라, 한국의 ‘대체 불가능한’ 기술 영역을 넓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건국대 자유전공학부 1학년 H씨(20)는 “한국은 미·중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며 활발히 교류해야 하고, 한국 자체의 기술력을 강화해 글로벌 경쟁 속에서 한국의 입지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김진유씨는 “미국, 중국과 비교해 한국의 인적·물적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 정면 경쟁하기보다는 이미 강점을 보유한 문화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하거나 배터리, 반도체 공정, 로봇, 의료 AI 등 특정 틈새기술 영역에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도 촉구했다. 기초과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AI만 붙이면 과제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고 한다. 정부가 과학기술 육성에 막대한 투자를 해도 반도체나 AI·로봇 등에 비해 기초과학 연구에 돌아가는 돈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미국 뉴욕대 졸업 후 카이스트 생명과학 박사과정 중인 장현수씨(31)는 “전문가 검토를 거쳐 (여러 분야에) 분산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며 “현장에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봐야 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기초과학에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했다. 실험주기가 긴 기초과학 특성을 고려해 장기간 꾸준히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유전자 가위나 mRNA 백신도 기초과학에서 비롯돼 발전된 것”이라며 “언제 성과를 낼지 모르는 분야”라고 말했다.

카이스트 대학원총학생회장인 이슬기씨(29)는 넓은 시야를 강조했다. 이씨는 “‘세계’를 말할 때 미국과 중국밖에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많다”며 “미·중 외의 국가들과 맺는 관계를 더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막연한 위기담론은 경계했다. 그는 “‘지금 기회가 열렸어. 해보자’라는 기대감과 ‘우리는 빨리해내야 한다. 위급하다’는 불안감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고 했다.

 

현실적인 목표부터 차근차근 이루자는 의견도 나왔다. B씨는 “우리가 처음부터 챗GPT를 만들 순 없다”며 “우리 생태계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내수용 AI 개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빨리, 많이’ AI 인재 양성한다는 이 정부…

“경제적 보상·직업 안정성 등 과학자 존중받는 서사 필요” [마가와 굴기 넘어②]

 

지난해 11월 7일 대전 유성구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다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대한민국’ 국민보고회

 

 

‘과학자가 자유롭게 도전하는 나라, 인재가 모이는 대한민국.’

 

인공지능(AI) 기술을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미·중 기술패권 경쟁시대, 정부의 정책 메시지를 담은 슬로건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교육부 등 주무 부처는 잇따라 ‘첨단 과학기술 인재 전략’을 발표했다.

 

정부 인재 정책의 핵심은 ‘AI 인재를 포함한 이공계 인재 양성·유지·유치 전략’이다. 뒤집어보면 인재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해외로 떠나며 한국으로 오지 않는 현실을 인지한 것이다. 예산으로도 정부 의지가 읽힌다. 올해 AI 관련 정부 예산은 10조1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배 가량 늘었고,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35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9.9% 증액됐다.

 

정부는 이공계 대학생 국가장학금 수혜율 60%까지 확대와 청년과기인 도약 적금 신설, 국가과학자 매년 20명 선정 등 이공계 보상 및 대우를 개선하는 정책을 내놨다. 연구환경 개선을 위해 개인 연구기간을 1~3년에서 3~5년으로 연장하고, 10년 이상 장기 연구가 가능하도록 연구비 지원체계를 손보기로 했다.

 

인재 양성안은 양적 확대에 비중을 뒀다. 통상 8년 이상 걸리는 학·석·박사과정을 5.5년 만에 밟을 수 있는 신속 처리제를 신설한다. AI 중심 학과 교육과정 대학과 대학원의 정원을 늘리고 과학고 및 영재학교에서 AI 입학 전형을 확대한다. 한 전문가는 “어느 분야든 AI를 접목해 인재를 키울 수 있지만 지금은 국내에 오롯이 AI만 전공하는 전공자들이 양적으로 늘어나야 혁신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AI 학과 신설이나 증설이 곧 AI 인재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며 양적 확대만으로는 인재 양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해외 인력을 한국으로 들어오게끔 한다는 구상도 밝혔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현재 해외 한인 과학자는 약 2만5000명, 한인 석박사과정 유학생은 5908명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해외 인재 2000명을 유치하되, 그중 70%는 재외 한인 과학자 복귀로 구성키로 했다. 유치 연구자에게는 비자, 채용방식, 조세, 자녀교육, 거주 등 종합 패키지를 지원한다.

 

첨단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인재의 중요성은 일본의 사례로 확인된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이후 반도체 산업이 쇠락하면서 전문 인력이 국외로 빠져나갔다. 이런 공백을 메울 인력을 키우지 않고 있다가 지금 당장 반도체 산업을 부활시키고 싶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은 첨단 과학기술 인재를 앞다퉈 끌어들이고 있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행한 ‘AI 패권 시대 인재전략: 중국의 AI 산업생태계 구축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 AI 논문 중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23.2%로 미국(9.2%)을 앞선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10년간 중국의 AI 연구자 규모는 연평균 30%의 성장세를 보이고, 세계 상위 100명 AI 전문가 중 절반 이상이 중국계에 속한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여영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국은 첨단 과학기술 인재에 대한 존중 및 보상이 높고 지방정부, 대학, 연구기관, 기업들이 역량을 모으는 협력체계가 잘 구축돼 혁신적인 생태계를 만들었다”고 했다.

 

한국은행 보고서(BOK 이슈노트 2025-31, 2025·11, 최준 외)에 따르면 미국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이공계 박사 인력 규모는 2010년 약 9000명에서 2021년 약 1만8000명으로 2배로 증가했다. 현재 미국에서 유학 중인 A씨는 “저는 한국 기업에서, 친구는 메타에서 인턴을 했다. 비교해보니 한국 기업에선 연구 결과물보다 어떻게 수익을 낼지에 관심이 크다는 게 달랐다. 윗사람 눈치 보는 기업 문화가 있어서인지 선진기술 연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여 부연구위원은 “미국은 산업과 교육 현장의 간극을 잘 메우고 있다. 학생들이 산업 현장에 조기 투입돼서 기업의 인프라 토대 위에서 산업 현장 이슈들을 조기에 학습·해결함으로써 산업계에서 필요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실증 중심의 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의 지속성과 유연성을 주문했다. 이종식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인재 ‘유출’이 아닌 ‘순환’으로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재를 국내에서 다 소화해야 된다는 건 비현실적인 접근”이라며 “중국으로 가는 걸 막을 필요가 없다. 중국 돈으로 연구를 한 다음 한국 과학계에 줄 수 있는 것들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기초과학 지원은 ‘중국식 모델’보다 ‘서구식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산업 생산이나 국가의 전략적 필요와 무관한 기초 학문이나 혹은 지성주의적인 추구를 잘해왔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며 “서양 국가에는 정말 ‘무용한’ 학문을 했던 12세기 대학에서부터 기원한 문화적 전통이 있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에서만큼은 ‘돈이 되는 학문’과 ‘국가가 원하는 학문’을 넘어서는 영역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기업, 학계,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여 부연구위원은 “AI 모델 개발 인재, AI 응용 인재 등 인재 유형을 세분화하고 거꾸로 어떤 주체들이 양성할지 선정하고, 기관들이 어떻게 인재를 유입할지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 현장에서 실체적 수요에 맞게끔 인재를 키워내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직업의 미래> 등에서 ‘인재’를 강조해온 미래학자 서용석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기업과 학계 모두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학계는 기업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워내지 못한 것이고, 기업은 우수한 인재들을 저비용으로 가져다 쓰면서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며 “인재는 목초지의 소와 같아서, 좋은 목초지를 따라서 이동하는 거라고 하더라. 목초지를 잘 가꿔야 그 소가 잘 크는 것처럼 인재도 그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서 교수는 이공계 인재 정책 방향과 관련해 “경제적 보상이나 직업 안정성 등을 포함해서 과학자들이 존중받고 멋져 보이는 사회 서사가 있어야만 인재들이 이공계에 진입할 것”이라며 “사회 전반적으로 과학기술계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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