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악(五岳)은 중국의 다섯 이름난 산을 말한다.
다섯 방위에 따라 다음 산이 있다.
동쪽 — 동악태산(東岳泰山, 산둥 성, 1545 m)
서쪽 — 서악화산(西岳華山, 산시 성 (섬서성), 1997 m)
1일차 | 2019년 10월 17일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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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외버스터미널(04:40)→인천국제공항(06:40) 3F에서 버스 하차
[10:10] 아시아나 OZ347편으로 인천 국제공항 출발 / 시안 국제공항 향발 [비행시간 약 2시간 30분]
▶ 서안은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느린 시차를 가지고 있다.
[12:25] 시안 국제공항 도착 후 가이드 미팅
중식
전용차량 이용하여 화산으로 이동(약 2시간 소요)
진시황릉(차창), 병마용갱, 화청지 관광
* 진시황릉(차창), 병마용갱 - 기원전 246년에서 208년까지 36년에 걸쳐 70만명을 동원하여 건설한 능묘입니다. 진시황릉을 기점으로 중국은 막대한 경비를 지출하여
통치자를 후장하는 풍습을 낳게 되었으며, 1987년 진시황릉은 병마용과 더불어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 화청지 - 양귀비와 당현종의 연애시절에는 이곳이 매우 번성하였고, 당시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가, 안사의 난 이후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화청지의 온천수 수온은 43도 이다
석식 후 호텔 투숙 및 휴식
06:46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04:40에 출발한 무정차 리무진 직행버스는 김포공항을 거쳐
인천국제공항 3층의 탑승게이트 앞에 내려 준다. 2시간 밖에 안 걸리다니...
C카운터는 버스 하차장 부근에 있어 찾기 쉬웠다.
가이드와 미팅시간이 07:30인디 어디서 뭘할꼬?
대기석에 앉아 그냥 멍때리기로 한다.
이윽고 한 시간이 지나가면서 여기저기서 하나 둘... 나타나는 일행들~
여행에 필요한 여러 설명을 듣고 우리 9명은 가이드 인솔하에 탁송 및 탑승수속을 하러 간다.
13:12 서안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마친 후 공항을 빠져 나간다.
성남부부, 청주부부, 일산부부, 송파구, 수원 그리고 춘천에서 온 나~
이렇게 일면식도 없는 9명이 처음 만나 4박5일 일심동체되어 장도의 여행을 시작한다.
13:30 중국에서의 첫 식사가 시작되고~~
지난 6월 대만에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 데,
여기선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왼쪽부터~
수원형님, 송파구형님, 일산부부, 청주부부, 성남부부.
14:59 식사 후 진시황릉과 병마용갱 관광이 시작되고~
병마용갱(兵馬俑坑)은 중국 산시 성 시안 시에 있는 진시황릉에서 1km 가량 떨어진 유적지로
흙을 구워 만든 수 많은 병사, 말 등 모형이 있는 갱도다.
1974년 농민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해 지금까지 4개 갱도를 발견했다.
병용은 키가 184cm에서 197cm로 큰 편이며, 장군을 병사보다 크게 만들었다.
병마용은 전사, 전차, 말, 장교, 곡예사, 역사, 악사 등 다양한 사람과 사물을 표현하고 있다.
발굴한 4개 갱도 중 3곳에 모두 8천여 점의 병사와 130개의 전차, 520점의 말이 있다고 추정하며,
아직도 발굴하지 않은 상당수가 흙 속에 묻혀 있다.
병마용갱은 진시황제의 장례에 사용된 테라코타(terracotta)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진시황이 340만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기원전 246년에 건축되기 시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마천의 사기는 진시황릉이 완공된 후 약 1 세기가 지난 때에 저술된 사서이다.
사기에 따르면 진시황릉은 지상의 황궁을 그대로 옮긴 것과 같은 규모이며,
수은이 흐르는 5,000여개의 강과 수십 개의 망루를 가진 도성 안에 온갖 보물과 병사로 화려하게 조성하였다고 전한다.
진시황릉은 지상 궁전을 재현한다는 개념으로 지어졌으며,
완공이 된 후에는 도굴을 막기 위해 동원되었던 인부들을 모두 사살하였다고 한다.
2003년 1월 9일 진시황릉의 부장릉이 발견되어
진시황릉이 병마용 뿐만 아니라 실제 황궁을 재현한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조사 결과 병마용갱 부근에 있는 리산의 토양이 많은 수은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이곳이 바로 진시황릉이 조성된 곳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하자면~
진시황릉은 높이 76미터 넓이 350 평방미터에 이르는 흙으로 조성된 거대한 피라미드인 것이다.
리산에 대한 발굴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7년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원격 탐지 장치를 이용하여 내부에 벽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지금까지 발굴된 1호, 2호, 3호 용갱들은 진의 군대편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1호갱은 그 규모가 가장 커 주력군으로 보여지며,
2호갱은 전차 부대,
3호갱은 규모는 제일 작지만 지휘부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는 모두 회백색이지만 원래는 12~13가지의 밝은 색으로 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물 크기의 인물상들은 섬세하고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모양이 동일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실물을 모델로 했으리라 추측되고 있다.
흙 속에 파묻혀 이렇게 누워있는 것을 하나 하나 복원하고 있다.
17:00 진시황제릉
진(秦)나라의 제31대 군주이자 제6대 왕이고 첫 번째 황제이며 휘는 정(政)이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였고 황제라는 직위명을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사용한 인물이다.
스스로를 첫번째 황제라는 뜻의 시황제로 자칭했는데, 진나라 첫 황제라는 의미로 진시황이라 한다.
고대 중국의 연, 조, 위, 제, 한, 초 6국을 멸망시켜 춘추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통일왕조 진나라 성립 이후 마지막 왕조 청나라까지 약 2000년에 걸친 황제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한 인물이며,
따라서 중국 역사에 결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중화인민공화국(1949년) 이전에는 유학자들을 탄압하는 등의 여러 이유 때문에 대대로 좋지 못한 평을 듣기도 했다.
대표적인 폭군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기껏 중국을 통일해놓고 가혹한 정치로 백성들을 괴롭히고 최종적으로는 진나라 멸망의 씨앗을 남긴 사실로
폭군이자 암군이라는 혹독한 평을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며 통일 중국을 찬양하는 현대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북방의 오랑캐들이라며 비난 받던 북방 민족의 정복 황조인 나라들이
동북공정 이후 중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재평가되는 것과 유사하다.
화청궁
시내에서 동쪽으로 30km 떨어진 리 산(骊山) 일대는 알아주는 온천 지대다.
3,000년 전 주나라 때부터 당나라 때까지 황제와 조정 대신들이 애용했던 온천이자~
당나라 6대 왕이었던 현종(玄宗)과 양귀비의 로맨스 무대였던 화청지가 유명하다.
747년에 현종은 온천을 좋아하는 양 귀비를 위해서 이곳에 대규모 공사를 실시했다.
온천을 확장한 것은 물론, 새로이 궁전을 짓고 궁전 주변을 성벽으로 둘러싸 ‘화청궁(华清宫)’이란 별궁을 완성했다.
양 귀비는 서시, 왕소군, 초선과 함께 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힌다.
그녀는 현종보다 35살이나 어렸고, 심지어 현종의 18째 아들인 이모의 부인이었다.
그러니까 시아버지였던 현종이 며느리의 미모에 반해서 부인으로 삼은 것이다.
호사가들은 중국 역사상 둘도 없는 태평성세를 구가하던 당나라가 멸망한 이유 중 하나가~
현종이 양 귀비에게 눈이 멀어 정치에 해이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매일 43℃의 온천수가 120톤씩 샘솟는다는 화청지에서 그녀는 온천을 즐기며 매끄러운 피부를 항상 유지했다고 한다.
당시 현종과 양 귀비가 사용하던 온천탕이 그대로 보존되어 여행객을 맞이한다.
연화탕(莲花汤)은 현종이, 해당탕(海棠汤)은 양 귀비가~
그보다 먼저 만들어진 성진탕(星辰汤)은 태종인 이세민이 애용했다.
왕이 사용하던 온천 유적 오른쪽에 주룽 호(九龙湖)라는 호수가 있다.
푸른 물 위로 호숫가 풍경이 반영되어 제법 운치가 있다.
사이사이로 당나라풍 정자와 회랑이 이어지고, 양 귀비의 백색 석상이 눈에 띈다.
북쪽에 있는 비상전(飞霜殿)은 밤낮으로 미모를 가꾼 양 귀비가 현종을 침실로 이끌었던 둘만의 처소다.
해당탕
해당화 모양의 목욕탕으로 양귀비는 겨드랑 냄새 때문에 이곳에 별궁을 짓고 온천욕을 즐겼다고 한다.
연화탕
현종이 사용했다는 온천목욕탕이다.
앞에서 말한 것 처럼 양귀비(楊貴妃, 719년 6월 26일 ~ 756년 7월 15일)는 당 현종의 후궁이자 며느리이다.
그녀의 성은 양(楊)이고 이름은 옥환(玉環)이며, 귀비는 황비(후궁)로 순위를 나타내는 칭호이다.
벽화 등 그림에서 유추해보면, 당시 미인의 표준으로 실제로는 풍만한 여성이었다.
또한, 재주가 뛰어나 비파를 비롯한 음악과 무용에 큰 재능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당 현종 이융기에게 총애를 받았지만~
그것이 과도하여 끝끝내 안녹산과 사사명이 공동 주도하여 반란을 획책한 이른바 안사의 난이 발발하는 원인이 되었고
이 역사적 사건의 배경을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도 부른다.
한편, 화청지는 중국 현대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 시안사변(西安事变)의 무대이기도 하다.
1936년 국민당 당수 장제스의 부하였던 장쉐량이 공산당과의 내전을 중지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함께 싸울 것을 요구하며 일으킨 일종의 쿠데타가 시안사변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민당과 공산당은 제2차 국공 합작을 맺어 내전을 중지하고 항일 전쟁을 수행했다.
중국 역사에 있어 중요한 장소이다 보니 화청지는 중국 단체 여행객으로 늘 붐빈다.
20:38 시안에서의 첫 날 관광이 끝나고 두 시간을 이동하여 화산 부근의 숙소에 도착했다.
송파구에서 오셨다는 권오 형님과 룸 메이트가 되었다.
절제된 모습이 보여지고, 사려가 깊고 내공이 있다.
4박5일 간의 여행이 설레여 진다~~*^*
어제 한국에서 잠못이루는 밤을 지냈으니
오늘은 일찍 푸~욱 자아겠다.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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