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윤의 1060일 ③~④

온리하프 2025. 4. 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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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바이든 날리면' 보도 파장…"윤, MBC·야당 커넥션 의심했다"

 

 

「 결정적 장면 (상) 」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3년 4월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사당에서 미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는 모습.

 

정치 입문 9개월 만에 권력의 정점에 선 윤석열 전 대통령은 2년 11개월(1060일) 만에 물러났다. 가장 빨리 뜨고, 가장 빨리 진 벼락스타였다. 과거 한국 정치사에서 못 본 장면도 여럿 남겼다. 그 중 결정적 몇 장면의 비하인드를 전한다.


#영어 약한 윤, 연설문 통째 암기

 

2023년 4월 26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윤 전 대통령이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를 불렀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열광하며 윤 전 대통령의 손을 잡는 사진은 최고 수준의 한·미 관계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각인됐다. 당초 윤 전 대통령은 노래 부를 계획이 없었다. 만찬 직전 백악관이 돈 매클린이 사인한 기타를 선물로 마련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무대로 이끈 건 바이든의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국빈 방문 뒤 기자 간담회에서 “가사가 생각이 안 났으면 아주 망신당할 뻔했다”고 회고했다. 참모진 사이에선 “윤 전 대통령이 9수를 하며 했던 다양한 경험이 도움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윤 전 대통령의 미 의회 영어 연설도 화제였다. 윤 전 대통령은 만찬 다음날 미 의회를 찾아 40여분간 구한말 미국 선교사에서 시작해 6·25전쟁 영웅과 한·미 동맹의 미래로 이어지는 연설을 이어갔다. 61번의 박수갈채가 터졌다. 원래 윤 전 대통령은 영어에 강하지 않다. 하지만 이날 연설을 위해 며칠간 집무실에서 A4 용지 18쪽 연설문 전체를 달달 외웠다. “부끄럽지만 좀 도와달라”며 30대 외교관 김원집 행정관 등에게 도움을 요청해 문장과 발음을 다듬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영어 실력을 높이 산 다수의 해외 정상들이 통역 없이 말을 걸어와 윤 전 대통령을 당황하게 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다들 내 영어 실력을 너무 과대평가하더라”며 웃었다.

 

#이념이 가장 중요

 

하루 전 백악관 국빈만찬에선 팝송 ‘아메리칸 파이’를 불렀다.

 

2023년 8월 29일.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연찬회를 찾아 주먹을 쥐며 이렇게 말했다.

“국가가 정치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 중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다.”

외교에선 형식과 의전도 내려놓고 국익과 실리를 추구했던 윤 전 대통령이지만 국내 정치에선 반대였다. 그 2주전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주의, 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한다”고 한 데 이어 이념 공세를 본격화했다.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 등 역사 전쟁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였던 이철우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아버지인 이종찬 광복회장이 강하게 반발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 교수와도 멀어졌다.

 

이념 전쟁의 결과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였다. 그해 10월 열린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던 김태우 전 구청장을 다시 공천했다. 윤 전 대통령이 대법원 선고 3개월 만에 사면을 해줘 가능했다. 하지만 민주당 진교훈 후보(현 강서구청장)에게 17%포인트 차이로 대패했다. 민심이 이념 전쟁에 채찍을 든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다시는 이념의 ‘이’자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계엄 선포문을 보면 결과적으로 헛말이 됐지만 말이다.

 

 

"尹, 이재명 만나랬더니 '이런 범죄자 만나야돼?' 하더라"

 

결정적 장면 (하)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7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국민의힘에서 축출되자

권성동 원내대표에 “내부 총질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 졌습니다”란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정치 입문 9개월 만에 권력의 정점에 선 윤석열 전 대통령은 2년 11개월(1060일) 만에 물러났다. 결정적 몇 장면의 비하인드를 전한다.
 

#독이 된 벼락 성공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

 

2022년 7월 26일,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있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휴대전화 화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윤 전 대통령이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 내용이었다. 약 2주 전 성 접대 의혹으로 징계를 받고 국민의힘 대표직에서 축출됐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지난해 9월 무혐의 처분)에 대한 윤 전 대통령의 속내가 처음 공개됐다.

 

평생 검사였던 윤 전 대통령은 상하 관계에 익숙했다. 당 대표도, 국회의원도 모두 아랫사람이라 여기는 성향이 강했다. 여기에 정치 입문 9개월 만에 대통령이 된 벼락 성공의 경험은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을 못해 본’ 정치인의 조언을 듣지 않는 배경이었다. 정치 경력만 20년이 넘는 한 광역자치단체장은 “윤 전 대통령이 식사할 때 나에게 ‘정치는 무엇보다 지지층 결집이 가장 중요하다’고 정치를 가르치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윤 전 대통령은 당연한 듯 당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이른바 ‘윤심 논란’은 윤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벌어진 전당대회에서 매번 반복됐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2023년 12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이때도 “동훈이가 아니면 총선에서 쉽지 않다”는 윤 전 대통령의 입김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당시 대통령실에 있던 한 전직 수석은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것이라 반대하는 이도 많았다”고 했다.

 

#영수회담 뒤, 국회 발길까지 끊었다

 

“윤 전 대통령에게 이재명 대표를 만나보라고 하니, 표를 하나 그려주더라.”

한 전직 대통령실 참모의 말이다. 1997년~1999년 성남지청 검사로 근무했던 윤 전 대통령은 당시 성남시 변호사로 활동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9일 대표직 사퇴)를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은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참모들에게 이 전 대표의 과거 이력 등을 직접 표로 그리며 “내가 왜 이런 사람과 만나야 하느냐” “범죄 피의자 아니냐”고 반박했다.

 

그랬던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총선 참패 뒤 돌변했다.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갑작스레 영수회담을 추진했다. 참모들에게 “이 대표 번호를 저장해뒀다. 언제든 전화해 국정을 논의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2024년 4월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표의 처음이자 마지막 회담이 열렸다. 이 전 대표는 당시 윤 전 대통령 집무실에 앉자마자 “오다 보니 20분 걸리는데, 실제 오는 데는 700일”이 걸렸다는 뼈있는 말을 던졌다. 이어 “듣기 거북하실 텐데”라며 A4용지 10장 분량의 모두발언을 15분간 읽어내려갔고 윤 전 대통령의 얼굴은 굳어졌다. 윤 전 대통령이 상상했던 협치의 모습과 실제 만남 사이엔 괴리가 있었다.

 

영수회담 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여야 간 합의로 통과되는 성과도 있었지만, 이후 야당의 일방적 법안 처리와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다시 반복됐다. 윤 전 대통령은 그해 9월, 1987년 민주화 이후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첫 번째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윤 전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대통령을 존중하지 않는 국회를 왜 가야 하느냐”며 야당에 대한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