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2박 3일에 8만2000원" 관광객 떠난 별주부마을에 그들이 왔다
<3> 동서트레일 충남 태안군
별주부마을 동서트레일로 변신
마을길 따라 1~4구간 56.9㎞
전통시장, 마을 활기 생기 돌고
안전하고 편리하게 여행·야영도

삼일절 연휴를 맞아 충남 태안을 찾은 백패커들이 1일 서해안과 나란히 이어지는 동서트레일 1~2 구간을 지나고 있다. 이들은 도보 여행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배낭 무게를 개인 텐트를 포함, 10~14kg 수준으로 최소화 해 걷는다. 이 때문에 식수도 중간에 조금씩 보충해서 걸으며, 모든 식사도 현지에서 사서 먹는다. 야영장에 가기 전 현지에서 구입한 신선한 식자재로 저녁과 이튿날 아침을 간단하게 요리해서 먹기도 한다. 849km, 전체 55개 구간 동서트레일은 기존 숲길과 마을길, 들녁길 등 기존의 길을 이어 조성한 덕분에 중간에 사 먹거나, 조리해서 먹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태안에서 경북 울진까지 이어지는 동서트레일을 일반인이 주파하는 데에는 한 달 반이 걸린다. 이혜란씨 제공
별주부 설화가 전해지는 충남 태안군 남면 원청리. 이곳의 청포대해변에는 자라바위로 불리는 작은 섬이 있다. 구사일생으로 육지로 돌아온 토끼가 “세상에 간을 빼놓고 다니는 짐승이 어디 있냐”며 자신을 태워다 준 거북(별주부)을 놀려대고는 유유히 숲으로 사라지자 “내 충성심이 부족해 토끼에게 속았다”며 탄식하던 거북이 죽어서 돌로 변해 섬이 됐다.
연 6000만 원 수익 낸 별주부마을의 변신
이 극적인 장면을 지자체가 가만둘 리 없었다.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2003년부터 이 마을을 ‘별주부마을’로 부르기 시작했고, 2010년에는 그 바위 인근에 지하 1층, 지상 9층 규모의 별주부센터를 지어 올렸다. 과연 예상대로였다.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밀물에 들어왔다가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하고 돌담에 갇힌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로 방식인 ‘독살’ 체험까지 하고 가면서 마을은 매년 5,000만~6,000만 원의 관광 수익을 올렸다. 이 지역에 펜션이 집중적으로 생긴 배경이기도 하다.

별주부 설화의 무대인 충남 태안군 남면 원청리 별주부마을에서 2018년 열린 ‘용왕제’ 행사. 거북(별주부) 캐릭터 탈을 쓴 참가자와 풍물패가 공연을 벌이고 있다. 별주부마을에 관광객들이 찾지 않고 또 행사 비용 문제로 더 이상 열리지 않는 행사다. 태안군 제공
또 인근 해변에서 열리던 ‘별주부마을 용왕제’는 전국구 행사가 됐다. 정월대보름에 맞춰 열리는 여느 풍물패 공연과 달집태우기 행사였지만, 별주부와 결탁하면서 방송 카메라들이 모여들고, 식당과 펜션은 예약 없이는 이용이 어려울 정도. 그러나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그 동력을 살려 나가지 못하고 그만 시들었다. 최진우(76) 별주부마을 이장은 “지금은 이 별주부센터 엘리베이터도 넉넉하게 못 돌릴 형편”이라며 “한 번에 700만 원 정도 드는, 용왕제 행사를 안 한 지 꽤 됐다”고 말했다.
찾는 이 없고, 건물 관리비 걱정에 암울하기만 하던 별주부마을에 한 줄기 빛이 든 것은 작년 봄. 2024년 9월 기존 길에 ‘동서트레일’이라는 표지판을 세우고, 구간 이름을 붙이자 사라진 관광객 자리에 1인용 텐트를 가져와 자고 가는 백패커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별주부센터는 지난해 5월 동서트레일 대피소(별주부대피소)로 지정됐다. 최 이장은 “새로 만든 것도 아니고 여태 있던 길과 시설에 이름표 하나 붙였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멀리에서 사람들이 와서 둘러보고, 사 먹고, 자고 간다”며 “기신기신 죽어가는 우리 마을이 토끼처럼 기사회생할지 한번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별주부마을 별주부센터 시설을 이용해 설치된 대피소. 데크 위로 백패커들이 텐트를 쳤다. 이곳에는 모두 14개의 데크가 준비돼 있다. 인원이 많은 경우 주차장 부지에 텐트를 치기도 하는데, 많을 때는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한번에 야영을 했다고 한다. 산림청은 해당 시설을 설치하고 이용객들이 화장실 등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백패커 이혜란씨 제공
56.9㎞ 절반은 해안·마을길... 전통시장도 노선에

백패커들이 안면송 숲 사이로 난 길을 걷고 있다. 백패커 이혜란씨 제공
충남 태안에서 경북 울진까지 이어지는 849km의 동서트레일 윤곽이 드러나면서 트레일이 지나는 지역에서는 기대감도 차오르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607km가 완공돼 공정률 72%를 기록하고 있고, 1~4구간 56.9km의 태안 구간은 일찌감치 완공돼 적지 않은 백패커들이 찾고 있다. 태안읍에서 보석상을 운영하고 있는 김학순(68)씨는 “작년부터 가게 앞으로 배낭 멘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며 “내 장사에는 큰 도움이 안 되는 분들이지만, 외지 사람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했고, 시장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한 택시 기사도 “배낭 멘 손님들이 타면 입이 아플 정도로 태안에 대한 이야기를 푼다”고 했다. 그만큼 태안 밖에서 온 이들이 반갑다는 이야기.

충남 태안군 태안읍에서는 동서트레일 3, 4구간이 지난다. 멀리 보이는 백화산 앞으로 태안읍성과 태안읍행정복지센터가 있다. 3,4구간이 바통터치하는 지점이다. 이 같은 시내 길에서는 동서트레일 표지판 도움으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지만, 지형지물이 확실해 어렵지 않게 여행을 이어갈 수 있다. 태안=정민승 기자
동서트레일 태안 구간 4개 코스는 전체 55개 구간 중 난도 ‘매우 쉬움’에 해당한다. 코스 절반가량이 꽃지해수욕장에서 몽산포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안길, 마을길을 이용하는 덕분이다. 특히, 서해안의 절경을 곁에 두고 숱한 횟집과 식당을 지나는 덕분에 먹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길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개인 텐트를 배낭에 넣어 여행하기에, 식수 외 음식 휴대가 쉽지 않은 백패킹 특성을 감안해 걷다가 점심 먹고, 저녁을 먹거나 음식 포장을 한 다음에 야영장에 닿을 수 있도록 노선을 설계했다”며 “전통시장도 루트에 포함시켜 백패커들이 지역 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충남 태안군 태안읍 내 서부시장 풍경. 백패커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거나 먹거리를 사서 야영지로 이동한다. 장거리 도보 여행객들에게 전통시장은 요긴한 영양 보급소다. 태안=윤형권 기자

태안읍 전통시장 서부시장에서 4,000원에 판매되는 바지락 칼국수. 바지락이 한 가득 담겨 나온다. 태안=정민승 기자
이 같은 노선 설계 덕분에 태안읍 서부시장은 백패커들 사이에 일종의 성지 같은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장시간 걸으며 지친 몸을 쉬게 하고 다양한 먹거리로 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면보다 훨씬 많은 바지락이 나오는 바지락 칼국수가 인기다. 4,000~6,000원에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 태안에서 가장 싼 칼국수집이라는 파전칼국수 사장은 “주말이면 전국에서 온 손님들이 줄을 서서 먹는다”며 “그중에서도 배낭을 메고 오는 손님들이 최근 부쩍 늘었다”고 했다. 착한가격업소로 지정된 이 가게는 손님들에게 싸게 파는 대신 쓰레기봉투, 앞치마, 물컵 등 각종 지원을 받는다.

동서트레일 1구간이 시작하는 안면도 자연휴양림에서 벗어나면 만나는 꽃지해수욕장의 할미할아비바위. 썰물 때 갯길이 드러나면 걸어서 갈 수 있다. 백패커 이혜란씨 제공
앱으로 길 찾고 캠핑 예약도... 해외 백패커 수요도
완공 1년 반이 지난 동서트레일 태안 구간이지만, 복잡한 읍내길을 걸을 땐 띄엄띄엄 설치된 안내판은 아쉬운 느낌이 있다. 이 때문에 백패커들 사이에선 램블러, 트랭글, 산길샘 같은 GPS기반 등산·트레킹앱이 인기다. 동서트레일이 알려지면서 일찌감치 각 코스를 주파한 백패커들이 자신의 기록을 공유하고, 다른 이들이 그 루트를 다운받아 따라가는 식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연말이면 트레킹 앱이 없어도 될 정도로 트레일의 완성도가 올라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동서트레일 4구간, 태안 흥주사 아래 마련된 '동서트레일 흥주사대피소'에 도착한 한 백패커가 야영을 위해 텐트를 치고 있다. 화장실은 100m가량 떨어진 흥주사 시설을 이용한다. 태안=정민승 기자
배낭 하나로 어디로든 떠나 걸을 수 있는 백패킹이지만, 국내 각종 규제 때문에 백패커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된다. 대피소(야영장)로 지정되지 않는 곳에서 텐트를 치고 화기를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849km 트레일상, 정해진 장소에서는 그 걱정에서 완전 벗어날 수 있다는 것도 동서트레일의 매력이다. 3·1절 연휴를 앞두고 지난달 27일 서울에서 태안으로 단독 트레킹에 나섰다가 흥주사대피소에서 만난 이혜란(49)씨는 “당국의 허가 아래 당당하게 야영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안정감을 준다”며 “지금은 이렇게 자리가 많이 비었지만, 곧 야영장 예약 경쟁이 치열해질 것 같다”고 했다. 구간 중간중간 설치된 각 대피소(야영장)는 많은 인원이 동시에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현장에서 체크인-체크아웃 같은 절차가 없는 이유다.

서울에서 충남 서산까지 버스로 이동한 뒤 이후 도보로 동서트레일 4구간인 충남 태안군 흥주사대피소에 도착한 이혜란씨의 텐트. 과거엔 텐트를 마음대로 칠 수 없는 곳이었지만, 대피소로 지정되면서 가능해졌다. 백패커 이혜란씨 제공
이씨는 이튿날 등산·트레킹 동호회 동호인 5명과 태안읍에서 합류한 뒤 버스로 꽃지해수욕장까지 내려가 1박, 꽃지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별주부대피소까지 이동한 뒤 두 번째 텐트를 쳤다. 2박 3일 동안 사용한 비용은 1인당 8만2,000원. 왕복 고속버스 요금 3만 원 정도를 더하면 12만 원 정도에 태안을 여행한 셈이다. 이씨는 “건강도 챙기고, 실컷 먹고, 구경하면서 안전하게 야영까지 했다”며 “해외로 나가는 장거리 트레일 수요 흡수는 물론, 해외의 수요도 끌어들일 만큼 경쟁력 있는 코스”라고 평가했다.

충남 태안 동서트레일 1~4구간에서 만나는 동서트레일 리본. 띄엄띄엄 있는 안내판 사이에서 길잡이 역할을 한다. 백패커 이혜란씨 제공
그럼에도 여전히 숲길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당장 지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지역 소멸 극복 및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김소민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 대표는 “우선은 길 잃지 않고 각 코스를 안전하게 완주했다는 백패커들의 평가가 쌓여야 하고, 이렇게 경험이 쌓이면 이용객은 점차 늘 것”이라며 “이 경우 지역 경제 활성화 정책으로서는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콘텐츠로서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안군 구간.

전체 구간

태안구간

몽산포해변에서 한 가족이 지는 해를 배경으로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태안 구간의 동서트레일 트레킹의 백미는 단연 일몰 감상이다. 태안=정민승 기자

몽산포해변에서 한 커플이 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해당 구간의 동서트레일은 이미 조성돼 있던 '태안 해변길'을 이용한다. 태안=정민승 기자

꽃지 해수욕장 인근에서 본 서해 일몰. 백패커 이혜란씨 제공

전통시장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 개인택시 기사가 전봇대에 설치된 동서트레일 표지판을 보여주고 있다. 여간 복잡한 곳이 아니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솔방울 모양의 동서트레일 로고가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동서트레일 안내판인지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다. 태안=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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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 발전' 태안 인구 6만 명 깨졌다... 꽃 심고 바닷길 뚫는 이유는 [K트레일]
가세로 충남 태안군수 인터뷰
540㎞ 해안선 관광 콘텐츠
가로림만 해상교량 설치 추진
관광으로 지역 활력 되찾아야

가세로 충남 태안군수가 지난달 27일 본보와 인터뷰에서 동서트레일 등을 이용한 태안 관광산업 육성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태안=정민승 기자
“제가 군수를 8년 해보니까, 자연을 보존하면서 돈 되는 사업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큰돈 들이지 않고도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으니 호재 중의 호재죠.”
가세로 충남 태안군수는 기존 숲길과 골목길을 이어 만든 849km 동서트레일이 쇠락해 가는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혈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540km의 해안선을 가진 태안에는 30개 가까운 해수욕장과 수목원, 휴양림 같은 자연·해양·생태 관광자원들이 즐비하다”며 “동서트레일은 제각기 빛을 내는 태안의 보석들을 한데 꿰어서, 더 큰 보물로 만들 ‘황금실’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리적으로 태안은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과 가깝지만, 열악한 접근성 탓에 기업들이 선호하는 지역은 아니다. 이 때문에 태안군은 1차 산업과 함께 일찌감치 관광산업에 공을 들였다. 태안을 꽃의 고향으로 전 국민에게 각인시킨 2002년 태안 꽃박람회가 대표적이다. 충남 화훼산업의 50%를 책임지던 화훼산업 기반을 관광과 결합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도록 한 것이다.
가 군수는 “2023년 태안 관광객이 1,775만 명이었고, 작년에 1,809만 명이 다녀갔다”며 “2009년 꽃박람회 이후 처음 실시하는 원예치유박람회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동서트레일 덕에 올해는 2,000만 명 이상이 태안을 찾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동서트레일 1구간 초입인 꽃지해수욕장 일원에서 4월 25일부터 한 달 동안 열리는 원예치유박람회는 ‘힐링(치유)’ 콘셉트를 더한 꽃박람회다.
또 태안군은 동서트레일 시점이자 종점인 이점을 살려 백패커들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꽃지해수욕장 인근에 정원을 조성하는가 하면 동서트레일과 연계해 서해와 천수만을 끼고 태안반도를 한 바퀴 걸을 수 있는 생태습지 및 탐방로 조성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가 군수가 동서트레일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는 지역이 처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2월 인구 6만 명 선이 무너졌다. 그는 “작년에는 화력발전소까지 폐쇄되면서 세수는 물론 일자리까지 줄고 있다”며 “수산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충남 전체 어가인구 3분의 1에 달하지만, 고령화로 지속 감소하고 있어 태안은 관광 아니고서는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태안에 남은 화력발전소 9기 중 7기는 1~5년 시차를 두고 2037년까지 멈출 예정이다. 이에 따른 지역의 경제적 손실은 12조 원으로 추정됐다.
태안군이 살아남기 위해서 가 군수는 가로림만 해상교량의 신속한 건설 필요성을 역설했다. 서울까지 직선거리 70km 남짓하지만 차량으로 170km를 가야 하는 태안 북부와 서산 대산읍을 연결하는 다리다. 가 군수는 “국내외에서 찾는 서해안 관광지로 변신하지 않는 한 태안의 미래가 없다”며 “박정희 시절부터 검토되었던 가로림만 해상교량이 이번에는 꼭 설치돼, 지역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국정과제로 선정된 해당 사업은 현재 예비타당성조사(예타) 1차 심사가 진행 중이다.

가로림만 해상교량 설치 예상도. 태안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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