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미 정의연 마포쉼터 소장 비극적 죽음 4주기
위안부 피해자들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고귀한 삶
언론과 검찰 괴롭힘 속에 산산조각 난 일상과 꿈
손영미 죽음 이후에도 끝없이 이어진 윤미향 사냥
“의문사” 주장하며 거듭 능멸한 조선일보와 곽상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더 이상 안 된다는 교훈
22대 국회가 시작되면서 많은 언론의 관심은 새로 국회에 진출한 사람들에게 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4년을 보내고 이제는 국회를 떠나는 의원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중에는 4년 동안 언론과 검찰이 주도한 엄청난 마녀사냥에 시달리면서도 힘겨운 처지의 소수자와 약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꿋꿋하게 의정 활동을 했던 윤미향 전 의원이 있다.
윤미향 전 의원에 대한 마녀사냥을 돌아볼 때 가장 가슴 아프게 떠오르는 것은 손영미 정의연 마포쉼터 소장이고, 다가오는 6월 6일은 손영미 소장이 우리 곁을 떠난 지 4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이하며 우리는 손영미 소장의 고귀한 삶과 비극적 죽음만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손영미 소장을 죽음으로 몰았는지도 기억해야 한다.
족벌언론들과 정치검찰이 새로운 희생양들을 끝없이 찾아가고 있는 윤석열 시대에 이것은 더욱 중요하다. 2020년 6월 초는 ‘윤미향 마녀사냥’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시기였다. 족벌언론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부분 다른 언론도 몰아가기와 ‘동조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았고, 많은 이들이 걱정하고 우려하던 일이 결국 벌어졌다.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43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정의연 마포구 쉼터 '평화의 우리집' 소장 손모씨를 추모하는 액자와 꽃다발이 놓여져 있다. 2020.6.10. 연합뉴스
2020년 6월 6일, 진영을 떠나서 대부분 언론이 홈페이지 대문에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을 따옴표 쳐서 “(윤미향과 정의연이) 위안부 피해자를 팔아먹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린 다음 날 손영미 마포쉼터 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극적 소식이 날아들었다.
“5월 20일 정의연 사무실 압수수색, 5월 21일 피해자들의 쉼터 ‘평화의 우리집’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검찰의 마녀사냥식 수사와 잦은 연락, 언론의 무분별한 의혹 제기, 과도한 취재 경쟁, 하루 종일 쏟아지는 전화벨 소리, 초인종 소리, 쉼터 앞에 진을 치고 카메라 세례를 퍼붓는 기자들…. 불안한 하루하루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하셨던 쉼터 소장님은 6월 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경란 정의연 연대운동국장, <‘정의연 오보 사태’ 언론에 무엇을 남겼나> 토론회 자료집)
원래 수녀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 손영미 소장은 2004년부터 정의연과 함께했다. 초기에는 고작 80만 원을 받으면서 24시간 쉼터에 상주하며 8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그것은 간호사이자, 의사이자, 가정부이자, 복지사이자, 상담사이자, 교사 노릇을 하면서 초인적으로 모든 일을 해내야 하는 누구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손영미 소장은 매일같이 할머니들을 목욕시키고, 입맛에 따라 다양한 밥과 식사를 준비하고, 온갖 심부름을 하며 지극 정성으로 돌봤다. 할머니 개개인마다 식성과 건강 상태에 따라서 맞춤형 식단을 준비할 정도였다. 그래서 김복동 할머니가 남긴 생전의 영상을 보면 “자기 할머니한테도 이렇게 못 해. 천상에서 좋은 일 하라고 내려보낸 사람 같아”라고 말한다.
그래서 할머니들 사이에서 손영미 소장은 “천사”라고 불렸다. 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하던 손영미 소장의 힘겹지만 보람찼을 삶은 ‘윤미향 마녀사냥’이 시작된 2020년 5월 8일부터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손영미 소장의 삶의 의지를 무너뜨렸는지 살펴보면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5월 8일부터 쉼터 앞에서 상주하기 시작하고 건너편 건물에서 망원 카메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 같았던 언론사와 기자들이었다. 창문을 다 가리고 어두운 방에서 지내던 손영미 소장은 어느 순간부터 “기자들이 무섭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둘째는 5월 20일 정의연 압수수색에 이어서, 5월 21일 쉼터 압수수색을 시작한 검찰이었다. 이때부터 손영미 소장은 결정적으로 무너졌다는 것이 주변의 증언이다. 검찰은 초기부터 윤미향 의원과 손영미 소장을 ‘비리와 횡령’의 핵심 인물로 겨냥해서 옭아매려 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의 활동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 것에 대응해
정의기억연대가 기자회견을 연 11일 오전 한경희 사무총장이 발언을 하며 울먹이고 있다. 2020.05.11. 연합뉴스
그러자, 언론과 검찰이 일으킨 마녀사냥과 여론재판이 일으킨 광풍 속에 휩쓸려 손영미 소장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거대한 불신으로 바뀌면서 ‘그동안의 모든 통장 입출금 내역을 보여달라’며 압박하기 시작한 위안부 피해자의 주변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결국 거대하게 몰아친 마녀사냥의 쓰나미 속에 가장 순수하고 맑은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먼저 집어삼켜졌다. 소식을 듣고 쉼터로 달려가 세상을 떠난 손영미 소장의 방문을 열어본 사람들이 목격한 것은 침대 위에 나란히 정리해서 놓여진 영수증들과 책상 위 메모지에 적힌 서부지검 검사실 연락처였다.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쳤던 활동의 정당성과 명예가 부정되고, 응원하고 지지하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며 싸늘한 불신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할 때 활동가는 무너진다. 말이 칼이 되고 시선이 비수가 되면서 그렇게 손영미 소장은 무너졌다. '마녀'가 된 윤미향 의원의 아픔에 누구보다 가장 공감하고 감정 이입한 사람이 제일 먼저 쓰러졌다.
많은 이들이 족벌·상업 언론들의 십자포화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구명줄이 아니라 작은 돌 하나라도 더 던지려고 했다. 언론에서 의혹들이 쏟아질 때 막연히 ‘뭔가 있으니 저러겠지’하는 태도를 보였다. 윤미향 의원과 손영미 소장을 지켜보면서 오랫동안 수요집회 자원봉사를 했던 익명의 활동가는 당시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에 이렇게 썼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자리… 손영미 소장님이 할머니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부엌데기 같은 삶을 살아주셨기에 정의연이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들이 인권을 위한 싸움을 계속하실 수 있었습니다. (…) 그들에겐 아무것도 아니었겠지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겁니다. 지금 자신들이 왜곡하고 조작하고 의심하면서 가십거리로 여기고 있는 바로 그것들이 누군가의 진실한 인생 그 자체였음을 그들은 물론 몰랐겠지요.”
손영미 소장과 누구보다 가까운 동료였던 윤미향 의원에게 이 죽음이 가져온 충격과 슬픔은 엄청났다. 윤미향 의원은 손영미 소장과의 마지막 대화를 이렇게 기억했다. "소장님이 ‘저 조금만 울다가 들어갈게요. 좀 울고 나면 시원할 거 같아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러세요. 제 치료 방법도 우는 거예요’라고 답해줬죠.” ([윤미향 단독인터뷰①] 민중의 소리.)
따라서 이 죽음은 윤미향 의원에게 충격과 슬픔만이 아니라 자책감까지 남겼다. “‘그분이 가셨습니다’라고 문자가 왔어요.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 그냥 정신이 나가버렸죠. ‘나 때문인가’ 하는 자책감이 들었어요. 오히려 내가 그 길을 먼저 떠났다면 우리 소장님은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손영미 소장의 죽음도 마녀사냥의 끝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마녀사냥꾼들에게 새로운 무기가 됐을 뿐이었다. 처음에 조선일보는 온갖 억지 트집을 잡아 흠집을 내면서 ‘이것 봐라. 이런 더러운 범죄소굴에서 뭔가 구린 사람이 죽었다’고 말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죽음이 가져온 충격과 슬픔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조선일보는 곽상도 당시 국민의힘 의원의 주장을 이용해 “의문사”를 말하며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곽상도 의원 본인이 주요 책임자 중의 하나였던 1991년의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의 재탕이었다.

윤미향 의원, 김복동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 손영미 마포쉼터 소장(왼쪽부터)이 함께하던 시절. 사진 출처=윤미향 의원
당시에도 곽상도 검사를 비롯한 공안검찰과 조선일보 등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분신한 감기설 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죽음을 사주했다면서 강기훈 씨를 마녀사냥을 했다. 물론 유서 대필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김기설 씨의 분신은 반민주적인 군부독재 시대가 낳은 비극이었다.
하지만 그 책임자들인 곽상도 의원과 조선일보는 그 후에도 여전히 권력을 누리고 있었고 전혀 반성하거나 사과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손영미 소장의 비극적 죽음에 곽상도 의원과 조선일보는 또다시 그 더러운 수법을 꺼내 들었다.
이러한 곽상도 의원과 조선일보의 주장과 보도는 유튜브 등으로 확산해 갔다. 당시 유튜브에서 ‘손영미’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뜨는 것은 극우 유튜버나 사이버 렉카들이 올린 악랄하기 짝이 없는 영상들이었다. “미스터리”, “자금세탁”, “차명계좌”, “타살 의혹”…
결국, 손영미 소장의 억울하고 비극적인 죽음 이후에도 윤미향 마녀사냥의 불길은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고 더욱더 활활 타올랐다. 그 불길 속에서 윤미향 의원은 지독한 괴롭힘과 고통을 겪으면서 4년의 의정 활동을 힘겹게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윤미향 의원은 4년 내내 끝없는 수사와 재판에 시달렸다.
윤미향 의원을 ‘파렴치한 사기꾼’으로 만들면서 언론을 도배하던 20개의 혐의 중에서 12개는 이미 경찰 조사와 검찰 기소 단계에서 모두 무혐의 처리나 불기소 처분이 됐다. 하지만 언론들은 아무런 반성이나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1심 결과에서는 그중에서 다시 7가지가 무죄로 판결났다. 실체 없는 마녀사냥의 본질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러자 윤석열 정부와 검찰과 족벌언론들은 불만을 터트리며 사법부를 향해 노골적인 압박을 가했고, 결국 2심에서는 그중에 2가지만 다시 유죄로 뒤집혔다. 무엇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윤미향 의원은 계속 손발이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고, 윤미향 의원의 활발한 의정 활동을 걱정하던 일본 정부, 한국의 친일적 기득권 세력 등은 한시름 덜 수 있었다.
윤미향 마녀사냥을 주도했던 검찰-언론 카르텔과 기득권 우파세력들의 입장에서는 성공한 마녀사냥이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윤미향 의원은 국회를 떠나는 날까지 4년 내내 손영미 소장의 죽음조차 집어삼킨 마녀사냥과 주홍글씨에 시달렸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마녀사냥에 동조하며 같이 돌을 던지던 사람들, 침묵하거나 방조하던 이들이 다 같이 막아서야만 했다.
다시는 손영미 같은 소중한 이들을 잃고서 뒤늦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여기에 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조국 전 장관과 윤미향 의원 등을 마녀사냥하면서 탄생한 것이 지금의 윤석열 ‘검찰 정권’이고, 족벌언론과 정치검찰이라는 사냥꾼들과 마녀사냥 시스템은 여전히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지만, 그래서 더더욱 여소야대인 22대 국회를 뿌리째 흔들며 다시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는 새로운 마녀사냥의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저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과 딸 등을 괴롭히고 있다. 또다시 누구를 표적 삼아 어떤 마녀사냥이 시작되더라도 모두 용기를 내서 함께 비를 맞고 맞서야 한다. 그것이 손영미 소장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윤미향 의원은 4년 동안 지독한 마녀사냥을 당하면서도 의회와 거리에서 최선을 다해 투쟁했다. 유튜브 영상에서 갈무리
<윤미향 의원이 2020년 6월 7일 당시 페이스북에 올린 손영미 추모글>
사랑하는 손영미 소장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나랑 끝까지 같이 가자 해놓고는 그렇게 홀로 떠나버리시면 저는 어떻게 하라고요... 그 고통, 괴로움 홀로 짊어지고 가셨으니 나보고 어떻게 살라고요...
할머니와 우리 손잡고 세계를 여러 바퀴 돌며 함께 다녔는데 나더러 어떻게 잊으라고요...
악몽이었죠. 2004년 처음 우리가 만나 함께 해 온 20여 년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런 날들이 우리에게 닥칠 것이라고 3월 푸르른 날에조차 우리는 생각조차 못 했지요. 우리 복동 할매 무덤에 가서 도시락 먹을 일은 생각했었어도 이런 지옥의 삶을 살게 되리라 생각도 못 했지요.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대표님, 힘들죠? 얼마나 힘들어요” 전화만 하면 그 소리... 나는 그래도 잘 견디고 있어요. 우리 소장님은 어떠셔요? “내가 영혼이 무너졌나 봐요. 힘들어요.” 그러고는 금방 “아이고 힘든 우리 대표님께 제가 이러면 안 되는데요... 미안해서 어쩌나요..”
우리 소장님, 기자들이 쉼터 초인종 소리 딩동 울릴 때마다.. 그들이 대문 밖에서 카메라 세워놓고 생중계하며, 마치 쉼터가 범죄자 소굴처럼 보도를 해대고, 검찰에서 쉼터로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하고, 매일같이 압박감.. 죄인도 아닌데 죄인 의식 갖게 하고, 쉴 새 없이 전화벨 소리로 괴롭힐 때마다 홀로 그것을 다 감당해 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저는 소장님과 긴 세월을 함께 살아온 동지들을 생각하며 버텼어요. 뒤로 물러설 곳도 없었고 옆으로 피할 길도 없어서 앞으로 갈 수밖에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버텼어요. 그러느라... 내 피가 말라가는 것만 생각하느라 우리 소장님 피가 말라가는 것은 살피지 못했어요. 내 영혼이 파괴되는 것 부여잡고 씨름하느라 우리 소장님 영혼을 살피지 못했네요. 미안합니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소장님... 나는 압니다. 그래서 내 가슴이 너무 무겁습니다. 쉼터에 오신 후 신앙생활도 접으셨고, 친구 관계도 끊어졌고, 가족에게도 소홀했고, 오로지 할머니, 할머니... 명절 때조차도 휴가 한번 갈 수 없었던 우리 소장님... 미안해서 어쩌나요. 당신의 그 숭고한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내 가슴 미어집니다.
외롭더라도 소장님, 우리 복동 할매랑 조금만 손잡고 계세요. 우리가 함께 꿈꾸던 세상, 복동 할매랑 만들고 싶어 했던 세상, 그 세상에서 우리 다시 만나요. 사랑하는 나의 손영미 소장님, 홀로 가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이젠 정말 편히 쉬소서.
- 윤미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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