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1년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어… 죽어라 일한 젊은 날 억울”
"도대체 난 그동안 뭘 한 걸까? 삶에 아무런 낙이 없다!!"
요즘 멍하게 앉아있는 일이 잦다.
무얼 해도, 누구와 있어도 도통 재미가 없다.
때로는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때로는 콱 죽어버릴까 싶다.
가족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해본 게 언제인지, 부부관계를 한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생수와 떡을 넣은 단출한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를 때면 초라한 기분이 들어 참을 수가 없다.
살아온 세월에 대한 허무와 배신감~
살아갈 세월에 대한 공포와 암담함~
절망이란 게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2년 전 건설회사에서 퇴직한 뒤 야심 차게 치킨 전문점을 창업했지만 쫄딱 망해 퇴직금마저 날린 뒤 이런 증상이 시작됐다.
● 봄 : 청도 촌놈, 개천 출신 용을 꿈꾸다
6·25 전쟁 후 태어난 1955~63년생 '베이비붐' 세대 중에서도 사람 수가 가장 많기로 유명한 1958년생이다.
그는 질곡의 현대사만큼이나 격동의 50년을 살았다.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2남 4녀 중 첫째로 태어난 그의 소원은 오직 쌀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었다.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경북 청도 '촌놈'은 대구로 유학을 떠나 명문 국립대 기계공학부에 들어갔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지만 박씨에게 데모(시위)는 사치였다. 과외수업과 막노동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근면 성실하게 대학을 졸업했다.
● 여름 : 유능한 사회인, 든든한 가장
일자리는 널려 있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큰 어려움 없이 서울에 있는 큰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삼시 세끼를 직장에서 해결하며 밤낮 없이 일했다.
27세 되던 1985년 봄엔 중매로 만난 참한 아가씨와 결혼했다.
서울 단칸방에 살면서도 야근 후 나눠 먹는 붕어빵 하나에 부부는 깔깔댔다. 사글세를 내고 남은 월급은 대부분 시골 가족들의 생활비로 보내졌지만 일할 곳이 있고 쌀밥이 있기에 마냥 행복했다.
이듬 해 딸이 태어났고, 자식에겐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
야근은 일상이었고 휴가는 남의 일이었다. 직장에 한 몸 바치는 게 당연한 줄만 알았다. 아들도 얻었다.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이사를 반복했다.
'내집'만 있다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그는 마침내 1994년 경기도 성남 분당 신도시에 새로 지어진 31평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 가을 : 52세 직장 퇴출, 좌절의 문턱
인생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 였을까?
젊고 똑똑한 부하 직원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직장에서 그의 입지는 차츰 쪼그라들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바뀌는 흐름과 유행을 좇아가기 버거웠다. 영어는 또 왜들 그렇게 잘하는지, 그는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추진력도 예전 같지 않았고 자신감도 확연히 떨어졌다. '꼰대'로 취급받는 걸 느끼며 박씨는 막연히 은퇴를 예감했다.
그래서일까. 2010년 쉰둘의 나이로 회사에서 잘렸을 때 그는 애써 태연한 척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실제로 큰 충격을 못 느꼈으니까.
딱 100일을 동분서주한 끝에 퇴직금 1억원으로 경기 용인 수지에 통닭집을 냈다.
그러나 창업은 쉬운 게 아니었다.
대접만 받아 왔던 그는 서비스업에서는 젬병이었다. 대우받고 살다가 갑자기 몸을 낮추려니 배알이 꼴렸다. 손님들을 살갑게 대하는 것도 어려웠고,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을 다루기도 버거웠다.
계산과 서빙에 잔 실수도 많았다. 새벽까지 술 손님을 상대하느라 건강도 축났다.
신메뉴와 세련된 인테리어로 단장한 경쟁업체도 잇달아 들어섰다. 아내와도 자주 싸웠다.
결국 반 년도 안 돼 빈손으로 가게를 접었다.
정말 끝이었다.
50평생을 제대로 놀아 본 기억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는데 남은 건 달랑 50평짜리 아파트 하나였다.
"팽팽하던 고무줄이 끊어진 느낌이었다."
● 겨울 : 절망… 처자식보다 산이 더 좋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년간은 '백수'로 살았다.
직장이 없어지니까 특별히 만날 사람도, 할 일도 없었다.
격의 없이 술잔을 주고받던 사회 친구들과는 대부분 연락이 끊겼다.
아니, 스스로 끊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괜한 자격지심 때문에 내가 먼저 피한 적이 많다."
동창 모임에도 몇 번 나가봤지만 아직 일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샘이 나서 움츠러들었고 같은 처지의 친구들은 궁상맞아서 싫었다.
아내와도 영 어색해졌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삼시 세끼 끼니를 챙겨 줘야 하는 남편을 뜻하는 '삼식이'라는 말이 등장했을 땐 굴욕적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대학생이 된 자식들과도 서먹해졌다.
할 말이 없고 어쩌다 대화를 해 보려 해도 관심사나 가치관이 달라 몇 마디 이어지질 않았다.
아내와는 여자친구 얘기며 학교 얘기며 일상을 속속들이 나누는데 아빠만 시쳇말로 '왕따'를 시키다니. '여태껏 누구 때문에 풍족하게 먹고 자고 입고 다녔는데'라고 생각하니 괘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아이들과 소소한 일상 얘기를 해 본 기억이 없었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인간관계에 대한 서운함은 물론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사무치게 밀려든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으면 안 되는데~ 젊은 시절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 사춘기가 다시 오는 건가 싶다.
사는 게 아무런 재미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가족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왠지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제대로 놀 줄도 몰랐다.
넘치는 시간이 고역이다.
가장 우울한 건 통장 잔고가 팍팍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버는 건 없는데 씀씀이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대학생 두 명을 키우다 보니 등록금만 매년 2000만원 가까이 들어갔다. 둘째가 군대에 간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게다가 고향 청도에 혼자 사시는 홀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마음의 짐까지 보태졌다.
이젠 '100세 시대'라는데 나의 노후만 대비해도 모자랄 판국에 뒷바라지해야 하는 자식과 부모 사이에 끼어 그저 답답할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멍하니 앉아 울음을 삼킨다.
"50대 남자 소리 없이 울고있다"
당신의 아빠, 당신의 남편, 당신의 아들…
그들 뒷모습 본 적 있나요?
50대 남자들이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들은 남편, 그리고 아버지로서 어떤 상황에서든 의연함을 강요받은 세대다.
그러는 사이에 삶은 피폐해졌고, 마음의 병은 커가기만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우울증 환자 현황’에 따르면 국내 50대 남성 우울증 환자가 매년 가파르게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2만 6800명이던 50대 남성 우울증 환자는 매년 꾸준히 증가해 2010년에 3만명을 넘어서더니 지난해에는 역대 최고인 3만 2565명을 기록했다.
여성의 갱년기 우울증에 가려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여겨졌던 중년 남성들의 우울증이 이미 ‘마음의 감기’ 수준을 멀찍이 넘어선 것이다.
하규섭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남자들은 감정 표현을 나약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슬픔·피로감·희망 없음·수면 패턴 등을 묻는 전형적인 우울증 질문지로는 증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면서~
“실제 남성 우울증 환자는 발표된 수치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없이 크고 강해 보이기만 한 우리의 아버지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전문가들은~
▲직장 내 고립과 실직에서 오는 사회적 자존감 하락
▲경제적 궁핍과 노후 고민
▲성장한 자녀와 소원한 아내 등 가족들의 관심 부족
▲남성성과 힘의 쇠락에서 느끼는 좌절감
등이 남성 우울증의 주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전태연 우울증임상연구센터 소장은~
“우울증의 기본은 상실(loss)이다.”면서 “50대 남성들은 갑자기 잃은 게 많아 특히 그렇다.”고 설명했다.
백종우 경희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50대는 사회적으로 잘나가던 남성들이 퇴직하면서 존재감에 상처를 입는 시기”
라면서 “소일할 방법이라고는 등산과 술뿐이라 더 쓸쓸한 세대”라고 분석했다.
변화순 팸라이프가정연구소 소장은~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온 남자들이 50대에 다시 사춘기를 겪는다.
”면서 “가족과의 교감·소통·공감을 무시하고 살다가 어느 순간 소외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때가 50대 전후”라고 말했다.
이들은 감정과 분노 조절에 서툴러 우울증이 오면 술·도박·섹스중독 등 자기파괴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50대 남자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며, 자살 사망률도 여자보다 2배나 높다.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자수)도 1984년 12.5명에서 지난해 43.3명으로 급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상실의 세대’가 웃음을 되찾으려면 제2의 삶을 살 수 있는 사회적 대책과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장은~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정년을 늦추고 중·노년 일거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정범 계명대 동산의료원 정신건강과 교수는~
“사람들은 우울증을 ‘질병’이라기보다 ‘의지’의 문제로 인식해 치료나 상담을 꺼린다.”
면서 “약물치료와 상담을 병행하면 충분히 완치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문의들은 “이제는 남성들이 ‘대장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주변에 적극적으로 자기감정을 표현하고 살아야 한다.”
면서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음을 남성들이 스스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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