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지리산둘레길 (1차) 둘째날 : 세동마을~동강~수철

온리하프 2021. 6. 9.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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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둘레길 》

 

 

 

 

 

 

 

 

 

 

 

 

 

안드로이드 gps &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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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둘레길 둘째 날 이야기 6/6 ◁

세동마을-운서쉼터-동강마을-거창함양사건추모공원

-상사폭포-쌍재-고동재-수철

06:20 기상
07:30 아침 식사
08:35 세동마을에서 트레킹 시작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09:06 첫번째 무인 휴계소 (휴천면 문정리 156)
10:29 운서쉼터
11:19 동강마을 찬희네민박(휴천면 동강리 446-1. 010-2796-7558)
12:22 동강마을에서 방곡마을로 가는 길목
12:44 거창*함양사건 추모공원(경남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722-6)
14:04 방곡1교
14:36 왕산 상사폭포(산청군 금서면 자혜리)
15:16 쌍재(산청군 금서면 수철리)
16:00 산불감시초소
16:55 고동재(산청군 금서면 수철리)
17:30 수철마을
18:20 수철마을 주차장에서 산청시내로 택시 타고 이동(요금 10,000원 이하)

08:18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임천 건너의 풍경을 담아 본다.

정겹고 소박한 마음이 든다.

엊저녁 잠들기 전에 내일은 늦게 까지 잠을 자자고 별렀는데~

아침 일찍 6시쯤에 눈이 떠졌다.

문제는 방에 커튼이 없어서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와 눈에 비췄다.

에구 망할 요즘 커텐 없는 집이 어딨니~~

잠이 좀 부족하다 싶었지만 공기가 맑아 그런지 피곤한 기색 없이 상쾌했다.

 

잘 먹고 잘 쉬었다 갑니다.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방값 40,000원. 식사 한 끼 4,000원. 맥주 피트병 3,000원

고맙습니다.

세동마을

세동마을

세동마을

세동마을

08:35    올레길에 접어들고~~

또 "용" 얘기다~~

포장도로지만 나무 그늘이라서 걷는데 더위가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09:06    첫 번째 무인 휴게소.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156)

 

이곳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잠시 쉬고 있는 데~

순간 놔두고 온 물건이 떠올라서 다시 민박집을 왕복해야 했다.

4km 거리를 알바해야 한다는... ㅜㅜ~~

지리산둘레길을 걸을 때 며칠 동안 걷느냐에 따라 신발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집에서 출발할 때 트레킹화와 샌들을 준비했으나 예상은 많이 빗나갔다.

트레킹화로는 하루 정도 걸을 경우에는 괜찮지만~

이번 경우처럼 3~4일 연속 걸어야 할 경우에는 등산화가 필수다.

나름 고가의 최적화된 트레킹화라고 자부해왔지만 발이 불편했다.

지리산 둘레길은 금병산이나 심할 경우 대룡산 정도의 경사도를 이루는 곳이 있으며,

또한 업 앤 다운이 심하다.

제주 올레길이나 북한산 둘레길, 섬 둘레길... 등으로 보면 안 된다.

발가락 아래는 물집이 생기고, 윗부분은 트레킹화와의 마찰로 허물이 벗겨 저 쓰라렸다.

그럴 때마다 샌들을 신었는 데, 아주 유용했다.

등산화가 이렇게 간절했던 적은 처음이다.

주인 분들이 아주 잘 정돈되고 깔끔하게 청소해 놓았다.

임천 위를 가로지르는 송문교가 보인다.

왔다간 트레커들의 주인에 대한 감사 인사를 메모로 대신하고...

10:00    다시 둘레길 트레킹이 시작되고~~

싱그러운 숲 속 향기가 부드럽게 느껴진다

지리산 아래에 있는 와불산(1213.9m)에서 빗물과 함께 바위가 동것골로 흘러내렸다.

10:29    운서 쉼터

운서마을 이야기

10:35    운서마을(경남 함양군 휴천면 운서리)

운서마을과 동강마을 사이의 구슬박재와 구시락재를 넘으며~~

고개를 넘으니 동호마을과 동강마을이 살포시 보이고~~

산딸기가 곳곳에 많이 열려 있다.

무거운 과일을 준비하지 않은 것도 우연의 일치~~

동강마을 느티나무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11:19    찬희네민박은 아직도 운영을 하는지 손님들이 몇몇 보인다.

(휴천면 동강리 :010-2796-7558)

지리산 에코 빌리지 안내도

지리산 둘레길을 감싸고 있는 남원시와

여섯 곳의 장수군, 함양군, 산청군, 하동균, 구례군, 곡성군

양파 수확을 하고 있는 농부들~~

나이 드신 분들이라 많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도울까? 잠시 머뭇거렸지만~

발도 아프고 갈 길도 멀고...

12:22    동강마을에서 방곡마을로 가는 길~~

 

산청*함양 추모공원까지 약 3km 가까이의 포장도로를 걸어가야 한다.

한 낮 태양이 뜨겁다.

지열까지 더해 몸의 수분을 전부 말려버리는 느낌이다.

개양귀비꽃이 아름답다.

작은 땜을 만들어 놓고 물이 차지 않아 흉물스럽게 보여 주민께 물어보았더니

 

내년 봄부터 담수를 시작한다고...

12:44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

사건 발생은 1951.2.7 06:00~18:00 산청군 금서면의 가현*방곡마을과 함양군의 휴천면 동강리 점촌마을, 유림면 서주리 서주마을에서 일어났다.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일대 공비토벌작전 중 양민을 공비와 내통했다고 간주하여 집단 학살한 사건으로 그 사망자 수가 700명을 넘어선다.

1950년 11월 29일 남원의 사단본부 참모회의에 참석하려고 지리산의 고동재를 넘던 미 군사 고문단의 리 대령, 장교 2명, 사병 28명이 적에게 공격당해 사망했다.

이런 일을 당한 11사단 9 연대는 공비들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갖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미 9 군단장의 작전 지휘를 받는 남원의 지휘관 회의에서 강경한 초토화 작전이 수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51.2.5 오익경(9 연대장)과 한동석(3대 대장)은 경찰을 포함한 청년 방위대로 편성된 1개 중대 총 700명을 이끌고 신원면으로 진격했다. 신원면에서 3대대 주력부대는 빨치산은 흔적도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젊은 여성을 무차별로 성폭행하고, 노약자들에게 강제로 군수 물자 등을 동원케 하고, 정보 장교 이종대는 노인, 부녀자 등을 현장에서 총살했다. 이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다를 바 없다. 

1951.12.16에 대구 고등 군법회의에서 9 연대장 오익경 무기징역, 3대 대장 한동석 징역 10년, 경남계 엄사 부장 김종원(대령) 징역 3년을 받았지만, 전쟁 상황 속에서 그들의 형이 제대로 집행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2019.6.5    ‘거창사건 및 산청ㆍ함양사건 관련자 배상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 발의(20대 강석진 의원 등 11인)되었고, 2021년 초에 대통령령의 시행령이 만들어졌다.

이 부근에서 식사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 "방곡 둘레길 체험마을"

민박도 가능하다고...

14:04    점심을 마치고 방곡 1교를 건너 좌측의 상사 골로 향한다.

오봉천에는 여름 피서객이 많다고~~

오봉천을 벗어나 상사골로 들어서고~~

14:36    상사폭포 하단.

수량이 부족해 아쉽다. 몸을 식히고 싶었는 데...

상사폭포 상단~~

이 산꼭대기에 웬 건물이~~

펜스가 쳐져 있는 것으로 보여 목장으로 예상된다.

목장 규모의 건물로 아마 둘레길 트레커들의 휴식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문이 닫혀 버렸다.

15:16    쌍재(경남 산청군 금서면 수철리)

15:35    여기도 쌍재~~

이곳에서 둘레길은 우측으로 들어선다.

지도를 보니 이곳이 진짜 쌍재로 확인된다.

숲 속의 정원으로 들어서는 느낌~~

16:00    산불감시초소

수철마을을 내려다보고~~

필봉산

수철마을

무슨 고개인가?

16:55    아아~~

여기가 역사의 현장이 되어버린 고동재구먼...

다시는 산청*함양 사건과 같은 가슴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말하야할 텐데...

2차 대전 전범국인 독일도 1990년에 통일을 이뤘는 데~

피해국가인 우리는 75년의 긴 세월 동안 왜 통일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일부에서는 통일비용이 상당할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국방비 예산, 북한의 노동력과 지하자원, 러시아나 중국을 통한 유럽 관통...

이러한 것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닐 것이다.

독일도 통일되리라 예상치 못하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기회가 와서 통일이 된 것이다.

우리 남한 국민들이 통일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다면 미, 소, 중, 일의 눈치를 볼 것도 없다.

독일도 그렇게 통일이 된 것이다.

헬무트 콜 총리의 역량과 국민들의 염원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남북통일에 대한 우리 국민의 마음 가짐이라고 본다.

 

 

 

 

 

 

1950년 그 당시의 상황을 짐작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절박했을 여러 형상들이 머리를 스쳐지나 간다.

기껏해야 전쟁 영화의 한 장면들로...

 

 

그런 생각들을 하며 길을 걷다보니 어느 새 마을에 닿는다.

 

 

10분 만 더 빨리 내려왔으면 마을버스를 탈 수 있었는 데...

하지만 발이 아파 더 이상 빨리 내려올 수가 없었다.

얼른 시내로 나가 씻고, 밥 먹고 쉬고 싶을 뿐이다.