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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외부인 불편하다" 주민 설득해 '백패커 쉼터' 만든 일등 공신은

 

[황순관 봉화군 춘양면 도심3리 이장]
부산서 고교 교사 하다 도심3리로 이주
트레일 걷는 백패커 '이정표' 역할 자처
"동서트레일 거점마을로 지역에 활기"

 

동서트레일 트레킹 참가자들이 지난해 12월 봉화군 춘양면 도심3리 마을숲 거점 대피소에서 텐트를 설치한 뒤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북 봉화군이 백패커들의 성지로 꼽힌 데는 황순관(66) 춘양면 도심3리 이장의 공이 크다. 동서트레일 구간이 마을을 지나간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외지인들 때문에 조용한 동네가 시끄럽고 더러워지는 것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황 이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동서트레일이 100명 남짓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을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국내 최초의 국가 숲길이 동네에 생긴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황 이장은 "외지 사람들이 오면 불편해진다는 식의 이야기는 옛날 사고 방식"이라며 "마을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민들을 설득해 도심3리를 동서트레일 거점 마을로 만들기 위해 뛰었다. 도심3리에는 백패커들이 텐트를 치고 하루를 묵을 수 있는 간이대피소가 생겼다. 화장실 등 급한 용무에 필요한 시설이 있다. 올해 샤워시설과 급수대 등 편의시설 개선도 추진할 계획이다. 의약품이나 생필품 등은 주민들을 통해 구할 수 있다. 덕분에 작은 마을에 활기가 돈다. 황 이장은 "빈집 여러 채만 있어도 동네가 죽어가는 느낌인데, 동서트레일을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동네 분위기가 한결 밝아지고 달라졌다"고 했다.

 

황순관 경북 봉화군 춘양면 도심3리 이장이 동서트레일 마을 구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봉화=김재현 기자

 

 

마을을 바꾸고 있는 황 이장은 지역 토박이가 아니다. 부산에서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던 황 이장은 '인생 이모작'을 꿈꾸며 15년 전 봉화군으로 이주를 결심했다. 당시 교사 정년이 10년 넘게 남았지만 백두대간을 따라 이어지는 유려한 산세와 넓은 사과밭이 있는 도심3리 풍경에 반해 귀농하기로 했다. 그는 3,305㎡ 규모의 사과밭을 일구며 민박집을 운영하면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황 이장은 "정년을 꽉 채워 퇴직한 뒤 귀농을 하기에는 너무 늦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퇴직하고 별다른 역할 없이 도시에서 살기보다 새로운 삶을 일궈가는 지금이 더 행복하고 의미 있다"고 말했다.

 

동서트레일 봉화 구간 홍보대사를 자청한 그는 올해 할 일이 더 많다고 했다. "내년 동서트레일 전 구간 개통을 앞두고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마을 앞 진입도로도 확장하고,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버스 주차장도 필요해요. 도심3리가 동서트레일 구간의 선도 마을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도심3리 마을 입구에 '동서트레일 거점마을 도심3리'라 적힌 간판이 설치돼 있다. 봉화=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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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금강송·백두산호랑이 가족 사는 봉화, 백패커 성지 됐다

 

<2> 동서트레일 경북 봉화군
오전약수터~울진 전곡리 약 89㎞
소나무숲 등 자연경관에 백패커 '인기'
비교적 평범한 난이도에 걷기 안성맞춤
동서트레일 거점마을 '도심3리' 개선 한창
"트레일 가치 선명히 보이는 상징적 코스"

 

동서트레일 47구간 경북 봉화군 서벽리 금강송 군락지 일대 숲길에 눈이 쌓여 있다. 봉화=김재현 기자

 

 

"숲을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허락된 길을 따라가는 느낌이에요."

박정균 봉화군 산림소득지원과 주무관

 

 

경북에서도 가장 북부에 위치한 봉화군은 2만8,000여 명이 사는 농촌이다. 여느 시골처럼 지역 소멸을 걱정하지만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갖춰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백두대간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봉화군은 북쪽으로는 강원 태백·영월과 맞닿아 있고, 동쪽으로는 울진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다. 봉화군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가 없어 교통 불편을 느끼는 이들도 있지만 1,500m에 달하는 태백산을 업고 고요하고 깊은 길을 품고 있어 최근에는 트레킹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동서트레일 총 849㎞(전체 55구간) 중 봉화군은 47~51구간(울진 포함) 약 89㎞에 포함돼 있다. 이곳 구간은 특유의 고산 지형과 깊은 산림, 오랜 세월을 거쳐 형성된 마을 풍경이 번갈아 나타나 '걷는 재미'가 쏠쏠한 코스다. 최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동서트레일 봉화 구간에 대해 "수령 500년이 넘는 금강송이 우거진 소나무숲과 보기 힘든 민물고기 은어를 만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동서트레일 봉화 구간. 그래픽=이지원 기자

 

 

조선 보부상들 넘어가던 길 트레킹 성지로

지난달 27일 찾은 동서트레일 봉화 구간 출발점 부근인 박달령과 주실령을 넘어 춘양면으로 이어지는 서벽리 금강송 군락지 일대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었다. 푸른 소나무와 하얀 눈이 어우러지며 겨울 풍경의 운치를 더했다. 눈길에는 산짐승 발자국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봉화군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 직후 곧장 공직에 입문한 박정균(30) 봉화군 산림소득지원과 주무관은 "봉화 구간은 숲 사이로 고즈넉한 오솔길이 많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매력이 있다"며 "인위적으로 만든 숲길을 걷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을 지나온 숲이 허락한 길을 따라가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동서트레일 47구간 출발점인 경북 봉화군 물야면 외씨버선길 봉화객주 안내소. 이곳은 백패커들의 안내소 역할을 함과 동시에 카페와 유명 화덕피자도 성업을 하고 있다. 봉화=김재현 기자

 

 

47구간은 물야면 '외씨버선길 봉화객주 안내소'에서 시작된다. 조선 성종 때 열린 약수대회에서 1위를 차지해 '조선 제일의 약수'라 명성을 얻은 '오전약수탕'이 있는 곳이다. 특이하면서도 생소한 맛의 약수는 한겨울에도 끊이지 않고 흐른다. 쓰임을 다한 오전약수탕은 동서트레일 안내 사무소와 카페, 식당 등으로 리모델링해 '봉화객주'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과거 조선시대 보부상들이 태백과 춘양으로 넘어가던 길목에 위치한 특성을 반영해 보부상들이 묵던 숙소인 '객주'를 모티브 삼아 이름 붙였다. 오래된 옛길의 기억 위에 현대의 문화가 덧씌워진 셈이다.

 

동서트레일 47구간 출발점인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약수터. 오전약수는 조선 성종 때 열린 약수 경연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봉화=김재현 기자

 

 

봉화객주에서는 주말이면 웨이팅을 해야 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화덕피자' 가게가 성업을 하고 있다. 5년 전 귀촌해 피자가게를 차린 황정집·김명석 부부는 오전약수터에서 흘러나오는 약수와 임실치즈로 만든 화덕 피자를 만들고 있다. 이탈리아 정통 방식을 내세운 피자는 동서트레일을 오가는 백패커들의 주린 배를 든든히 채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봉화군 관계자는 "방치돼 있던 건물에 독특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가게가 들어오면서 조용했던 동네에 활기가 돌고 있다"며 "주말에는 피자와 약수를 맛보려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금강송 군락지와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동서트레일 47구간인 경북 봉화군 서벽리 금강송 군락지. 사진은 가을철 모습이다. 봉화군 제공

 

 

오전약수터를 지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능선을 따라 본격적인 숲길이 시작된다. 코스 난이도는 3등급(보통) 정도라 초보 백패커들에게도 부담이 없는 구간이다. 옥돌봉과 선달산 사이 박달령·주실령을 넘어가면 국내 대표적인 금강송 군락지인 '서벽리 금강소나무숲'이 기다리고 있다. 80㏊ 규모의 숲에는 약 1,500 그루의 금강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수령이 500년이 넘은 소나무도 있다. 1974년 채종림으로 지정된 이후 이곳에서 채취한 종자로 키운 묘목은 전국의 산림으로 퍼졌다. 2001년에는 궁궐이나 전통사찰 등 문화재 보수 복원을 위한 문화재용 목재 생산림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소나무 덕분에 숲 안에서도 탁 트인 시야가 확보되고, 소나무 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빛은 장엄한 풍경을 자랑한다. 아름다운 경관으로 백패커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아시아 최대 규모 수목원인 국립백두대간수목원도 봉화 구간 인근인 춘양면 서벽리에 있다. 수목원을 보기 위해 봉화 구간을 찾는 백패커들도 많다. 수목원에는 멸종위기종인 백두산호랑이 가족 여섯 마리도 만날 수 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멸종위기종인 백두산호랑이 가족들을 만나볼 수 있다. 봉화=김재현 기자

 

 

서벽리 금강소나무숲과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을 지나 내려오면 작은 마을이 반갑게 나타난다. 동서트레일 거점 마을인 춘양면 도심3리다. 도심3리는 사과밭과 소규모 텃밭, 경작지가 넓게 펼쳐진 산촌이지만,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한 분위기를 풍긴다. 마을에는 트레킹에 지친 백패커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백패커들이 묵을 수 있는 간이대피소가 조성돼 있고, 지도 등 트레킹에 필요한 용품들을 구할 수 있다. 주민들도 백패커들에게 활짝 열려 있다. 황순관 도심3리 이장은 "동서트레일 구간을 걷는 방문객들은 언제나 대환영"이라며 "부대시설 개선 공사가 한창이라 관광객 편의 역시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일장 열리고 산타마을도... 춘양면의 재발견

48구간부터는 비교적 완만한 숲길이 춘양면으로 이어지면서 백패커들의 가쁜 숨을 다독여 준다. 춘양면은 '원치 않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뜻의 '억지춘양'의 유래로도 알려져 있다. 태백산 자락에서 자라는 소나무인 춘양목이 유명해지면서 다른 소나무를 '춘양목'이라 속이는 일이 많았다는 설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명에 담긴 이야기를 반영해 춘양면에서는 매달 4, 9일 5일장 '억지춘양시장'이 열린다. 국내외 백패커들에게는 소문난 시장이다. 시장 부근에는 안내와 대피 기능을 겸하는 춘양안내소 조성 작업이 진행 중이다. 연내 완공되면 백패커들이 필요한 물품도 구매하고 지친 심신을 정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동서트레일 50구간 데크길로 조성된 숲을 따라 나오면 산타마을로 유명한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역'이 모습을 드러낸다. 봉화=김재현 기자

 

 

이어지는 50구간은 현동삼거리에서 현동3리 마을숲, 분천1리 마을회관, 깊이박골을 지난다. 숲길과 낙동강 물길을 끼고 걷다 보면 '산타마을'로 유명한 소천면 분천역이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 이용객 감소로 폐쇄를 걱정하던 간이역인 분천역은 철도 관광과 결합해 크리스마스를 콘셉트로 한 관광 마을로 탈바꿈했다.

 

분천역을 출발해 태백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가 운행하면서 반전을 맞기 시작했고, 여기에 산타와 크리스마스 이미지를 더해 사계절 이색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겨울 축제 기간에는 핀란드 현지에서 공인한 산타가 분천역을 찾아 동심을 자극한다. 박 주무관은 "분천 산타마을 축제가 열리면 눈썰매장과 슬라이드 등 놀이 시설이 운영되고, 다양한 먹거리 판매 시설도 조성돼 지역경제 활성화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타마을이 조성돼 있는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역 일대 한 가족이 주변을 구경하고 있다. 봉화=김재현 기자

 

 

동서트레일의 마지막 지점인 경북 울진군을 향하는 51구간은 최고의 절경을 자랑한다. 협곡열차가 스쳐 지나가는 봉화군 석포면 승부역과 소천면 양원역 일대는 "한국형 장거리 트레일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코스"라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척구마을 간이 대피소도 울진 전곡리 마을회관으로 향하는 장거리 트레일 이용자들의 거점 역할을 한다.

 

정가인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실장은 "다양한 특징을 가진 숲길과 기차역 등이 이어지는 봉화 구간은 동서트레일의 가치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상징적인 코스"라며 "많은 관광객이 이곳에서 봉화의 숨겨진 매력을 느껴볼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동서트레일 경북 봉화 구간 주요 지점 및 해발고도. 그래픽=박종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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