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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일)

평화누리호 유람섬~백암산케이블카 여행 계획

 

자택 08:30 출발→파로호안보전시관 10:00배 탑승

(봄내초교→파로호안보전시관 : 45분 소요)

 

 

평화누리호 유람선 

 

 

탑승 10:00 : 편도 1시간 15분 소요(왕복 3시간)

 

 

 

 

평화의댐 11:15 도착

 

 

경로, 장애인 50% 할인

 

 

 

파로호선착장(10:00)→평화의댐 선착장(11:15)

 

 

 

평화의댐 선착장(11:15)→걸어서평화의댐 정거장(11:40)

 

 

 

 

평화의댐(11:40~12:30) 관람 후 12:30 시내버스 탑승

평화의댐(12:30)→화천공영버스터미널(13:10)

 

 

 

2층 방문자센타 매표소(13:10까지 도착하여 매표) 후 셔틀버스 탑승 

 

 

 

백암산케이블카

 

 

 

 

 

 

백암산 케이블카 이용 요금

 

 

 

 

 

백암산 케이블카 이용 안내

 

 

 

백암산 케이블카 주변 주차장

 

 

 

14:30   케이블카 탑승

 

 

 

 

백암산케이블카→방문자 센타 도착 16:45

화천공용버스터미널→ 파로호유원지선착장

(택시 : 11분/8km 10,000원)

춘천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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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남춘천역 앞에서 08:40에 출발해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를 거쳐

목적지인 파로호국민관광단지 부근에 오니,

평화누리호 출발시간이 40분이나 남았다.

 

부근에 있는 화천파로호안보전시관에 들려 잠시 관람하고 다시 되돌아오기로 했다.

 

 

 

 

M115 203mm(8인치) 곡사포.

 

미국이 1930년대 개발하여 2차 대전에 사용했다.

 

사격 정밀도가 높고, 최대사거리가 16.8km에 달한다고~

살상 능력(탄중량 91kg, 살상반경 78m)이 대단했다.

 

사속이 비교적 느리고, 중량(14.5 ton)으로 기동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춘천지역에서 중국 공산군의 거점에

M115 8인치 포격하는 미 17 연대 포병대(1951.03.09)

 

 

 

 

철원에서 중국 공산군의 거점에 M115 8인치 곡사포로 포격을 가하는

미 8군 제17포병대대(1951.06.10)

 

 

 

 

M115 203mm(8인치) 곡사포를 운전하는 데는 14명의 군인이 필요했다고 한다.

 

 

 

 

M577 지휘용 장갑차

 

1963년 M113 장갑차를 개조한 M577 지휘용 장갑차는

내부에 각종 지휘, 통신용 장비를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

 

최대속도가 육상 64km/h, 해상은 5.6km/h로 300km를 이동한다.

탑승인원은 5명이다.

 

 

 

 

M113 장갑차 보다 60cm 정도 더 높고 지휘관 전용 해치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

외부관측과 지휘가 용이하며 공간 확장이 필요한 경우

장갑차 뒤쪽에 지휘소용 텐트를 연결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기계화 부대에서는 지휘용 장갑차로,

자주포 부대에서는 포병사격 지휘차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국산 지휘용 장갑차인 K277과 포병사격 지휘차인 K77이 배치되면서 점차 퇴역했다.

 

 

 

 

윗동서의 기념촬영을 끝으로 기념관 내부를 둘러보러~~

 

 

 

 

6.25 한국전쟁은 왜 일어난 것일까??

 

저자 브루스 커밍스"한국전쟁 기원"은 한국전쟁 연구의 패러다임울 바꾼 기념비적 책이다.

이 책에서 한국전쟁이 시작되게 된 더 깊은 역사적 배경을 알 수 있겠다.

 

"1950.06.25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일어났지만, 시작 점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였다고 본다.

   책에서는 한국전쟁사를~

   한국현대사(일제강점기 한국 사회의 내부적 모순)와 국제냉전(미, 소의 패권전략)

   이라는 두 가지 구조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1. 한국현대사 관점:내전적 기원(Civil War Origins)

     커밍스는 한국전쟁을 50.06.25 갑자기 터진 사건이 아니라,

     해방 직후부터 진행된 계급 갈등과 혁명적 열망의 연장선으로 봤다.

 

● 해방 정국의 내부 갈등

   일제강점기 동안  형성된 친일 세력(우익)과 항일 세력 및 민중(좌익) 사이의 격심한 투쟁이 핵심이다.

   인민위원회의 자치적 활동을 혁명적 에너지로 보았으나, 미 군정이 이를 탄압하고 구 질서(친일경찰 및 지주층)를

   복구 시킨 것이 전쟁의 근본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 전쟁의 지속성

  커밍스에게 1950년의 충돌은 1946년 대구 10월 항쟁, 1948년 제주 4.3 사건, 여수*순천사건 등 남한 내부에서 이미 진행

  중이던 내전이 전면전으로 확대된 것에 불과하다.

 

● 비판적 시각

  기존의 침략론 대신 혁명 대 반혁명의 구도로 전쟁을 정의하며,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 정권과 미국 역시 전쟁의 발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2. 국제냉전 관점:미국의 패권과 봉쇄 정책

     커밍스는 한국전쟁을 국제 냉전 체제가 고착화되는 결정적 계기로 분석하며,

     미국의 역할을 매우 비판적으로 서술한다.

 

●봉쇄정책의 도구

  미국은 세계 경제 재건과 자국 중심의 패권 유지를 위해 한국을 극동 방어의 핵심 거점으로 삼았다.

  미국이 한국의 내부적 갈등을 냉전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치환하여 개입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본다.

 

●전략적 선택

  커밍스는 미국이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활용하여 미국 내 국방 예산 증액과 냉전 체제의 군사화를

  정당화했을 가능성(이른바 유도설 또는 묵인설의 단초)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미국의 책임

  단순한 지원군이 아니라, 한국의 자생적 발전 역량을 억압하고 분단을 고착화한 핵심 행위자로서 미국을 묘사했다.

 

 

 

 

3. 요약 및 시간적 정리

 

구  분 주요 관점(커밍스의 주장) 비판적 함의
성  격 내전(Civil War)이자 혁명 전쟁 "누가 먼저 총을 쐈는가" 보다 "왜 쏠 수 밖에 없었는가"가 중요
주  체 인민위원회 대 미 군정*우익 세력 한국 민중의 자치적 열망이 외부 세력에 의해 좌절됨
냉  전 미국의 세계 전략에 의한 한반도 희생 한국 전쟁은 냉전을 군사화하고 고착화한 도구적 사건
책  임 공동 책임론(구조적 원인 강조) 북한의 남침이라는 단일 요인을 부정하고 미국의 개입주의 비판

 

 

 

 

 

4. 미 군정의 연도별 주요 대응 방식 분석

     미 군정은 해방 직후 형성된 자생적 통치 기구인 인민위원회를 부정하고,

     일제강점기 관료 기구를 재가동하는 전략을 취했다.

 

연도 주요 사건 미 군정의 실무적 대응 및 전략 커밍스 시각
1945 인민공화국 부정 및 건준 해체 건국준비위원회(건준)의 행정권 불인정.
맥아더 포고령 1호를 통해
미 군정만이 유일한 정부임을 선포.
자생적 혁명 역량의 거부
1946 대구 10월 항쟁(추수 봉기) 경찰 및 우익 청년단을 동원한 무력 진압.
식량 배급제 실패 책임을 좌익의 선동으로 규정.
내전의 실질적 시작점
1947 트루먼 독트린과 냉전 고착 좌우합작위원회 지원 철회 및 우익 단독 정부 수립 준비.
남조선 과도 입법의원을 통한 친미 엘리트 육성.
봉쇄 정책의 가시화
1948 제주 4.3 및 여순 사건 초토화 작전 승인.
미군 고문단(PMAG)을 통한 작전 통제권 행사
국가 폭력을 통한 체제 구축

 

 

 

 

5. 핵심 사례별 분석 및 전략 도구

 

①인민위원회 해체와 구 질서(친일 경찰)의 복구

    미 군정은 행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일제강점기 경찰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는 실무적 편의주의를 택했다.

 

    ●실무 대응

      일제 하 고등계 경찰 출신들을 대거 복직시켜

      민중들에게 미 군정을 미국인의 얼굴을 한 조선총독부로 인식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커밍스의 분석

      커밍스는 이를 "복고적 안정화"라 칭하며

      민중의 정당한 분노가 국가 권력에 의해 압살 당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고 봤다.

 

  ②식량 정책의 실패와 "10월 항쟁"

      1946년 미 군정의 강제 미곡 수집령(미곡 수집제)은 행정적 무능의 대표 사례로 봤다.

 

     ●실무 대응

       자유 시장 경제를 도입한다며 미곡 자유 판매를 실시했지만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다시 강제 수집으로 선회했고 이 과정에서 친일 경찰이 수집 주체가 되자

       이를 본 농민들의 폭발적 저항은 당연한 것이었다.

 

     ●결과

        대구에서 시작된 저항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미 군정은 이를 소련의 사주를 받은 폭동으로 규정해 군사적 탄압을 정당화했다.

 

  ③NSC-68과 냉전의 군사화

      1950.4 작성된 미 국가안보회의 문서(NSC-68)는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커밍스의 국제 정치적 핵심 근거가 되었다.

      

      ●전략 분석

        미국은 전 세계적인 공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해 국방비를 3배 이상 증액해야 했다.

        커밍스는 한국에서의 국지적 충돌이 증액된 예산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한

        "결정적 계기"로 활용되었다고 주장한다.

 

※한국전쟁에 대한 커밍스의 관점은 상당히 논쟁적이다.

   이러한 양비론적 시각이 불편한 수 있지만~~

   통합적이고 통시적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보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UN과 미국이 참전

 

 

 

 

중공군 개입

 

 

 

사창리 전투

 

 

 

 

동서의 익살스러운 연기를 마지막으로 평화누리호 승선을 위해 파로호국민관광단지로 향한다.

 

 

 

 

09:45   파로호국민관광단지 평화누리호 탑승지.

 

 

 

 

화천발전소와 멀리 딴산 방향의 화천댐 수문이 보이고~~

 

 

 

 

우리 일행이 승선해 평화의 댐까지 타고 갈 평화누리호~~

 

좌측 높은 산줄기는 해산이다.

 

 

 

 

우측의 배가 우리가 승선할 평화누리호다.

 

그런데 분위기가 싸~ 하다.

 

관광객은 우리 일행일뿐더러, 출발을 알리는 배 엔진 소리도 조용하다.

 

분명 5일 전에 토~일요일 출항한다고 관계자와 전화 통화했고,

2일 전에도 요금에 관한 문의로 통화를 했는데...

 

너무 이상해서 관계자에게 전화하니 대뜸 예약했냐고 되묻는다.

 

뜬금없는 예약이라니...

국내 여러 섬을 가더라도 예약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는 데~

 

부득 이곳에 예약제가 있다고 하면,

두 번이나 통화할 때 예약해야 한다고 당연히 알려 줬어야 했다.

 

관리자 하는 말은 예약이 없어서 출항을 안 한단다.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말이 되는 상황인가?

 

"화천 촌놈에 새끼들"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다.

화천군청 망할 놈의 촌놈에 자식들...

화천군수와 군청 촌놈들아 정신 차려라~~

 

계획한 일정과 시간이 너무 아깝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물론 저 큰 배를 4명 때문에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탑승인원 몇 명 이상이래야 출항한다는 규정이라도...

 

화천군에서는 서둘러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13:10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붕어섬으로 향했다.

 

 

 

 

파로호 선박 운항 시간표.

 

 

 

 

10:05   내려가는 길에 통행이 금지된 구만교를 봤다.

 

일제 기초→북한 교각→한국 상판...

 

일제 강점기 화천발전소 건립을 위해 건설했던 꺼먹다리가 화천읍과 간동면을 잇는 유일한 교량이었다.
1980년대 초 구만교를 개통하면서 강 건너 구만리 등 간동면 지역은 비로소 화천지역으로 편입했다.

 

①일제 말기 화천댐을 건설하면서 건설자재를 나르기 위해 꺼먹다리를 놓았고,

    통행을 위한 교량을 만들기 위해 구만교 기초 공사는 진행했고~

 

②해방 이후 6·25 전쟁 당시 북한(일설에는 소련)이 교각을 놓았으나 역시 완성하지 못하고~

 

③장기간 방치하다가 1981년 5월 9일 화천군이 상판을 올려 완공했다.

 

구만교는 햇수로 40년에 걸쳐 3개 국이 건설한 셈이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

정밀안전점검에서 중대결함 없음(종합평가 C등급)으로 조사됐지만,

내구성과 사용성, 상태 개선을 위해 공사비 8억이 소요되었고 지속적으로 매년 관리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주민들도 사용하지 않는 교량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는 폐쇄 찬성입장과

차량 통행은 않더라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최소한의 시설물 관리는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갈린다.

 

대붕교가 있어 문제 될 것은 없지만, 구만교 자체가 역사다.

안전점검 후 자전거 통행과 걷기라도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11:45   붕어섬에는 맨발 걷기 체험 장소가 잘 만들어져 있다.

 

 

 

 

붕어섬 황톳길 맨발걷기

 

 

 

 

맨발 걷기 후 발 세척장도 만들어 놓고~~

 

 

 

 

요즘 건조한 날씨로 황토가 딱딱하게 굳었지만~

비 온 후 걸으면 발에 닿는 촉촉함이 부드러울 것이다.

 

 

 

 

옆으로는 꼬마열차 괘도도 놓여 있지만, 사용 흔적이 없어 아쉽고~~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화천레일바이크가 있었는 데,

운영 안 한지가 꽤 되어 보였다.

 

 

 

 

10년 전 사진...

 

 

 

 

크로버(토끼풀)

 

 

 

 

12:31   백암산 케이블카를 탑승하려고 매료소를 찾았다.

 

 

 

 

2층으로 올라가고~~

 

 

 

 

평일, 주말 백암산케이블카 셔틀버스 시간표

 

 

 

 

백암산 케이블카 이용 요금

 

 

 

 

화천관광지도

 

 

 

 

13:57   케이블카 내에서~~

 

 

 

 

백암산 정상에서 우리 일행~~

 

 

 

 

백암산 케이블카 전망대

 

 

 

 

윗동서 부부~~

 

 

 

 

백암산은 6.25 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금성전투를 치른 곳이다.

중동부 전선 최고 높이(1,178m)의 고지였다.

 

동쪽으로는 양구의 백석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마현리에 적근산이 있다.

 

 

 

 

적근산(1,071m)-삼현지구 전투, 백암산(1,178m)-금성전투, 백석산(1,365m)-백석산 전투

6.25 전쟁 당시 유명했던 전투로 인터넷상에서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다.

 

 

 

 

우리 부부~~

 

 

 

 

백암산 케이블카 하부 승강장~

 

 

 

 

운행 길이가 2.2km이고 46명 탑승할 수 있다.

편도 15분 정도 소요되고~~

 

 

 

 

14:56   

 

 

 

 

 

 

 

 

 

15:42   화천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서 오늘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평화누리호 승선 연계가 안된 것이다.

 

이번 여행 전, 사전에 짜 놓은 일정표를 보면~

10:00 평화누리호 탑승(자차 이용)→11:15 평화의댐 선착장(사전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

→12:30 시내버스탑승→13:10 화천버스터미널→13:30 백암산 셔틀버스 탑승(케이블카 탑승 및 이동)

→15:40 화천버스터미널→16:00 구만리 선착장(택시:8km/10분/1만원)

 

백암산 케이블카를 이용하려면 평화누리호 승선으로 더 뜻깊은 화천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평화누리호 필히 확인 010-2961-2542 후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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