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산 대원사~승지골~문암재~문바위~문암동
~문암산~석화산~내면 면사무소~석화산 대원사
약 11.9km/7h7m 소요
2014.05.01.목
09:09 석화산 대원사에서 산행 시작 |
10:18 문암재 도착 |
10:39 문바위골 도착 |
10:59 문바위산장 도착 |
11:06 문암교회 도착 |
11:35 200 |
13:14 문암산 도착 |
13:28 문암산*백성동*석화산 삼거리 갈림길 |
14:19 문암산*백성동*문암동 삼거리 갈림길 |
14:38 짝바위*석화산*문암산 삼거리 갈림길 |
14:40 석화산 정상 도착 |
15:29 백성동*석화산*짝바위 삼거리 갈림길 |
15:34 짝바위 도착 |
15:48 석화산*내면사무소*바우솔골 삼거리 갈림길 |
16:06 내면사무소 도착 |
16:13 석화산 대원사에서 산행 종료 |
17:00 인제군 상남면 미산리에 있는 프란체스카여숙 도착 |
석화산*문암산 등산지도
주차장→문바위→귀틀집→문암산→석화산→삼거리→내면교회→주차장
트레킹 gps
--------------------------------------------------------------------------------------------------------------------------------------------------
08:51 운전을 하며 내면의 들머리로 가다가 전망 좋은 곳에서 오늘 올라야 할 석화산을 조망합니다.
상남에서 기담약초원을 운영하는 친구가 미산리로 이사를 했다하여 얼굴 본지도 몇 달 되었고
옮긴 가게도 구경할 겸 들리려 하니 대중교통으로는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09:09 춘천에서 1시간 조금 더 걸려 홍천 내면에 도착하여 석화산 대원사 부근 공터에 주차를 하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대원사 내부~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갑니다
이곳 승지동에는 파종준비가 한창입니다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한 좌측길로 오르고~
이곳에서도 석화산의 아름다움이 조망되네요! 좌측봉우리에 정상석과 조망처가 있습니다.
급수시설이 있는 곳을 지나고~
임도를 따라 오르다 계곡으로 들어서야 문암재 오르는 들머리가 나오는 데~
초입이 눈에 띄질 않아 그냥 임도를 따라 올라 갔습니다. 그곳에서 우측으로 조금 가니 문암재가 있었습니다.
좌측길로 접어 듭니다
다시 우측으로 올라서고~
그러면 잠시 후 능선에 듭니다. 주차해 놓은 석화산 대원사에서 승지동을 거쳐 1시간 올라 왔습니다
10:18 문암재에 도착합니다.
직진은 석화산~ 좌측은 문바위~ 우측은 승지동에서 올라오는 사거리입니다.
승지동으로 내려가 초입길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어 그냥 진행합니다
떨어져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것을 한 군데 갖다 놓고 방향을 정해 놓습니다
마포산악회에서 왔다 갔네요!! 석화산으로 올라갔겠지만~
서울 사람들은 이런 곳까지 어떻게 알고......
10:39 문바위골에 도착합니다
문바위골의 계곡물이 아주 맑고 시원합니다
누구의 손길인진 모르지만, 자그마한 돌탑이 인적으로 반겨줍니다.
10:44 문바위~
길이 넓고 평탄하여 오지길로 생각했전 것 보다 훨씬 좋습니다
차돌을 많이 쌓아 놓은 것으로 봐서 이곳이 아마도 광산이 아니었나? 합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폐광된지 10년 정도 되었다고 200년 된 귀틀집의 장남 되시는 분이 알려주시네요! 마을에서 반대가 심했던 것으로 여집니다.
길이 좋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작은 도랑을 건너 저만치 민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10:59 가까이 와 보니 문바위산장에 이네요!!
좌측의 빨간지붕이 100년 되었다는 문암교회입니다.
그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절골로 올라가야 200년 된 귀틀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 봅니다.
가로 놓여 있는 산은 석화산↔문암재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보입니다. 우측 골짜기가 문바위 방향이구요!
11:06 문암교회~
많이도 궁금했는 데 이렇게 가까이 보게 되다니......
이런 곳에 100년 전에 교회를 세워 놓았다니~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목사님이 않계시네요~
교회 내부를 살짝 들여다 봅니다.
교회연혁
1910. 8. 문암골에 브라만 선교사가 김시복씨,아무개(별칭:깽초)를 전도, 가정교회를 세움.
1916. 3. 지종락 할머니가 결심하여 선교사와 함께 문암교회 설립을 계획.
1916. 3. 15. 김시영 권사, 김이용 씨가 주축이 되어 예배당 검물을 건립.
1916. ~ 1945. 브라만 선교사가 다년간 관리(일제의 탄압으로 잠시 폐쇄된 적이 있음)
김유해 목사가 군두리(현 서광)교회화 함께 5년간 겸임
김영록 목사가 군두리(현 서광)교회와 함께 3년간 겸임
유철신 목사가 군두리(현 서광)교회와 함께 5년간 겸임
평신도 사역자 --- 김시영 권사,서광성 권사,김창제 권사,김삼용권사, 김광재 권사, 김창순 권사, 김승봉 속장 등
1945. ~ 1947. 김영록 목사가 창촌교회와 함께 2년간 겸임
1947. ~ 1949. 이제춘 목사가 창촌교회와 함께 2년간 겸임
1949. ~ 1952. 김경섭 전도사가 창촌교회와 함께 3년간 겸임
1952. ~ 1955. 이병서 전도사가 창촌교회와 함께 3년간 겸임
1955. ~ 1958. 김상용 권사가 교회를 관리
1958. ~ 1971. 김은수 권사가 교회를 관리
1960. ~ 1970. 이종린 목사가 창촌교회와 함께 10년간 겸임
1970. 8. 김주용 목사가 율전교회와 함께 2개월간 겸임
1970. 10. 15 김영원 전도사가 율전교회와 함께 15년간 겸임
1971. ~ 김태영 권사가 교회를 관리
1985.~1986.3. 김명선 전도사가 율전교회와 함께 겸임
1986. 3. 20 이종찬 전도사가 제1대 담임으로 부임
1987. 1. 20 단독 구역회를 처음으로 개최(강주백 감리사)
1987. 4. 26 천세기 전도사가 제2대 담임으로 부임
1990. 4. 10 김기범 전도사가 제3대 담임으로 부임
1993. 9. 7 이석재 전도사가 제4대 담임으로 부임
1996. 9. 20 교회창립 80주년 기념예배를 드림(설교:정용진 감리사)
1998. 김효배 목사가 제5대 담임으로 부임
2004. 4. 동부연회에서 김효배 목사가 은퇴함.
2004. 4. 한동호 목사가 제6대 담임으로 부임
2005, 11. 18. 전기누전으로 인해 예배당 건물이 전소됨
2006. 5. 7 이재남 전도사가 제7대 담임으로 부임
2006. 5. 28 예배당 가건물을 지음
2007. 12. 신축교회 헌당예배식
목조건물인 이 교회는 지난 18일 오후 2시쯤 교회 배전판에서 연기가 솟은 뒤 순식간에 교회 전체로 불길이 번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교회에서 김장을 담그던 교인들은 시냇가에서 물을 퍼다 화재현장에 끼얹었으나 불길을 잡지는 못했다.
이 교회는 1910년쯤 브레멘 선교사가 문암마을에 들어갔다가 깊은 눈 속에 갇히면서 복음의 씨앗을 뿌린 곳으로,마을 15가구 가운데 9가구 주민들이 이 교회에서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 교회는 처음에는 남녀 출입구가 따로 있고 예배당 중간에 칸막이를 친 12평 규모였으나 한국전쟁 이후 남녀 출입구와 칸막이를 없애고 70년대에 16평으로 개조한 전통적인 목조건물이었다. 한동호 담임목사는 “1년 예산이 1700만원 정도인 작고 어려운 산골교회였다”면서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성도들의 도움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한편 이 교회가 소속된 기독교대한감리회 동부연회는 연회 소속 교회에 공문을 보내 도움을 호소했다(033-435-5750).
올라온 길을 뒤돌아 봅니다
11:35 아아~ 200년 되었다는 귀틀집!!
너무 궁금하고 보고싶었는 데~ 이렇게 막상 대하니 감개무량합니다.
귀틀집(=투방집) :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지름 15cm 정도의 통나무를 우물井자 모양으로 올려
그 사이를 진흙으로 메꾼집으로 방틀집, 틀목집으로 도 부른다.
장남되시는 분이 반갑게 맞아 줍니다.
만삼과 더덕을 많이 심었다고 하시네요! 제게 만삼이 어떤건지 소상히 알려 줍니다.
고향을 떠나 서울서 30년 살다가 귀향한지 8년 되었다고 하시네요!
어르신들은 어떻게 지내시내고 물으니~ 아버님께서는 자리에 누워 생활하신다고 하시네요!
많이 연로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만삼에서 새순이 돋아났습니다. 잎을 찢으니 하얀 진액이 나오고~ 뿌리를 약재로 쓰는 데, 팔길이 만큼 크다고 하세내요!
적당한 능선을 잡아 문암산으로 추정되는 봉우리로 향할 방향을 가늠해 봅니다.
능선을 올라 확인해 본 결과 하살표 부분이 정확하게 문암산이 맞았습니다.
귀틀집을 뒤로하고 무 밭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 갑니다.
궁금했전 만큼 집 세세한 부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자리에 누워 계시는 어르신께 피해 드리고 싶지 않아 강아지 소리 잦아들게 얼른 피합니다.
문바위*100년 된 문암교회*200년된 귀틀집*문암동이 궁금하여 코스를 선택했는 데
장남되시는 분의 자세한 설명에 이런저런 궁금한 사연을 알게 되어 위안은 됩니다.
홍천군에서 문화재로 지정하자는 권유에 주변 개발이 여의치 않을 것 같아서 뿌리쳤다는 말씀도.......
차돌광산 이야기도,,,,,,
어르신들의 안녕도......
문암교회 역사도........
☆ 이 산을 찾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된 아랫글~~☆
[오지여행] 홍천 내면 문암마을
시간이 가는 듯 오는 듯 첩첩산중 하늘만 보이는 그곳~
|
한국의 대표 오지 중 한 곳인 홍천군 내면 율전3리 문암산 중턱 800m쯤 고지에 있는 문바위마을에 노부부가 60년째 강원도 전통가옥인 투방집(귀틀집)에 살고 있다. 결혼한 지 70년 가까이 되는 노부부가 다정하게 집 뒤로 올라가고 있다. |
'삼둔사가리'라는 사람이 난리를 피해 숨어 지낼 만한 피난처가 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사람이 들어와 살았고,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세상과 동떨어진 곳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산 너머 산이다. 고개를 들면 푸르른 하늘뿐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지 않는 한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동네다.
그 삼둔사가리는 조선시대 예언서 < 정감록 > 에 '비장처(秘藏處)'로 나온다.
달둔·살둔·월둔의 3둔과 적가리·연가리·명지가리·아침가리의 4가리가 바로 그곳이다.
'둔'은 펑퍼짐한 산기슭을,
'가리'란 사람이 살 만한 계곡가를 말한다.
홍천군과 인제군 일대에 흩어져 있으며, 그중 3둔이 홍천군 내면 창촌리와 율전리, 광원리에 있다.
홍천엔 동면, 서면, 남면, 북방면이 있고 그 중앙에 내면이 자리한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대표적인 오지로 꼽히는 홍천에서 조차 내면은 더더욱 오지인 셈이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난을 피해 왔든, 먹고 살려고 왔든 여하튼 사람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
56번 국도에 하뱃재라는 곳이 있다.
율전삼거리 바로 아래 있고, 고도가 650m쯤 된다. 율전삼거리엔 초등학교도 있고 촌이지만 주변에서 나름 번화한 거리다.
서서히 올라가면 귀가 멍해지기 시작한다.
거기서 산골짜기 내린천 방향으로 수백 년은 된 듯한 느티나무를 지나고 13㎞ 남짓 꼬불꼬불한 산길로 더 들어간다.
밤바치 고개와 폐교된 율전초등학교 분교를 지나 2㎞쯤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콘크리트 도로를 지나 도저히 더 올라갈 수 없는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문바위마을이라 불리는 문암동이 나온다.
해발 800m 가까이 된다. 이제부터 더 이상 길도 없고 첩첩산중 산으로 뒤덮인 곳이 나온다.
정말 이런 첩첩산중 산골에 마을이 형성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계곡물은 시원하게 흐르고 있다. 바야흐로 녹음의 계절이다. 파릇파릇한 잎들이 방문객을 반긴다.
야생화들도 만발했다. 도화만 있다면 무릉도원이 부럽지 않을 곳이다.
정감록에 나오는 삼둔사가리의 대표적 오지
이 마을은 원래 단종 복위를 꾀하던 이들이 숨어들면서 최초로 형성됐다고 전한다. 세조의 서슬 푸른 칼날을 피하기 위해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피신한 것이다. 아마 < 정감록 > 의 비기를 보고 결정했는지 모를 일이다. 이후 화전민도, 세상을 등진 이들도 함께 했으리라.
드문드문 사람이 살고 있는 그 마을 제일 높은 곳의 문암산 중턱에 주시용(89)·김용선(84) 노부부가 살고 있다. 이곳에 터전을 내린 지 자그마치 60년이 된다.
"일정 때 군인들이 여자를 공출하러 다녔지. 불안해서 살 수 있어야지. 그러나 결혼한 여자는 빼줬어. 빨리 시집갈 수밖에 없었지. 고종 사촌 오빠가 중매를 해서 바로 결혼을 했어. 그래도 불안해서 아예 산에 들어와 살았지. 그게 벌써 60년이 다 되어버렸지."
김용선 할머니의 말이다.
할머니는 강원도 인제가 고향이다. 16세 때 공출(일제 때의 정신대)을 피해 할아버지를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그게 1941년쯤 된다.
인제에서 고성으로 옮겼다. 당시 할머니에게 고성은 안전한 장소가 못됐다. < 정감록 > 비장처인 삼둔의 살둔지역인 문바위마을로 들어와 버렸다.
광복이 됐는지, 난리가 났는지 전부 딴 나라 얘기들이다.
"처음 들어왔을 땐 여러 가구 살았지. 지금은 다 떠나고 없지만. 당시엔 산에서 농사짓고 산나물 캐서 먹으며 그렇게 세월을 보냈지. 4남4녀 자식들은 전부 도시로 나갔어. 큰아들은 먼저 저 세상으로 갔고, 둘째 아들이 서울서 살다 몇 년 전에 돌아와 같이 살고 있지. 늘 산에서 살아 외로운 건 몰라."
부엌에 있는 부뚜막과 아궁이도 전형적인 옛날 우리 시골의 모습 그대로다. |
외로움을 잊고 산 지 수십 년, 주변에 즐비한 야생화와 각종 산나물을 친구삼아 세월을 즐기고 있다.
집 앞엔 금낭화가 활짝 피었다. 개불알꽃도 여기저기 피었다고 할머니는 신난 듯 가리켰다.
야생화만 핀 것이 아니다. 곰취와 오미자, 산머루도 있다고 자랑했다.
주변엔 야생화와 각종 산나물 자라
노부부는 60년 전 이 집에 세간을 들여놓을 때 그대로라고 했다.
널찍한 부엌에 부뚜막과 장작 때는 아궁이, 강원도 전통 가옥구조인 투방집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창호지에 낡은 툇마루 등 전형적인 촌집이고 옛집이다. 당시에도 낡은 집이었지만 그냥 조금씩 수리해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 집은 나이가 100년이 훨씬 넘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얘기하던 도중 빨간 색깔의 차를 내왔다. 살짝 맛을 보니 독특하다. 산머루를 따서 오미자와 섞고 물렁해진 돌배에 설탕을 넣은 것을 혼합해서 만든 차라고 했다. 여태 먹어본 차 중에 가장 특별하고 맛있다.
노부부의 얘기는 계속됐다.
"할머니는 나 같은 사람 만나 이렇게 건강하고 오래 살고 있는 거여." (할아버지)
"당시엔 장가가라, 시집가라고 하면 그냥 가는 시절이었지, 내가 선택할 수 없었지. 나이가 어려 조그만 게 무슨 느낌이나 있었겠어." (할머니)
노부부가 낳은 8남매는 이곳에서 4㎞ 남짓 떨어진 율전초등학교 분교에 다녔다. 등하교 거리가 하루에 최소한 9㎞였다.
지금도 대중교통이 들어가지 않는, 아니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걸어서 학교 가든지, 집에 있든지 선택 외 다른 수단은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몇 해 전 둘째 아들이 들어오면서 4륜구동 차를 가지고 왔다.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율전초등학교 분교 근처에 사는 김병열(57)씨 고향도 문남동이다.
초등학교 6년을 하루 9㎞ 이상 꼬박 걸어서 다녔다.
그가 율전 2리인 이곳으로 옮긴 것은 순전히 애들 학교 때문이었다. 그는 걸어 다녔지만 애들까지 9㎞ 이상씩 꼬박 걸어 다니는 모습을 측은해서 그냥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아예 옮겨 버렸다.
그러나 큰애가 5학년 때 분교가 폐교됐다. 다시 분교에서 3㎞ 떨어진 율전초등학교로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아예 학교 근처에 방을 하나 얻어 애들을 지내게 했다. 애들과 같이 지낸 시간이 별로 없을 정도다.
주시용·김용선 노부부는 나무와 숯을 구워 팔아 생계로 삼는 등 평생 산에서 의식주 모든 것을 해결했다. 다시 할아버지의 말이다.
주시용·김용선 노부부가 집 앞에 있는 오가피나무를 배경으로 다정하게 함께 섰다. |
"할머니가 넷째를 낳고 몸이 안 좋아 내가 산에서 만삼을 캐와 달여 먹었더니 거뜬히 나았지. 더덕(사삼)은 남자에게 보약이고, 만삼은 여자에게 보약이야. 물론 산삼은 모두에게 보약이지만."
산 사면을 밭으로 개간해 만삼 키워
할아버지는 산비탈을 가리키며 지금도 만삼을 키우고 있다고 가리켰다. 실제로 산 주변엔 약초와 산나물로 온통 뒤덮여 있다.
이 집이 문암산 산중턱, 즉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집 기준으로 동북쪽에 문암산(1150m), 동남쪽에 석화산(1146m)이 있다.
석화산의 봄은 진달래가 장관을 이루고, 가을 단풍은 설악에 버금갈 정도라고 한다.
문암산의 1,000m 안부엔 산채와 야생화 천국이라고 동행한 < 한국 700명산 > 저자 신명호씨가 설명했다.
장날이면 문바위골을 넘어 지금 면소재지가 있는 창촌으로 간다. 6㎞ 이상 되는 거리다.
세월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별 의미가 없다. 가면 가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세월 따라 흐르면 된다.
발길 닿는 대로 문바위골을 넘어 나무와 숯, 산나물을 팔고 필요한 물건을 구해 왔다.
문암동이란 유래도 장 보러가는 고갯길 중간에 꼭 문과 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 문바위마을이라고 부르게 됐다. 바위를 한자로 고쳐 문암동이란 행정지명을 갖게 된 것이다.
남한의 시군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으며 서울의 3배에 이르는 홍천-.
산지가 군 전체의 87%를 차지하는 곳이다. 북으로는 춘천시와 인제군, 서로는 경기도 가평군과 양평군, 남으로는 횡성군과 평창군, 동으로는 양양군과 강릉시가 접한다.
골짜기의 골짜기,
삼둔사가리의 대표 비장처 살둔지역 문바위마을의 제일 꼭대기에 있는 노부부 옛날 집에 현대식 흔적이 한 군데 눈에 띈다.
주소다. 우편함에 '홍천군 내면 문바위길 151-105'라고 되어 있다.
아직까지 강원도 전통의 투방집 구조와 외관을 그대로 간직한 한국의 대표적 오지의 집 주소다.
민박도 펜션도 없다. 혹시 오지를 찾는 게 취미이거나 등산하다가 갈 기회가 있으면 한 번 가보라.
얼마나 첩첩산중이고 오지인지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할머니는 산에서 나는 모든 것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다. |
집 주변엔 금낭화를 포함한 각종 야생화와 곰취와 오가피나무 등 산나물, 비닐하우스엔 야채 등이 자라고 있다. |
철쭉꽃이 이제~~
겨우 눈에 띤 흔적~~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고~~
흔들바위 보다 더 절묘하게~~
아직도 진달레가......
13:14 문암산 정상입니다
"부산 산부리" 부산에서 여기까지......
13:28 문암산*백성동*석화산 삼거리 갈림길로 좌로는 백성동 하산길~ 우로는 석화산 가는 길이다.
우측으로 지나온 귀틀집이 멀리 보입니다
당겨본 사진. 가운데 파란점은 장남되시는 분과 담소를 나누었던 곳~
좌측으로는 백성동이 보이고~~
내면에서 보면 전형적인 암봉이지만, 그 뒤편에서 보면 육산인 석화산~
14:19 ①백성동 * ②석화산 * ③문암동 * ④문암산 사거리로 주의해야 한다.
석화산에서 문암산으로 가는 방향의 사거리로 윗 사진의 방향표시를 잘 확인해야 알바를 면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바하는 곳으로 사진 좌측 아래의 쓰러진 고목을 깃점으로 삼는다※
이 일대는 전부 꽃으로 이루어진 꽃길이다
나무계단을 오르고~~
14:38 좌측으로 내면과 짝바위~ 우측으로 석화산과 문암재 가는 방향입니다
14:40 석화산(1146m) 정상 도착
지나온 문암산(화살표) 방향~~
오전에 걸었던 들머리 지점의 승지동 골짜기~~
내면과 멀리 계방산~소계방산. 3년 전 여름, 운두령에서 저곳을 거쳐 소한동으로 내려왔었는 데~
조망이 좋질 않아 "펌~ ~"
14:38 석화산에서 조망을 마치고 올라올 마주한 삼거리를 거쳐 우측의 내면방향으로 원점회귀합니다
계곡길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어 선답자 산행기에서 익숙해진 좌측의 바위 옆 길을 택합니다.
알루미늄 접이식 사다리를 내려서고~~
홍천군 내면으로 내려서는 능선이 앞에 있고~~~
높은 암봉 위에 멋지게 자리잡은 소나무 한그루
15:29 백성동*석화산*짝바위 갈림길 도착
15:34 짝바위 사이를 지나고~~
15:48 원래는 바우솔골로 내려가 내면성당 앞을 지날 계획이었는 데~
내면교회를 성당으로 착각하여 내려 갑니다. 덕분에 길 하나 더 알게되고 시내구경도 하게 됩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연녹색의 어린 새싹이 신그러움을 안겨주는 산행길입니다
창촌교회가 내면교회인가 봅니다. 산악회 대형버스가 이곳에서 회차하면 되겠습니다.
16:06 내면사무소 도착
"동기간식당" 정겨운 이름입니다
16:13 산행을 시작한지 7시간 만에 석화산 대원사에 다시 도착합니다.
3년 전에 우연히 알게 되었던 문암동과 석화산 그리고 문암산~
그 안의 귀틀집, 문암교회, 문바위..... 여러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네비게이션이 찾지 못하는 곳이니 오지인 것 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전기와 시멘트포장길이 마을민들에게 조금의 편리함을 줬을 뿐 아직도 대중교통이 전무합니다.
그런 생소한 곳을 남들이 선택하기 쉽지않은 코스로 한바퀴 돌고나니 가슴이 후련해지며 건강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가을 단풍 고울 때 다시 한 번 찾기로 다짐해 봅니다. 그 때는 만삼과 더덕을 거둘 시기라고 하니......
17:00 산행을 마치고 40분 거리의 인제군 상남면 미산리에 있는 프란체스카여숙에 도착합니다.
고향 친구가 운영하는 기담약초원이 상남에서 미산리로 이사하였다니 어떤 곳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얼굴 본지도 몇 개월되어 찾게 되었습니다.
『내린천은 강원도의 깊숙한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데 길이가 무려 70km에 이르는 긴 물줄기이다.
내린천의 참모습을 보려면 상남에서 미산분교를 지나 비포장 도로를 따라 한참 더 들어가야 한다.
상남에서 미산분교까지는 약7km, 미산분교에서 미산리 버스 종점까지는 약 2km이다. 바로 이곳이 내린천 상류의 초입으로, 전혀 오염되지 않은 깨끗하고 푸른 물줄기가 기암괴석과 한데 어우러져 멋진 선경을 연출한다.
내린천은 양양의 복룡산에서 발원하여 소계방산에서 나오는 계방천과 현리의 방태천이 합류하여 40여㎞를 흘러내려 소양강 상류 합강에 이르는 계곡을 말한다.
병풍 같은 기암괴석과 은빛백사장, 자갈밭 위로 물밑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맑은 물이 계곡을 따라 신비롭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황홀해진다.
내린천변의 돌을 뒤집으면 '고내'라는 벌레들이 나오는데 이 벌레를 미끼로 나무 가지 끝에 줄을 달고 낚시 바늘을 묶어 커다란 바위 이곳 저곳에 집어 넣으면 꺽지,메기,빠가사리등 고기들을 잡을 수 있다.
더구나 어두운 밤 렌턴불빛을 비추면 좋은 유인수단이 된다. 바위밑의 굴을 뒤진다고 해서 굴낚시라고 부른다.』
이런 좋은 곳에서 친구와 탁배기 나누며 지난 어린추억에 젖어들고~
그때 그 친구들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서로 되물으며 그리워한다.
꼬추 내놓고 뛰어 다닐 때부터 입영통지서 받을 때까지 함께 한 친구들.
이젠 50 중반이 되었으니~
저 흐르는 내린천의 유슈와 같단 생각이 든다.
오늘은 친구와 저 강물에 밤새 낚시대를 드리워 놓고 그리운 초년시절로 되돌아가 보련다.
다음 블로그 "등산 스케치"의 나들이님 산행기 중에서~
홍천행 버스 출발까지는 30여분 정도 여유가 있어 근처 다방에 들어가서는 대충 씻고 뒷정리를 마치니~
다방 마담 왈 " 다음에 오실때 커피만 팔아 주면 픽업이 가능하다 " 는데......
초원다방 033-432-6027, 010-3102-7032
14:30 서석 경유 홍천행 직행버스 승차 (\ 8.400)
15:45 홍천터미널 도착
16:10 북방 경유 춘천행 직행버스 승차 (\ 2.600)
내면 버스 시간표
홍천에서 내면가는 버스
내면에서 홍천가는 버스
춘천에서 홍천가는 버스
☆ 승용차 기준 ☆
춘천 → 천주교 춘천교구 내면성당 : 85km/70m
홍천군 내면 창촌리 1692-1
천주교 춘천교구 내면성당 → 프란체스카여숙 : 27km/30m
인제군 상남면 미산리 545-2
프란체스카여숙 → 춘천 : 89km/70m
'강원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원도의 동해안 해수욕장과 시원한 계곡 (0) | 2014.07.21 |
---|---|
봉화산 (0) | 2014.06.15 |
매호상회~송운봉~소군산(호덫봉)~문바위봉~칠봉유원지~칠봉~산현교 (0) | 2013.11.11 |
광치자연휴양림~대암산 솔봉~광치자연휴양림 (0) | 2013.10.28 |
금강사~임도~사명산~헬기장~임도~용수암~금강사 (0) | 2013.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