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동해안 여행

온리하프 2023. 1. 2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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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무엇일까?

 

자아를 찾기 위한 현실도피 일까?

아니면 망각하기 위한 쉼의 시간이 필요해서 일까?

 

일상탈출로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함일 수도 있고~~

엉클어진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것에 대한 의구심 해소와 문화 탐방도 목적일 수 있을 게다.

 

그러나 오늘은 보조 역활로 그냥 딸내미가 가자는 대로 따라만 가면 되는 여행길이다.

사랑, 희망, 기대가 넘치는 손주 녀석과 와이프까지 4명이...

 

설 연휴를 계기로 24~25일에 떠나려 했지만

영하 17~20도에 걸치는 강추위에 엄두가 나질 안아

기온이 좀 오른 25~26일 회사에 휴가원을 제출했다.

 

15년 넘은 노후 차로 고속도로를 달린다는 게 꺼림칙해 일반 국도를 택했다.

차를 바꾸긴 바꿔야 하는 데, 요즘 많이 망서려 진다.

인생 마지막 차니 좀 근사한 대형차를 뽑을까?

나이를 먹으니 차 끌고 다닐 시간이 그렇게 많치 안은 데, 현실적인 작은 차를 뽑을까?

선자를 따르려니 폼생폼사여, 후자를 따르려니 체면이...

 

어쨋거나 올해 바꾸긴 바꿔야 한다.

손주녀석들 보러 다닐 때나 태우고 다닐 경우 안전을 위해서...

 

여유롭게 60km/h 평균속도를 유지하며 64번 국도를 따라 미시령 터널을 벗어나 잠시 쉼을 갖는다.

 

 

 

 

 

상봉과 신선봉이 장관이다.

 

 

 

 

 

울산바위도 멋져 보이고~~

 

 

 

 

 

미시령 터널을 빠져나와 5분 거리에 국립산악박물관이 있다.

 

 

 

 

 

k2는 1986년 대한산악연맹의 장봉완, 김창선, 장병호 대원이 최초 등정에 성공했다고 한다.

파키스탄과 중국에 속해 있고. 세계에서 두 번째(8611m)로 높다.

사망율이 23.24%라고 한다.

수 많은 사람들이 등정에 실패하다가 1954년 이탈리아 콤파뇨니와 라세델리가 등정에 성공했다.

 

 

낭가파르바트는 1992년 광주 우암산악회의 김주현, 박희택, 송재득이 올랐다.

파키스탄에 소재하고 세계에서 9위(8611m)로 높다.

사망율이 22.30%라고 한다.

벌거벗은 산이라 뜻으로 킬러 마운틴이라는 별명있고 1953년 헤르만 볼이 등정했다.

고미영(42세) 여성 산악인이 2009년에 하산중 실족사했다.

 

 

브로드피크(k3)는 1995년 엄홍길 대장이 올랏다.

중국 파키스탄 국경에 있으며 세계에서 12위(8047m)로 높다.

1957년 오스트리아 등반대가 등정에 성공했다.

 

가셔브롬2봉은 1991년 성균관대의 한상국, 김창선, 김수홍, 유재석 대원이 등정했다.

중국 파키스탄 국경에 있으며 가셔브롬 산군 중에서 두 번째(8035m)로 높다.

오스트리아 프리츠 모라벡크가 1956년에 초등했다.

 

 

 

 

 

히말라야 선구자 박철암
지난 2016년 타계한 박철암 교수(1918~2016·경희대 명예교수).

평안북도 영원군에서 태어나 16살 때 동백산(2096m)을 올라 산과 인연을 맺었다.

 

1962년 한국의 히말라야 첫 정찰 등반~

한국인 최초 8000m 돌파~

1977년 고상돈 대원이 에베레스트 한국 초등을 이뤄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는 1949년 경희대학교산악회를 만들고 활발한 등산 활동을 펼쳤다.

1956년 일본의 마나슬루 세계 초등은 그를 히말라야에 관심을 갖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당시 8000m 산 가운데 미등으로 남아 있던 다울라기리(8167m)를 등반하기로 했다.

그러나 1960년 5월 13일 스위스가 초등하면서 다울라기리2봉(7751m)으로 대상 산을 변경했다.

 


1962년 첫 정찰 등반 다울라기리2봉
박철암은 1962년 8월 15일 한국 최초로 정찰 등반을 나섰다.

원정대는 일본에서 식량과 장비를 구입하고 태국~인도를 거쳐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9월 12일 베이스캠프(4600m)를 설치한 원정대는 10월 2일 정찰을 시작했다.

1캠프(5100m)를 건설하고 차례로 2캠프(5950m), 3캠프(6300m)를 만들며 만년설에서 첫 등반을 시작했다.

 

그러나 해외 등반 경험이 전혀 없었던 그들에게 거대한 크레바스와 빙벽들을 넘고 오를 기술과 장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발길을 돌렸다.

박철암 대장과 대원들은 다울라기리 산군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정보, 지도도 없었다.

그들이 가진 것은 일본에서 얻은 다울라기리 산군을 손으로 그린 개념도가 전부였다.

어떻게 보면 무모한 것이었지만 그들의 시작은 위대한 도전으로 돌아왔다.

박철암 대장은 한국 최초 탐사 보고서 ‘히말라야 다울라기리산군(山群)의 탐사기(探査記)’를 발간했다.

 

1970년 한국산악회는 추렌히말(7371m) 원정에 나섰다.

김정섭을 대장으로 김호섭, 전병구, 한이석, 김기섭 대원 등이 참여했다.

4월 16일 1캠프(4700m), 19일 2캠프(5230m), 22일 3캠프(5650m), 25일 4캠프(5980m), 26일 5캠프(6400m)를 설치했다. 4월 28일 오전 5시 30분 김호섭 대원과 셰르파 린지 왕겔이 5캠프를 출발했다.

이들은 오후 4시 30분쯤 추렌히말 동봉(7371m) 정상을 밟았고,

곧바로 이어 서봉(7541m)으로 전진했지만 7100m 지점에서 돌아섰다.

원정대는 처음으로 7000m를 넘어서는 성과를 올렸다.

 


최수남, 1971년 한국 최초 8000m 돌파
박철암은 1971년 로체샤르(8400m) 원정에서는 최수남 대원이 한국인 처음으로 8000m를 돌파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그는 로체샤르 등반 후 귀국하면서 네팔 관광성에 6년 후에 있을 1977년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 입산 신청서를 접수했다. 그의 노력은 1977년 고상돈 대원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한국이 세계에서 8번째로 세계의 지붕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혼의 산 마나슬루…첫 희생자·15명 사망 비극
1971년 김정섭 대장은 세계 8위봉 마나슬루(8163m)에 도전장을 던졌다.

김정섭 대장은 친동생 김기섭 대원과 7600m에 5캠프를 설치했다.

오후 5시쯤 한차례 강력한 돌풍이 텐트를 덮쳤다.

김기섭 대원은 밖에 텐트를 잡으려고 일어서는 순간 돌풍 중심부에 휘말렸다.

크레바스에 빠져 숨지고 말았다. 한국 최초의 원정대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1972년 2차 원정대는 故 김기섭 대원 형인 김정섭(총대장), 김호섭(등반대장)과 동생 김예섭도 대원으로 선발돼 4형제가 모두 참여했다.
1972년 4월 9일 원정대는 3캠프(6500m)에 머물며 다음 날 4캠프로 올라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부터 많은 눈이 내렸고 4월 11일 새벽 3시쯤 대형 눈사태를 일으켰다.

눈사태는 3캠프를 휩쓸고 지나갔다.

대원과 셰르파 18명 중 생존자는 김예섭과 셰르파 2명 등 3명이 전부였고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고상돈, 1977년 세계의 지붕에 오르다
1977년 대한산악연맹은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파견했다.

김영도 총대장(53)을 비롯해 이윤선(36), 장문삼(35), 김명수(33), 박상렬(33), 곽수웅(33), 김영한(30), 고상돈(29), 한정수(29), 이상윤(29), 김병준(28), 이기용(28), 이원영(27), 도창호(26), 전명찬(25) 대원 15명이 선발됐다.

7월 19일 네팔 카트만두를 출발한 원정대는 8월 9일 해발 5400m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했다.

8월 16일 1캠프(6100m), 19일 2캠프(6450m), 26일 3캠프(7400m)를 차례로 건설했다.

 

김영도 총대장은 1차 정상 공격조로 박상열과 셰르파 사다 앙 푸르바를 선택했다.

공격조는 9월 7일 4캠프(8000m), 8일 5캠프(8510m)에 진출한 후 9월 9일 정상 공격을 감행해 8750m까지 진출했다.

정상을 약 100m 남겨두고 산소가 떨어졌고 셰르파 상태가 나빠지면서 등정을 포기했다.

그들은 ‘죽음의 지대’인 8700m에서 비박을 감행하며 베이스캠프까지 무사히 귀환했다.

 

2차 등정조에 속했던 고상돈 대원이 9월 14일 4캠프로 진출하고 5캠프에 머물렀다.

고상돈과 셰르파 펨바 노르부는 9월 15일 새벽 4시 5캠프를 떠나 낮 12시 50분 정상에 우뚝 섰다.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로 에베레스트 등정 국가가, 고상돈은 58번째 등정자로 기록됐다.

 


8000m 14좌 등정이 시작되다
1980년대 들어 히말라야 원정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늦게 시작했지만 에베레스트 등정을 계기로 8000m 자이언트급 거봉을 하나씩 등정하기 시작했다.

1980년 4월 28일 동국대산악회(대장 이인정) 서동환 대원이 마나슬루를 등정하면서 한국 산악인들의 숙원을 풀었다.

1982년 한국산악회는 마칼루원정대(대장 함탁영)를 파견했고 5월 10일 허영호는 마칼루(8463m) 정상에 섰다.

허영호 대장은 최악의 기상 조건으로 사진 촬영을 못했다.

그는 대신 예지 쿠쿠츠카가 1981년 단독으로 올라 정상에 두고 온 아들 장난감을 갖고 내려와 등정 의혹을 모두 해소했다.

1986년 대한산악연맹은 아시안게임을 기념하기 위해 K2(8611m) 원정대를 파견해 장봉완, 김창선, 장병호가 등정하는 쾌거를 이뤘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K2 등반을 위해 원정대는 4년이 넘는 훈련으로 팀워크를 다지며 8월 3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정상에 섰다. 1986년 K2에서는 세계 각국 원정대와 포터 등 18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22년 만에 한국 14좌 모두 올라
1992년 6월 경남산악연맹은 낭가파르바트(8125m)에 원정대(원정대장 조형규)를 파견해 박희택·송재득 대원이 정상에 섰으며 함께 참여한 광주우암산악회 김주현 대원도 등정에 성공했다.

1992년 9월 경남연맹 울산지부·서울합동대(원정대장 김관준)가 초오유(8201m) 원정에 나서 남선우·김영태가 등정했으며, 1995년 7월 한국스페인합동대 엄홍길과 광주전남연맹 원정대(원정대장 위계룡) 박신영·이정현·박현재가 브로드피크(8047m)를 각각 올랐다.
1999년 5월 동국대산악회(원정대장 박영석) 박영석이 캉첸중가(8586m) 등정에 성공하면서 한국은 22년 만에 8000m 14개 봉우리를 모두 올랐다.

 

2000년 들어 한국 산악계 엄홍길·박영석은 8000m 14좌 완등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박영석은 2001년 등정 의혹이 있었던 로체를 오르면서 한국 최초 완등자로 기록됐다.

2002년 한국도로공사 산악팀은 시샤팡마 남서벽에 신루트를 개척해 한국 최초로 8000m급 거벽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성과를 올렸다.

 


유명 산악인들 산에서 잠들다
그러나 한국은 많은 산악인들을 잃었다.

대표적인 여성 산악인 지현옥이 1999년 안나푸르나 등정 후 하산하다 실종됐다.

2007년 낭가파르바트 루팔벽을 35년 만에 재등한 이현조 대원과 제주 출신 유명 산악인 오희준 대원이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 중 눈사태로 사망했다.

2008년 K2 등정 후 하산하다 8300m 지점에서 눈사태로 황동진·김효경·박경효가 숨졌다.

2009년 낭가파르바트 등정 후 하산하다 고미영이 추락사했다.

당시 그녀는 8000m 11개 산을 올라 14좌 완등을 눈앞에 뒀지만 도전은 멈추고 말았다.

2010년 마나슬루 정상을 앞두고 하산하던 윤치원·박행수 대원은 악천후를 만나 2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1년에는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박영석·강기석·신동민이 실종되면서 산악계와 국민들을 충격에 빠졌으며 난이도 높은 등반을 추구하던 김형일·장지명은 촐라체 북벽을 등반하다 추락사했다.

2013년 김창호는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올라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8000m 14개산을 무산소로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4캠프에서 12개 봉우리를 함께 오른 서성호 대원을 잃는 비운을 맛봤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 김창호가 2018년 구르자히말(7193m) 등반 도중 사망했다. 강한 바람에 의한 사고로 한국인 5명과 네팔인 4명 등 9명이 숨져 1972년 15명의 목숨을 잃은 마나슬루 대참사가 재연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은 증거 부족으로 완등자 없어”

독일의 산악기록가 에버하르트 주르갈스키를 중심으로 한 국제 연구진이 그동안 히말라야 8,000m 14좌를 모두 완등한 사람은 단 3명뿐이라고 발표해 논란이 예상된다. 현재까지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것으로 알려진 산악인은 총 52명이다.

주르갈스키는 자신이 운영하는 고산등반 기록 웹사이트 8,000ers.com을 통해 10여 년간 축적한 자료를 바탕으로 역대 등정 진위여부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가장 큰 쟁점은 안나푸르나1, 다울라기리1, 마나슬루다.

 

안나푸르나1은 정상이 능선으로 형성돼 있고 돌출부는 여러 곳이다. 이 중 정점은 오차 범위 1m 이내 두 곳이고, 이외 총 7곳의 돌출부가 있는데 많은 등반가가 정점 두 곳이 아닌 다른 곳까지만 오르고 내려왔다고 한다. 

다울라기리1 역시 정상 앞뒤로 각각 60m와 140m 떨어진 곳의 돌출부까지만 오르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마나슬루는 정상 35~50m 못미처 솟은 바위에 길이 가로막히고 능선 방향이 바뀌는데 여기서 날카로운 칼날능선으로 등반이 갑자기 무척 어려워진다. 그동안 2,300여 건의 등정 주장이 이곳을 돌파하지 않고 끝마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비에스터스, 구스타프손, 푸르자만 완등

과거에 진짜 정점을 오르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단순한 착오, 즉 올라선 곳이 가장 높은 곳인 줄 알았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는 정확한 정점에 대한 자료가 충분히 축적됐다. 더 높은 곳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허용되는 오차 범위 안에 있다고 여겼던 경우도 많다. 

물론 등정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거짓을 말했을 가능성도 있다. 가령 세계 최단 기간 14좌 완등자인 니르말 푸르자는 마나슬루와 다울라기리에서 진짜 정상에 오르지 않고서도 완등이라고 주장했고, 이듬해 이 산들을 다시 찾아 진짜 정점을 오르기도 했다.

주르갈스키에 따르면 14좌 각각의 진짜 정상을 모두 오른 사람은 3명뿐이라고 한다. 에드먼드 비에스터스(미국, 2005년), 베이카 구스타프손(핀란드, 2009년, 무산소), 니르말 푸르자(네팔, 2021년, 최단기간, 2년 5개월 15일)다.

‘살아 있는 전설’ 라인홀트 메스너를 포함, 예지 쿠쿠츠카(폴란드) 등 유명 산악인들 모두 1~2개 정도 산의 실제 정상을 못 올랐다고 한다. 메스너는 안나푸르나에서 실제 정점보다 5m 아래 있는 다른 봉우리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주르갈스키는 “8,000m 등반의 역사는 완전히 다시 써야 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고의든 과실이든 맞는 게 맞는 것이고 틀린 건 틀린 것이다”라며 “이 연구는 현재 진행 중이므로,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면 각국 산악계에서 정보를 제공해 달라”고 밝혔다.

또 그는 “아직 생존해 있고 등반을 계속할 여력이 된다면 다시 시도해 진짜 정점을 오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현재 14좌 완등자 52명 중 사망자는 6명이다.

또한 주르갈스키는 “대부분이 명성에 금이 갈까봐 이런 지적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를 접한 산악 기록 단체 <히말라야데이터베이스>는 주르갈스키 연구진의 이같은 노력을 치하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기록을 바꾸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편 많은 산악인들이 이번 발표에 반응하고 있다.

일단 주르갈스키의 “정상은 논의할 여지  없는, 지리적으로 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정의에는 다들 공감을 표했다.

이탈리아 여성 등반가 니베스 메로이는 자신이 마나슬루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는 지적을 인정하면서도 “서커스처럼 변해 버린 그곳에 다시 갈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또한 히말라야는 이제 너무 비싸다”고 했다.

<익스플로러스웹>의 편집인 안젤라 베나비데스는 “메스너, 쿠쿠츠카 시대와 요즘의 정상수집형 등반가와 일방적인 비교는 안된다면서 시대별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마나슬루 정상 등정 한국인 0명

한국인 중 14좌를 완등했다고 알려진 이는 8명이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 따르면 이 중 실제 완등자는 한 명도 없다.

엄홍길(2000년 완등 주장)은 마칼루, 마나슬루 정상에 오르지 못했고,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에서는 사진 등 정상 등정의 증거가 부족해 10개 봉 등정이라고 한다.

박영석(2001년 완등 주장, 2011년 사망)은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미등정, 안나푸르나 증거 부족으로 11개 등정으로 표기됐다.

한왕용(2003년 완등 주장)은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미등정으로 11개 등정,

오은선(2010년 완등 주장)은 칸첸중가,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미등정으로 11개 등정,

김재수(2011년 완등 주장)는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미등정에 다울라기리 증거 부족으로 11개 등정,

김창호(2013년 완등 주장, 2018년 사망)는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미등정으로 11개 등정,

김미곤(2018년 완등 주장)은 마칼루, 마나슬루 미등정, 다울라기리 증거 부족으로 11개 등정,

김홍빈(2021년 완등 주장, 2021년 사망)은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미등정, 다울라기리 증거 부족으로 11개 등정 등이다. 

이외 그동안 12개 혹은 13개를 올랐다고 발표한 인물들의 등정 기록도 언급됐다. 한국에선 서성호(12개 봉 등정 주장, 2013년 사망)가 있으나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미등정으로 총 9개만 오른 것으로 인정됐다.

주르갈스키 연구진은 국가별 14좌 등정 여부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마나슬루 등정자가 한 명도 없어 13좌 완등국으로 표기됐다. 14좌를 모두 완등한 국가는 11개로 집계됐다.

이번 발표에 대해 국내 산악계는 조직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김창호, 서성호와 함께 히말라야 14좌 원정대를 이끌었던 홍보성 부산연맹 14좌 원정대 대장은 “안나푸르나는 사전에 GPS로 정점을 비교한 뒤 가장 높다고 여긴 곳을 찾아 올랐고, 마나슬루는 실제 정점에 올랐던 일본 원정대 보고서를 참고해 정점까지 어렵게 올랐으나 위태롭고 강풍이 불어 안전한 곳까지 내려와서 정상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며 “다울라기리는 해당 논란을 사전에 인지했으며 실제 정점을 오른 정상 사진이 있다.

곧 정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히말라야 산맥과 카라코람 산맥의 14봐

 

위치 최초등정 등정자 등정/사망
사망율
에베레스트
8848m
중국
네팔
1953.05.29 뉴질랜드
에드먼드 힐러리
네팔
텐징 노르가이
5656/223

3.8%
K2
8613m
중국
파키스탄
1954.07.31 이탈리아
아킬레 콤파뇨니
니로 라체델리
306/81

22.8%
칸첸중가
8586m
네팔
인도
1955.05.25 영국
조지 밴드
조 브라운
283/40

12.7%
로체
8518m
네팔
중국
1956.05.18 스위스
푸리츠 루흐징거
에른스트 라이스
461/13

2.8%
마칼루
8465m
네팔
중국
1955.05.15 프랑스
장 쿠지
리오넬 테레
361/31

8.2%
초오유
8203m
네팔
중국
1954.10.19 오스트리아
제프 외힐러
헤레베르트 티히
네팔
파상 다와 라마
3138/44

1.4%
다울라기리1봉
8169m
네팔 1960.05.13 오스트리아
쿠르트 딤베르거
알빈 셀비르트
독일 : 페테 디너
스위스 : 에른스트 포러
네팔
나왕 도르제
니마 도르제
448/69

13.6%
마나슬루
8165m
네팔 1956.05.09 일본
이마니시 도시오
네팔
갈첸 노르부
661/65

9.0%
닝가파르바트
8128m
파키스탄 1953.07.03 오스트리아
헤르만 불
335/68

17.2%
안나푸르나1봉
8092m
네팔 1950.06.08 프랑스
루이 나슈날
모리스 에르조그
191/61

25.1%
가셔브롬1봉
8070m
중국
파키스탄
1958.07.05 미국
피터 쇠닝
앤드류 카프먼
334/29

8.1%
브로드피크
8048m
중국
파키스탄
1957.06.09 오스트리아
헤르만 불
마쿠스 슈무크
쿠르트 짐베르거
프리츠 윈터스텔러
404/21

5.0%
가셔브롬2봉
8036m
중국
파키스탄
1956.07.08 오스트리아
요제프 라르히
프리츠 모라페크
한스 빌렌파르트
930/21

2.2%
시샤팡마
8027m
중국 1964.05.02 중국
왕푸저우, 천산, 쉬징
청텐량, 우쭝웨, 장진옌
쒀난둬지, 윈덩
니마짜사, 둬지
302/25

7.7%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

 

1. 에베레스트(8848m)

 

 

 

 

2. K2(8613m)

 

 

 

 

3. 칸첸중가(8586m)

 

 

 

 

4. 로체(8518m)

 

 

 

 

5. 마칼루(8465m)

 

 

 

 

6. 초오유(8203m)

 

 

 

 

7. 다울라기리1봉(8169m)

 

 

 

 

8. 마나슬루(8165m)

 

 

 

 

9. 닝가파르바트(8128m)

 

 

 

 

10. 안나푸르나1봉(8092m)

 

 

 

 

11. 가셔브롬1봉(8070m)

 

 

 

 

12. 브로드피크(8048m)

 

 

 

 

13. 가셔브롬2봉(8036m)

 

 

 

 

14. 시샤팡마(8027m)

 

 

 

 

박영석 대장이 누워 있는곳(추모탑).

 

 

 

 

 

고산을 오를 때 필요한 장비 피켈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에서는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분류하였다.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갈라진 산줄기는 모든 강의 유역을 경계 지었다.

 

동해안, 서해안으로 흘러 드는 강을 양분하는 큰 산줄기를 대간, 정간이라 하고,

그로부터 갈라져 각각의 강을 경계 짓는 분수산맥을 정맥이라 하였다.

이는 "산자분수령"이라는 원리를 따른 것이다.

 

 

 

 

 

山自分水嶺

산이 곧 분수령이다.

따라서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

 

 

 

 

 

산을 알지 못하는 딸아이도 히말라야에 오르고~~

 

 

 

 

 

마음만으로 상상되는 클라이밍~~

 

 

 

 

 

안전한 곳에서 재미삼아 실현해 본다.

 

옆에 꼬마녀석 때문에 사진이 우습게 되버리긴 했지만~~

 

 

 

 

 

속초중앙시장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장 내에 있는 "잔치집식당"에서 생선구이 모듬 3인분으로 식사를 했다.

고등어, 이면수어, 뽈락 구이가 나왔고,

된장찌게가 입맛을 돋구었다.

 

 

 

 

 

속초중앙시장

 

 

 

 

 

중앙시장에서 호떡도 사먹고~~

 

 

 

 

 

귀엽고 예쁜 녀석~~

 

 

 

 

 

옥수수 술빵도 삿다.

쫀득하니 맛났다.

 

길게 늘어선 줄이 금새 채워지곤 했다.

 

 

 

 

 

지하층으로 내려가서 저녁에 먹을 회를 준비하고~~

 

 

 

 

 

살아있는 생선 구경에 신났다.

 

 

 

 

 

손짖을 하며 이것저것 다 물어 본다.

발길을 옮기면 또 물어보고~

그게 다 그건데 아가는 계속 물어 본다.

 

신기해하는 아가에게 귀찬음도 없이 계속 이름을 다 아르켜 줬다.

 

 

 

 

 

오션투유리조트 속초설악비치 호텔앤콘도

 

 

 

 

 

6층에 자리를 잡고~~

 

 

 

 

 

바닷가 쪽이라 경치가 그만이다.

 

 

 

 

 

테라스에서~~

 

 

 

 

 

테라스에서~~

 

 

 

 

 

공짜 과일이 기분 좋게 만든다

 

 

 

 

 

욕실~~

 

 

 

 

 

욕실~~

 

 

 

 

 

침실~~

 

 

 

 

 

침실~~

 

 

 

 

 

할미가 사준 브록에 좋아 하는 아가~~

 

 

 

 

 

바같 경치가 그만이다.

 

 

 

 

 

더 어둡기 전에 삼포해수욕장으로 내려가야 겠다.

 

 

 

 

 

아가가 놀기를 끝내고~~

 

 

 

 

 

바닷가로 내려 왔다.

 

 

 

 

 

신기해 하는 아가~~

 

 

 

 

 

딸과 손주~~

 

 

 

 

 

역시 동해안 바닷가가 최고다

 

 

 

 

 

파도~~

 

 

 

 

 

오늘 주인공은 아가~~

 

 

 

 

 

아가가 최고다~~^*^

 

 

 

 

 

엄마와 아들~~

 

 

 

 

 

설악산으로 해가 지니 금새 찬바람이 몰려 온다.

 

 

 

 

 

로비

 

 

 

 

 

저녁식사는 회와 매운탕~~

 

 

 

 

 

바다 야경

 

 

 

 

 

바다 야경

 

 

 

 

 

아침 일출~~

 

 

 

 

 

공짜로 제공되는 아침식사하러~~

 

 

 

 

 

식당이 아주 깨끗하다

 

 

 

 

 

아침 음식 메뉴도 괜찮고~~

 

 

 

 

 

 

 

 

 

 

 

 

 

 

 

 

 

내가 좋아하는 요구르트도 있고~~

 

 

 

 

 

커피 맛도 일품이다.

 

 

 

 

 

 

 

 

 

 

 

과일도 여러 종류고~~

 

 

 

 

 

 

 

 

 

 

 

넷이서 제일 늦게 까지~~

 

 

 

 

 

리뷰하니 아이스크림도 공짜~~

 

 

 

 

 

숙소를 떠니기 전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울산바위, 대청봉, 북설악의 신선봉과 상봉 그리고 앞에 운봉산이 보인다.

 

 

 

 

 

거대한 울산바위~~

 

 

 

 

 

설악워터피아에 도착하고~~

 

 

 

 

 

워터피아에서 3시간을 아가와 놀다가

먼저 나와 차에서 휴식을 취한다.

 

 

 

 

 

설악산 대청봉과 달마봉~~

 

 

 

 

 

달마봉

 

 

 

 

 

달마봉과 마등봉 방향~~

세존봉도 뾰족히 보이고...

 

 

 

 

 

미시령과 상봉 그리고 신선봉

 

 

 

 

 

울산바위~~

그 뒤로 황철봉도 살포시 보이고...

 

 

 

 

 

달마봉과 마등봉 그리고 울산바위

 

 

 

 

 

울산바위와 미시령 그리고 상봉과 신선봉

 

 

 

 

 

울산바위와 미시령~~

 

 

 

 

 

한화리조트 설악워터피아.

 

30여 분 기다리니 와이프와 딸과 손주녀석이 나왔다.

1박2일 색다른 경험을 했다.

 

이곳에 오면 무조건 설악산 산행 후 휴식시간을 갖기위해서 였는 데~~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오니 행복이요,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