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치재~도마봉~도마치봉~삼각봉~백운산
~무학봉~윤나리휴계소~도마치재
08:00 석사동 우리소아과 앞 출발 |
09:20 도마치재 도착 |
09:36 등산시작 |
09:59 도마봉*도마치재(반암산) 갈림길 |
10:25 도마봉 |
10:40 샘터 |
10:51 도마치봉 |
11:23 삼각봉 |
11:50 백운산 |
12:06 광덕고개*무학산*백운산 3거리 도착 |
13:00 무학산 바로 앞에서 back하여 윤나리 화살표 방향으로 하산 |
14:19 윤나리휴계소 도착 산행완료 후 식사 |
14:40 식사 후 출발 |
16:30 도마치재 아래에서 인천 천지산악회 버스 hitch-hiking |
16:40 도마치재 정상 도착 |
18:00 춘천 도착 |
안드로이드 gps & earth
트랭글 gps
09:36 설 명절이 지나고 도마치재~도마봉~도마치봉~삼각봉~백운산~무학산~덕골~반암산~도마치재를 걷기로 하고
여기저기 산행자료를 살펴 보았으나 아직까지 종주한 팀들이 많치 안아 원하는 자료를 얻을 수 없다.
그렇게 며칠을 살피던 중 다행스럽게 "이슬로"님이 트랭글gps와 안드로이드 맵스*어스에 gpx트랙 올려 놓은
것을 어렵사리 찾아, 다운받아 놓으니 한결 편안해 진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린다.
25일 만인가? 지난달 27일 국망봉 종주할 때 이곳을 들렸으니......
등로엔 눈이 내린관계로 발자국이 없다.
발자국도 친구가 된다는 것을 산을 거닐면서 알게 되었다.
원래는 21일 산행하기로 했으나 겨울비로 인하여 부득이 오늘로 변경하게 되었다.
함께 하기로 한 몇몇 님들과의 약속도 그로인해 흐지부지.......
2~3일 간의 눈과 비로 인하여 등로가 괜찮을 지 다소 걱정스러웠는 데~
역시나 습기 잔뜩 먹은 눈으로 인해 산행 시작부터 등산화 안은 질쩍거리기 시작한다.
2002년에 세번째 구입한 트랙스타 "타이탄"이 이젠 제 구실을 못한다.
많은 시간 동안의 행실을 모두 알고 있는 단 하나의 동반자였는 데~
등산화가 너무 비싼지라!
두번째 구입한 K2와 번갈아 신으면서 아껴 줬는 되도, 나나 얘나 세월 앞엔 어찌할 도리가........
작은취골 깊숙히 들면서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진다.
방수스프레이라도 뿌려 놨어야 했는 데? 간밤 피할 수 없는 주님과의 만남 땜시 .......
발이 시려온다. 그래서 쉴 수가 없다. 마냥 걷는다. ㅜㅜ~~~
09:59 좌로는 한북정맥 상의 도마봉으로 가는 길이고, 우로는 도마치재(절개지)와 번암산으로 가는 길이다.
이 표지판 좌로 갔다 백운산~무학산~반암산 들려 우에서 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별로 비밀스러워 보이지 안은 군시설물을 지나고~~
10:24 한북정맥 도마봉에 도착한다.
이 도마봉(883m)이 방금 지나쳤던 도마치재로 연결되어 석룡산~화악산~몽가북계
그리고 가평의 보납산까지 연결되어 자라목에서 북한강으로 스며드는 화악지맥의 시작점이다.
10:42 한북정맥 종주꾼에겐 감로수와 다름없는 샘~
10:51 도마치봉(道馬峙峰)에 도착하지만, 정상석이 어울리지 안아 눈살이 찌푸려 진다. 자연석이 훨 보기 좋은 데......
화천군 사내면과 포천시 이동면에 걸쳐 있는 백운산의 도마치봉은
태봉의 궁예가 명성산 전투에서 왕검과 싸우다 패하여 도망할 때 이 산 부근을 경유하게 되었는데~
산길이 너무 험해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서 넘었다 해서 명명됐다 고 한다.
'기마 민족'이라 불리는 우리 민족은 말 관련 역사가 깊다.
중국 고대사를 사관에 입각해 기록한 최초의 역사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는 고조선에서 한나라 무제에게 말 5000두를 헌상한 기록이 있다.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 신라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 등도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말을 다양하게 활용했다는 증거다. 조선시대는 독자적 체계를 확립, 마의서, 마경 등 말 관리 방법이 정착되는 등 '말산업 중흥기'였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영향으로 말을 수입·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 태조는 8개의 국립 목장을 설치했고, 헌종 16년에는 '목감양마법'을 제정해 종류별로 사육법을 확립하기도 했다. 이때에는 중앙조직의 병부에서, 지방에서는 목장 단위로 구성해 말을 관리했다. 지방 목장에서는 말을 생산해 바치는 '고역(苦役)'이 있었고, 원나라에 말을 정기적으로 헌상을 하며 말 관련 지명이 생겨났다.
말과 관련한 지명은 우리나라 산맥이나 지형 특성에 따라 명명된 경우, 역마(驛馬)로 활용된 중심지의 경우 등 말을 이동할 때 쉬는 주요 장소 등을 거점으로 생겼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말 관련 지명은 총 62건인데 이 가운데 강원도 10곳, 서울 9곳으로 가장 많았다. 이 가운데 흥미로운 지명을 소개해 본다.
■ 강원도
도마치봉(道馬峙峰)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과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에 걸쳐 있는 백운산의 도마치봉은 태봉의 궁예가 명성산 전투에서 왕검과 싸우다 패하여 도망할 때 이 산 부근을 경유하게 되었는데, 산길이 너무 험해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서 넘었다 해서 명명됐다.
마식령산맥(馬息嶺山脈)
강원도와 황해도의 경계를 이루는 산맥으로 두륜산에서 강원도 세포군까지 걸쳐 있다. 특히 북한 강원도 북부에 있는 문천시 부방리에는 '마식령' 고개가 있는데 말도 이 고개를 넘기가 힘들어 쉬고 갔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백마고지(白馬高地)
강원도 철원읍 북서쪽 약 12km 지점으로 DMZ 내부에 있는 곳으로 6·25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 중 하나였다. 한국전쟁 발발 후 창설된 국군 보병 제9사단(백마부대)이 수행한 전투 때 심한 포격으로 인근이 파괴, 공중에서 보니 백마(白馬)와 같다해서 백마고지로 이름이 붙여졌다. 강원도에는 이외에도 마등령(馬等嶺·인제군 북면), 마대산(馬垈山·영월군 하동면), 마상천(馬上川·동해시) 등의 말 관련 지명이 있다.
■ 서울·경기
마들
지금의 노원구 상계동 인근 들판에 역원이 생기고 정식으로 '노원'이라고 불리면서 역원에 필요한 역마(驛馬)를 놓아 키우게 됐다. 하지만 당시 한자 지명에 익숙지 못했던 민간에서는 들판에 말들이 자라고 뛰어 다니는 것을 보고 차츰 이 들판을 '마들 평야'라는 순 우리말 표현을 부르게 됐고 이 표현은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용마봉(龍馬峰)
광진구 구의동과 중곡동에 있는 용마산의 봉 이름. 삼국시대에는 장사가 태어나면 가족을 모두 역적으로 몰아 죽이는 때가 있었다고 하는데 백제와 고구려의 경계였던 이곳에서 장사가 될 재목의 아기가 태어나자 걱정하던 부모가 아기를 죽였다. 그 뒤 용마봉에서 용마가 나와 다른 곳으로 날아간 데서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피맛골(避馬골)
지금은 '맛집 골목'으로 유명한 종로구의 피맛골이 사실은 말과 관련된 지명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의 피마(避馬)에서 유래했는데, 피맛골이 서민들의 식당과 대폿집으로 유명한 점을 보면 '사람은 역사를 사는 존재'라는 말이 실감난다.
마옥산(馬玉山)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산내리와 안성 일죽면의 경계에 있는 산. '마한의 산'이라는 뜻으로 마국산(馬國山)이라고도 불린다. 조선시대까지 산상에 검은색 말 동상이 있었는데 산신제를 그 앞에서 지냈다. 광복 후 산상에 헬기장을 만들 때 흙으로 만든 망아지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마감산(馬甘山)
경기도 여주 강천면에 있는 388m 높이의 보금산 남쪽 봉우리로 말감산이라고도 한다. 말(馬)은 지명에서는 크다는 의미로 사용되며, 감(甘) 역시 큰 대(大)자에서 유래, 제일 큰 산이라는 뜻이다. '여주군지'를 보면 효종 당시 북벌의 공을 세웠던 이완 장군이 풀어놓은 말이 이 산으로 와서 마감산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이 외에도 지형이 말의 생김새처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는 경기 고양시의 '마두동(馬頭洞)'과 평택시 서탄면의 '마두리(馬頭里)'가 있다. 성동구의 마장동(馬場洞)은 조선 초기부터 말을 기르던 양마장의 장소였으며, 서초구의 말죽거리(馬竹巨里)는 한강을 건너기 이전 말들이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하던 장소였다. 강남구 역삼동(驛三洞)은 조선시대 역촌(驛村)이었던 말죽거리, 상방하교, 하방하교 등 세 마을을 합친 데서 유래한다. 또 경기도 여주군 상리 일원에 있는 마암(馬巖)은 여주 지명의 유래가 되는 두 마리의 말, 황마(黃馬)와 여마(麗馬)가 솟아났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 경상남북도
마암면(馬岩面) 석마리(石馬里)
경남 고성군의 '마암면'은 호랑이의 출몰을 막기 위해 세워진 한 쌍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돌말(石馬)이다. 돌말을 세우고 제사를 지낸 후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돌말을 마을 수호신으로 삼게 된 일에서 유래됐다. 이 마을 이름은 석마리(石馬里)로 불리고 있다.
마동(馬洞)
경상북도 경주시의 마동은 원래 '용동'이라 불렸지만, 마을에 참상이 자주 발생하자 갇혀있던 용이 천리길을 달리는 말처럼 승천하라는 뜻으로 이름을 마동(馬洞)이라 고쳤다고 전해진다. 이외에도 경북 영주의 말소(馬沼)는 말이 목욕을 했던 곳이며, 봉화군의 고선계곡(구마계곡)은 9두의 말이 한 기둥에 매여 있는 '구마일주'의 명당으로 인근에 죽통골(말이 죽을 먹는 곳), 굴레골(말이 멍에를 쓰고 일하던 곳), 질가메골(말이 짐을 진 계곡) 등이 있다. 이외에 거창군의 마리면(馬利面)은 이곳에서 말을 탔던 주 세력의 집단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됐고, 사천시의 마량동(馬島洞), 진해시의 마천동(馬川洞), 함양군의 마천면(馬川面) 등이 있다.
■ 전라남북도
마량면(馬良面)
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은 조선시대에 제주에서 말을 싣고 와서 다시 살찌운 다음 서울로 보냈다고 해 명명된 곳이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이었던 전북 익산시의 마동(馬洞)은 말을 이용하는 행인들이 이곳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며 쉬어갔다 해서 마동이라 했다. 또 진안군의 마령면(馬靈面)은 진안의 상징으로서 산의 형상이 말의 두 귀와 흡사해 붙여진 마이산을 마이영봉(馬耳靈峰)이라 한데서 유래됐다.
두산리(斗山理)
전북 장수군은 유독 말 관련 지명이 많다. 장수읍 두산리 뒤 마봉산(馬峯山)은 원래 말산(馬山)으로 불렸으나 세월의 흐름을 따라 말(馬)과 말(斗)의 동음이의적 특성 때문에 두산(斗山)으로 와전되었다고 전해진다. 마봉산은 말이 산 위를 달리는 모습과 같다 해서 명명됐고, 장수군 산서면의 마하리는 인근 마하치(馬下峙)재 아래 있는 마을이라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 충청남북도
금마면(金馬面)
어린 시절 최영 장군은 인근 철마산에서 애마 '금마' 타기와 활쏘기를 즐기며 무예를 익혔다. 그는 금마를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에 화살보다 늦으면 목을 베겠다고 한 뒤 큰 은행나무가 있는 들판을 향해 화살을 쏘고 말을 타고 달렸다. 은행나무에 도착한 뒤 화살이 보이지 않아 금마의 목을 베고 말았는데, 그때 그의 귓전을 스치며 화살이 날아왔다. 최영 장군은 성급함에 말을 잃은 것을 슬퍼하며 지금의 금마총 자리에 말을 고이 묻었고 금마총의 이름에서 금마면이 유래됐다.
마역봉(馬驛峰)
충청북도 괴산군과 충주시, 경북 문경시에 걸쳐 있는 산으로 마패봉이라고도 함.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산을 넘을 때 조령 제3관문에서 쉬면서 마패를 관문 위의 봉우리에 걸어놓았다고 해 마패봉이라 불렸다. 이외 충북 보은군의 마노면(馬老面)은 조선시대 역마를 먹이던 곳으로 유명했고, 대전 동구에는 말의 형상을 닮아 붙여진 마산동(馬山洞), 충남 서천의 마서면(馬西面) 등이 있다.
■ 제주특별자치도
마라도(馬羅島)
마라도는 1702년 '탐라순력도', '대정강사편'에 나오는 마라도(麻羅島)라는 '칡넝쿨이 우거진 섬'에서 유래했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뜻하는 마파람에서 '마'자를 따왔다는 설도 있다.
11:23 삼각봉~~
여기서 차를 마시며 잠깐 휴식하고 발이 시려 서둘러 발걸음을 옮김니다
11:50 백운산 정상. 춥진 안은 데~ 발이 시려 부럽긴 합니다. ㅋㅋ~
12:06 이곳이 광덕고개*백운산*무학산 갈림봉입니다.
신발 상태가 안 좋아 광덕고개로 빠질까? 잠시간 몇 번을 망서리다~
시간 여유가 있어 일단은 무학산 쪽으로 가보고 나서 결정하기로 합니다.
건너편에 무학산으로 짐작되는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하니 의욕이 솟습니다
12:40 ㅋ~~ "윤나리"라는 팻말은 뭘 말하는 건지? 팬션, 카폐, 음식점......??
바람도 숨을 죽인 고요한 골짜기에서 발자국도 반가울 지언데 저 푯말이 많은 위안을 줍니다.
배창랑과 그 일행 표지기가 반겨주고요~~
12:48 멧돼지 발자국 뿐인 이곳에서 10 여분을 더 가니~
좌측에 무학봉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있고 앞쪽의 계곡으로 반암산 gpx트랙이 연결 되는 데,
경사가 심하고 눈으로 뒤덥혀 있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눈 앞이지만, 아쉽게도 어쩔수 없이 윤나리 푯말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갑니다.
13:25 평소 같으면 여기서 욕심을 부려 우측 계곡으로 빠져 무학산을 올라 도마치재로 가겠지만,
웬지 윤나리라는 단어가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깊은 곳은 무릅까지 눈이 차 오릅니다. 등산화가 질퍽하니 발걸음 옮길 때마다 쩍쩍소리가 장단을 맞춥니다. ㅋㅋ~
폭포가 제법 큼지막하여 여름엔 계곡산행지로 꽤 괜찮아 보여 집니다
쓰러진 나무에 버섯이 꽃 처럼 예쁘게 피었습니다.
차가운 눈이 덛혔는 데도 그 색깔이 너무 고와 꺽지는 못하고 사진으로 만 담았는 데, 이름이 너무 궁금합니다.
이제 길이 확연하니 몸이 덩달아 포근해 짐니다
14:19 윤나리가 뭔가 했더니? 이 휴계소를 말하는 가 봅니다. ㅎ~
여기서 늦은 점심을 먹고 택시를 콜 하던지, 히치하이크로 차가 있는 도마치재로 가기로 합니다.
14:40 조금 덜 익고 약간 불은 컵라면, 국물도 그냥 따뜻할 정도. 열라 맛 없게 보이지만~
입 맛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꿀 맛이라 생각하고 먹습니다.
후식으로 미적지근 온수에 반녹고 반안녹은 커피로 입가심한 후 도로로 나갑니다.
이 이후로는 아쉽게도 자료가 없습니다.
콜택시를 이용하거나 히치하이크 하려고 트랭글과 산길샘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꺼 버렸고, 카메라도 배낭에 넣어 버렸거든요!
그러나 도로로 나가보니 차가 별로 없어 걷기가 좋아 그냥 트래킹합니다.
어느 정도 걷다 적당한 시간에 차를 이용하려 했는 데, 걷다보니 8km(집에 와서 거리 측정) 가까이 걸었습니다.
등산 7km까지 합하면 오늘 운동량은 충분합니다.
여기서 도마치재 정상까지 2시간 정도 고개를 오르려면 힘이 부칠텐데...... 하는 순간에 마침 산악회 버스가 도마치재로 향해 올라오고 있습니다.
손을 드니 기사님께서 세워줍니다.
감사하게 도 커피까지 권해줍니다.
절대 안 먹는 길다방 믹스커피~ 감사히 받아 먹습니다. ㅋ~
그렇게 정상에 도착하고 그래서 춘천에 잘 도착합니다.
천지산악회 버스 기사님께 거듭 깊은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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