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두 검사 ②

온리하프 2025. 3. 1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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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검사 ② 서지현·박은정 "국민에 침 뱉은 검찰, 이젠 속내도 안 감춰"

 

  서지현 전 검사와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17일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서교동마당집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두 검사는 참사가 벌어진 이태원을 찾아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부채 의식이 "우리가 좀 더 잘했다면", "우리 힘이 너무도 부족한 탓에"라는 말로 터져 나왔다.
 

"검찰의 왕이었던 윤석열이 대한민국의 왕이 되려고 했던" 내란 사태에서도 두 사람은 같은 감정이었다. "우리가 좀 더 잘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내란 우두머리의 탄생에 검찰의 책임을 통감한 두 전직 검사는 검찰을 대신해 고개를 숙였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서교동마당집에서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과 서지현 전 검사를 만났다.

 

"검찰, 자신들만 옳다는 착각에 빠져"

 

-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특성 중 하나로 '사유의 불능'을 꼽았습니다.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문제나 내란 사태를 떠올려 보면 군인이나 국정원 직원조차 톱니바퀴의 기계가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내란 이후부터 최근 즉시항고 포기의 상황까지 떠올려 보면 검찰은 너무도 조용하고 때론 일사불란합니다. 검찰 내에서 '스스로 사유하기'란 어려운 일인가요.

 

 : "많은 이들이 '다수의 검사는 괜찮고, 일부 검사만 좀 청산하면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검찰권 자체에 문제가 내포돼 있고 검찰 내부 자정 능력 또한 오래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윤석열을 감찰할 때 전국 검찰청에서 검사들의 집단행동이 있었습니다. '정의로운 검찰총장 윤석열을 징계해선 안 된다'면서요.

사실상 공무원의 집단행동이었는데 누구도 처벌·징계받지 않았습니다. 검찰 스스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정의로운 존재'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대통령 윤석열이 벌인 일을 생각해 보면 그때 행동이 잘못됐다고 사유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사과하거나 반성하는 검사가 없습니다. 조직 전체가 자신들만 옳다는 착각 속에 빠져 나쁜 권한 행사만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서지현 전 검사가 17일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서교동마당집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검찰은 상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돌아갑니다. 사건 배당, 평가, 포상·징계, 인사 등을 여전히 상관 맘대로, 그러니까 권력자 맘대로 할 수 있습니다. 원칙이라고 만들어 놓은 게 있지만 원칙대로 하지 않습니다. 결국 검사로서의 운명 자체가 상관에 의해 좌지우지되니 절대복종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답이 없는 거예요. 양심에 반응해 지시에 불응하거나 소신에 따라 행동하려면 사표를 내거나 왕따·부적응자가 돼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견뎌내야 합니다. 이 시스템을 고치지 않으면 검찰은 절대 개혁될 수 없습니다."
 

 : "맞아요. 검찰은 절대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시스템이 아니죠."

 

 : "제가 특수부 검사로 일할 때 부장님이 사건과 관련해 틀린 얘기를 하길래 그게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제 사건이니까 제가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근데 '윗사람 말에 따박따박 말 대답하는 버르장머리를 어디서 배웠냐'고 대노하더라고요."

 

 : "반대 의견을 내지 않고, 내지 못하는 구조죠. (한동수 감찰부장이) '한동훈 감찰하겠다'고 보고했더니 윤석열이 '쇼하지 마'라고 했듯, 검찰총장만이 의견을 내고 결정하는 그런 구조인 거예요. 그런 조직 문화 속에 살던 윤석열은 대통령이 돼서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예요. 혼자 모든 걸 결정하려 하고 반대 의견을 묵살하다가 그것이 점점 더 강화돼 결국 고립됐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니 이런 식의 파국은 너무도 당연한 거죠."

 

- 이른바 '남성문화'가 지배하는 검찰 특유의 구조도 '친위쿠데타 대통령'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어쩌면 그에 동화되거나 자연스레 합류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 "저는 검찰 내에서 항상 비주류로 살면서 외부자적인 시각을 가졌던 것 같아요. 객관적·비판적으로 조직을 바라보고 문제의식을 키워갔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여자 형제만 있었고 상당히 민주적인 집안에서 자랐어요. 여중, 여고, 여대를 나오기도 했죠. 첫 직장인 검찰에 들어왔는데 너무 폭력적이고, 수직적이고, 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거예요. 제 첫 상사였던 부장이 저를 처음 본 날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나는 여검사를 싫어한다. 나는 이대(서지현·박은정 모두 이대 졸업 - 기자 말) 출신을 싫어한다. 나는 술 못 마시는 검사를 싫어한다.' 그리고 다음 부장은 '너는 남자 검사의 0.5다'라고 말했죠. 특수부 검사를 하긴 했지만 아무런 백도, 힘도 없는 제가 주류가 되긴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뿐만 아니라 그들을 선망해야 동화되려고 노력할 텐데 너무 우스웠었죠."

 

"응원봉 세대, 대한민국 이끌 힘"

 

- 이번 내란 사태에서 응원봉으로 대변되는 2030 여성들의 모습에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 "응원봉을 든 채 국회를 에워싼 이들과 남태령에서 보여줬던 젊은 세대의 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 힘이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이끌 것이고, 거기에서 대통령도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 "두 가지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그 겨울에 본인의 편안함을 버린 채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모습을 보며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기성세대로서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세상을 만들어 미안하기도 했죠. 농민들을 돕기 위해 남태령에 모인 여성들을 보면서 '간절해 본 사람만이 간절한 사람의 마음을 아는구나'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피해를 보는 이들은 결국 약자입니다. 젊은 여성들에게 민주주의의 위기는 굉장히 절박한 문제였을 겁니다. 그 절박함이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과 서지현 전 검사가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법원의 윤석열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에 검찰 특수본이 즉시 항고를 제기하지 않을 것에 “과거 검찰의 일원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리고자 한다. 현직 검사 누구도 사과하지 않으니, 저희라도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지난 13일 서초동 기자회견에서 두 분은 전직 검사로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조직을 떠난 입장에서 조직을 대신해 국민께 사과하는 심정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 "검찰의 즉시항고의 포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내란 우두머리가 구속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도록 놔두다니요. 그건 나라가 아닙니다. 누구라도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진심으로 죄스러운 심정이었어요. 이태원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을 때, 언니와 같이 현장에 가서 한참을 울다 왔었습니다. 우리가 좀 더 잘했더라면, 우리가 뭔가를 더 했다면, 이 무도한..." (이태원 참사 이야기를 이어가던 서 전 검사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 기자 말)

 

 : "우리가 좀 더 잘했다면 이러한 죽음은 없었을 거예요."

 

 : "우리 힘이 너무도 부족한 탓에 이따위 검찰정권이 탄생했고, 그래서 무고한 생명들을 잃은 것 아닌가 생각하며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이번 겨울을 보면서도 그랬어요. 검찰의 왕이 대한민국의 왕이 되려고 하는 이 사태를 우리가 좀 더 잘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잖아요. 더구나 윤석열 석방이 그렇게 이뤄지다니요. 그동안 그렇게 기계적으로 항고, 재항고, 항소, 상고 등으로 명백히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혀 온 검찰이 제대로 된 설명도, 사과도 없이 윤석열을 석방시켰어요.

 

그걸 보며 느낀 감정은 모멸감이었어요. 이전까지 검찰은 감추려는 모습이라도 보였거든요. 그런데 이젠 속내를 감추려는 성의조차 없이 그냥 '당신들은 개돼지입니다'라며 국민 얼굴에 침을 뱉어버렸어요. 현직 검사도 아닌 우리가 국민께 사과한 이유는 그 모멸감을 달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침이라도 좀 닦아주고 싶었기 때문이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17일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서교동마당집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제 검찰은 개혁이 아닌 해체의 대상이란 여론까지 들끓고 있습니다.
 

 : "당연한 분노죠. 해체뿐만 아니라 어떤 얘기를 들어도 쌉니다. 저희가 검찰이 공소 제기 업무만 할 수 있도록 공소청법을 발의했거든요. 그런데 내란 우두머리를 풀어주는 모습을 보면 공소 유지도 제대로 못하잖아요.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의 분노를 보며 막중한 책임을 느낍니다. 지난주 토요일 광화문광장에서 자영업자 한 분을 만났어요. 일이 되게 빡빡해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집회 현장을 한 바퀴만 돈 다음에 다시 가서 일을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그렇게 한 바퀴라도 돌아야 일할 힘이 날 정도로 분노에 차 있는 거예요. 지금 국민의 일상은 지난해 12월 3일에 멈춰 있어요. 이번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로 또다시 분노가 폭발했고요."

 

 : "20여 년 일한 검찰인데 해체 이야기가 나오면 사실 마음이 아프죠. 언니도 그럴 거예요. 하지만 곪은 상처가 생명을 위협한다면 그 부위는 당연히 도려내야 합니다. 소독약, 항생제 따위의 임시방편을 쓰기엔 이미 시기를 놓쳤습니다. 다만 지난번 '검수완박' 때처럼 주먹구구식 처방으론 안 됩니다. 정말 정교하게 준비해 어떻게 하면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만전을 기할지 정말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합니다."

 

- 마지막으로 검사 박은정, 검사 서지현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 "저는 평범한 검사였어요. 평범한 검사였을 때 보람 있었고 행복했던 거 같아요. 검사 누구나 일을 그만둘 시기에 저도 명예퇴직을 하고 동네 변호사로 일하고 싶었어요. 동네 변호사로 조금 잘 되면 옆에 빵집도 내고 싶었고요. 빵 굽는 냄새를 좋아해요. 고소하고 행복하거든요. 그런 소소한 삶과 일상이 제 꿈이었어요. 지금도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 "검사 시절 했던 기도처럼 '진실을 알아내는 지혜와 정의를 실현하는 용기를 가진' 검사가 제 꿈이었어요.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그저 제가 맡은 사건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죠. 더해 검사로 일하며 노력한 점 중 하나는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본질은 사랑이었던 것 같아요. 검사는 정말 한없는 사랑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거든요.

 

범죄로 고통받는 피해자와 가족들, 1000만 가지 사연을 가진 범죄자들, 그리고 관련인들... 그들의 말을 최대한 듣고, 그들의 눈물을 닦는 데 최선을 다하고, 진실을 발견하고, 바르게 결정하는 일에는 한없는 사랑이 필요했고, 그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요. 생각해 보니 지금도 저는 그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세상과 대한민국, 그리고 인간과 생명에 대한 사랑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