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두원 태실~용산리 태실
타지의 산을 찾을 때, 특히 남쪽지방~~
들머리에 밭일이나 농사일하는 사람이 있으면 으레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예에~~ 그런데 어디서 왔소?
강원도 춘천에서요~
아따 그 좋은 데서 뭣하러 여기까지 왔소?
대한민국 땅이 좁긴해도 남쪽지방과 강원도 왕래가 그렇게 쉽지는 않다.
나 또한 남쪽지방에 못 가본 곳이 부지기수고~
기껏해야 등산 목적으로 1년에 두세 번 정도니...
당황스러움에 아 네네~~ 좋죠 하면서 지나친다.
이쪽 지방 사람들 인사가 이런식인가? 의아해하면서 반면 이해하려 한다.
보통은 "어서오세요?" 하지 "왜 왔냐?"라는 식의 인사를 안 해봐서...
한창 때는 1년에 서너 번 정도 서울 안내산악회를 따라다닌 적이 있다.
춘천에서 온 것을 알고 춘천의 산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데~
이름 들어본 적이 없는 산이라, 맞장구 칠 수 없어 상당히 곤혹스러운 적이 있었다.
서울까지 온 놈이 모른다고 할 수 없어 네네~~라며 얼버무리고 말은 적이 몇 번 있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랬다.
고향 산도 모르면서 타지 산만 다니는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네이버*다음 지도에 지명이 올라와 있는 산 중에서 "춘천 무명산 찾아보기"를 하고 있다.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 자전거를 타고 의암댐~춘천댐을 한 바퀴 돈다.
서면 현암리 태봉에 올라 우연히 태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덕두원과 용산리에 한 곳 씩 더 있다는 얘기를 듣고 오늘 나머지 두 개를 찾아 나선다.
트랭글
태실은 전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문화재 중 하나로,
태실 주변에 태봉, 태봉리, 태봉골 등의 지명 흔적을 남긴다.
그러면 부근에 태실이 있다는 얘기다.
이런 태실이 춘천에도 있는 데~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용산리 태실, 현암리 태봉 귀부, 덕두원 태실이 있다.
비지정 문화재로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찾기 쉽지 않고,
태실의 존재에 대해 아는 이가 많지 안다.
그럼에도 해당 태실들은 나름의 상징성과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으니~
그 세 곳의 태실이 담고 있는 시대상을 더듬어 보려 한다.
덕두원 태실
(서면 덕두원리 산 72-35.
봉덕사에서 만든 넓은 주차장 끝에서 오르면 된다)
용산리 태실
(신북읍 용산리 산 1에 소재하지만 너무 방대해 찾기 힘들고
신북읍 영서로 3676을 찾아 좌측의 봉우리를 오르면 된다)
서면 현암리 태실 귀부
(서면 현암리 산 52-1. 북한강자전거길의 "더베이630" 앞에서
길 건너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된다.)
오룩스 맵스 트랙
09:35 퇴계사거리 출발
10:00 공지천
10:32 스카이워크
10:58 봉덕사 주차장
11"09 덕두원 태실
11:43 봉덕사 주차장
12:35~13:17 점심
14:05 춘천댐
14:46 영서로 3676
14:50 용산리 태실
15:02 영서로 3676
16:40 퇴계사거리 도착
09:35 집에서 나와 태실을 찾으러 출발한다.
먼저 주에 등산을 목적으로 올랐던 서면 현암리의 태봉에서
기대도 안 했던 태실의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태실에 대하여 공부하던 중 춘천에 두 곳 더 현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덕두원과 용산리 태실을 찾아보고
시간적 여유가 될 것 같으면
두 곳 중간에 있는 현암리 태실 귀부도 다시 한번 더 들려보기로 한다.
순복음제일교와 월드비전춘천종합사회복지관 그리고 춘천경찰서
팔각정다리와 공지천교.
저 다리 위에 팔각정 2층 건물이 있었는 데...
이름하야 "호수의 집"이지만, 팔각정이라 불렀고 그렇게 기억한다.
팔각정 아래층에서 차를 마시며 바라보던 오리배도~
이층에서 저녁을 먹으며 내다보던 공지천 야경도~
이제는 먼 기억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층에서 내려다보던 공지천 야경은 정말 일품이었는데...
스물 중반, 와이프를 처음 만났던 소중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에티오피아집과 함께 춘천의 랜드마크였는데
지금은 추억의 장소로 묻혀 버렸다.
10:00 공지천 오리배 타는 곳.
그 시절 긴 머리소녀를 만났었나?
지금은 손주 녀석이나 와야 한 번 타보는 호사를 누린다.
앞에서 신나게 발길질하면 녀석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사방을 두리번 거린다.
요즘 노로바이러스가 한창 유행이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우리 아가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데~
마음은 아프지만 커가는 과정이겠거늘, 어찌할 도리가 없다.
주말이면 늘 만원인데~
오늘 날씨가 쌀쌀해서 인지?
아니면 이른 시간이라서 인지? 한가하다.
춘천의 상징은 호수 아니겠는가?
푸른 물결이 신선함을 준다.
일주인 전에 들렸던 서면 현암리 태봉.
태실이 있는 지형은 산에서 봉긋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태실이 묻혀 있는 봉우리하고 해서 태봉이라고 일컫는다.
"지난주에 갔다 온 서면 현암리 태실 귀부 산행기"
https://kim9301.tistory.com/1603
10:18 삼악산케이블카.
용화봉까지 오를 수 있게 100여 m 정도의 계단만 설치하면
보다 더 많은 관광객과 등산인들이 찾으련만~~
이곳에 와서 칠오닭갈비를 먹어 봐야겠다.
아무래도 시내보다 분위기가 좀 다르겠지?
10:32 스카이워크
저 골짜기 안쪽이 덕두원이다.
덕두원처럼 ‘원(院)’이 붙은 지명은 대부분 예전에 길손이 머물고 가던 숙소,
즉 역원(驛院)이 있던 곳이었다.
관동대로의 관문인 대관령 초입에 제민원(濟民院)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같은 이치다.
서울의 이태원도 마찬가지다.
배나무가 많아서 생긴 이름, ‘이태원(梨泰院)’은 옛 역원(驛院)에서 출발했다.
지금의 여관이 역원에서 나온 말이다.
이태원이 있는 용산은 과거 마포와 함께 농물산이 집결하는 요충지였다.
곡창지대인 경상, 전라, 충청의 농물산이 서해를 거쳐 한강을 거슬러 모여들고,
강원도 농산물도 소양강, 북한강, 동강, 남한강을 따라 마포, 용산의 한강나루에 부려졌다.
수운의 중심이면서 한양의 관문에 자리 잡은 입지 여건 때문에
용산은 개화기에 청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각국 세력의 각축장이 됐다.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곳에 군사 및 철도기지를 세워 식민 통치와 대륙 침략의 기반으로 삼았고, 해방 후에는 주한 미군의 군사 거점이 자리 잡았다. 이태원이 외국인을 위한 호텔, 음식점, 술집, 클럽, 상가 등이 밀집해 있는 다국적 문화의 중심으로 발전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태원에서 ‘핼러윈 데이(10월 31일)’를 앞두고
154명이 숨지고 149명이 부상을 당하는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
“한국에서 가장 국제화되고, 자유로운 곳에서 평화기에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했다”라고
외신들은 헤드라인 속보를 전했다.
희생자들 가운데는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청춘들이 절대다수였다.
코로나 이후 거리두기 해제와 함께 3년 만에 만나는 ‘노 마스크’ 야외 축제를 맞아
예상외의 인파가 몰릴 것이라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데도 참극을 피하지 못했다.
세월호 때도 빨리 구조를 했으면 더 많은 희생이 뒤따르지 않았을 것인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사고가 날 것 같다고 112, 119에 여러 번 전화를 했지만
사고 난 후에 위험한 상황이었음을 인지했으니...
세월호와 이태원에서 아까운 목숨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경각심 부족 때문이다.
올라가 올라가 안 죽어~~
겁 되게 많네~~
그냥 먹어도 안 죽어~~
튼튼해 괜찮아~~
옛날에는 다 그렇게 했어~~
인구수 감소를 맨날 외치면 뭐 하나?
있는 것도 지키지 못하면서...
김유정문인비 앞의 봄 풍경이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삼악산도 오늘은 날씨가 좋아 세세히 감상할 수 있고~~
북한강자전거길에서 벗어나 덕두원으로 들어 섯다.
마을 버스정류장 뒤의 봉덕교를 건너 오른다.
10:58 이곳은 봉덕사 주차장을 조성해 놓는 중이다.
오른쪽으로 지나온 마을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두릅 농사를 짓고 있는 주민을 만나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고~~
소나무재선충 방제작업을 해 놓은 부산물이 보이면
좌측 능선의 희미한 등로를 찾아 올라가야 한다.
11:09 하~~
드디어 찾았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는 날은 세배돈 받는 명절, 다음으로 기쁜 날이다.
김밥도 먹고, 삶은 계란도, 콜라 한 병에...
식사 후 보물 찾기를 할 때면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난리다.
그렇게 보물 몇 개를 찾은 것 마냥 기쁘다.
「태실비의 앞면은 마멸이 심해 육안 판독이 불가하고, 명문 역시 확인이 되지 않았다.
뒷면도 마멸이 진행되기는 했지만 연호 부분을 제외한 글자는 지금도 육안 판독이 가능하다.
안내문과 논문, 선행자료 등을 찾아보면 뒷면에 새겨진 명문을 알 수 있는데,
황명만? 십칠 년 오월초파일사시입(皇明萬?十七年五月初八日巳時立)'이 새겨져 있다.
판독이 안 되는 글자는 앞의 필획을 통해 만력(萬曆)으로 추정되는데,
만력은 명나라의 신종(=만력제)의 연호다.
따라서 만력 17년을 환산해 보면 1589년(=선조 22년)이 되기에,
해당 태실은 1589년 이전에 태어난 선조의 자녀 가운데 하나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해당 태실비의 경우 태지석이나,
앞면에 있었을 출생일이 확인이 되고 있지 않기에 정확하게 누구의 태실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해당 시기의 태어난 자녀들을 추정해 보면 어느 정도 윤곽은 확인해 볼 수 있다.
우선 선조의 자녀 중 적자인 영창대군과 정명공주의 경우 1589년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해당 태실은 선조의 자녀 중 서자 혹은 서녀의 태실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기준에 부합되는 옹주는 1587년에 태어난 정숙옹주가 유일하나,
정숙옹주 태실의 경우 화성 산척리 태실비일 가능성이 높기에,
해당 태실은 옹주보다는 왕자의 태실로 볼 여지가 있는 편이다.」
「때문에 해당 태실의 경우 1589년 세워진 것을 기준으로,
하한선인 4년을 기준으로 태어난 왕자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하한선을 4년으로 보는 이유는 상주에 연산군 원자 금돌이 태실의 경우
출생일과 태실비를 세운 시기가 4년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1. 경창군(1586년, 정빈 홍씨)
2. 인성군(1588년, 정빈 민씨)
3. 의창군(1589년, 인빈 김씨)
4. 흥안군(?, 온빈 한씨)
이 가운데 인성군 태실의 경우 청주 산덕리 태실(충청북도 시도기념물 제86호)인 것이 확실하기에 제외된다.
경창군의 경우 하한선인 4년에 포함이 되기에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흥안군의 경우 태어난 해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동생인 경평군의 출생이 1600년인 것을 고려하면 그보다 앞선 시기에 태어난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만 1586~1589년 사이에 태어난 것인지 확인이 어렵고,
훗날 이괄의 난(1624)에 동조하며 대립왕이 되었던 전례를 볼 때 태실이 훼손되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본다면 춘천 덕두원 태실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의창군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의창군은 선조와 인빈 김씨 소생의 왕자로 1589년 1월에 태어난 것으로 확인되는데,
태실 조성이 같은 해 5월 초파일인 것을 고려하면 통상적인 입비 시기와도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의창군 태실이라고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하지만,
1589년 앞전의 자녀들 중 해당 조건에 부합이 된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춘천에 소재한 태실들은 저마다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서 바라볼 지점이다」
출처 : 오피니언타임스(http://www.opiniontimes.co.kr) 역사문화연구소장 김희태. 펌~~
11:43 주민의 말에 의하면 여기 땅도 거의 다 외지인 소유로 넘어갔다고 한다.
춘천시에서는 더 늦기 전에 비지정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갖길 바란다.
봉덕사(奉德寺)
춘천 살면서 봉덕사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찾게 된 것은 처음이다.
봉덕사를 인터넷에 쳐보면 우후죽순처럼 전국지도에 사찰이 뜬다.
주로 봉황 鳳덕사지만, 춘천은 받들 奉덕사이다.
귀여운 동자 스님의 모습은~~
온화한 혜욱(慧煜) 주지스님의 어릴 적 모습이 아닐는지...
대원펜션도 아직까지 있고~~
"동구밖 덕두원 길" 찜질카페도...
스카이워크 방향.
좌측은 최근에 두 번이나 찾게 된 까투리봉이고
우측은 드름산 찾을 때면 당연히 들리게 되는 의암봉~~
의암봉과 의암댐이~~
춘천송암스포츠타운과 까투리봉~~
호반의 도시 춘천~
언제 봐도 아늑해 보인다.
12:35 막국수 한 그릇 먹고 싶어 주변 식당을 검색해 보았으나
전문점은 없고 거의가 닭갈비집 후식 정도로 보이는 집뿐이었다.
ㅎ~~
라면에 적당량의 고춧가루를 넣어 끌였는 데~~
어릴 적 집 옆의 "맛나당" 할머니가 끓여준 맛과 흡사했다.
정성의 손맛이 가득 든 라면이었다.
가격도 적당하고~~
"두 바퀴 자전거 쉼터(=원일매점)"은 북한강자전거길 바로 옆에 있다.
13:17 식사를 마치고 북한강자전거길을 따라 자전거 페달을 돌린다.
오늘은 공기가 약간 차서 그런지 하루살이가 없어 다행이다.
먼저 주에는 오후 시간대라서 그랬는지 하루살이 지옥이었다.
싱그러운 봄~~*^*
기분이 안 좋아질 수가 없다.
어딜 가나 봄꽃 만발이다.
요즘 춘천 핫플 카페 "플렉스"
서면 신매리 22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매달 둘째, 넷째 월요일은 휴무.
짧은 미니스커트에 진한 화장, 긴 머리 다방 레지~
소파에 앉아 있으면 갖다 주는 그 레지의 모닝커피가 100원이었는 디...
프림 넣을까요? 설탕은 몇 숟갈?
낭랑한 목소리가 기억으로만 어렴풋하다.
구아버망고 스무디와 아이스 아메리카노+쿠키앤크림 조개마카롱
조개마카롱
2층 전시실
고가의 작품이니 눈으로만 감상
"파손 시 당연 변상"
꽃으로 수놓아진 터널~~
차 끌고 시간 뺏기면서 멀리 갈 필요가 있나?
춘천 주변이 온통 꽃밭인데...
잠시 휴식을 하고~~
14:05 춘천댐을 지난다.
댐 상부 춘천호.
30년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향어회가 유명했던 곳인데~~
그 당시는 음주단속도 없어 시내에서 다들 차를 끌고 만취해 나갔다.
그래도 사고 하나 없었으니 이유인즉슨~
부딪칠 차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시절이니까!!
14:46 신북읍 영서로 3676.
확실하게 알려 주는 자료가 없어 처음에는 우측 능선으로 올랐었다.
태실이 없어 우측의 마을로 내려가 주민께 물으니~
처음에는 고개를 젓고, 재차 태실 얘기가 나오니
이 골짜기를 가리키며 태봉골이라고 알려 준다.
태실의 존재는 전혀 모르는 눈치다.
다시 되돌아와 건물의 좌측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올라 다닌 흔적이 어렴풋 보였다.
문화재가 있는 곳인데 길이 없을리 없다.
하는 선입견을 갖고 있으니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현암리 태봉 귀부, 덕두원 태실은 이곳보다 길의 흔적이 전무한데도 바로 찾았는 데~
이곳에는 왜 길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일까?
14:50 "춘천시 신북읍 용산리 산 1번지"로 검색할 경우 산 전체를 포괄하고 있기에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다르지 않을 만큼 찾기가 쉽지는 않다.
때문에 "춘천시 영서로 3676"에서 왼편으로 태봉산 정상을 오르면 된다.
정상까지는 대략 5분 정도 소요되며~
여느 비지정 문화재가 그러하듯 이정표가 없다.
안내문
「현재 태실비의 명문은 모두 누군가 인위적으로 훼손해서 글자를 판독하기 어려운 상태다.
안내문이나 논문, 기타 자료 등을 취합해 보면 태실비의 앞면에
‘옹정십일년삼월초칠일인시생옹주아지씨??(雍正十一年三月初七日寅時生翁主阿只氏??)’가 새겨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옹정 11년으로, 옹정은 청나라 세종(=옹정제)의 연호다.
옹정 11년을 환산해 보면 1733년(=영조 9년)인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영조의 서녀 중 1733년에 태어난 옹주를 찾으면 되는데,
이 경우 일치하는 인물은 영조와 영빈 이씨 소생의 화협옹주다」
태실비 뒤에 봉긋한 것은 태함이다.
「화협옹주(1733~1752)는 사도세자의 친누이로 둘 사이는 매우 각별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홍제전서> 18권, 현륭원의 행장을 보면 사도세자가 화협옹주를 생각했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해당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그 누이에게 각별한 정이 있는데, 지금 갑자기 가고 말았으니, 이 슬픔을 어디에다 비할까. 직접 가서 이 슬픔을 쏟을 길도 없으니 지극히 한이 된다.”
- <홍재전서> 18권, 현륭원 행장 중
한편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록>을 보면 영화 <사도>에서 각색한 바 있는 영조가 귀를 씻고, 씻은 물을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해당 기록을 보면 영조가 종종 사도세자를 불러 질문을 하고, 대답을 받으면 자신의 귀를 씻어 그 물을 화협옹주의 집이 있는 쪽으로 버렸다는 내용이다. 이렇듯 사도세자와 화협옹주 모두 영조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1743년 화협옹주로 봉해진 뒤 그 해 4월 5일 영성위 신광수와 혼인했다. 하지만 1752년 불과 20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게 되고, 이에 슬퍼했던 사도세자가 비통한 심정을 남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춘천박관에 전시 중인 태함.
「한편 태실비에는 태실을 조성한 날짜와 태실비를 새긴 사람이 등장하는데,
명문을 보면~
‘옹정십일년오 월 이십사 일 진시생(雍正十一年五月二十四日辰時立)
서표관 승문원박사김징경(書標官承文院博士金徵慶)’이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해 태실이 화협옹주가 태어난 그 해 5월 24일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서표관(書標官)이자 승문원 박사였던 김징경이 비석을 새겼음을 알 수 있는데,
서표관은 태실 조성을 위임받은 안태사(安胎使)를 따라온 실무 관료였다.
이처럼 춘천 용산리 태실의 경우 태주가 명확하기에 명칭 되어
춘천 용산리 태실이 아닌 춘천 화협옹주 태실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출처 : 오피니언타임스(http://www.opiniontimes.co.kr) 역사문화연구소장 김희태. 펌~~
안내문에서 말한 작은 민묘 두 개가 보인다.
이렇게 어렴풋한 흔적이 있는데
자세히 보지 안으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15:02 목적하는 바를 다 이루니 흡족하다.
성취감이 배가 된다.
자전거를 타고 춘천댐 아래 수자원공사의 벚꽃을 보러 가보자.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말아
이리저리 살았을 거라 착각도 말아
그래 한때 삶의 무게 견지지 못해
긴긴 세월 방황 속에 청춘을 묻었다
허~ 어허~~
속절없는 세월 탓해서 무엇해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인 것을
지금부터 뛰어 앞만 보고 뛰어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마
피아노 소리에 진성이 부른 노랫가락이 흘러 퍼진다.
이곳 벚꽃도 유명한 곳이다.
춘천의 강북 쪽 북한강자전길을 달린다.
봄꽃이 지천이다.
자전거 타기 딱 좋은 코스~~
소양 2교를 건너며~~
역광이라...
16:40 슬슬 돌으니 7시간이 걸렸다.
봉우리 두 개를 찾아 오르느라 그랬을 수도 있지만~
여유를 갖고 천천히 돌았다.
급한 게 뭐 있으리...
미쳐 생각지도 못했는데, 태실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묘지와 같이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에 자리 잡았다.
그 당시 신연강 흐르는 춘천의 경관은 매우 아름다웠을 것이다.
5월은 어버이날, 어린이날이 모두 함께 있는 가정의 달이다.
어머니와 아기의 연결고리인 태를 소중히 다룬 조상들의 깊은 생각을 되짚어
어버이에게 또한 자식에게 서로 감사와 애정을 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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