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수골 정일학원~1.6km/58m~백년약수~1.6km/53m~백운봉~1.2km/1h34m
~함왕봉~1km/1h11m~장군봉~1.6km/1h8m~가섭봉~1.9km/2h8m
~마당바위~1.5km/1h5m~용문사~1.4km/28m~용문사관광단지 삼일식당정류소
약 11.8km/9h25m 소요
2013.04.30.화
용문산은 용(龍)의 산이다.
이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용의 산세다.
땅을 뚫고 승천하는 압도적 산세는 경기도 동부의 제왕이라 해도 손색없어 보인다.
1157m~~
1000m 넘는 산이 많은 강원도 산보다 더 높게 보이는 건 산행 시작점이 해발 100m대에 불과한 지역에 불끈 치솟았기 때문이다.
양평에서만 놓고 보면 에베레스트 같은 위압감을 가진 강력한 제왕격 산이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양평이 용문에 의지하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용의 문을 오르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용문산(龍門山) 산행이 말이다.
새수골~용문사 코스는 만만하게 볼것이 아니다.
자칮 고생만 하다 밤늦게 내려올수도 있으니, 낮 시간이 긴 때를 택해 산행하는게 좋겠다.
산행 기록표
08:07 춘천 석사동 우리소아과 앞 출발 |
09:25 양평군 양평읍 백안리의 새수골에 있는 정일기술학원 앞에 주차 후 등산준비 |
09:33 등산 시작 |
10:06 백운봉*두리봉*새수골 갈림길 도착 |
10;31 백년약수 도착 |
10:48 백운봉*두리봉*백년약수 갈림길 도착 |
11:02 백운봉*형제우물*백년약수 갈림길 도착 |
11:24 백운봉 도착 |
11:54 장군봉*연수리*백운봉 갈림길 도착 |
12:05 장군봉*사나사*백운봉 갈림길 도착 |
12:35 헬리포트 도착 |
12:37 장군봉*사나사*백운봉 갈림길 도착 |
12:58 함왕봉 도착 |
13:50 장군봉*사나사*함왕봉 갈림길 도착 |
14:09 장군봉 도착 (상원사 갈림길) |
14:23 용문산*용천리*용문산 갈림길 도착 |
15:04 용문산*용문사*장군봉 갈림길 도착 |
15:17 용문산 가섭봉 도착 |
16:10 용문사*용문산*장군봉 갈림길 도착 |
16:56 용문사*상원사*용문산 갈림길 도착 |
17:25 마당바위 도착 |
18:30 용문사 도착 |
18:49 용문사 일주문 도착 |
18:58 삼일식당 앞 정류소 도착 |
19:15 용문 시외버스터미널 행 시내버스 탑승 |
19:40 동서울 행 양평시외버스터미널 경유 시외버스 탑승 |
19:53 양펑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 탑승하여 새수골로 이동 |
20:00 정일학원 앞에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에 탑승하여 춘천으로 이동 |
21:00 춘천 석사동 우리소아과 앞 도착 |
용문산 주변의 산군들~~
용문산 등산지도
관리사무소 주변의 주차장 시설
용문사 시내버스 종점
09:33 등산을 시작하면서 앞에 솟은 백운봉을 바라봅니다.
"경기도의 마테호른이니~ 뭐니~ 절절이 들었는데 기껏 저거야?" "예상했던 것 보단 쉽게 오를수 있겠네" ㅎ~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저곳을 올라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마테호른을 볼수 있는 수네가 전망대~~
마테호른(4,478m). 영화가 시작되면 산 위를 별들이 빙빙도는 파라마운트 영화사 로고가 생각납니다.
약 수 사~
09:45 관리사무소 앞을 지나갑니다
금낭화~~
09:49 여기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됩니다.
10:06 두리봉 갈림길. 이곳에서 두리봉을 거쳐 백운봉으로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10:31 약수를 마시면 백년을 산다는 백년약수터~
목마른 김에 거푸 세사발을 마셔버립니다. 산을 다닐 때까지 만이라도 건강하게 살수 있길 바라면서~ ㅋ~
10:48 관리사무소에서 두리봉을 거쳐 올라오면 여기서 합류하게 됩니다.
나는 약수 맛이 궁금하여 백년약수 코스를 정했습니다. 물론 오늘 코스가 길으니 시간과 체력도 절약할 겸~
아~!! 이제야 스위스의 절묘한 산 이름을 비교한 이유를 알겠습니다
11:02 비박하는 사람들에겐 이렇게 산중턱 위에 샘물이 있다는 것은 생명수나 다름없습니다.
요즘은 산엘 다니면 비박에 필요한 테크나 샘물 또는 아늑한 곳과 전망 좋은 곳을 눈여겨 봅니다.
삼색 계단 입니다. 고등색, 연분홍색, 청색~~
11:24 드디어 백운봉에 올랏지만 그닥 실감이 나질 않네요! 너무 많은 유명세 때문 일까요?
아니면 주변 조망이 연무로 인해 시원치 않고, 산 오를 때부터 시작한 포성이 백운봉에 오르기까지 그치질 않아서 인지.....
통 일 암~
지나온 능선~
유명산이 조망되고~ 어비산~유명산~소구니산~중미산을 작년에 돌았는데 그 산세를 찾지 못하겠네요!!
테크봉, 함왕봉, 장군봉, 용문산~
용문산 정상의 군부대~
백운봉에서 용문산 가는 길은 직벽구간을 이룹니다
11:54 연수리 갈림길~~
12:05 사나사 갈림길~~
되돌아 본 백운봉
함왕성 터~
12:35 헬리포트~
12:37 사나사 갈림길~~
지나온 백운봉과 테크봉~
테크봉에서 쉬고 있던 산객을 당겨 봅니다
12:58 함왕봉 정상~~
13:50 사나사 갈림길~~
14:09 장군봉 정상
용문산 가섭봉 가는 길~ 윗쪽은 가섭봉이고 아래는 상원사 방향 입니다.
얼 러 지~
14:23 이곳에 있는 많은 안내판의 거리표시가 맞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부터 용문산까지 2km도 넘는 것 같던데~ 몸이 지쳐서 그랬나.....
용문산 정상 아래의 비탈면을 한 없이 가야 합니다.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군부대~~
14:56 산객들 뒤의 능선에서 우측 능선 따라가면 않되고, 능선을 넘어 가야 가섭봉이 나옵니다
15:04 용문사에서 가섭봉으로 올라오는 길이 보입니다
가섭봉 정상이 보이고~~
얼마 전에 올랏던 앞쪽의 고동산~화야산~뾰루봉과 북한강 건너 화야산 맞은 편에 있는 호명산과 주발봉
산 봉우리 이름을 알수가 없습니다
15:17 드디어 용문산 가섭봉 정상에 올라 섯습니다
웬지 구)정상석이 더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용문산 가섭봉은 예로부터 산 내의 석가봉, 아난봉과 함께 용문산불교 3봉으로 불렸으며 가섭은 부처님에게 염화시중의 미소를 보낸 마하가섭을 가섭존자로 칭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제1봉 가섭봉(1157m)에 이어 석문(1127m), 제2봉 장군봉(1056m), 제3봉 백운봉(940m), 함왕봉(887m), 도일봉(864m), 중미산(801m) 순으로 준령들이 펼쳐진다.
1786년(정조10년)에 무안에서 태어난 조의선사는 26세 때 용문산 여행일기에서 "수월암(세수골)에서 하루를 자고 가섭봉에 올라서 운필암과 상원암을 거쳐 용문사에 이르렀다" 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 때 가섭봉으로 불렸음을 알수 있다.
용문산관광단지가 멀리 보이고~
지나온 백운봉과 그 뒤로 양평시가지가 어렴풋 보이고 옆으로는 남한강이 흘러 내린다
당겨본 화악산이 어렴풋합니다
어비산과 용문산이 좌측에 있고, 그 우측으로 용문산과 백운봉이 솟구 쳤습니다. 펌~~
16:10 하산을 하면서 비박하기 좋은 테크를 보아 둡니다.
16:27 마당바위로 향합니다
주읍산 인가요?
용문산에서 문례봉 가는 능선~~
16:56 마당바위 갈림길~~
용문사로 내려가는 길은 이렇게 계속 너덜길 입니다
17:25 마당바위~~
18:27 상원사 갈림길~~
18:30 용 문 사~
18:35 용문사의 천년은행나무~
용문사 위로 오늘 올랏던 용문산 가섭봉이 희미합니다
18:49 용문사 일주문~~
도일봉에서 바라본 용문산.
경기도 영상인 용문산은 고상다운 풍모와 기암괴석을 고루 갖추고 있는 산으로 관련된 속담도 회자된다.
"용문산 안개 두르듯" 은 옷을 치렁치렁 걸친 모양을 비유한 말이며.
"용문산에 안개 모이듯" 은 여거ㅣ저기서 한곳으로 집결하는 모양을 이루는 말이다.
자욱한 안개속에서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 연상되는 속담이다.
"용이 드나드는 산" "용이 머무는 산" 으로 원래는 미지산으로 전해온다. 미지는 미리의 옛 형태고, 미리는 경상*제주지방의 용의 방언이다.
용의 옛말인 미르와도 음운이 비슷하다.
즉 미지산이나 용문산이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미지산에서 용문산으로 바뀌었을까?
이성계가 용이 날개를 달고 드나드는 산이라 하여~
일제 강점기에 지도를 만들며 용문사 이름을 따서~ 바꼈다는 설이 있다.
한국전쟁 이후 40여 년간 군사보호시설구역으로 출입이 금지 됐으나 세월이 흐르며 2007년 일반에 개방 되었다.
현재는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정상부에 방송국과 군시설물이 복잡하여 산만하지만, 날 맑은 날의 조망만은 가히 압원이다.
용문산을 내려와 용문사를 벗어날 즈음에 마주한 다산 선생님의 "망용문산" 싯귀가 적힌 석문을 보곤 용문산과 함께한 오늘의 많은 시간이 새롭게 느껴 집니다.
귀향살이 후 노구의 몸이 되어 두물머리에서 이곳 용문산을 바라보며 오르지 못함을 탄식한 다산 선생님.
아아~
그분도 용문산이 올려다 보이는 양평을 떠나는 마음이 이리 절절했구나.
꼭 하여야 할 일이지만, 한편으론 복잡다난 한 서울과의 인연을 끊기가 어려워 무릉도원 처럼 아름다운 이곳을 뒤로한다는 것이~
슬프고 가슴 아팟으니......
정양용 선생님의 일생
1762년(영조38년)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에서 태어나, 우형원, 이익 등의 사상를 계승하여 조선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셨다.
약관의 15세에 서울로 올라와 유교경전과 선학등의 학문연구에 매진하였고 17세 때 문과에 급제 한 루 경기도 암행어사 등의 직무를 수행햇다.
문턱 높기로 유명했던 성균관에 선생은 23세의 나이로 입성했고 28세에 문과에 급제하면서 벼슬을 시작하며 배다리, 거중기 등을 설계하여 나랏일에 큰 모움을 주셨다.
이후 10여년 동안 조정에 몸담았으나 모험과 역모가 많아 10일 짜리 유배를 하기도 했으며 암행어사로 경기도를 돌아 백성의 고텅을 덜어 주기도 하셨다.
하지만 정조의 서거 이후 조정 내의 당쟁, 천주교 탄압으로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전남 강진으로 18년의 억울한 유배생활을 하신다.
그 유배가 끝난 57세의 선생은 고향으로 내려와 75세로 세상을 떠나기 까지 목민심서를 완성하고 그외 흠흠심서, 아언각비 등의 저서를 남기셨다.
선생의 실학을 다산학이라고 하는 데 이 학문에 관한 500여 권의 저서 대부분이 유배지에서 만들어 졌다.
잔인한 사월, 정약용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
[손석춘 칼럼] ‘반민주’에도 차분한 나라 어디로 갈까··· 다산을 소망하며 |
서민들이 곰비임비 목숨을 끊고 남북 사이에 갈등이 무장 커져가는 사월의 봄날, 다산의 무덤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속절없이 눈시울 슴벅인 까닭은 오늘의 시국에 다산이 남긴 시들이 사무쳤기 때문입니다.
1762년에서 1836년.
다산은 이 땅에 머물며 적잖은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오랜 귀양생활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적잖은 선비들이 귀양 갔지만 ‘애절양’의 절창을 남긴 이는 찾기 어렵습니다.
수탈당하는 민중의 아픔을 노래한 다산의 시들은 시대가 달랐을 뿐, 요즘의 문법으로 말하면 ‘칼럼’이었습니다.
과연 애절양에 버금가는 칼럼을 쓰는 ‘선비’가 지금 우리에게 있는지 자문해보면 하릴없이 스산해옵니다.
18년의 긴 유배를 마치고 돌아와 머문 고향집. 남양주 마재(마현)마을의 다산 생가 "여유당"
다산의 ‘언관’에 담긴 충고
당대 민중의 고통을 담아내던 다산은 이따금 자신의 ‘상처’도 담담하게 드러냈습니다.
그의 시어를 빌리면 “흰 머리칼 늘어” 비로소 그 대목이 절절하게 다가오더군요.
무엇보다 다산이 ‘언관’을 맡지 말라고 당부한 대목이 아팠습니다. 언론인으로 살지 말라는 충고이지요.
“울어도 봉황새의 울음을 우지 마라(鳴莫作朝陽鳳)
우연히 한 번 울면 뭇새가 다 놀란다(偶來一鳴驚者衆)
구슬발 호화론 집 앵무새 둘러앉아(珠簾繡閤坐鸚鵡)
생황 같은 혓바닥을 진종일 놀리거니(巧舌如簧終日弄)” 라고 노래한 다산은 곧바로
“벼슬해도 간대부의 직책은 맡지 마라(官莫作諫大夫) 말해봐도 소용없고 오활하다 탓만 한다(縱言無補徒爲迂)”고 개탄했습니다.
‘말해 봐도 소용없고 오활하다 탓만 한다’는 데 이르러 아마 당신도 다산의 외로움을 절감했을 터입니다.
옳은 이야기에 세상 물정 모른다고 조롱하는 윤똑똑이들 사이에서 다산은 어떤 심경이었을까요.
저는 언관을 맡지 말라는 그의 권고는 ‘역설적 강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언(正言)’의 자리에서 활동하던 다산은 그의 ‘뜻’대로 언관을 더는 맡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지요.
다산의 글을 질시하던 무리가 그를 모함해 언관의 자리에서 내쫓았기 때문입니다.
언관에서 물러난 다산은 ‘정언’으로 일하는 지인을 생각하며 멀리서 글을 씁니다.
‘꽃 아래서 혼자 마시며 정언 김상우를 생각하여 시를 써 부치다’(花下獨酌憶金正言 商雨 簡寄).
사뭇 긴 제목의 노래입니다.
“국화 아래서 혼자 술잔 들며/ 머나먼 곳 사람 생각하네/
궁벽한 땅 누구와 함께 있을까/ 해 저물어 국화 너를 가까이 하리/
살짝 취해 시름 잠시 잊었더니/ 밝은 가지 새롭게 눈에 비치네/
전해 듣기에 많은 백발들이/ 쓸쓸히 강가에 가 누웠다네.”
김형. 어떤지요. 술잔 앞에 둔 ‘해직 언론인’ 정약용이 떠오르지 않나요.
그 또한 김형(김상우)에게 글을 보냈더군요.
쓸쓸히 강가에 누운 백발이 이 땅의 역사에 참 많았다는 생각에 이르러선 차라리 겸손해지더이다.
다산은 자신을 잘라버린 자들을 은근히 꾸짖는 시도 남겼습니다.
“천지를 두루 돌며 머리털은 희어지는데(天地徘徊欲白頭)”로 시작한 다산의 시는 “오리 갈매기 그들이야 날 모략 않겠지(深信鳧鷗不我謀)”로 맺습니다.
얼마나 시기를 겪었으면 개울의 오리, 바다의 갈매기에 감정이입을 했을까요.
정약용을 질시하던 자들은 다산이 물러난 ‘언관’의 자리를 차지하고 짐짓 선비인 듯 행세하며 챙길 것 다 챙겨 살았지요.
하지만 그들 개개인의 편한 인생과 달리 ‘당대의 언관’을 잃은 조선은 시나브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다산이 귀양살이 하면서 서울의 공론은 저마다 거들먹거리는 사대부들이 지배하게 됩니다. 그 결과이지요. 나라가 거덜 납니다.
다산의 무덤에 무릎 꿇은 이유는 그가 눈을 감은 뒤 전개된 177년의 역사가 더없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식민지로 전락했고 분단이 되었습니다.
그 시기 백성들처럼 서민들이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대개가 제 잇속 챙기기에 여념 없다고 본다면, 너무 편협한 비관일까요.
김형.
정약용이 한 많은 세상을 떠난 날은, 우연이지만 우리가 ‘신문의 날’로 기념하는 그 날입니다.
거듭 새기거니와 다산이 생을 마칠 때 아직 이 땅은 식민지도 분단도 경험하지 않았지요.
선생님의 초상화
‘정언’ 정약용을 소망한다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이 나라의 내일은 어떨까요?
국가정보기관이 대선에 적극 개입한 반민주적 작태가 확연히 드러났는데도 대다수 언론이 되레 차분한 이 나라는 대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까요.
김형과 젊은 언론인들이 당당하게 ‘정언 정약용’의 길을 벅벅이 걸어가길 멀리서나마 소망하는 까닭입니다.
김형.
신문의 날,
정약용이 눈 감은 사월의 그 날을, 다산이 다시 살아나는 날로, 아니 우리 가슴에 살려내는 날로 함께 기리고 다지면 어떨까요?
아무리 살펴도 ‘화하독작 억김정언(花下獨酌 憶金正言)’의 다산처럼 결곡하진 못하지만, 떨어지는 꽃 아래 혼자 잔질하면서 오늘의 ‘김 정언’에게 글을 부칩니다.
서민들이 곰비임비 목숨을 끊고 남북 사이에 갈등이 무장 커져가는 이 사월의 봄날. (언론인·건국대 교수)
18:55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싯귀를 보아서 인가?
그렇게 기다렸던 용문을 돌고 나서의 미련 때문일까? 자꾸 시선이 가섭봉을 향합니다.
용문산관광단지~
18:58 삼일식당 앞에서 버스를 기다 립니다.
이곳 용문사 종점에서 19:15분에 도착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19:30에 용문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합니다. 용문역 경유합니다. 시내버스 교통카드 되구요~ 안내방송으로 교통카드 충전도 된다고 하네요! 시내버스 기사 성질 더럽습니다~!!
용문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양평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나 속초방향에서 동서울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야 합니다.
시간표를 보니 19:40에 동서울행 버스가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네요~!! 잠시 후 도착한 직행버스에 탑승하니 양평터미널까지 10분 정도 걸리고 요금은 현찰로 만 1,300원 입니다. 시외버스 기사님 매우 친절 하십니다.
양평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바로 옆에 택시 승강장이 보입니다. 택시를 타고 승용차가 세워져 있는 새수골 정일학원으로 갑니다.
시간은 7분 정도 걸리고 요금은 4,000원 나옵니다. 택시기사님 아주 고맙습니다~ "나갈 때 빈 택시로 나가야 할텐데....."
용문사에서 새수골까지 시간과 요금을 합산해 보니, 시간은 45분, 요금은 5,300원+교통카드 들었네요!! 참 빠르고 저렴합니다~~^*^
춘천에서 오전8시에 출발하여 용문산 등산 후에 양평에서 오후 8시에 출발합니다. 춘천에 1시간 후면 도착하겠죠?
안방마님께 전화 걸어 도착시간을 말하고 미안한 마음에 "외식 할까?" 하니 넘 늦었다고 하네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한마디 단단히 들을 것을 무릅쓰고 "막걸리 한병만 사다 놓을 수 있어" 주문합니다.
이윽고 9시~
집에 들어서니 맛난 막걸리 한병과 내가 좋아하는 연어회를 사다 놓았네요!! 고마워라~~^*^
거기다가 고소한 촌두부로 매콤*시원하게 찌게까지 올려 놓고....
요즘 산행은 산악회에서 가기에는 좀 어정쩡한 곳을 다니고 있습니다.
보통 산행시간 만 8~10시간 정도 소요되는 곳, 원점회귀 않되는 곳, 등산에 어느 정도 익숙하고 속도나 행동습관이 비슷하여 공유되는 산객들과 산행한다는 이야길 주고 받으며 서로 막걸리 잔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배가 불룩 나왔습니다.
10시 반,
땀냄새 가득한 몸 뚱아리 청소 시키니 몸도 가쁜하고 마음 또한 가벼워 세상 부러울게 없습니다.
"Healing"
이렇게 살면 되는 거 아닌가?
다음 산행지를 그리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아침 여섯시~
사랑스런 강쥐 "동주" 의 끙끙 거리는 기상나팔 소리에 숙면을 취했던 잠에서 깨어 납니다.
오늘은 노동절.
어제의 산행사진을 정리합니다~~^*^
☆ 춘천에서 홍천가는 시외버스
☆ 홍천에서 양평가는 시외버스
☆ 용문에서 홍천가는 시외버스
☆ 홍천에서 춘천가는 시외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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