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평강막국수' 네 자매, 송향임·예숙·혜정·선희씨
3년前 노후 대책 겸 귀촌해 연 가게… 하루에 수백명, 매출 500만원 넘기도
동네 이장부터 대통령 내외도 찾아… 식구들 먹는 것처럼 공들여 만들죠
주말 오전 11시, 벤츠 한 대가 허름한 식당 앞에 섰다.
중년 남자가 혼자 들어와 막국수 한 그릇을 달게 비우고 갔다.
2시간 뒤, 그 벤츠가 또 왔다. 이번엔 뒷좌석 손님들이 입맛 다시며 들어섰다.
앞에 온 사람은 골프장에서 대기하던 운전기사, 뒤에 온 사람은 골프 마친 회장님 일행이다.
지척에 골프장 세 곳, 북한강과 20~30분 거리에 있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평강막국수' 주말 낮 풍경이다.
이 집은 충남 부여 출신 네 자매가 3년 전 귀촌해서 차린 집이다.
주인장 송향임(59)·예숙(57)·혜정(51)·선희(50)씨 자매가 7000원짜리 막국수, 1만원짜리 감자전·메밀전, 1만8000~3만2000원짜리 편육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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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고향 마을 은하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막내가 이가 생겨서 머리 자르기 전에 기념으로 십리길 걸어가 한판 찍었지요.” ‘평강막국수’ 주인장 네 자매가 46년 된 흑백사진을 들고 깔깔 웃었다. 왼쪽부터 송예숙·선희·혜정씨. 맏언니는 몸이 아파 잠시 고향에 갔다. 마늘 빻기부터 배 썰기까지 전부 몸으로 한다. /가평=주완중 기자
이장(里長)들 단골 회식 장소이기도 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도 직원 30명과 먹고 갔다. 김윤옥 여사는 지인들과 한 번 더 왔다. "김치 좀 더 달라"고 해서 공깃밥 추가해 깨끗이 비우고 갔다고 한다.
"아유, 저희가 고맙죠. 신나잖아요."(혜정씨)
가게 차리기 전까지 자매들은 수도권에 흩어져 살았다.
고향집은 가난했다.
시집가서 애들 키우고 시부모 봉양하다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청춘이 휙 지나갔다.
모두들 마음이 헛헛했다.
다가오는 노년이 춥고 외로울까 겁났다.
가평에 시집와 살던 선희씨가 "우리 동네 공기 좋다"고 운을 뗐다.
애들도 다 컸으니 한 동네 내려와 살자는 얘기였다.
모여 사는 건 좋지만, 먹고살 일이 난제(難題)였다.
막둥이 남동생(45·회사원)이 "누나들 솜씨가 웬만한 맛집보다 낫더라"고 은근슬쩍 불(火)을 땠다.
"매형들 정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요령껏 전근 오면 되잖아요?"
1남5녀 6남매 중 노량진에서 대게 장사하는 셋째딸과 직장 다니는 남동생만 빼고, 네 자매가 팔을 걷었다.
원칙을 두 가지 세웠다.
첫째, "잃어도 될 만큼만" 투자하기로 했다. 혹시 잘 안 되더라도 "에이, 재밌었으니까 됐어" 하고 쓰라림 없이 웃어넘기고 싶었다.
둘째, "기왕 할 거, 집에서 식구들 먹이던 것처럼 공들여 요리하자"고 다짐했다.
자매들은 외딴길에 있는 허름한 식당을 빌렸다.
인테리어 공사 따로 안 하고, 대청소만 몇 번씩 광(光)나게 했다.
온 가족이 빗자루와 손걸레로 묵은 때를 싹싹 벗겼다.
간판 값도 아까워 옛날 간판 그대로 두고 메뉴판만 새로 했다.
창업 비용 1억3000만원 중 1억원은 보증금이고, 3000만원만 순 비용이다.
자매들이 쌈짓돈 털어 똑같이 나눠 냈다.
"새로 산 거요? 그릇밖에 없슈."(선희씨)
자매들은 메뉴판 걸 때 음식 종목 쭉 적고 맨 위에 한 줄 보탰다.
'솜씨 좋은 네 자매가 매일 직접 만듭니다.' 그 약속을 지키려고 개업 후 3년간 오전 8시~밤 9시까지 연중무휴 분투했다.
올 초 가게 문 닫아걸고 2박 3일 제주도 여행 갔다 온 게 첫 휴가였다.
이들은 믹서 안 쓰고 강판에 감자를 한 알 한 알 갈아서 감자전을 부친다.
"기계로 갈면 편하지요. 근데 그럼 이 맛이 안 나."(예숙씨)
이들은 매년 가을 국산 햇배를 30㎏들이 상자로 100개쯤 사들여 뒷마당 저온창고에 쟁인다.
매주 한두 번, 두어 상자씩 허물어 양념장 바탕이 될 배즙을 만든다.
하얗게 깎은 배를 큼직한 목(木) 도마에 올려놓고, 식칼 네 개를 양손에 쥔 채 5시간 동안 '난타' 공연하듯 썰고 빻고 두들기는 작업이다. 남편들이 몇 번 하다 파스 붙이고 드러눕더니 "이 일만큼은 일당 받아야겠다"고 했다.
여기에 양파·마늘·생강·황도통조림 등 여덟 가지를 더 갈아 넣고 저온으로 3~6개월 숙성시킨 뒤, 그날 뽑은 막국수 면발에 소담하게 한 국자 끼얹어 낸다.
왜 배를 기계로 안 갈까?
"그럼 이 맛이 안 나더라고."(예숙씨) 자매들 다 병원 다닌다.
장마 끝난 초여름 주말에는 하루 매상이 500만원을 넘긴 적도 있다.
골프도 등산도 뜸한 겨울 평일이 제일 한가하다.
그래도 하루 매상 70만~80만원은 거뜬하다.
그보다 못 번 날은 작년 1월 첫 목요일뿐이다(30만원). 가평군 최저기온이 영하 23도를 찍은 날이었다.
100원어치 팔면 28원 남는다.
차곡차곡 모았다가 1년에 서너 차례 공평하게 나눠 갖는다.
혜정씨는 그 돈으로 지난해 난생처음 '예금 잔액 1억원'을 달성했다.
그날 밤 울었다.
"애들이 결혼할 때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정말 행복했어요."
넉넉하게 못 키운 게 늘 미안했다.
3년 전의 자신들처럼 귀촌과 노후를 고민하는 중년들에게 '비법'을 전수한다면 뭘까?
자매들은 "다른 건 모르겠고 그냥, 장사하려면 주인이 의자에 앉을 시간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김치 사서 내놓는 식당에는 손님 안 오거든요."
자매들은 김장을 1500~2000포기씩 하고, 열흘에 한 번 열무김치 200단을 담근다.
마늘은 손으로 빻아서 넣는다.
찾아오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