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남알프스 산군은 1000m 내외의 억새초원이다. 그곳에서는 사람도 억새도 바람에 이끌려 자유로이 몸을 흔든다.
알프스라는 이름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얀 눈을 머리에 인 높은 설봉들이 장쾌한 산맥을 이루고 있는 모습과 삼림한계 위로 큰 나무 없이 적당한 키의 식생들이 펼쳐져있는 초원의 모습이다.
그 원조는 당연히 유럽의 알프스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일본 알프스, 뉴질랜드 알프스 등 높고 넓은 산군에 비슷한 풍경이 펼쳐지는 곳에 알프스라는 명칭을 붙이기도 한다.
알프스라는 이름이 하나의 고유명사가 아닌 '희고 높고 아름다운 산'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된 것이다.
이에 대입하면 겨울을 제외하고는 하얀 눈을 볼 수 없는 남한의 산군, 그 중에서도 남쪽 자락에 위치한 영남지방의 산군에 알프스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도가 지나친' 일일 수도 있다.
높이가 가장 높은 가지산(1240m)을 비롯해 운문산(1188m)과 재약산(1108m), 간월산(1083m), 신불산(1208.9m), 영축산(1092m) 등 경상남도 울산과 양산, 밀양의 경계를 이루며 솟아있는 산군을 영남알프스라고 부른다.
명칭에 관해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영남알프스라고 불렸다는 설이 있고, 지역 산악인들은 70년대 일본 북알프스를 등반하고 온 부산 대륙산악회의 곽수웅씨가 이곳을 찾았다가 일본과 비슷한 풍경에 감탄해 "영남알프스라 불러도 되겠다"고 말한 것이 시작이라고 기억한다.
일본과의 관계 탓인지 이 명칭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남아있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니 정확한 기원은 알기 어렵다.
다만 인터넷으로 옛날신문을 찾아보면 80년대 후반에 이르기 전에는 '영남알프스'라는 명칭을 사용한 흔적이 없어 후자 쪽에 힘이 더 실린다. 아무튼 현재 이 산군의 이름은 영남알프스다.
그것이 지역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든, 알프스라는 아름다운 지역에 대한 오마주이든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 부르고 널리 알려진 이상 그 명칭은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모든 것의 이름은 대상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민둥산'이라는 이름에서는 '나무가 많지 않은 산'이라는 이미지를 쉽게 떠올리게 된다. 이는 일반적인 상식의 범위 내에서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인식이 비슷하다는 증거다.
영남알프스도 마찬가지다. 알프스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로 그 산군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막연한 기대를 가지게 된다. 하얀 설봉을 지닌 아름다운 산군은 아니더라도 시원하게 펼쳐지는 고산초원을 바라며 영남알프스의 어느 입구로든 들어서는 것이다.
↑ 구룡소폭포로 향하는 길목. 가문 가을에도 적지 않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지난다.
입구에 따라 달라지는 난이도
3개 시에 걸쳐있는 영남알프스의 넓은 산군에는 지역마다 들고 나갈 수 있는 출입구가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7개의 산이 지역별로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각 봉우리로 갈 수 있는 등산로도 여럿 있어 어디서든 쉽게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최근에는 밀양 얼음골에 케이블카가 운행을 시작하며 사자봉과 재약산으로는 더욱 편안하고 빠른 산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영남알프스를 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나 종주산행이라 말할 수 있다.
짧게는 1박 2일, 길게는 2박 3일 이상으로도 일정을 잡을 수 있는 영남알프스의 종주코스는 산군에 오래 머무르며 둘러볼 수 있다는 이점은 물론, 코스 자체도 다양해 계획을 잡기에 따라 영남알프스의 곳곳을 찾아가볼 수 있다.
일반적인 종주코스는 운문산으로 올라 가지산과 간월산, 신불산을 거쳐 영축산에서 하산하는 길이다.
또는 경주와의 경계에 있는 고헌산 등지로 올라 낙동정맥을 따라 영축산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근래에는 영남알프스의 주요 산들을 둥글게 연결하는 종주등산로에 '하늘억새길'이라는 이름도 붙여놓았다. 간월재를 시작으로 영축산까지 이어지는 억새바람길과 영축산에서 죽전마을로 내려가는 단조성터길, 이어 사자봉까지 연결되는 사자평억새길과 배내고개로 하산하는 단풍사색길, 그리고 배내고개에서 간월재로 회귀하는 달오름길 등 총 5구간을 지칭한다.
이는 기존의 등산로를 구간별로 나눠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하지만, 각 구간을 특징별로 정의내리며 종주산행 등의 행위를 유도하기 위한 노력이다. 구간별로 균등하지는 않지만 각각 진입과 탈출이 가능해 다양한 산행을 즐겨볼 수 있는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이처럼 영남알프스의 산길은 시작과 끝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어 오르내림에 따른 난이도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밀양 방면에서 시작하는 종주코스를 잡았다. 영남알프스 종주라면 운문산을 오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정석이지만, "산길에 볼거리가 별로 없다"는 현지산악인 이원희씨(김해히말라얀클럽)의 의견에 따라 조금 짧게 아랫재로 오르는 계획을 잡았다가 출발 당일 시간상의 이유로 코스를 더 줄였다.
산행 시작 전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며 코스를 줄이는 이원희씨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의문은 함께 종주를 하면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점으로 결정된 장소는 밀양에서 언양으로 넘어가는 24번 국도 위, 호박소계곡 근처에 있는 가지산휴게소(제일관광휴게소)였다. 24번 국도를 뒤로 하고 임도처럼 보이는 길을 따르는 것으로 영남알프스에 첫 발을 딛는다.
사실 길은 임도가 아니라 휴게소를 운영하기 위해 닦아놓은 것이다. 잠시만 오르면 제법 너른 공터 주차장이 있는데, 성수기 주말이면 주차장이 꽉 찰 정도로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예전에는 주막처럼 운영되는 가게도 있었다고 하니 영남알프스의 인기를 알 수 있다.
↑ 가지산으로 향하는 길목의 억새는 잡풀과 섞여있지만 감탄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하다.
주차장에서 연결되는 길을 따라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선다. 가문 가을에도 길옆으로 계곡물이 흐르며 수량이 풍부한 산군임을 뽐내고 있지만 영남알프스의 특별함은 보이지 않는, 흔히 볼 수 있는 산길이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의 생존에 물이 빠질 수 없듯, 이곳에 흐르는 물도 영남알프스의 자연이 살아가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
산길은 대체적으로 이정표 설치가 잘 되어 있고 길의 정비도 가지런하다.
나무계단이니 돌계단을 밟으며 능선으로 향하면 조금 조잡해 보이는 전망대(?)가 나오고 정면으로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조망된다.
구룡소폭포다.
전망대 전후의 이정표로 말미암아 명칭을 알아낼 수는 있지만 정작 자연물이 위치한 장소에 아무런 알림판이 없다는 건 아쉬운 행정이다.
이곳을 지나는 등산객은 폭포를 보고 감탄은 할 수 있을지언정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편히 다니라고 길은 정비하지만 자연유산의 본 이름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구룡소폭포를 지나 산행을 이어나가면 허물어져가는 건물에 불전을 차려놓은 묘향암이라는 암자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머지않아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구룡소폭포 방면의 화살표만 있을 뿐 정작 향할 곳의 화살표는 없다.
숱한 산악회들이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표지기만이 길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둘 중 어느 길을 택해도 가파른 오르막을 1시간 가량 걸어 정상능선에 오를 수 있다.
영남의 '알프스'가 모습을 드러내다
운문산과 가지산의 거의 정중간에 위치한 능선에 오르면 얼음골 방면의 조망이 시원하게 열린다.
가까이로 봉긋하게 솟은 백운산과 그 너머의 능선에는 케이블카 정류장의 모습도 확인된다. 산에 설치되는 케이블카는 늘 환경보호와 노약자들도 산에 오를 권리 등등의 이유들로 충돌하는 '뜨거운 감자'다.
외지에서 찾아와 반대를 부르짖는 환경운동가와 현실적인 경제 이득을 바라는 지역민의 이야기로까지 이어지면 어느 쪽이 옳다고 손들어주기는 더욱 미묘해진다.
영남알프스의 한 능선에 빌딩처럼 솟아있는 정류장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은 들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능선에 올라 기쁨을 만끽할 사람들도 많을 것을 생각하면 하나의 잣대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싶다. 공
존을 위해 자연과 인간은 어느 선에서 타협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가지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잡풀과 섞인 억새군락이 종종 보인다. 드넓게 펼쳐진 억새밭은 아니지만 잡목림을 걷다 마주치는 억새능선은 충분히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최근 영남알프스의 억새는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원래는 억새가 사람 키만큼 자라 숲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무릎 높이를 넘을락말락하는 억새들도 제법 눈에 보인다.
어떤 이유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자연이 변해버린 사실을 알게 되면 걱정스럽고 씁쓸한 감정이 생기며 안타까울 따름이다.
↑ 나무계단과 목책으로 정리된 간월재 인근의 등산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영남알프스 산군은 육안으로도 발로 느껴지는 감촉으로도 대체로 육산이다.
그 와중에 드문드문 정상부가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 있는데 가지산도 그런 산이다. 잡목림과 억새능선이 번갈아 나오는 흙길 위주의 등산로에 깨진 자갈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이면 바위로 이루어진 가지산 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까이로는 억새군락, 멀리로 암봉과 하늘의 어울림을 보며 길을 따르면 가지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의 발치에는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다. 잠을 잘 수 있는 용도로 지어지지는 않았지만, 유사시에 요청하면 공간을 내어줄 것 같은 인상을 지닌 주인이 라면 같은 요깃거리와 식수, 커피, 간단한 주류 등을 팔며 이곳을 지키고 있다.
이런 대피소의 존재는 영남알프스 종주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등산객들이 가벼운 차림으로 올라와 식사를 해결하거나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여건도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이다.
대피소에서 바위 구간을 잠시 오르면 가지산 정상이다.
영남알프스에 속해있는 산 중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봉우리지만 산행 중에도 주변 조망을 볼 수 있던 구간이 많아 딱히 조망의 장쾌함을 자랑하는 곳은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 언양읍이 바라보인다는 것이지만 큰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널찍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신발을 벗고 간단히 요기를 하며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유로움과 포근함이 느껴진다.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면 몇 개의 산을 올라봤다는 이야기나 짧은 시간에 긴 구간을 주파했다는 이야기를 담은 카페나 블로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 부분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바쁜 현대 사회를 살면서 산을 대하는 자세마저도 '더 많이, 더 빠르게'를 추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마음 편히 찾고 넉넉히 쉬었다 갈 수 있는 산. 날이 갈수록 이 같은 산의 모습이 현대인들 마음속에서 사라지는 것 같아 보이는 요즘이다.
↑ 가지산 정상에서는 언양 방면의 조망이 시원하게 열린다.
가지산 이후로는 하염없이 내려가는 길이 이어진다.
바위가 깨져 형성된 자갈 구간을 통과해 다시 잡목림으로 들어서는 길. 기껏 능선에 올라 여유를 가졌는데 봉우리 하나를 오르고 다시 내려가니 허탈감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이후 코스는 멀리서 보면 거의 수평으로 여겨질 정도의 완만한 길이다.
계단을 따라 석남재 인근으로 내려서면 '가지산석남재대피소'라고 적힌 작은 주막이 있다. 외관을 보면 먹을거리를 파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정상의 대피소와는 다르게 조금 소외된 느낌이다.
대피소를 지나면 가지산 철쭉나무 군락지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462호로 지정된 이곳의 철쭉 군락지는 석남터널부터 가지산 능선을 따라 분포한다고 하며, 5월 중순에서 말쯤이면 가히 장관을 이룬다는 설명이 되어있다.
이어 나타나는 지점은 석남터널 갈림길이다. 밀양 방면과 울산 방면의 석남터널을 택해 하산할 수 있는 곳이자, 내림을 멈추고 다시 능동산을 향해 오름을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능동산으로 오르는 산길은 가파르지 않게 이어진다. 낙엽이 묻혀 썩으며 형성된 부엽토가 푹신하게 밟히는 길이다. 완만하게 오르내리다 마지막 가파른 계단 구간을 밟고 오르면 능동산 갈림길에 선다.
능동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불과 0.2km로 가볍게 올라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종주를 이어갈 배내고개로의 하산은 다시 갈림길로 내려서서 진행해야 한다.
배내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대부분 나무 계단으로 이어진다. 중간중간 데크를 만들어 휴식공간을 조성해놓은 것이 눈에 띄는데, 데크 아래에는 어김없이 등산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널려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갈림길에서 약 20분 정도 걸려 내려선 배내고개는 넓은 주차장과 식당 겸 먹을거리를 판매하는 가게가 있다. 종주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 고개에서 야영을 한다.
주차장 구역은 개인 사유지이므로 그 옆의 정자나 등산로가 이어지는 길목의 공터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공식적인 야영장은 아니지만 필요한 만큼의 잠 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이런 자유가 영남알프스 종주의 매력이다.
그리고 이곳에 이르러서야 산행시간에 신경을 썼던 이원희씨의 의도도 알 수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야영지에 도착해 공간을 확보하고 편안한 밤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이는 볼거리 풍부한 시간에 산을 오르고 텐트에 앉아 밤의 낭만을 즐기는 것이 야영산행의 맛이라는 그의 지론에 따른 것이었다.
↑ 간월재 전후로 펼쳐지는 억새밭의 진풍경. 산을 온통 하얀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억새도 사람도 바람 따라 너울대다
밤사이 배내고개를 넘나드는 바람은 매우 차가웠다.
그 바람은 아침까지도 기승을 부려 산행자의 몸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도 잠시뿐 숲이 우거진 계단 구간을 따라 능선에 오르는 사이 몸은 땀으로 젖고 따사로운 햇살이 겉옷을 벗게 한다.
배내봉과 이어진 능선에서는 울산, 울주 방면이 한결 가깝게 조망된다. 배내봉까지 평지처럼 이어지는 능선길 좌우로 키높은 억새들이 바람에 실려 온몸을 흔든다.
배내봉을 지나 간월산까지는 한 차례 내려간 다음 경사길을 치고 오르면 도착한다.
이곳부터 유명한 영남알프스의 가을 억새밭이 본모습을 드러낸다. 간월산에서 간월재로 내려가는 구간까지, 그리고 다시 신불산으로 올라가는 산언덕이 하얀 빛을 뿜어낸다.
등산로를 따라 한걸음씩 다가갈수록 하나하나의 모습을 뚜렷이 드러내며 빛나는 억새는 단풍과 함께 가을을 대표하는 즐길 거리임을 확실히 증명한다.
이곳 억새의 유명함으로 인해 간월재에 무수한 사람이 몰리고, 간월재 대피소와 휴게소가 만들어지는 등 시설 확충도 이루어졌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루어진 일이다. 해발 1000m에 가까운 간월재는 산의 모습보다는 순천만 갈대밭이나 여타의 생태공원처럼 데크가 깔리고 길이 정비됐다.
많은 사람이 찾는만큼 억새밭을 지키기 위해 길을 제한시켜놓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본의 북알프스가 황폐해진 고산초원을 탐방로 지정과 출입제한으로 살려냈듯이, 영남알프스의 억새도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낮아진 키를 다시 세울 수 있을지 모른다. 과연 인간의 발길로 인해 억새의 키가 낮아진 것인지는 좀 더 기다려야 밝혀질 일이다.
↑ 능동산에 이르기 전 만나는 기이한 형상의 소나무 한그루
간월재에서 억새의 향연을 즐기고 나면 신불능선으로 오르는 숨가쁜 오름길이 이어진다.
한고비를 지나면 간월산과 반대 방향에서 간월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후 완만한 경사를 따라 능선에 오르면 신불산에서 영축산까지 이어지는 굴곡진 능선이 한눈에 조망되는 장소가 나타난다.
그 사이를 하얗게 메우고 있는 억새들, 이것이 이 산군에 알프스라는 이름을 달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길은 거의 힘들이지 않고 신불산 정상에 서게 해준다.
운문산~배내봉 구간과는 다르게 억새를 즐기러 온 사람들의 물결이 억새밭 못지않게 넘쳐난다. 신불산에서 영축산 방면으로 길을 잡으면 왼편으로 흐르는 두 개의 능선이 보인다.
가까운 능선은 신불산 공룡능선이고, 뒤편의 능선은 아리랑리지, 쓰리랑리지 등이 개척되어 있는 능선이다.
그리고 영축산까지 이어지는 등산로 좌우로 억새밭이 물결처럼 출렁이고 있다. 한창 시기의 하얀 빛을 발하는 억새들은 어느새 기울어져가는 해의 각도에 따라 은빛으로 변하며 장관을 연출한다.
종주산행의 종지부를 찍으려면 영축산까지 도달해 하산을 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이미 억새의 모습을 지겨울 정도로 눈과 마음에 담았기에 신불재에서 왼편의 두 능선 사이로 내려가는 길로 하산하기로 한다.
충분히 만족했을 때 약간의 모자름을 채우기 위해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
하산은 밀양 방면에서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오랜만에 숲이 우거진 산길이 이어진다. 역시 영남알프스의 특징은 찾아볼 수 없는, 흔히 볼 수 있는 산길이지만 능선 종주를 하고 난 뒤의 느낌은 마치 출입구 역할을 하는 듯하다.
영남알프스에 들기 위해 통과해야하는 숲 터널. 산과 지상을 연결해주는 통로처럼 여겨진다. 갈림길도 거의 없이 승불사 이정표를 따라 내려가면 건암사라는 절을 만나며 산을 빠져나온다. 1박 2일의 짧은 영남알프스 종주의 대단원이다. ⓜ
↑ 산 능선 사이사이로 보이는 울산과 울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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