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윤석열 탄핵심판을 말하다

온리하프 2025. 4. 1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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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上) "윤석열의 헌재 의견진술, '파면' 부메랑 됐다"

 

 

현직 대통령이 전시가 아닌 평시에 계엄을 선포하고 헌법기관인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의 권능 행사를 막기 위해 계엄군을 투입했다. 국민들은 뜬 눈으로 밤을 새웠고, 불안에 떨어야 했다.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위력'(전두환·노태우 신군부 내란 혐의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었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행위는 "사법 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 행위"(12.12 담화문)이며 12.3 계엄은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2.25 최종 의견진술)라고 주장했지만, 계엄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납득시키지 못했다. 결국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으로, 윤석열 정권은 집권 1060일 만에 막을 내렸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 명예교수는 윤석열의 계엄 선포 30여 분 만에 이번 사태를 '대통령의 헌법 파괴'로 규정하는 글을 온라인상에 올렸다. 그는 12.3 비상계엄이 △전시·사변에 준하는 계엄의 요건이 성립되지 않았으며 △의원의 국회 출입을 막으면 그 자체로 내란죄일 뿐 아니라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짚었다.

 

그의 주장대로, 헌재는 123일 뒤 "(윤석열의 계엄 선포) 행위는 법치국가 원리와 민주국가 원리의 기본 원칙들을 위반한 것으로서 그 자체로 헌법질서를 침해하고 민주공화정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해를 끼쳤다"며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했다.

 

한 교수는 헌재의 윤석열 파면 선고를 겨울 공화국이 끝나고 봄의 도래를 알리는 '팡파르'에 비유하며 헌재의 선고요지와 결정문은 전 국민의 헌법 교재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고 평가했다. 피청구인 윤석열이 계엄 선포 후 쏟아낸 말은 위헌·위법 행위에 대한 사실상 '자백'이었다며 그런 자백이 결국 '파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고도 했다.

 

한 교수는 윤석열과 검찰의 관계를 '머리'와 '몸통'으로 보고, 윤석열이 전횡을 부릴 수 있게 한 원천으로 검찰을 지목했다. 이어 검찰이 법원의 윤석열 구속취소 결정에 즉시항고를 포기함으로써 "최악의 선례"를 남겼다며 "한 사람을 위한 제왕적 법 적용"에 "경악스럽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검찰'이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수사에 의지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헌재 선고 22분, 전 국민 헌법 교육의 시간이었다"

 

프레시안 :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순간, 어떤 기분이었나.

 

한인섭 : 안개와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비추면서 겨울에서 봄으로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았다. 온 천지에 봄의 꽃들이 한꺼번에 터진 듯 환희가 느껴졌다. 윤석열의 계엄 사태가 '겨울 공화국'이었다면, 헌재의 파면 선고는 봄의 도래를 알리는 팡파르였다.

 

프레시안 : 헌재의 선고요지를 두고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한인섭 :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이 선고요지를 22분간 낭독했는데, 국회 탄핵소추의 적법성 여부, 탄핵심판 쟁점별 정리, 윤석열 측의 반론 소개, 반론에 대한 정문일침(頂門一鍼) 등 어려운 법률 용어나 개념을 쓰지 않고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료하게 전달했다.

 

전 국민의 헌법 교육 시간이었다. 민주주의, 정당, 여야 갈등, 대통령의 역할, 행정부와 국회의 관계 등을 예시를 들어가면서 하나하나 설명했기 때문에 결정문은 국민 전체를 위한 헌법 교재로도 손색이 없다.

 

윤석열 탄핵 반대 측도 선고요지를 청취하면서 많은 억측이 용해(溶解)됐을 것이다. 헌재의 결정은 갈등을 더 심화할 수도 있고 완화할 수도 있는데, 선고 후 갈등 요인이 증폭되지 않고 오히려 갈등의 수위가 가라앉았다. 헌재의 선고 후 충돌이나 대치도 없었다.

 

좋은 의미의 '법'은 전쟁을 평화로 만드는 것이다. 헌재가 전면적 갈등 상황을 법이라는 매개를 통해 평화적 과정으로 전환하는 결정적 모멘텀(momentum)을 제공했기 때문에,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고 평가한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4일 전원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이미선, 김형두, 정형식, 조한창(아랫줄 왼쪽부터), 정정미, 김복형, 정계선 헌재 재판관이 이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 입장해 있다.

 

 

프레시안 : 헌재의 결정문은 100쪽이 넘는다. 결정문을 작성한 후에 국민들에게 전달할 요지를 22분 분량으로 간추렸을 것 같은데….

 

한인섭 : 재판관 여덟 명이 '국민이 주인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작성했을 것이다. 그 주인은 각계각층의 국민들이고, 남녀노소 모두를 포괄하고, 개개인의 취향·지식·관심도 다양하다. 국민은 단일체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체 아닌가. 이런 국민을 앞에 두고 어떻게 소통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재판관 8인' 모두 전문가다. 그래서 파면 결정에 걸맞은 방식으로 대국민 해설을 했다고 생각한다.

 

결정문과 선고요지는 국민만큼이나 다양한 가치와 의견을 지난 8인이 치열한 논의 끝에 하나의 흐름으로 녹여낸 것이다. '8대 0' 전원일치 파면 결정이 나왔다고, 전원일치가 단일 의견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다른 가치, 다른 의견, 다른 선호가 어떻게 하나의 흐름으로 멜팅(melting)됐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윤석열 탄핵 사건의 주심이었던 정형식 재판관이 역할을 많이 했겠지만, 결정문은 1인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8인이 여러 방식으로 관여하고 검토한 집단 창작물이다. 또 재판관들을 뒷받침해 주는 헌법연구관들의 노력과 노무현·박근혜 탄핵 등이 축적된 산물이다.

 

프레시안 : "대한국민"이라는 표현을 쓴 점,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인용한 점 등이 눈에 띈다.

 

한인섭 : 헌법 전문(前文)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이라고 나와 있다. 제일 상위법인 헌법만 이런 전문을 갖고 있다. 그래서 결정문에 "대한국민"이라는 주어를 쓴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

 

그리고 100쪽에 이르는 결정문의 '결론'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제1항)"로 시작한다. 대통령 탄핵심판이라고 하는 그 어려운 재판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한 선언과 다름없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은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라는 선언을 한 뒤에, 비로소 대통령이 된다. 수호(守護)가 아니가 준수(遵守)다. 즉, 헌법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취임할 때 국민 앞에서 국민을 향해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했다. 이 선서를 어기면, 헌법을 위배하는 것이 되고 대통령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힘내라 대한민국> 예고편 

 

 

"헌재 선고 지연, 법원·검찰의 제왕적 법 적용 때문"

 

프레시안 : 비상계엄 선포 직후부터 페이스북에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을 정리해서 올리고 있다. 헌재 파면 선고 이후에도 결정문을 분석해서 설명해주고 있는데, 결정문이 헌법 교재라면 한 교수의 페이스북 글은 해설서 같다.

 

한인섭 : 법학자로서 헌법과 형사법에 대한 지식도 있지만 박정희의 계엄령 시대를 산 경험도 녹아있는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총 네 번의 계엄(5.16 쿠데타, 6.3 항쟁, 10월 유신, 부마항쟁 등)을 선포했고, 이 중 세 번째 계엄령이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0년 5월까지 이어졌다. '77학번'으로 긴급조치 시기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긴급조치는 상시 계엄령 비슷하다. 그리고 계엄의 한복판에서 졸업했다. 이후 교수로 학문의 길을 걷다 정년을 앞둔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의 계엄이 선포됐다. 39년 강의를 종강하는 날이었는데 바로 그날 계엄이 선포됐다. 개인적으로 가만히 보고 있을 수도 없었고 학자로도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밤중 선포된 계엄에, 사람들이 이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헌법 파괴'라는 제목으로 윤 전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를 정리해 올렸다. 법적으로 방향을 딱 짚을 필요가 있다는 절박한 생각으로, 각오하고 결단해서 쓴 글이다.

 

그 다음에는 윤 전 대통령의 계엄과 내란죄 상관관계에 있어서,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경찰과 군대를 동원한 행위가 내란죄가 되는가'라는 의문에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에 대한 내란죄 처벌을 명시한 '형법 87조'와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국회·선거관리위원 등)을 강압해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국헌문란으로 정의한 '형법 91조'를 근거로 제시했다.

 

특히 형법 91조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이례적인 내용들인데, 1952년 '부산 정치 파동' 때 대통령이 국회를 강압하고 침탈한 역사가 있었고, 국회에서 이듬해 형법을 만들면서 그 교훈을 조문으로 만든 것이다.(부산 정치 파동은 한국전쟁 당시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1952년 5월 25일 계엄령 선포 후 야당을 압박해 대통령 직선제로 헌법을 개정한 사건이다. 편집자.)

 

헌재도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국가긴급권 남용으로 봤다. 결정문의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 재현'이라는 소제에서 부산 정치 파동을 언급한 뒤 "피청구인은 마지막 계엄이 선포된 때부터 약 45년이 지난 2024. 12. 3. 또다시 정치적 목적으로 이 사건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을 남용했다"고 지적했다.

 

한인섭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대통령의 헌법파괴'로 규정했다.

 

 

프레시안 : 윤석열의 명백한 위헌·위법 행위에도 헌재의 선고가 늦어진 이유는 뭘까.

 

한인섭 : 지난해 12월 3일 22시 30분에 선포된 계엄이 4일 오전 4시쯤에 해제됐다. 그리고 12월 7일 국회에서 표결이 한 차례 실패하고, 14일에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의결됐다. 윤석열은 계엄 선포 열흘 만에 탄핵 심판대에 서게 된 것이다. 굉장히 빠른 속도다. 이때만 해도 올해 2월 중순이나 하순쯤 탄핵심판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윤석열 탄핵은 박근혜 탄핵과 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재의 변론 종결 11일 만에 파면 선고가 나왔다. 윤석열 측은 법 전문가 집단을 동원해 탄핵심판을 방어했으며, 경찰·검찰·군대에 대한 영향력을 강하게 보유하고 있었다. 온갖 술수, 사변, 궤변도 모자라 절차적 문제까지 거론하며 변론을 2월 25일까지 끌었다.

 

2월 25일부터 2주 정도는 헌재의 심리 시간이라고 본다. 그래서 3월 14일 정도면 충분히 결정할 수 있다고 봤고, 아무리 늦어도 21일 정도면 선고가 날 것으로 기대하며 인내했다. 그런데 대역풍이라고 할까. 윤석열이 3월 7~8일 갑자기 석방돼 나왔다. 구속취소 상황이 아닌데, 법원이 날이 아닌 시간 단위로 계산해서 구속취소를 했다. 또 검찰은 이 문제에 대해 즉시항고하지 않았다.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는 최악의 선례를 남겼다. 단 한 사람만을 위한 법 적용, 그야말로 '제왕적 법 적용'을 한 것이다. 검찰이나 법원이나, 이전까지 어떤 경우에도 시·분 단위로 구속기간을 산출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탄핵반대 세력의 기세가 엄청 올라갔다.

 

전체적으로 불안감과 위기감이 커졌다. 동시에 국민들은 근본적인 의문을 가졌다. '왜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재판관 8인에게 '제발 탄핵해 주세요'라고 애원해야 하지?', '국회의 3분의 2 찬성으로 탄핵소추됐는데 왜 재판관 여덟 명이 최종 판단을 해야 하는 거지? 국민의 대표성도 없는데?' 등. 대통령 탄핵의 진짜 주역은 국민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탄핵은 전문가의 판단과 국민의 판단이 일치해야 한다. 노무현 탄핵 당시에는 헌재의 선고가 나오기 전 치러진 17대 총선(2004년 4월 15일)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 국민들이 '탄핵은 잘못 됐다'고 심판했다. 박근혜 탄핵의 경우 17대 총선(2016년 4월 13일)에서 여소야대가 된 이후 줄곧 '박근혜 탄핵' 주장이 나왔기 때문에 헌재가 그에 부응했다. 윤석열 탄핵도 헌재가 국민의 뜻에 맞춰 파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4월 3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및 야8당 '내란수괴 윤석열 8대0 파면 최후통첩'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8:0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윤석열의 헌재 의견진술, '파면' 부메랑 됐다"

 

프레시안 : 윤석열 전 대통령은 탄핵 심판대에 선 전직 두 대통령과 달리 직접 헌재에 출석해 의견진술을 했다. 최종 의견진술에서는 67분간 준비해 온 원고를 읽었는데, 어떻게 봤나.

 

한인섭 : 탄핵 사건 피청구인 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의자 윤석열의 말은, 헌재에서나 TV에서나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그의 내심, 성향, 기질 등이 뚜렷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헌재나 국민이 판단을 내리기가 결과적으로 좋았다. 통상 재판에서는 당사자(피의자, 피고인, 피청구인)가 말을 적게 할수록 좋다고 한다. 판사 출신인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회에서조차 증언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나.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은 계속 이야기했다. 피청구인(피의자)의 주관적 내심(內心·속마음)을 입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윤 전 대통령은 스스로 발설했다. 법조인들은 야당 폭거와 선관위의 부정 때문에 계엄을 선포했다는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을 '계엄 선포의 헌법적 사유가 없다'는 자백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헌법 77조에 '대통령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 이후에 한 모든 말은 부메랑이 돼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자신의 지지자를 향한 정치적 효과는 있었을 테지만….

 

프레시안 : 윤석열 측 대리인인 김계리 변호사가 "난 계몽됐다"고 얘기한 것만 봐도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한인섭 : '계몽(啓蒙)', 한자 뜻이 '열 계(啓)'에 '어두울 몽(蒙)'이다. 어둠을 깨친다는 의미다. 상대방을 계몽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계몽됐다'는 말은 '흑화(黑化)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거짓 뉴스, 가짜 프레임에 빠져 들어갔다. 흑화했다'라는 간접 고백인 셈이다.

 

프레시안 : 윤석열 전 대통령은 계엄 선포 배경으로 거대 야당의 '폭거'를 주장하며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한인섭 :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임기 내내 여소야대 상황이었다. 장상·장대환 등 국무총리 인준안이 번번이 부결되기도 했다. 그래서 야당이 반대할 명분이 없는 사람을 찾았고, 그가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총리였던 김석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적인 고려 끝에 초기 비서실장으로 경북 출신의 김중권을 임명했다.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 시절 이회창 한나라당 야당 총재에게 매일 문안인사를 했다고 하지 않나.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 존중을 이렇게 해야 한다.

 

정치 지도자의 민주적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야당과 언론의 비판에 귀 기울이고 타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은 민주적 요소가 전혀 없었다. 대통령 선거 외에는 민주적 과정으로 권력을 쥔 경험이 없다. 특수부 검찰을 통해 상대를 사냥하듯 수사에만 열을 올렸다. 상대와 공존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걸 배운 바가 없다.

 

야당 대표와는 취임 17개월 만에 처음으로 대화했고, 국회 개원식과 예산안 시정 연설에 불참하는 등 기록을 새로 썼다.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도 195일 만에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종합적으로 민주적 리더십이 가장 없는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을 뽑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를 이끌 역량을 갖췄는지 종합적인 테스트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윤 전 대통령에겐 그런 시험이 거의 생략됐다. 결국 국민이 대통령을 잘못 뽑은 것이다. 리더의 성격·기질·행태 이런 부분을 두루 꿰뚫고 판단하는 국민적 안목이 부족했다고 봐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월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 의견 진술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 세 번의 대통령 탄핵 중 한 번은 기각됐고 두 번은 인용됐다. 일각에서는 잇단 탄핵에 대한 대내외적 불확실성을 문제 삼기도 한다.

 

한인섭 : 국민적 피로감이니 정치 혼란을 자주 지적하는데, 내 생각은 반대다.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가. 국민이다. 주인인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는 대통령은 언제든지 탄핵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권한남용·전횡·독선·오만·독재로 점철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탄핵은 국민이 대통령에게 '당신은 주인이 아니야. 국민이 주인이야. 당신은 언제나 국민의 뜻을 생각하고 존중해야 해. 국민을 모시고 살아야 해'를 알려주는 것이다. 앞으로도 대통령 탄핵은 또 나올 수 있다. 탄핵에 따른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 국민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국민의 경고가 일상화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프레시안 : 윤석열 탄핵심판 과정에서 탄핵 찬성과 반대라는 분열 양상이 두드러졌다. 양극화된 사회에 대한 해법이 있을까.

 

한인섭 : 전광훈 목사가 매주 광화문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탄핵 반대 세력을 이끌었다. '국민 저항권'을 내세우는 등 부작용이 많았다. 다만 권력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광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언어의 싸움, 마이크·확성기의 싸움, 유튜버 간 싸움, 돈과 쩐의 싸움 등 의사를 표출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것들이다.

 

민주주의는 각각이 가진 대표성이 있기 때문에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표출을 억지로 막을 이유는 없다.

 

광장의 소란을 줄이는 제도적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 주말마다 광장에서 소리를 지르는 대신 이해관계집단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대표성을 확보해야 한다. 광장 정치와 의회 정치의 일치성을 위해 국회의 대표성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무척 어렵고 지난한 일이지만, 정치권이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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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下) "윤석열 힘의 원천 검찰, 윤석열과 함께 몰락할 것"

 

현직 대통령이 전시가 아닌 평시에 계엄을 선포하고 헌법기관인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의 권능행사를 막기 위해 계엄군을 투입했다. 국민들은 뜬 눈을 밤을 새웠고, 밤새 불안에 떨어야했다.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위력'(전두환·노태우 신군부 내란 혐의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었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행위는 "사법 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 행위"(12.12 담화문)이며 12.3 계엄은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2.25 최종 의견진술)라고 주장했지만, 끝끝내 계엄의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윤석열 정권은 그렇게 집권 1960일 만에 막을 내렸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 명예교수는 윤석열 계엄 선포 30여 분만에 이번 사태를 '대통령의 헌법 파괴'로 규정하고, △ 전시·사변에 준하는 계엄의 요건이 성립되지 않았으며 △ 의원의 국회 출입을 막으면 그 자체로 내란죄일 뿐 아니라 △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짚었다.

 

헌재는 123일 뒤 "(윤석열의 계엄 선포) 행위는 법치국가 원리와 민주국가 원리의 기본 원칙들을 위반한 것으로서 그 자체로 헌법질서를 침해하고 민주공화정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해를 끼쳤다"며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했다".

 

한 교수는 헌재의 윤석열 파면 선고를 겨울 공화국이 끝나고 봄의 도래를 알리는 '팡파르'에 비유하며 헌재의 선고요지와 결정문은 전 국민의 헌법 교재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고 평가했다. 피청구인 윤석열이 계엄 선포 후 쏟아낸 말은 위헌·위법 행위에 대한 사실상 '자백'이었다며 그런 자백이 결국 '파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고도 했다.(☞ 관련 기사 : "윤석열의 헌재 의견진술, '파면' 부메랑 됐다")

 

한 교수는 윤석열과 검찰의 관계를 '머리'와 '몸통'으로 보고, 윤석열 전횡의 원천으로 검찰을 지목했다. 이어 검찰은 법원의 윤석열 구속취소 결정에 즉시항고를 포기함으로써 "최악의 선례"를 남겼다며 "한 사람을 위한 제왕적 법 적용"에 "경악스럽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검찰'이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수사에 의지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0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견학 온 공군사관학교 4학년 생도들을 만나 격려하고 있다

 

 

프레시안 : 전직 대통령이 된 윤석열과 그의 계엄 선포, 어떻게 봐야 할까.

 

한인섭 : 계엄은 국가긴급권이다. 긴급하고 비상하게, 드물게 행사해야 한다. 전두환 신군부가 1979년 10.26 사태를 계기로 선포한 계엄은 그해 12.12 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전국으로 확대됐고 1981년 1월까지 지속됐다. 그 이후에 계엄은 한국 정치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윤석열 전 대통령은 박물관에 있던 이 유물을 45년 만에 끄집어내 우리가 지금까지 수십 년간 쌓아올린 민주적 제도와 관행을 다 파괴시키려고 했다. 정상적인 정치 작용을 일거에 제거하고, 군사력으로 쓸어버리며 반대자를 수거 대상으로 삼았다. 민주적 제도로 선출된 대통령 스스로가 '민주주의의 적', '헌법의 적', '국민의 적'을 자초한 것이다.

 

군의 정치적 중립성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이후 온 국민들의 엄청난 희생과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어렵게 쌓아올린 것이다. 군대와 경찰은 나라 안팎의 질서 유지를 위한 필수요소로, 정치적 중립성이 끝없이 요구된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군·경을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였다. 이들은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순식간에 내란의 물결에 휩쓸렸다.

 

계엄이 필요했고 잘했다고 하는 사람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유일하지 않을까. 김 전 장관은 실제로 내란의 총지휘자이기도 했다. 국민의힘에서도 계엄 선포를 잘했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계엄은 잘못했지만, 그렇다고 탄핵 감인가? 내란죄로 다스릴 일인가?' 이런 정도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어떤 지지도 얻을 수 없는 일을 미몽(迷夢)에 사로잡혀 계엄을 선포했다.

 

윤 전 대통령은 공정과 정의를 내세웠지만,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불공정했다. '불공정' 윤석열 정권을 만든 힘의 원천은 검찰이다. 검찰은 정권에 따라 '권력의 시녀'나 '권력의 수족'으로 불렸지만, 윤석열 정권에서 검찰은 '권력의 몸통'이었다. 윤 전 대통령이 머리 역할을 했고, 검찰이 몸통 역할을 했다. 머리와 몸통은 한 몸이다. 머리가 몸통을 쥐고 있으니까 전횡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의 몰락과 검찰의 몰락이 동시에 진행될 것이다. 검찰은 과거 권력의 수족 역할을 하다가도 정권이 바뀌면 180도 변신도 했지만, 윤석열 정권에서는 변신이 불가능한 권력의 몸통이다. 윤석열 구속취소에 대한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가 결정판이었는데, 법률가 입장에서 볼 때 단 한 사람을 위한 '제왕적 법 적용'이라는 사실이 가장 경악스럽다.

 

윤 전 대통령 또한 김건희 여사 등 단 한 사람을 위한 법 왜곡을 예사로 했다. 가장 불공정한 대통령 상(像)을 보여준 것이다.

 

지난 2022년 6월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전용기를 타고 이동 중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프레시안 :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검찰 장악력이 그렇게 대단했나.

 

한인섭 : 과거 검찰은 공안부, 특수부, 형사부 3자가 견제 균형을 어렵사리 이뤘다. 이 중 공안부는 대공, 선거, 집회·시위, 노동 관련 사건을 다루면서 공안몰이를 하는 등 폐해가 심각해 결국 해체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검찰의 공안 기능은 고스란히 특수부로 넘어갔고, 압수수색과 표적수사를 일삼은 특수부는 '공안·특수 합체부' 혹은 '정-경 검찰 합체부'나 다름없다.

 

검사 생활만 27년을 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특수통'으로 불렸다. 정치인과 검사는 다르지만, 윤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검찰 참모 총장'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검찰 참모 총장으로 국정운영을 하면서 검찰총장은 '졸개'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그렇게 공안·특수 합체부가 된 검찰 핵심 조직은 권력의 수족이 아닌 '몸통'으로 행동했다.

 

검찰 전체로 보면, 문재인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역할 자체가 줄어들었다. 검찰 역할이 100이라고 하면 10 정도만 남은 상태다. 조직과 역할 축소에 따라 일반 검사들의 박탈감 내지 분노감이 팽배했기 때문에, 검찰조직을 강화하는 윤석열식 전횡에 반기를 크게 들지 않았다. 그렇게 검사들은 권력의 몸통으로 부끄러움도 없이,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에 즉시항고를 안 한 것이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막아선 혐의를 받는 김성훈 경호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에 대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도 않았다. 구속영장 심사에서 피의자측은 기각 주장을 하며 최선을 다하지만, 검사는 구속영장 발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아예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심사를 외면했다. 이런 '노쇼(No Show)'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의 따가운 시선에 신경도 쓰지 않는 오만함이 체질 속에 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검찰참모총장' 대통령 시대를 만나 검찰은 절정을 맞았을지 모르나 '파면'된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몰락과 함께 검찰의 시대도 막을 내릴 것이다. '검찰 전횡의 시대', '검찰권 남용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

 

심우정 검찰총장

 

 

"윤석열 검찰, '尹 내란죄' 수사 의지 있나"

 

프레시안 :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에 대한 형사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한인섭 :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를 결정한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가 형사재판을 담당하는데, 과연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취소 결정으로 국민적 분노가 일었을 뿐 아니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절차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말이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을 위시한 1인 법 적용을 했다. 또 윤 전 대통령을 보호한 경호차장과 본부장의 영장실질심사에 출석조차 안 했다. 그런 검찰이기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소추에 얼마나 열정과 의지를 갖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

 

다음으로, 파면으로 불소추 특권이 사라진 만큼 내란죄 외에 다른 범죄 혐의 적용도 가능해진다. 이에 윤석열·김건희 두 사람 모두 엄청난 수사를 받게 될 텐데 불구속 상태로 가능할까? 구속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증거 인멸의 우려, 정치적 프로파간다(지지 세력을 향한 메시지 전달) 등의 국민 분열 작업과 소송 진행 방해 작업이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헌재에서 탄핵됐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진 게 아니다. 대통령 파면 한 건이 진행됐을 뿐 형사재판이라는 2차 국면이 기다리고 있다. 형사재판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이 군사 법원과 민간 법원에서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주목과 감시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검찰은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혐의에 대한 수사 기록만 4만여 쪽, 채택해야 하는 증인만 520명에 달한다며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한인섭 : 수사 기록 4만 쪽은 많은 게 아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집단에 대한 내란죄 수사를 하는 것인데, 사건의 크기와 관련자 수를 생각하면 수사 기록은 4만 쪽이 아니라 40만 쪽은 되어야 한다.

 

증거 조사 자체가 안 된 게 많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이 받았다는 '비상입법기구' 쪽지에 숫자 '8'이 적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최소 7장의 쪽지가 더 있다는 말 아닌가. 쪽지 7장에 적힌 각각의 내용은 무엇이고, 누구에게 전달된 것일까? 내용을 작성하고 담당자를 할당하는 등 전체적인 기획도 있었을 것 아닌가. 그리고 이 같은 기획을 정리하고 쪽지 내용을 쓰는데 활용된 노트북이나 컴퓨터도 있을 테지만 증거로 확보되지 않았다.

 

계엄 해제 당일인 12월 4일 저녁 이완규 법제처장, 박성재 법무부 장관(탄핵소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자진사퇴),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 등 4인방의 '안가 회동'과 관련해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알지 못한다. 계엄 바로 다음 날인데 법률가이자 정권 핵심 인사들이 한가한 이야기나 하려고 만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특히 회동 다음 날에는 휴대전화도 교체했다고 한다.

 

또 계엄 당시 정치인 체포 지시에 검찰은 얼마나 관여했는지 등 밝혀지지 않은 내용이 너무 많다. 내란과 검찰의 관계성 여부는 지금도 무풍지대(無風地帶)다. 경찰 쪽 조지호 경찰청장(혈액암 투병으로 보석 허가)과 김봉식 서울청장이 체포·구속됐지만 검찰 쪽은 윤 전 대통령 계엄 사태와 관련해 수사를 받은 사람도 없다. 정말 관련이 없을까? 계엄 수뇌부와 검찰 사이에 한 번의 전화통화도 없었을까?

 

용산 대통령실과 경호처에 대한 수사도 마찬가지다. 계엄 사태 총사령탑 역할을 한 사람들에 대한 수사가 전혀 안 되어 있다. 만약 국회에서 특검이 시행됐다면, 대통령실 압수수색도 이뤄졌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36만 쪽 분량의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더 많은 수사가 필요하다. 탄핵심판처럼 형사재판도 국민들이 경각심을 갖고 계속 지켜봐야 한다.

 

프레시안 : 국회에서 통과된 '내란 특검법'이 한덕수·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연거푸 거부당했다. 제대로 된 수사를 위해서는 특검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한인섭 : 특검이 아니면 안 되는 수사가 꽤 있을 것이다. 뒤늦게라도 특검이 이뤄진다면, 검찰과 경찰 수사가 다루지 않은 부분에서 이삭을 줍다가 대어를 낚을 수도 있지 않을까.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3월 8일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서 차에서 내려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4년 중임제', '5년 단임제'보다 더 큰 정치적 불안 요소 될 수도…"

 

프레시안 :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전후로 정치권의 개헌 논의도 활발하다. '4년 중임제' 등 주로 권력구조 재편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한인섭 : 헌법 전문에 6.10항쟁, 부마항쟁, 5.18 광주정신 등을 넣는 문제만 해도 백가쟁명(百家爭鳴)이다. 책임 총리제 얘기도 나오고, 국회에서 총리를 직접 뽑자는 주장도 있다. 4년 중임제와 관련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잔여 임기인 2년 이후부터 할 것인지, 아니면 곧바로 4+4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분분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논의 시간도 촉박하다. 6.3 조기 대선 전까지 6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의 3분의 2 찬성을 받는 개헌 단일안이 나올 수 있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국민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 권력구조 재편 외에 사회·경제·노동 등 각 분야에서 국민적 컨센서스(consensus·합의)가 마련되어야 한다. 백년대계인 개헌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되는 게 아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위헌·불법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개헌의 시급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크다"고 했지만 윤 전 대통령이 헌법의 취약점 때문에 내란·계엄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내란·계엄에 대한 단죄가 가능했던 이유가 1987년 9차 개정 헌법을 통해 명시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헌법 65조) 조문 덕분이다.

 

개인적으로는 4년 중임제보다 5년 단임제가 낫다고 생각한다. 5년 단임제는 '87년 체제'에서 피땀 흘려 쟁취한 것이다. 임기 5년은 짧아서 일을 못한다고 하는데, 5년은 긴 시간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들도 임기 5년 동안 각각의 시대에 필요한 중요한 개혁들을 단행했다. 진정성과 리더십이 있으면 할 수 있다. 임기 첫 해 열심히 기획해서 2~3년 차에 실행하고, 4년 차에 정리하면 된다.

 

만약 지금이 4년 중임제였다면, 윤석열은 재선을 위해 언론 장악, 사법 전횡, 정치 환경 조작 등 온갖 공세를 퍼부었을 것이다. 첫 4년은 재선 싸움에 정신이 없고, 재선되고 난 후는 레임덕이 올 것이다. 4년 중임제가 5년 단임제보다 더 큰 정치적 불안, 정치적 왜곡 요소가 될 수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 기간을 맞추자는 의견도 있는데, 억지로 맞출 필요가 없다. 동시 선거를 하면 대통령이 배출된 당이 국회의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특정 정파의 전횡이 4년간 또는 4년 이상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선, 총선, 지선 등이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엇갈리듯 진행되는 것은 정권이 선거 때마다 중간평가를 받는 것과 같다. 그래야 정치인이, 대통령이 국민을 무서워하게 된다.

 

5년 단임제는 우리 국민들이 수십 년 동안 피와 땀으로 쟁취한 결정체다. 현 체제가 국민들에게 익숙하고, 익숙한 만큼 취약점도 제대로 알고 있다. 우리 헌법은 제왕적 대통령을 보장하는 헌법이 아니다. 대통령이 제왕처럼 설치면 국민은 탄핵할 수 있다. 헌법이 제왕을 막아선 것이다.

 

개헌의 필요성은 늘 제기되고, 합당한 면이 많다. 그러나 개헌의 내용은 무엇보다 미래 지향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권익을 향상하고 국민 삶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조기 대선에 맞춘 '졸속' 개헌 일정에는 반대한다. 개헌은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난 뒤에 '헌법 개정 특별위원회' 등을 만들어 갑론을박하고, 그에 따른 공약수가 나오면 그 공약수를 갖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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