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신 한국이 분단된 이유?
독일의 상황~~
당시 유럽전선은 독일이 동쪽으로는 소련하고 직접적으로 전쟁중이었고,
레닌그라드나 스탈린그라드까지 독일이 위협하긴 했지만, 소련의 반격에 의해서 오히려 소련군이 베를린을 점령할 정도로 전세가 뒤집어졌다. 즉, 소련이 직접적으로 독일 영토를 지배했다는 것이죠.
연합국 역시 과거 서독의 영역 역시 실효 점령을 합니다.
즉 독일의 경우는 각 진영이 실질적으로 싸우면서 점령하는데 독일이 반땅이 되었고,
실제로 서로 협상하면서 독일 반땅 하기로 합의를 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 동북아시아는 어땠을까요?
여긴 소련보단, 미국이 다 해 먹은 전선입니다. 소련은 독일하고 싸움에 치중했기에 일본하고는 전투를 안 했습니다.
미국이 열심히 태평양 군도들을 하나 하나 치열하게 싸우면서 먹고 있는 와중에도 말이죠.
결국 독일이 항복한 이후에야 소련은 동북아 전선에 뛰어 들게 되고, 이 때는 이미 일본 원자폭탄 맞고 TKO 되어가고 있던 상황입니다.
일본 열도 자체에 대한 실효 점령은 미국이 이미 일본에게 받아낸 상황이었고 남은 건 한반도 정리였던 상황에서 여러가지 복잡한 변수들이 터집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제 어제의 동지였던 소련이 오늘의 적이 되어 가는 시점에서, 태평양으로 소련이 튀어 나오는 것을 막아야 했습니다.
일본, 대만,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동북아시아를 막아두면 가능했고,
게다가 명분적으로나 실리적으로나 소련이 일본에 대한 요구를 하기에는 소련으로서도 뭐 하나도 없었습니다.
일본 분단이 될 이유가 하나도 없었죠.
반대로 한반도는 달랐던 것이 소련의 개입으로 만주에 있던 관동군 해체 작업이 들어갔고,
이 관동군 편제가 북한까지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
미군이 일본쪽에 신경 썼는 지 의외로 한반도에는 소련군보다 늦게 들어 옵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이 합의를 보게 되는데, 38선 기준으로 하자고 합의를 보면서 남북이 분단이 되는 시점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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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복기… 위기의 근원 파헤치다
한반도 연구 전문가 美 브루스 커밍스 교수
새로운 사료 토대로 한국전 원인 심층 분석
일제강점기 항일세력·부역세력 분열
소련 남하 저지 美 대초승달 전략 등
시대적 상황 짚으며 고착된 분단까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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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브루스 커밍스 지음/조행복 옮김/현실문화/2만5000원
“인천상륙작전에서 한·미 장병은 함께 싸웠고 함께 죽었고 함께 승리했다.”
최근 국빈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회의사당 연설을 통해 6·25전쟁의 한 장면을 상기시킨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2분간의 국회연설에서 “(북한은) 미국을 시험하지 말라”며 북한을 압박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6·25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다.
혹한의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 최정예 해병 1개 연대 3000여명이 몰살당하고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만든 10군단이 패퇴하는 치욕을 당했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잊고 싶어 하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도 이런 치욕스런 역사를 덮었을 것이다.
최근 비밀 해제된 6·25전쟁 사료를 중심으로 전쟁의 원인을 심층 분석한 책으로,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내용들이 적지 않다.
이 책 저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시카고대학 석좌교수는 6·25전쟁 전문가로 명성을 얻었다.
‘한국전쟁의 기원’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미국 패권의 역사’ ‘김정일 코드’ 등 저서들이 국내에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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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이 책에서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실수는 북한의 실체를 무시했으며 당시 중공군의 개입을 오판한 데 있으며, 결국 참혹한 패배로 이어졌다”면서 “이는 지금도 진행형”이라고 지적한다. 연합뉴스 |

저자는 이 책에 대해 미국인이 잊지 않기 위해 쓴 6·25전쟁 기록이라고 했다.
미국인이 주된 행위자로 참여해 4만여명의 미군이 전사한 3년1개월 간의 전쟁은 미국전쟁사에서 패배로 기록되어 있다.
미군이 패배한 주된 이유는 적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지금도 미국인들은 여전히 북한을 모르고 있다.
저자는 연일 북한을 위협하는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한의 실체를 얼마나 이해하는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를 뒤집어보면 전쟁의 원인, 특히 북한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미국은 대북 전쟁 내지 협상에서 실패하지 않을 것이란 점도 시사한다.
저자는 6·25전쟁의 기원을 1930년대 만주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벌어졌던 항일투쟁에서 찾는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은 두 세력으로 분열됐다.
‘항일세력’과 ‘부역세력’이 그들이다.
만주에서 격렬한 유격전을 벌였던 항일세력은 북한 지도부의 핵심 계보를 형성했다.
반면 남한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 미국은 소련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대(大)초승달’ 전략을 펼쳤다.
즉, 소련 포위를 목적으로 소련 주변부에 자생 가능한 정권을 배치하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일본의 산업을 부흥시켰고 남한을 이에 연결시키고자 했다.
이는 남한에서 부역세력의 복권을 부추겼고, 많은 친일 부역세력이 청산되기는커녕 요직을 차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같은 남북한 간의 골은 미국과 소련이 성급하게 그은 38도선을 경계로 첨예하게 부딪쳤다.
그런 점에서 북한 지도부가 강조하는 항일 경력은 여전히 북한 정부의 정치적 정당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활용되었다.
애초 미국은 한반도의 이런 구조적 성격을 간과했으며, 이는 북한의 체제와 지도부를 이해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의 대북정책 역시 역사적 무지와 역사의식의 부재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한반도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고 한탄했다.
6·25전쟁 가운데 미국이 모르는 것 중 하나는 전쟁이 유례없이 참혹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민간인 학살의 더러운 역사도 끼어 있다.
저자는~
“북한을 극악무도한 테러리스트로 보는 미국인의 생각과 달리, 그 최악의 범죄자는 겉보기에 명백히 민주주의 동맹국인 남한이었다”
고 지적한다.
이런 사실은 전쟁 직후 맥아더의 검열이 시행되면서 금지되고 잊혀졌다.
그래서 지금도 남한의 잔학 행위를 거론하는 것은 편견이자 균형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결론에서
“(지저분한 학살 등의) 역사적 증거가 지구상 최악의 참을 수 없는 독재 체제라는 지금의 북한 이미지와 모순된다면,
그것은 미국인들이 왜 한국에서 군사적 승리가 불가능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이라고 했다.
그러면 앞으로 이런 대립 구조의 극복은 불가능한 것인가.
저자는
“과거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이러한 이해 없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대립의 극복이 불가능하다”
고 했다.
한반도 역사에 대한 미국인의 망각은 역사의식 없는 강경한 정책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북한을 더욱더 완고한 유격대 국가로 만들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김대중·노무현 이후의 남한 정부는 이전 시기에 일궜던 성과들을 후퇴시켰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이밖에도 6·25전쟁 이후 미국은 급속히 군산복합체 산업을 확장시켰고,
이는 미국을 사상 유례없는 세계 경찰국가가 되도록 했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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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구소련과 미국에 의해서 어설픈 38선이 그어지고,
그랬지만 남북이 어느 정도 왕래가 되었고,
구소련과 미국의 신탁통치가 진행이 되면서
냉전체제 하에서 북쪽은 구소련이 관리하고, 남쪽은 미국-미군이 주둔을 하게 되면서
어설픈 2개의 국가와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지면서, 구소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김일성이 한국전쟁 준비를 하고, 어느 정도 미국의 정보로 충분히 알 수 있는
전쟁이었지만,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을 합니다.
그리고 3년간 치고받고 하다, 다시 구소련과 미국에 의해 휴전이 되고
그때의 휴전선이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결국 구소련과 미국의 장난..!!
이 지구상에서 큰 전쟁은 절대 우연으로 발발하지 않습니다.
한국전쟁도 구소련과 미국의 냉전체제 및 장기적인 이익을 위한 하나의 큰 이벤트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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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당사자라는 사실은 생각에서도 많은 제약이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전후 약 2세대가 지나면서 한국전쟁에 객관적인 시선을 담을 수 있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실제의 모습에 대한 말할 수 없었던 기억마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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