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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백두대간 일제 종주에 나선 태극을 닮은 회원들이 마지막 봉우리인 마산봉을 향해 열심히 걷고 있다. |
백두대간은 도상거리 683km, 실제거리는 740km 정도 되는 남한에서 더 이상 길 수 없는 등산길이다. 어느 산악회에서 50m 줄자로 백두대간을 실측한 결과 총 734.65km로 나왔다고 한다. 이 거리를 꼬박 하루 걸려서 잠도 자지 않고 종주를 끝낸 것이다.
이 '51명의 건각들'은 6월 3일 밤 12시, 자정을 기해 백두대간 700여km를 전체 6개 구간으로 나눠 일제히 걷기 시작했다. 1구간은 중산리~빼재까지 총 125km. 이를 다시 4개 코스로 나눠 지리적으로 가까운 여수·전남지부인 여달사 회원들이 맡았다. 1코스는 중산리에서 천왕봉~성삼재, 2코스는 성삼재~만복대~매요리~사치재, 3코스는 사치재~영취산~육십령, 4코스는 육십령~동엽령~빼재 구간으로 나누어 동시에 출발했다. 3코스에는 홍일점 여성 건각도 참가했다.
2구간은 빼재에서 비재까지 121.6km를 거제·서부경남지부인 거달사 회원 5명이 종주했다. 1코스는 빼재~삼도봉~우두령 39.75km, 2코스는 우두령~황악산~추풍령~작점고개 32km, 3코스는 작점고개~백화산~신의터재 35km, 4코스는 신의터재~화령재~비재 20.15km로 나눴다. 가장 긴 거리인 1코스에 또한 여성회원이 참가, 완주했다.
3구간은 비재~벌재 106.2km를 대전·충청지부인 충달사 회원 10명이 참가했다. 1코스는 비재~문장대~청화산~장성봉~백화산~조령3관문, 2코스는 조령3관문~하늘재~황장산~벌재까지로 나눴다. 이 구간은 두 팀이 참가해서 다른 구간보다 더 많은 거리를 완주해야만 했다. 특히 긴 2코스에 여성회원이 참가, 50여km를 끝까지 완주하는 끈기를 보여줬다.
4구간은 벌재~피재 115.8km를 4개 코스로 나눠, 대구-경북지부인 대달사 회원이 맡아 종주했다. 원래는 3개 코스로 하려고 했으나 부상자가 생기면서 부랴부랴 1개 코스를 늘렸다. 1코스는 벌재~죽령~국망봉, 2코스는 국망봉~고치령의 다소 짧은 코스를 부상자 대신 단독으로 이어받아 끝까지 완주하는 지부 회원 간의 뜨거운 동료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3코스는 고치령~선달산~도래기재, 4코스는 도래기재~태백산~피재(삼수령)까지 완주코스를 이었다. 4구간에서는 두 명의 여성회원이 참가했으나 한 명이 부상으로 내려가면서 나머지 한 명이 무사히 끝냈다.
여성회원도 10명이나 참가해 완주
5구간은 피재~진고개까지 117.3km로, 부산·울산·경남지부인 불달사 회원 5명이 마찬가지로 4개 코스로 나눠 완주에 성공했다. 1코스는 피재~덕항산~댓재 구간으로, 여성 회원 두 명이 끝까지 걷는 '아줌마의 힘'을 과시했다. 2코스는 댓재에서 두타산~백봉령, 3코스는 백봉령~삽당령~닭목재, 4코스는 닭목재~대관령~진고개까지 이어 걸었다.
6구간은 진고개~진부령 97.2km로, 서울·경기지부인 수달사 회원 13명이 강원도로 이동, 종주에 참가했다. 1코스는 진고개~구룡령~한계령, 2코스는 한계령~대청봉~미시령, 백두대간 남한 마지막 구간인 3코스는 미시령~진부령으로 구분해 완주했다. 마지막 구간은 여성 회원 3명이 일제히 종주에 나섰다.
이들 51명 중 여성회원을 제외한 남성회원들 대부분은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자영업으로 시간을 내기 쉽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퇴근 후 시간을 내어 밤 12시에 일제히 종주에 나서는 열정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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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1.대간령 나무 이정표 앞에서 피곤한 듯 배낭을 베고 바로 누워버린다. 2. 진부령에서 백두대간 일시 종주를 마친 회원들이 비석 앞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다. 3. 마산봉 하산 마지막 지점엔 백두대간 종주를 했던 전국의 각종 산악회 리본이 걸려 있다. |
그래서 출발요령과 원칙을 정했다. '각 구간 출발점에서 모두 한 날 한 시에 출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각 지부에 할당된 구간을 회원 모두가 함께 끝까지 종주하거나 구간을 나눠서 해야 한다. 모두 60시간 이내에 마쳐야 한다. 어느 한 구간도 빠짐없이 산행기 아니면 사진으로 증거를 남겨야 한다.' 여기에 6개 지부 회원 모두가 동의하면서 D-데이는 6월 3일 밤 12시로 정했다.
가인원에서 알 수 있듯이 6개 구간 21개 코스에 51명이 나선 것은 결코 많은 것이 아니다. 이날 7개 코스에서 한 명만 나서서 외롭게 완주했을 정도였다. 한밤중 칠흑 같은 어둠에, 그것도 산길을 혼자 걷는다고 상상해 보라.
초보자는 옆에 사람이 있어도 산길에서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어쩌면 이들은 한밤중 산행이 이미 단련된 꾼들이어서 그런 걸 잊은 지 오래됐을지 모른다. 40대는 젊은 축에 속하고 50대가 주축인 참가자들이 과연 어느 정도 '꾼'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백두대간 마지막 코스인 미시령~진부령 구간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6월 3일 밤 12시 미시령에서 출발하기 위해선 일찌감치 서울에서 나서야 한다. 밤 8시쯤 서울에서 만나 출발했다. 미시령에 밤 11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 차 안에서 전국 이곳저곳의 소식이 연이어 들렸다. 어느 구간에 누가 출발했고, 어느 구간엔 참가자가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아서 출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등.
밤 12시, 여기저기서 "출발" 육성이 전화로 전해져 왔다. 21개 팀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섰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백두대간 종주였다. 일사불란이라기보다는 조금 산만해 보였고, '다사불란(多絲不亂)'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 전국의 여러 회원들이 여러 지점에서 '백두대간 종주' 한 가지 목표를 향해서 오르고 있으니, 다사불란이 꼭 들어맞았다. 미시령의 심야는 6월인데도 너무도 춥고 어두웠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갖고 온 재킷과 옷 등을 모두 꺼내 입었다. 낮에 서울에서 반팔 옷을 입고 다녔던 초여름 상황과는 완전 정반대인 겨울 날씨였다. 혹시 몰라 여벌의 옷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낭패를 볼 뻔했다. 재킷을 입고도 추워서 떨 정도였으니까.
이 시간에 대간 종주에 나서는 꾼들의 열성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더욱이 미시령~진부령 구간 종주에 함께 나선 사람은 50대 아줌마들이다. 역시 한국은 '아줌마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새삼 일깨워준다. 바람에 날리는 몸을 겨우 추스르며 한 발짝 한 발짝 발을 옮겼다.
출발 전 전국 여기저기서 확인하느라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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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백두대간 일제 종주에 나선 태극을 닮은 회원들이 마지막 봉우리인 마산봉을 향해 열심히 걷고 있다. |
칠흑 같은 어둠에도 철쭉꽃이 환하게 맞았다. 설악산의 철쭉은 6월 초가 돼서야 피는구나. 설악산이 춥기는 추운가보다. 2시간쯤 정신없이 걷다 보니 땀이 조금씩 흐르며 추위가 가시기 시작했다. 잠시 쉬면서 요기를 하기로 했다. 멈춰서 음식을 꺼내는 순간 어디서 나왔는지 벌레들이 엄청 달려든다. 아마 한 마리쯤은 먹었을 것 같다. 괜히 입 안에 뭔가 씹히는 기분이다.
철쭉이 만발한 상봉에 섰다. 저 멀리 속초 고성의 불빛이 밤거리를 수놓고 있다. 새삼 도시의 불빛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다.
큰새이령 안부에 도착했지만 어둠은 그대로다. 잠시 땀이 흐르는 듯하지만 앉아서 쉬면 다시 추워서 못 견디겠다. 차라리 계속 움직이는 게 나을 성싶다.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그래도 남한 백두대간의 최북단 높은 곳 마산봉에서 일출을 제대로 봐야지 하는 욕심도 슬슬 생겼다.
지금 해는 어디쯤 왔을까. 태평양 중간쯤 다다랐을까. 여명이 살짝 비추는 듯싶기도 했다. 해가 오는 기척이 조금 느껴지는지 추위도 조금은 가셨다. 대간령에 이르자 한 회원이 배낭을 뒤에 놓고 아예 벌렁 뒤로 눕는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게 아니라 순간 잠을 자는 것 같다. 이것도 오랜 산행으로 이미 단련된 듯했다.
서서히 해가 떠오르며 붉은 빛을 비추고 있다. 여명의 붉은 빛이다. 마산봉은 아니더라도 봉우리에서 장엄한 일출을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고갯길 나무숲 사이로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이젠 더 이상 지난 밤과 같은 추위가 오지 않겠지 싶어 배낭을 베고 아예 벌렁 누워버렸다. 순간 깊은 잠에 빠졌다. 웃는 소리에 잠을 깨보니 몇 분 동안 잠에 빠진 듯했다. 다시 마산봉을 향해 출발이다.
긴 너덜겅 길을 지나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산봉에 다다랐다. 정신도 없고 잠이 쏟아진다. 다시 잠시 눈을 붙였다. 때로는 구름이, 햇빛을 받으며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이제 더 이상 오를 길도 없으니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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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백두대간 일시 종주에 참가했던 회원이 백수리산 정상에 도착해 지친듯 비석을 잡고 서 있다. |
진부령에는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등산객들의 비석과 기념탑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다. 그렇게 백두대간 종주를 마쳤다. 4일 낮 12시쯤 됐다. 꼬박 12시간가량 걸렸다.
다른 팀들 상황파악에 들어갔다. 마지막 구간은 여성회원들만 나선 비교적 짧은 코스라 빨리 끝낸 듯했다. 다행히 6개 구간 21개 코스 중 어느 한 코스도 빠지지 않고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단 하루 만의, '태극을 닮은 사람들'의 백두대간 종주는 그렇게 완벽하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