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尹과 술친구' 자랑한 그 의원, 한동안 찍혀 죽어 지냈다"
⑤ 망사(亡事)된 인사
2022년 11월 동남아시아 순방을 떠나는 윤석열 대통령을 환송하러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나온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왼쪽)과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가운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다. 조직의 성패를 좌우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 만사를 놓쳤다. 검사와 고시 출신 우대 기조 속에 탕평이 안 보였다. 마지막 그의 곁엔 아는 사람, 충성하는 사람만 남았다.
# 인사추천 키 쥔 ‘충암파’ 이상민
대통령직 인수위의 큰 과제는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을 필두로 한 정부 인사다. 윤 전 대통령은 인사 추천팀과 검증팀을 따로 굴렸다. 추천팀은 고인이 된 장제원과 ‘충암파’ 이상민(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핵심. 검증팀은 이후 법률비서관으로 합류한 주진우(현 국민의힘 의원)가 이끌었다. 대선 기간 국민의힘 당사 한 구석에 앉아 있던 이상민과 대화했었다는 전직 의원은 이렇게 회고했다.
“이상민이 윤석열 정부 인사를 한다는 말에 ‘이 아저씨가 뭔데’라며 시큰둥했다. 지나고 보니 ‘그때 더 잘 보였어야 했다’는 후회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초대 내각 인선이 순차적으로 발표됐다. 그가 ‘독립투사’에 빗댔던 한동훈의 거취는 최대 관심 중 하나였다. 인수위 안팎에선 “과연 검찰총장 시킬까? 너무 파격인데…”라는 인식이 많았다. 웬걸, 그는 한술 더 떠 법무부 장관에 한동훈을 앉혔다. “절대 파격 인사가 아니다. 법무 행정 최적임자이자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국제업무 경험도 갖췄다”면서다.
초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엔 시간이 걸렸다. “정치인 아닌, 경제 전문가 중에 찾아 보라”고 했다. 장제원은 금융위원장을 지낸 임종룡을 만나 설득했다. 임종룡은 개인 사정을 들며 거절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정책비서관을, 이명박 정부에선 경제수석과 정책실장을 지낸 김대기가 낙점됐다. 한동훈 발탁과 김대기 임명은 검사·경제관료 약진의 첫 시작이었다.
#‘큰 청와대’ 싫어했다
그는 한동훈 외에도 검사 선후배들로 요직을 채웠다. 공약대로 민정수석실을 없앤 대신 대통령실 핵심 포스트인 법률·인사·공직기강 비서관에 검사 후배들인 주진우·이원모·이시원을 임명했다. 검찰 출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는 김홍일은 국민권익위원장에 임명했다.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의 막내 격이던 이복현을 금융감독원장에 앉혔다.
검찰 출신이 성골이라면 기획재정부 출신은 진골쯤 됐다. 임기 초부터 “윤 대통령이 행시, 그중에서도 재경직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당장 윤석열 정부의 투 톱인 국무총리 한덕수와 비서실장 김대기가 그 경우다. 과거 ‘큰 청와대’를 싫어했던 그의 의중에 따라 대통령실은 인원을 늘리는 데 인색했다. 예외는 기획재정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분야를 망라하고 대부분의 비서관실에 기획재정부 출신 행정관이 한 명씩은 충원됐다.
그에게 국회의원은 술친구 정도였다. 친윤 핵심 의원의 말이다.
“윤 대통령은 정치인을 멀리했다. 평소 정치인을 ‘건달’이라고 표현했다.”
실제 “A의원이 윤 대통령과 술친구라는 얘길 외부에 자랑하다 찍혀 한동안 죽어 지냈다”는 말은 정설로 통했다. 국회의원이 이 정도일진대, 정치권에 있다가 대통령실에 합류한 이른바 ‘어공’은 육두품 이하였다. 일부 소수를 제외하곤 소모품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전직 비서관은 “어공은 각 뼈대를 잇는 관절 같은 존재다. 여론에 민감한 이들의 의견이 적절히 반영돼야 삐걱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공’들은 밀려났고, 대신 ‘여사 라인’이 약진했다. 만사(萬事)가 망사(亡事)로 변해 갔다.
의대 증원에 "외람되지만 아니다"…尹, 40년지기도 끊었다
⑥ 의대 정원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3년 10월 19일 충북대에서 열린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 혁신전략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의대 증원에 ‘나 아니면 누가 하나’ ‘다음 대통령은 겁먹어서 못 한다’는 자세로 임했다(전직 대통령실 참모 A). 그러나 과정이 너무 거칠었고, 여건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023년 9월 용산을 찾았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B씨는 “조 장관이 500~800명 증원 등의 몇 가지 안을 들고 갔다가 질타당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3000명 증원’ 얘기도 있었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조 장관이 ‘2035년 의사 1만 명 부족’이라는 기준을 들고나온 점이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초부터 지역완결형 의료와 바이오 헬스에 매달렸고, ‘기승전 의대 증원’을 굳혔다. 은밀한 작업이 시작됐다. 그해 5월 한 일간지가 ‘복지부, 512명 증원 추진’이라고 보도하자 공무원 휴대폰 포렌식(통신 기록 복원) 작업이 벌어졌을 정도다. 복지부는 500, 1000명 식으로 단계적 증원을 선호했다. 하지만 대통령실 참모 B는 “대통령이 단계적 증원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고 말한다. 매년 늘릴 때마다 학교는 학칙을 개정하고, 의료계는 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 장관은 수차례 윤 전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들고 갔고, 그때마다 지시사항을 받아 왔다. 2000명 최종 확정 시기는 지난해 1월 하순. 조 장관이 ‘정답 2000명’을 냈고, 윤 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고 정부 전 고위 관계자가 밝혔다. 정부는 극도의 비밀을 유지했다. 서류에 2000이라는 숫자를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한덕수 총리나 국민의힘에 보고할 때도 말로 했다. 그러다 보니 “절차 부실” 비판이 거셌지만, 복지부 관계자들은 “공청회에 숫자가 나오는 순간 의료계가 바로 뛰쳐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에선 말렸다. 대통령 40년 지기로 알려진 정호영(전 경북대병원장) 전 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2023년 말 용산을 찾았다. 윤 전 대통령은 증원의 다섯 가지 이유를 들었고, 정 전 원장은 건건이 “외람되지만, 아니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이 “의대 쏠림 탓에 이공계가 초토화됐다”고 하자 정 전 원장이 “증원하면 더 초토화된다”고 맞서는 식이다. 대통령실 참모 C는 “윤 전 대통령은 빙긋 웃었다. 정 전 원장의 말을 끊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후 연락이 끊겼다.
전직 대통령실 참모 A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 두 번 할 것도 아닌데, 특히 의사는 우리 편인데 욕먹더라도 하자”고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로스쿨을 도입해 변호사를 늘려 법률 서비스 접근권이 좋아진 것처럼 의사를 늘리려 했다. 참모회의에선 검사 시절 의사 리베이트 수사를 종종 언급했다. “리베이트도 경쟁이 없어서 생긴 카르텔의 결과물”이라는 발언을 자주 하는 식이었다. 의사 집단은 혁파 대상 카르텔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전직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D가 전한 상황이다. 박 위원장은 “2000명의 근거가 뭐냐” “계산이 안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금 늘려도) 10~20년 후 의사가 나온다. 밥그릇 뺏으려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D는 “윤 전 대통령이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인데, 둘이 거의 5대 5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난달 초 2026년 의대 증원이 0명으로 되돌아왔다. ‘증원 개혁’이 물거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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